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제21차 구간 종주 산행기

1.산행일정 : 2002. 7.21(일)
2.산행구간 : 닭목재-고루포기산-대관령-노인봉-진고개(36.0 Km)
3.산행동지 : 당나구 혼자
4.산행여정
- 7.21 : 제28소구간(닭목재-고루포기산-능경산-대관령 : 12.6 Km)
제29소구간(대관령-곤신봉-매봉-소황병산-노인봉-진고개 : 23.4 Km)
23:26 울산 출발(7/20)-청량리행 열차, 영주에서 강릉행 열차로 갈아탐.
07:10 강릉 도착
07:55 닭목재 도착(산행시작)
08:45 왕산제1쉼터
09:15 왕산제2쉼터
09:48 고루포기산(1,238m)
10:21 횡계치
11:26 능경봉(1,123m)
12:04 대관령
12:54 중계소
13:12 새봉
13:50 선자령 정상
14:54 곤신봉
15:57 매봉
17:30 소황병산(1,430m)
19:05 노인봉 산장
20:00 진고개
(총 산행시간 : 12시간 05분)

5.산행기

- 심란한 마음 달래며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비도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일주일 내내 교통사고로 고통 속에 있는 분들의 고통스런 얼굴을 보면서 산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아내는 배낭을 메고 출발하는 나를 보고 꼭 산에 가야 겠느냐며 끝까지 물고 늘어 진다. 비를 빌미 삼아 산에 가는 걸 만류하고 싶었던 것이다. 말없이 등산화를 조여 매고 늦은 밤에 집을 나선다.

기차는 밤새 달려 정동진역에 선다. 아침해가 구름사이로 잠깐 얼굴을 내민다. 정동진에서 밤을 지낸 많은 선남선녀들 때문에 작은 역이 더욱 비좁다. 한참을 있다가 떠난 기차는 금방 강릉에 도착한다. 이젠 올라 가고 싶어도 더 갈 수 없는 기찻길이다. 대간길도 이젠 막바지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 역 앞에 있는 식당에서 된장찌개로 아침을 먹고 택시를 타고 닭목재로 향한다.

- 고루포기너머 대관령으로
닭목재 산신각은 굳게 문이 잠겨져 있고 그 앞에는 치성을 드리느라 쓴 술병들이 줄지어 서 있다. 백두대간 24구간 등산로 안내도에는 닭목재-대관령구간이 12Km 7시간이라고 적혀 있다. 오늘은 지난번 못했던 대관령구간을 끝내고 진고개까지 갈 작정이다. 내가 정한 2개구간을 당일치기로 끝낸다는 것이다. 마음이 급하다. 아마도 초반부터 서두르게 될 것 같다. 하늘에는 구름이 약간 끼여 있다. 비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닭목재를 뒤로 하고 또 한구간의 백두대간을 종주하기위해 힘차게 출발한다. 임도를 따라 가면 알이 통통하게 배인 고랭지 무밭과 배추밭이 연이어 나오고 임도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면 맹덕목장입구에 닿는다. 목장입구에서 '개조심 전기조심'이라고 쓰인 경고판이 서 있고 목장과의 경계선에는 전기철조망이 쭉 쳐져 있다. 전기가 오는지 않 오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닿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면서 걷다 보니 신경이 많이 쓰인다. 목장이 끝나고 또 반대편 사면에는 목장을 조성하기 위해 소나무만 살려 두고 나머지 나무는 나무밑둥에 흠집을 내어 물이 올라 오는 것을 차단하는 바람에 나무들이 죽어 고사목이 되어 서 있다. 살아 있는 소나무와 죽어 팔을 하늘로 치켜 든 잡목들의 고사목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왕산면에서 만든 왕산 제1,제2쉼터를 연달아 지나 철탑이 동서로 횡단하는 산등성이를 힘겹게 오른다. 철탑을 건설하면서 개설한 임도가 철탑을 따라 나 있다. 9시 48분에 고루포기산(1,238m)에 오른다. 임도옆에 있어 봉우리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이정표에는 '왕산고루포기쉼터'라고 적혀 있다. 구름이 짙게 봉우리 가까이 내려와 있다. 능경봉까지는 4Km가 남았단다. 조금가면 오목골갈림길 이정표에는 능경봉4.7Km 고루포기 0.4Km라고 되어 있다. 한 마디로 뒤죽박죽 이정표다. 이러한 이정표는 산행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혼란만 가져다 준다.

오목골갈림길에서 조금만 나아가면 대관령전망대다. 대관령상록회에서 이렇게 적어 놓았다. '상록정신을 초석 삼아 대관령을 푸르고 아름다우며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풍요로운 마을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염원일 것이다. 옅어진 안개로 햇살이 고개를 내미는 듯 해도 전망은 시원치 않다. 평창군 횡계리 모습만 간신히 보인다.

횡계치라고 생각되는 왕산골 갈림길을 지나 숲속 길을 따라 능경봉으로 향한다. 어느 표지기 뒷면에 매직으로 쓴 낯익은 필명의 표지기 하나가 길에 떨어져 있다. 오케이 마운틴의 林山님의 표지기다. 앞면에는 부산낙동산악회의 백두대간종주표지기이고 그 뒷면에는 매직으로 '충주 林山 2001.6.27'이라고 적혀 있다. 林山님은 이미 작년에 백두대간을 단독으로 일시 종주를 하시고 최근에야 그 산행기도 끝을 맺어 나의 대간 종주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대간길에서 나마 표지기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흙을 털어 내고 나뭇가지에 다시 걸어 둔다. 이미 1년전에 달아 놓은 표지기다. 나의 표지기는 얼마나 오래 나무에 매달려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3개월정도라고 짐작해 본다. 고무 밴드는 빗물과 햇볕 때문에 3개월 정도 견디다 땅에 떨어져 생명을 다하겠지.

능경봉이 가까워 지자 차량이 질주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도에는 짐작이 될 만한 도로가 전혀 없다. 혹시 내가 길을 잘못 들었는사 싶어 지도와 나침반으로 몇 번씩 위치를 확인해 본다. 조금 지나다 보니 널찍한 고속도로가 콧구멍처럼 생긴 쌍굴로 연결되어 있다. 얼마 전 대관령 새 도로가 생겼다고 한 곳이 바로 이 도로구나!

대관령으로 내려 설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봉우리가 능경봉인데 여느 봉우리들처럼 쉽게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행운의 돌탑을 지나면서 돌 세 개를 올려다 놓는다. 하나는 얼마 남지 않은 나의 백두대간 무사 완주를 기원하는 것이고, 두 개는 이번 교통사고로 누워 계시는 분들의 조속 완쾌를 기원하는 것이다.

11시 26분 능경봉에 오른다. 표지목에는 '해발 1,123m 대관령휴게소 1.8Km라고 적혀 있다. 햇살이 엷게 비친다. 지상에 퍼진 가스로 전망은 신통치 않다. 잘 닦여진 내리막길을 따라 대관령으로 향한다.

- 꿈같은 초원의 능선길 따라서
동해 영동 고속도로 준공 기념비를 지나 고속도로위를 횡단하는 도로로 대관령을 넘는다. 도로 양쪽을 아무리 살펴도 지나가는 차량이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한가한 고속도로는 처음이다. 양쪽 휴게소도 이미 철시 한지가 오래 된 듯하다. 새로 생긴 도로에 모든 것을 뺏긴 채 역사의 흔적 속으로 묻힐 것 같다.

대관령을 떠나 능선으로 오르자 군데 군데 지하 벙커였음 직한 콘크리트 구조물의 잔해가 보이고 용도가 불분명한 통나무로 세워 만든 방책이 성벽처럼 줄지어 서 있다. 주목인지 구상나무인지 모를 어린 묘목은 보호그물이 쳐진 채 수만평의 대간길을 점령하고 서있다. 아마도 훼손된 자연을 회복시키려는 인간의 노력인 것 같다.

대관령중계소에 도착하자 새벽 04시30분에 진고개를 출발했다는 대간종주팀을 만난다. 진고개에서 여기까지 8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 같은 속도일 경우, 나는 밤 9시30분에 진고개에 닿는다는 계산이다. 서둘러야 겠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졸졸 나온다. 물을 채워 바쁜 걸음으로 길을 재촉한다. 한국항공무선표지소를 지나 새봉에 이른다. 새로 생긴 고속도로가 능경봉 아래에서 나와 지나 간다. 저 멀리 연무 속의 강릉이 희미하게 보인다.

북쪽으로 연결된 능선은 동급서완(東急西緩)의 지형이다. 서쪽의 산에는 온통 초록의 목초지다. 해발 1,100m인 선자령 정상에 선다. 뚝 떨어 지는가 싶더니 다시 곤신봉으로 올라 섰다 매봉으로 굽어 지는 대간 능선의 서쪽 사면은 온통 목초지의 초원이다. 멀리 소황병산과 노인봉(?)이 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고원의 초원을 걷는다. 콧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이따금 산들바람이 불어 와 시원하게 땀을 식혀 준다. 7월의 햇살도 이 곳 고원에서는 한 풀 꺽힌 것 같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다. 그냥 이대로 걷고 싶을 뿐이다. 목초지 한 가운데에서 선자령(1,200m)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또 하나 나온다. 이미 선자령 정상을 지나 왔는데 또 선자령이란다. 저기가 선자령이면 어떻고 여기가 선자령인들 어떠하리. 집 떠난 나그네가 길가다 선자령타령을 해서 무엇하fi.

곤신봉을 지나 어머니 젖무덤처럼 생긴 초록의 구릉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조그마한 송신탑으로 가는 길이 있고 오른쪽으로 약 130도정도로 꺽히는 삼거리를 만난다. 헷갈리는 지점이다. 표지기도 없는 길을 아무 생각없이 가다보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급하게 꺽어 가다보면 동해전망대가 나온다. 연무 때문에 동해는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 건초 작업을 하는 대형 덤프트럭이 풀을 가득 싣고 지나간다. 매봉으로 이어 지는 숲속으로 들어 갔다 다시 목장으로 내려서서 철조망을 따라 계속 간다. 오른쪽은 속이 훤이 보이는 나무숲이고 왼쪽은 온통 초원이다. 아무리 걸어도 피곤할 것 같지가 않았는데 다리가 아파 온다.

목장의 언저리를 따라 걷다 보면 길가의 초원 위에 소나무 몇그루가 서있고 그 아래 쉬어 가기 좋은 바위가 있어 다리 쉼을 한다. 다람쥐 한 마리가 다가와 이리 저리 주위를 빙글 빙글 돈다. 정말 평화로운 광경이다. 그냥 텐트라도 치고 하룻밤 묵어 갔으면 좋겠다. 미숫가루를 물에타 마시고 맛있는 자두 하나를 꺼집어 내어 먹는다. 해는 서쪽하늘로 기울어 가고 그 아래에 초원의 소황병산이 올려다 보인다.

백두대간은 다시 숲속으로 길을 뚫는다. 숲으로 시야를 가린 채 한참을 올려다 치면 숲이 끝나고 시야가 시원하게 트이면서 소황병산 정상 언저리에서 다시 초원과 마주 친다. 길게 자란 목초는 파도가 치듯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대간길을 벗어나 초원을 가로 질러 소황병산 정상으로 향한다. 풀이 길게 자라 발을 옮겨 놓기가 힘이 든다. 소황병산 정상의 큰 바위에 목초는 단백질 자원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1,400m 고원에 정말로 광활한 초원이 이국적이다. 지나 온 길을 되돌아 보면서 갈 길을 재촉한다.

소황병산에서 연결되는 임도를 따라 노인봉으로 향한다. 노인봉 정상에는 온갖 구조물들이 진을 치고 있다. 안부에 도착하니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는 경고문이 곳곳에 서 있다. 이상도 하다. 그 많은 산행기 다 뒤져 봐도 지뢰라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는데... 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자 공군부대 정문이 나온다. 초병에게 노인봉을 물어 보자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가 노인봉 이란다. 그러면 이산은..? 황병산이란다. 아! 아무 생각없이 길을 왔구나. 대관령을 넘어 오면서부터 황병산을 노인봉으로 신념처럼 믿고 왔었다.

진짜 노인봉 위로 검은 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갔던 길을 따라 되돌아 온다. 대간길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발바닥에 물집이 잡힌다. 대간 신병이던 1월에 길을 잃고 세시간 반을 헤맨 이후 왼손에는 방수커버가 쒸어진 지도를 항상 손에 들고 다녔는데 이게 무슨 꼴이람. 지도는 뭐 폼으로 들고 다니나? 나침반으로 갈 길을 가늠해 본다. 분명히 길을 잘못 들었구나. 소황병산 구경한다고 대간길을 벗어 난 것이 잘못된 것 같다.

- 진고개의 대간 신사들
노인봉으로 향하는 능선 입구를 찾아 단숨에 노인봉 산장으로 달린다. 어두워 지기 전에 노인봉을 벗어나야 한다. 눈앞에 노인봉 산장이 보인다. 산장 가까이 다가 왔는지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모자를 눌러 쓴 산장지기의 위엄에 인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신선차 한 잔 마시고 남은 자두와 귤 하나를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 난다. 몇마디 묻고 싶은 말도 있었지만 후일 다시 와서 여쭈어 보리.출발에 앞서 강릉의 택시 한 대를 흥정하여 진고개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진고개로 향하는 숲 길은 어둑 어둑하다. 내리막 숲속을 벗어나니 진고개 휴게소가 보인다. 맞은 편에는 동대산이 성벽처럼 우뚝 솟아 있고 초저녁 하늘은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다. 배부른 달은 노인봉 능선 위에 떠 있다. 아픈 다리 추스르며 오대산 진고개매표소를 지나 휴게소 광장에 내려서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는다. 먼저 내려와 쉬고 있는 4명의 대간꾼이 나를 반긴다. 지리산을 출발한 지 34일째인 일시 종주대란다. 오늘은 동대산에서 일박을 하기위해 출발준비를 하고 있다. 택시가 도착한다. 종주대와 파이팅을 외치고 무사 완주를 빌어 준다. 종주대는 헤드랜턴을 밝히며 총총히 산으로 사라진다. 택시는 나를 싣고 진고개 휴게소를 빠져 나와 강릉으로 출발한다. 정말 멀지만 좋은 산에서의 하루를 접는다.(終)

찜질방에서 샤워를 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 입는다. 그 택시기사는 금방 나타나 버스터미널까지 무료로 태워다 준다. 심야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부산에서 택시로 울산으로 와 잠시 쉬다가 바로 출근을 한다.

6.접근로 및 복귀로
- 접근로 : 울산-강릉(기차 20,200) 강릉-닭목재(택시 22,000)
- 복귀로 : 진고개-강릉(택시 40,000)강릉-부산(버스 28,100)부산-울산(택시 30,000)

7.22차 구간 종주 계획
- 일정 : 2002. 7.27-7.29(2박3일)
- 구간 : 진고개-구롱령-단목령-한계령(61.0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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