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제22차 구간 종주 산행기(2)

1.산행일정 : 2002. 7.27-7.29(2박3일)
2.산행구간 : 진고개-구룡령-조침령-한계령(61.Km)
3.산행친구 : 여전히 혼자
4.산행여정
- 7/28 : 제31소구간(구룡령-갈전곡봉-왕승골갈림길-1061봉-쇠나드리-조침령:18.8Km)
04:00 기상
06:05 구룡령 출발
07:48 갈전곡봉
09:15 다시 선 갈전곡봉
10:52 왕승골갈림길
13:45 1061봉
16:01 쇠나드리갈림길
16:55 조침령
(총 산행시간: 10시간 50분)

5.산행기
- 대간 꾼 정기훈씨
정기훈씨는 새벽녘 구룡령을 출발하는 대간꾼들의 대간 마루금 초입을 일일이 알려 준다. 일찌감치 일어나 새벽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고 좋아 한다. 어제의 그 짓궂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어 있다. 기훈씨는 대간길 57일만에 손님을 치루고 있다. 집에 찾아 온 손님을 접대하느라 미역국도 끓이고 많은 밥도 준비를 한다. 연신 즐거운 표정이다. 태백에서 사온 고추지를 하나씩 나의 밥그릇에 올려 준다. 반찬도 많이 준비 했다. 옆의 현선이 영미네 집은 아직도 밥할 생각이 없는가 보다.

정기훈씨는 경남 하동이 고향으로 큰 조카와 여섯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은 여러 형제중의 막내란다. 어릴적부터 시골에서 농삿일을 거들다가 농고를 나와 경남 김해에서 장미꽃을 기르는 기술을 배웠단다. 하지만 일을 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성미라 남들 보다 많은 일을 했음에도 손에 쥐는 돈은 별반 차이가 없었단다. 10년만에 장미꽃에 미련을 버리고 서울로 가서 지금은 목욕탕 일을 보고 있단다. 그것도 여름철이 비수기라 여행삼아 놀기삼아 시작한 것이 백두대간 단독 종주였단다.

종주 57일째 이지만 올라 오면서 개머리재에서 3일을 남의 농삿일을 봐 주고 며칠간 백복령 휴게소 주인을 따라 다니며 약초를 배우고 장뇌삼까지 캐어 주는 등 여유로운 산행을 계속 했단다. 처음에는 목욕탕 비수기인 6,7,8월의 3개월간 종주 계획이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끝나게 되어 시간 보내기 위해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단다. 대간도 여행이라고 생각하니 힘도 들지 않고 재미 있단다. 그래도 돈을 좀 모아야겠다고 한다. 참 재미있는 젊은이다.

- 唐反肺症(당나귀 허파 뒤집혀 지는 증상)이 도지다.
오늘은 단목령까지가 목표다. 상당히 먼 거리를 가야 하는 데 기훈씨는 텐트를 걷고 짐 정리를 할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단다. 옆집에 인사도 없이 혼자 먼저 구룡령을 출발한다. 하늘은 맑고 아침 햇살이 넓게 퍼져 대지위의 촉촉한 물기 때문에 아침 안개가 엷게 피어 오른다.

구룡령 초입의 잡목숲을 헤치며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능선에 올라 선다. 숲속의 나뭇가지 사이로 부채살 모양의 햇살이 비쳐 기분 좋은 출발을 예고해 주는 것 같다. 훼손된 백두대간의 생태 복원을 위해 주목,전나무,종비나무를 식재했다는 간판이 서 있다. 갈전곡봉가는 길에서 내려다 보니 구룡령은 이미 안개가 자욱하다.

7시 48분에 갈전곡봉에 올라선다. 그 흔한 표지석하나 없다. 한 젊은이가 배낭도 없이 무전기만 들고 쉬고 있다. 입산통제요원인가 싶어 속으로 놀랬다. 조금 있으니 2명의 등산객이 역시나 배낭도 없이 올라온다. 쉬다가 두 등산객이 오던 길로 내려 선다. 한참을 내려서서 능선을 따라 아무 생각없이 걷는다. 가는 길이 아무래도 지도상 지형과 다른 것 같아 유심히 살펴 본다. 이 길이 아니야! 길을 잘못 들었어. 가고 있는 방향이 가칠봉쪽이다. 벌써 제법 지나쳐 왔는데... 큰일이다. 갈 길이 멀때 꼭 이런 일이 생기네. 대간 초기에 길을 잃고 역주행 사건이 있은 후로는 헤맨 적이 없었는데 앞 구간의 노인봉을 잘못 들었고, 또 오늘 아침부터 헤매고 있다.

唐反肺症(당나귀 허파 뒤집혀 지는 증상)이 재발하는 구나. 한시간 반만에 갔던 길을 되돌아 와 갈전곡봉에 다시 선다. 갔던 길을 되돌아 올때의 그 기분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주저 앉아 가쁜 숨을 진정 시킨다. 표지리본도 확실하게 잘 달려 있는데 도대체 뭣을 보고 다니는 거야!! 한참 어리석음을 탓하는 자아비판을 쏟아 놓고 갈 길을 재촉한다.

왕승골갈림길까지 꽤나 긴 거리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걷는다. 땀은 정신없이 쏟아져 나오고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물을 먹어 댄다. 왕승골갈림길 계곡에 물이 있다는 간이 이정표를 만들어 비닐커버를 씌워 걸려 있다. 친절도 하시지. 그 힘들고 바쁜 와중에 이런 것도 다 만들어 놓으시고... 대간 선배님께 감사드리며 물을 보충하러 산죽길로 뛰어 간다. 오늘 같이 땀을 많이 흘리면 물도 충분히 준비 해 둬야 마음이 편하다.

- 등짐의 무게와 삶의 무게
아침부터 길을 잘못들어 기운을 뺀데다 갈길이 멀다고 생각하니 조급하게 서둘게 된다. 그럴수록 힘은 곱빼기로 드는 것 같다. 지도상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지만 오르내림이 심하고 봉우리도 셀수 없을 만큼 많은 것 같다. 배낭의 무게가 서서히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배낭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다 한들 삶의 무게 만큼이야 나가겠느냐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굵은 땀방울을 쏟아 내며 걷는다.

968.1봉에서 정기훈와 만난다. 갈전곡봉에서 헤매고 있을 때 나를 지나친 것 같다. 좁은 헬기장에 비에 젖은 장비며 옷가지를 죄다 널어 놓고 말리고 있다. 나보고 오늘 단목령을 포기하고 천천히 조침령까지만 가자고 한다. 포기 못한다. 4시 안에 조침령을 가면 반드시 단목령으로 가겠노라고 하면서 먼저 출발한다.

내가 단목령까지 간다고 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번 우두령에서 추풍령 구간을 함께한 일시 종주자 윤현조씨가 꼭 그곳에서 하루 묵어 가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단목령에서 진동리 설피마을에 가면 이상곤씨라는 분이 살고 계신데 그 곳에 가서 과일주도 한잔 얻어 마시고 산골 마을의 때묻지 않은 이야기도 들어 보라고 한데서 비롯 된 것이다.

1061봉과 956봉을 지나면서 발걸음도 빨라지고 시계보는 횟수도 빨라진다. 바지가랑이도 젖고 엉덩이도 젖어 걸음 걸이가 무거워 진다. 956봉에서 40분 거리에 있다던 쇠나드리는 코빼기도 안보이고 계속하여 봉너머 봉이다. 강원도 산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우리동네 산이야 한번 치고 올라가서 한번 내려 오면 그만인 데 역시 동네가 틀리는 구나.

16시경 쇠나드리 갈림길을 지난다. 암만해도 단목령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이미 많이 지쳐 있어 시간이 있어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역시 욕심은 있는 것인가. 30분을 덤으로 빌려와 조침령까지 4시30분이면 단목령으로 갈 수 있겠다고 택도 아닌 발상을 한다. 그러나 쇠나드리를 지나 조침령으로 가는 길도 이미 지쳐 버린 나그네에겐 상당히 힘든 구간이다. 역시나 산너머 산이요, 봉너머 봉이다. 이봉이 마지막이겠지 하면 또 다시 나타나는 봉우리요 끝났다 싶으면 다시 이어지는 산봉우리들이다.

능선 길을 돌아 황톳빛의 조침령 절개지가 보인다. 표지기를 따라 도로에 내려 섰다가 정상에 있는 조침령 표지석에 당도한다. 조침령 도로를 3군단 공병여단에서 건설했다고 적혀 있다. 어제는 안개비 속에서 오늘은 전망없는 잡목 숲 속에서 대간길을 걸었다. 피곤한 다리를 다독거리며 한국의 오지중의 오지 쇠나드리 민박집을 향한다.(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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