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제24차 구간 종주 산행기(1)

1.산행일정 : 2002. 8.24 - 8.26(2박3일)
2.산행구간 : 무너미고개-마등령-미시령-진부령(26.3Km)
3.산행친구 : 끝까지 혼자
4.산행여정 : 1일차

- 8/24 : 제34소구간(무너미고개-1,275봉-나한봉-마등령 : 4.0 Km)
23:26 울산 출발(8/23)-청량리행 열차, 영주에서 강릉행으로 갈아탐.
07:00 강릉
09:30 설악동 소공원 매표소
10:13 비선대
12:14 양폭대피소
13:32 희운각대피소(14:15 출발)
14:20 무너미고개(백두대간 마루금)
14:48 신선봉
16:53 1,275봉
18:45 마등령(야영)
(총 산행 시간 : 9시간 15분)

5.산행기

- 마지막차 구간 종주
가슴 한 구석에 옹이처럼 박혀 있던 백두대간 종주. 그 옹이를 뽑아 내고야 말 기세로 종착지로 향해 달려 들던 그 뜨거웠던 7월의 구간 종주와는 달리 전국을 물바다로 만든 게릴라의 기습호우로 잠시 숨을 고른다. 완주의 기쁨과 공허감이 교차할 것 같아 완주를 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3주를 보낸다. 비록 반동가리일 망정 시작한 일이니 끝을 보자고 마지막차 구간종주를 떠난다.

이젠 울산역의 표파는 아저씨들과 자연스레 아는 척하며 인사를 한다. 옆에 있던 아저씨도 거의 한 달만에 본다고 거든다. 기차를 자주 타게 되니 자는 것도 이골이 나서 잠을 깊이 자는 바람에 영주에서 갈아타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강릉에서 관광버스로 올라와 설악동 입구에서 회덮밥으로 아침을 먹는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다. 배낭을 지고 나가니 설악동가는 시내버스가 막 떠나 버린다. 꼭 그런 사람 기다리는 것처럼 택시 한대가 서 있다. 홧김에 서방질 한다고 했던가! 그래 마지막인데 타자.

설악동 소공원은 주말이지만 아침 나절이라 그렇게 붐비지를 않는다. 비선대 가는 숲길은 한산해서 걷기가 좋다. 계곡따라 맑은 물이 시원스레 흐른다. 인고의 세월을 기다려 태어난 매미는 마지막 가는 여름이 아쉬운지 목청껏 울고 있다. 독사 한 마리가 겁도 없이 길을 가로 건너다 말고 나를 힐금 쳐다보고 도망을 간다. 택시 기사 말로는 용아릉에 독사가 그렇게 많단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적당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을이 다가 오는지 하늘도 많이 높아진 것 같다. 비선대를 지나 설악골, 문수담, 잦은바위골, 귀면암,양폭에 이르는 길에는 등산객들의 발길은 여전하다. 협곡을 오르는 길에는 철 계단이 끝없이 이어 진다. 설악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인 천불동 계곡의 단풍도 곧 붉게 물들겠지. 양폭대피소를 지나자 산안개가 자욱하게 내려 앉는다. 지난번 호우경보속에 공룡능선을 포기하고 아내와 함께 내려 왔던 길을 따라 무너미고개에 오른다. 희운각대피소에서 점심으로 햇반 하나를 데워 먹는다. 다람쥐들이 주위를 맴돌며 먹을 것을 달라고 재촉한다. 뒷발로 서서 음식을 갉아 먹는 모습이 앙증맞다.

오늘은 희운각에서 충분히 쉬면서 내일 산행을 준비할려고 했는데 시간이 남아 공룡능선을 넘기로 한다. 다시 배낭을 정리하여 무너미고개로 향한다. 공룡능선을 넘어 왔을 산행객들이 고개마루에 앉아 식사를 마치고 천불동으로 내려간다.

- 공룡없는 공룡능선
공룡능선은 작년 가을에 한번 다녀 간 적이 있다.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바위투성이 신선봉을 오른다. 간간이 대청봉을 보여 주던 날씨는 갑자기 안개로 뒤덮힌다. 천불동 계곡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안개 바다처럼 보인다. 난 고립무원에 버려진 사람처럼 안개의 독방에 갇혀 버린다. 산에서의 날씨는 언제나 이렇게 돌변한다.

마천루처럼 하늘을 찌를 듯 꽃을 머리에 이고 서 있을 천화대의 아름다운 침봉들, 천불동계곡의 기기묘묘한 암릉과 대청봉으로부터 장엄하게 뻗어 내린 화채능, 가야동계곡과 용아장능의 위용도 안개의 장막으로 가리워진 채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길은 공룡능선의 암릉 안부를 따라 오르내림이 심하게 나 있다. ‘등산로 아님’표지와 ‘위험’ 경고판이 공룡능선의 힘든 산행길을 말해 주는 듯하다. 힘겹게 암릉길을 올라 내려서려는데 바위벽에 붙은 동판 하나가 눈에 띈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山을 넘어 사라지는 너의 긴 그림자

슬픈 그림자를 우리 어찌 잊으랴.

살아 있으면 이미 40대의 중년에 들어 섰을 주인공을 위한 동판은 주인공 대신에 먹은 나이 때문에 파란 녹이 보기 좋게 끼어 있다. 숙연한 마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길따라 올라 오는데 ‘등산로 아님’ 팻말이 걸린 줄이 길을 막고 있다. 팻말에는 누군가가 물표시를 해 놨다. 지나 오면서 물은 보지 못한 것 같은데...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 안개비가 내린다. 지도를 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 단지 경과된 시간으로 거리를 가늠해 볼 뿐이다.

백두대간을 하면서 비나 안개비를 맞은 적이 더 많은 것 같다. 비를 맞고 능선 숲길을 따라 걷는 것이 이젠 환상적으로 좋아 졌다. 아무리 젖지 않을려고 애를 써봤자 그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다 젖어 더 이상 젖을 것이 없을 때의 그 자유로움이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밤에 걷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둠에 짓눌러 극도의 불안감으로 오히려 나를 포기했을 때의 그 평온한 마음은 그저
담담할 뿐이다. 포기의 편안함인 것이다.

천화대의 주인공인 1,275봉을 오른다. 아득하기만한 미끄러운 급경사 바위길을 조심조심 기다시피 오른다. 그 거대한 암봉의 주인장을 못 뵙고 가는 구나. 마등령까지는 아직도 2.1Km나 남았다. 1,275봉 안부를 따라 난 길은 작년보다 많이 훼손되어 있다.흙은 다 쓸려 내려 가고 깊게 패인 길에는 온통 큰 돌 뿐이다.

몇 개의 이정표와 산악구조 안내 포스트로 남은 거리를 가늠하면서 힘든 오르내림을 위로하며 한걸음 한걸음 길을 재촉한다. 예정에 없던 산행으로 마음은 조급한데 힘든 구간인 만큼 제대로 속도가 나질 않는다. 안개비는 계속 내리고 그렇지 않아도 힘든 길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나한봉을 지나 짧은 너덜을 내려서서 숲속으로 접어 드니 사람들 소리가 두른 두른 들린다.

마등령에 도착하니 많은 등산객들이 이미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다. 빗물이 흘러 내리지 않을만한 약간 경사진 곳에 텐트를 친다. 밝은 달을 기대했던 마등령에서의 하룻밤을 빗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보낸다. 짧은 대간 마루금이지만 의미 있는 하루의 구간 종주를 마친다.(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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