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 중고개재→광대치→봉화산→복성이재→사치재
o. 03:30 - 지지리 마을 출발 o. 09:46 - 복성이재
o. 04:06 - 중고개재 o. 10:10 - 아막산성
o. 04:47 - 중재 o. 10:44 - 781m
o. 05:58 - 광대치 o. 11:31 - 새맥이재
o. 06:35 - 944m o. 11:58 - 691m
o. 07:50 - 임도 o. 12:16 - 헬기장
o. 08:08 - 봉화산 o. 12:28 - 사치재
o. 09:12 - 치재 o. 12:38 - 지리산 휴게소
※ 총 산행시간 : 9시간8분

게릴라성 호우로 인하여 많은 곳이 침수되는 등의 물난리를 겪고 있다. 이에 따른 피해로 농심이 자꾸 멍들어가고 있다. 자연의 재해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에는 날씨가 갠다는 소식에 다소 기대를 걸어본다. 예보대로 지지리 마을에 도착하니 맑게 갠 하늘에 별들도 제법 빛을 내고 있다.
그런데 지난번 건너온 4m 폭의 개울에 물이 불어나서 징검다리 받침돌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별수 없이 몇몇이 일행들을 업어 나른다. 작은 밭을 지나서 산길로 접어드니 전날 내린 비가 풀숲에 맺혀 있다가 일시에 떨어진다. 순식간에 옷은 젖어가고 길은 미끄럽기 한이 없다. 길도 희미하고 워낙 좁아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여간 쉽지 않다.

4시6분 지난구간의 하산지점인 중고개재에 도착한다. 중기마을로 하산하는 곳은 여기서 10여분 더 진행하면 나타난다. 길이 아주 잘나있는 완만한 능선을 가다보면 커다란 정자나무 아래로 중재가 나타난다. 그런데 별이 반짝이던 하늘은 사라지고 주변에 서서히 안개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마치 어둠의 서막을 알리듯.... 간편한 길을 오다가 잠시 가파른 듯한 곳이 월경산인데 대간 길은 옆으로 나있다. 희미한 길이 있어서 잠시 올라보니 별로 흔적이 없고 잡목만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5시58분 갈림길이 있는 광대치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억새와 잡목들이 쉴 새 없이 나타난다. 안개비는 나무와 풀숲에 걸려서 물방울로 변하여 온몸을 흠뻑 적시고 있다. 등산로는 별로 험하지 않은데 풀숲을 헤쳐 나가기가 여간 곤욕이 아니다. 처음이야 뽀송뽀송한 옷을 잘 유지하기 위해 조심조심 나가보지만 이내 포기하고 상처만 안 나기 바랄뿐이다. 그러나 한길이 넘는 억새는 예리한 면도날처럼 살갗에 5선을 그려내고 있으며, 빽빽한 철쭉나무는 창칼로 돌변하여 얼굴, 머리 등 신체부위를 가리지 않고 마구 찔러댄다. 여기에 가시넝쿨은 그동안 그려진 곳의 남은 여백을 메우듯이 긁고 할퀴어 붉게 물들여 나간다. 어떤 곳은 마치 터널처럼 허리만 굽히면 나갈 수 있는 곳도 있고, 위만 조심하다 미끄러운 길을 모르고 벌러덩 나가자빠지기도 한다. 또 이것저것 피하다 그만 옆에 뾰족하게 나와 있는 나무에 코가 걸려 마치 낚시 바늘에 걸린 고기가 파닥파닥 뛰듯 소리 한번 제대로 못 지르고 버둥버둥 댄다. 이런 현상에 뒤따라오던 홍원장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분을 참지 못하고 “어이구 이것들을...” “에이 #%$*@~”를 연발하신다.

한판의 전쟁을 치룬후 힘들게 올라서면 묘 한기가 있는 944m 지점이다. 날씨만 맑았다면 저 건너편에 있는 봉화산과 주변일대를 둘러볼 수 있을 텐데 아쉽다. 능선을 횡단하는 임도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봉화산에 다다른다. 온몸이 젖은 상태라 오래 머무를 수가 없다. 급기야는 덜덜덜 떨리기까지 한다. 다시 전과 동일한 정글지대에 돌입한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저만치 지나간 사람도 다시 불러 세워 놓고 반드시 아는 척을 해야 통과 할 수 있다. -“아이구 칙넝쿨님이었군여!”- 안 그러면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 이런 식으로 미로를 헤매다 보면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는 건지 알 길이 없다. 그저 멍할 뿐....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이 기기묘묘한 현상.... 지난구간(육십령~중고개재)에도 억새와 산죽 등이 엄청 괴롭혔지만, 그래도 그 구간은 오늘에 비하면 훨씬 양반이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징하다.

그래도 이렇게 가다보면 거리는 줄어드는 법, 치재를 지나서 목장 울타리가 쳐져있는 작은 봉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양팔은 벌겋게 되어 화끈화끈 거린다. 고인식 사장님은 이 와중에도 반바지 상태로 왔으니, 양다리가 마치 낙서판이 된 듯싶다. 쳐다보면 꼭 내 다리가 아픈 것 같아 고개를 돌린다. 그래도 이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양다리를 쓱쓱 문지르며 “며칠 지나면 또 괜찮아유~” “........”

9시46분 철망을 따라 내려오면 아스팔트도로인 복성이재에 도착한다.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잠시 후 백제와 신라가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싸웠던 아막산성터에 도착한다. 잠시 목을 축인 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고 781m 지점에 이르렀을 때는 간간히 햇빛도 보인다. 임도인 새맥이재를 지난 후 오른쪽 능선을 타고 잠시 올라가면 작은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다시 새맥이재와 연결된 임도를 지나서 조금 오르다 보면 691m 지점에 도착한다. 이제부터는 햇볕이 너무 뜨거워 얼굴이 익는 것을 걱정해야 했다.

손만 뻗치면 지리산 능선이 잡힐 듯 아주 가까이 보인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고남산, 수정봉 등 얼마 남지 않은 대간능선 대부분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종착지점인 지리산 휴게소가 왼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 88고속도로가 보인다. 능선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헬기장이 있고 다시 완만한 길을 더 걸으면 사치재로 내려가는 급경사길이 나온다. 도로에 내려와서 좌측으로 조금 걸으면 굴다리가 나오며 이곳을 통과해서 다시 도로를 따라 가면 지리산 휴게소가 나온다. 오늘 산행구간은 전체 백두대간 중에 걷기가 가장 불편한 구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백두대간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고통을 극복해내야 하며, 이는 삶의 새로운 영양분이 되지 않을까 감히 언급해본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