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제24차 구간 종주 산행기(2)

1.산행일정 : 2002. 8.24 - 8.26(2박3일)
2.산행구간 : 무너미고개-마등령-미시령-진부령(26.3)
3.산행친구 : 끝까지 혼자
4.산행여정 : 2일차
- 8/25 : 제35소구간(마등령-저항령-황철봉-미시령 : 8.0 Km)
05:30 기상
08:10 마등령 출발
08:30 1,326.7봉
11:45 저항령
12:50 황철봉
15:33 미시령
(총 산행 시간 : 7시간 23분)

5.산행기

- 모처럼의 여유
지난 밤. 굵은 비는 아니지만 안개비가 나뭇잎에 맺혀 ‘툭’ ‘툭’ ‘툭’...떨어진다. 텐트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자장가삼아 잠이 든다. 밝은 달빛이 교교한 마등령에서의 하룻밤을 기대했었는데... 아쉬움이 많다.

텐트 바깥이 소란스러워 눈을 뜬다. 5시반이다. 단체 대간꾼들은 아침 준비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는 지라 누워 눈만 굴리며 시간을 죽인다. 내 옆에 텐트를 치고 자던 부산의 산꾼 김정웅씨가 “동키아저씨! 일어 났능교?”하고 부른다. 문을 열라하여 열어 주니 아침밥을 같이 먹자고 한다. 옆동네 단체 팀에서 조금씩 얻어 온 다양한 먹거리로 둘이서 아침을 먹는다.

안개는 여전히 온 산을 휘감아 짙게 깔려 있다. 햇살이 퍼지면 좀 나을려나 싶어 빈둥거리며 단체팀의 출발준비를 지켜 보고 있다. 오늘은 미시령까지만 갈까? 아니면 더 나아가서 야영을 할까를 생각해본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여유로운 아침이다.

- 부끄러운 자화상
출발을 준비하던 산악회 대간꾼들이 갑자기 쓰레기를 들고 모이더니 불에 태우기 시작한다. 연기는 안개속으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런 망할...! 대부분 나이 지긋한 남여 동호인들이고 아가씨도 보인다. 도대체 말이 나오질 않는다. 저래도 되는 걸까? 오늘까지 7구간 정도 남아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매 구간 저 짓거리를 하면서 백두대간 곳곳에 쓰레기를 파 묻고 다녔단 말인가? 너무나 당연시하는 행동에 어처구니가 없어 빤히 쳐다보다가 제지를 한다. 어떤 사람은 깡통 쓰레기를 발로 차고 오다가 손으로 주워 다시 들고 간다.

부끄럽다. 한없이 부끄럽다. 난 지금까지 대간능선을 타고 오면서 최소한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분들은 저런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단체로 하는 백두대간 종주에 대한 비난을 하는 것도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하고 나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적극적으로 제지를 못한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 그동안 경방기간중의 산행이나 휴식년제 구간의 산행을 하면서 죄를 짓는 심정이었는데...그 산악회의 명예 때문에 이름은 밝힐 수가 없다. 짙게 내려 앉은 안개와 함께 마음이 더욱 무거워 진다.

- 진부령은 항구, 대간꾼은 배
야영지를 정리하고 짐을 꾸려 출발 준비를 한다. 김정웅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고는 내가 먼저 출발한다. 곧장 마등령 정상에 올라서면 비선대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미시령으로 가는 길목에는 자연휴식년제 구간이므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큰 간판이 길을 가로 막고 서 있다. 간판 뒤로 돌아 1,326.7봉에 오른다. 안개는 그 멋진 공룡의 모습을 감춘 채 끝까지 보여 주지 않는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내려 섰다가 길을 잘못 들어 다시 1,326.7봉으로 돌아 온다. 무심코 직진을 했지만 1,326.7봉 직전에서 급하게 V턴을 해야 대간 마루금으로 이어 진다. 대간길은 점점 험해지면서 예리한 큰 조각 돌의 너덜지대로 이어 진다. 전망도 없는 안개 속에서 오르막, 내리막, 너덜지대가 반복되며 진행하기가 무척 힘이 든다. 험한 암릉을 피해서 만들어 진 우회로를 따라 가다 급경사 내리막을 만난다. 금방이라도 바윗돌이 굴러 떨어 질 것같은 너덜의 연속이다. 참 험하기도 해라. 조심 조심 산허리를 돌아 서면 또 오르막 너덜 지대다. 짧은 너덜구간을 다 올랐다 싶었는데 높다란 성벽과 같은 암릉이 길을 가로 막고 있다. 바위 성벽을 넘어 내리막 너덜지대를 내려서면 저항령이다. 왼쪽 길은 백담계곡으로 이어지며 오른쪽 길은 저항령계곡과 설악동으로 이어진다.

쉬지 않고 저항령을 통과해 바위 너덜지대를 올라 황철봉으로 오른다. 이렇게 큰 바위돌들이 어떻게 산 정상부를 차지하고 있을까? 조물주도 장난기가 있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대간이 종착지에 가까워졌음인지 오가는 대간 종주자들이 많이 눈에 띈다. 종착지 진부령으로 향해 가는 종주자들과 진부령에서 출발하여 이제 갓 먼 항해길인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종주자들이 같은 항로에서 서로 인사를 주고 받으며 만났다 헤어 진다. 마치 진부령이라는 항구에 드나드는 배의 모습이 연상된다. 이제 갓 시작한 종주자들이 종착지 항구로 항해하는 종주자를 바라 보는 시선은 존경과 부러움 그 자체 인 것 같다.

황철봉을 지나니 안개는 더욱 짙게 깔리고 안개비마져 내려 온몸은 다 젖는다. 어제도 안개비, 오늘도 안개비... 대간 종주중에 유난히도 안개비와의 인연이 많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와 영 딴판의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백두대간상 유일하게 길이 끊어진 곳이 이곳 너덜지대라 생각된다. 안개는 방향마져 혼란스럽게하고 마치 사막의 한 가운데 버려진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젖은 바위는 내 디뎌야 할 발의 자유를 빼앗아 버리고 악마의 입처럼 벌리고 있는 바위틈이 유난히 깊게만 느껴진다. 안개와 비와 젖은 바위는 눈앞의 종착지를 향해 가는 대간 종주자들을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만든다.

안개 속으로 앞서 간 선답자들이 만들어 놓은 돌탑의 흔적을 발견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 놓는다. 너덜이 끝났다 싶으면 또 나타나는 바위지대다. 지난 번 덕항산에서 만났던 부부의 말에 의하면 태백여성산악회 회원들이 작년 대간 종주중에 이곳 너덜지대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벗어 났다고 한다. 바위 너덜 구간을 한시간이 넘게 걸려 벗어 난다.

언제 너덜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길은 좋아지고 무성한 억새 숲을 헤치고 미시령으로 향한다. 미시령휴게소의 음악소리가 짙은 안개비 속으로 전해 온다. 입산통제 구간이라 철조망 울타리가 쳐져 있는 입산통제초소를 지나 미시령에 내려선다. 짙게 깔린 안개 때문에 차량들이 전조등을 켜고 천천히 지나 간다. 휴게소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고 내일의 마지막 구간을 준비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속초로 향한다.(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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