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제20차 구간 종주 산행기

1.산행일정 : 2002. 7. 13(토)
2.산행구간 : 제27소구간(백복령-삽당령-닭목재 : 30.3 Km)
3.산행친구 : 나홀로
4.산행여정
- 7/13 : 제27소구간(백복령-생계령-석병산-삽당령-석두봉-화란봉-닭목재:30.3 Km)
23:26 울산 출발(7/12)-청량리행 열차,영주에서 강릉행 열차로 갈아탐(7/13 03:00)
06:10 동해 도착(역앞 식당에서 아침 식사)
07:15 백복령 도착 및 산행시작
08:40 생계령
10:34 고병이재
11:40 석병산(1,055m)
12:09 두리봉(1,033m)
13:20 866.4봉
14:00 삽당령(680m)-출발 14:20
15:28 대용수동 갈림길
16:46 석두봉(982m)
17:25 소기동 갈림길
18:29 화란봉(1,069m)
19:10 닭목령
(총 산행시간 : 11시간 55분)

5.산행기

- 백복령 가는 길
태풍 차마순 때문에 한 주를 쉰 대간행 열차는 밤새 달려와 동해역에 닿는다. 대간이 북으로 갈수록 기차에서 잘 수 있는 시간은 많아져서 좋지만 그만큼 산행시간은 짧아져 발길을 재촉하게 만든다. 동해역 앞에 길게 늘어선 택시를 보며 길가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제대로 자지 못해서인지 입맛이 꺼칠한 것이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택시를 타고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 백복령 고갯마루를 오른다. 백복령 정상에 있는
'아리랑의 고향 정선입니다'라고 쓰여진 큰 표지석 옆에 내린다. 구름이 낮고 짙게 깔려 있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 질 것 같다. 오늘은 비소식이 없었다. 내일은 비가 온단다. 백복령은 영동의 강릉시 옥계와 영서의 정선군 임계를 연결하는 고개 길이다.

- 자병산과 석병산
이 길을 먼저 간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달아 놓은 표지기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 서자 마자 반겨 주는 것은 '수시폭파'라고 적힌 몇 개의 팻말이다. 경고성 팻말은 낮게 깔린 짙은 구름과 함께 숲속의 아침을 더욱 음산하게 만든다. 자연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발길로 앞으로 나아 가자 자병산 석회석 광산 구역의 발파 위험을 알리는 경고판이 또 나타난다. 석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좌회전을 하란다. 경고를 무시하고 자병산으로 향한다. 잘려 나간 나무 밑둥 너머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자병산의 흉물스런 모습이 드러난다. 봉우리는 이미 잘려져 산의 모습은 없어 지고 골짜기 아래 부분까지도 파헤쳐져 더 이상 아름다운 산의 모습은 아니다. 차마 얼굴 들고 바라보지 못하겠다. 인간의 개발 논리에 밀려 반신불수가 된 백두대간이다. 지도에는 자병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앞으로는 자병산터라고 표시해야 할 것 같다. 자병산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자병산을 뒤로하고 물러서는 발길이 무겁다.

아픈 가슴을 추스르며 차례로 번호가 매겨진 철탑을 따라 걷는다. 이 길은 사라진 자병산을 통과하는 옛 대간길 대신 새로 생겨 났을 대간길 이리라. 눈 여겨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이 지역이 지리학상으로 임계카르스트 지형이란다. 석회암지역이 비에 의해서 용식되어 땅이 함몰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이 곳 말로 '쇠곳'이라 한단다.

오늘은 닭목령까지 가야하는 긴 구간인지라 아침부터 부지런히 걷는다. 중간 중간에 나타나는 임도에는 발톱이 두 개인 동물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백복령을 출발한지 1시간25분만에 생계령(640m)에 도착한다. 영동과 영서를 잇는 자연 발생적인 고갯마루인 생계령에도 아직까지 뚜렷하게 길이 나 있다. 산림청에서 세운 이정표에는 백복령 5.6Km, 석병산 6.25Km라고 적혀 있다.

하늘을 가리는 숲속의 길을 벗어 나 잠시 전망이 트이는 산마루에 올라 선다. 막혔던 숨이 터지는 기분이다. 세월의 무게를 못 이겨 스러져 가는 나뭇등걸에 걸터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가스 때문에 햇살은 비치는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안 비치는 것도 아니다. 바람은 기분 좋게 불어와 땀을 식혀 준다. 지도를 펴고 앞을 바라다 본다. 연이은 봉우리 뒤로 저 멀리 석병산이 운무 속에 고개를 내 밀고 있다.

900.2봉과 헬기장이 있는 908봉을 지난다. 멀리서 봐도 마치 돌로 만든 병풍을 둘러 놓은 듯한 석병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을 황홀케 한다. 석병산의 유래를 알 것만 같다. 고병이재를 지나 헬기장을 2개를 지나가면 두리봉과 석병산 갈림길이다. 여기서 석병산은 5분 거리에 있다고 적혀 있지만 금방 나온다. 중간 이정표에는 석병산을 일월봉(日月峰)으로 표기하고 있다.

석병산(1,055.3m) 정상은 작은 바위 봉우리로 되어 있고 조그만 표지석이 외롭게 서 있다. 바람부는 절벽의 석병산 정상에 서서 넋을 잃고 백두대간의 연봉들을 바라다 본다. 마치 군사들이 열병이라도 하듯 대간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도열해 있는 듯 하다. 삽당령에서 올라 오셨다는 부부는 좁은 길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다. 물이 모자란다고 해서 부어 준다. 라면 좀 먹고 가라는 말에 먹고 싶은 마음이야 꿀떡 같지만 갈 길이 멀다는 핑계로 먼저 석병산을 떠난다. 아마도 석병산(石屛山)은 자줏빛 병풍을 세워 놓은 듯한 자병산(紫屛山)과 더불어 아름다운 백두대간을 보다 더 아름답게 하였으리라! 그래서 없어진 자병산의 모습이 더욱 궁금하고 안타깝다.

북진하던 대간길은 석병산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두리봉을 깃점으로 또다시 남서진한다. 석병산을 떠나 20여분 만에 두리봉(1,033m)라고 적힌 이정표가 갑자기 나타난다. 석병산까지는 1.5Km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두리봉을 지나도 나침반의 진행방향은 북서진하는 걸로 나타난다. 지도와 다르다. 아까 그 두리봉은 가짜 두리봉이다. 가짜 두리봉에서 25분 정도를 걷고 나면 펑퍼짐한 봉우리가 나오고 대간 길은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바로 여기가 두리봉이다. 산림청의 두리봉 이정표는 아마도 엉뚱한 곳에 세워 놓은 것이다.

엷게 퍼진 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볕이 나와 숲속 깊숙이 비춰 준다. 조릿대라 불리기도 하는 산죽길을 따라 마냥 걷는다. 삽당령으로 가는 길은 숲속의 오솔길 같아 걷기가 편안하다. 노래가 나온다. 아는 가사는 없어도 콧노래는 삽당령에 내려 설 때까지 계속된다. 지금까지는 즐거운 산행길이다.

삽당령 고갯마루의 표지석과 이정표가 큼지막하게 각각 서있다. 고갯마루를 넘나드는 차들은 쌩쌩 잘도 넘어 간다. 삽당령 주막에 앉아 할머니에게 동동주 한잔을 달라고 하니 잔으로 팔지 않고 병 채로 판단다. 강원도 옥수수로 만든 시원한 동동주 한잔 마시고 싶지만 할 수 없이 참아야 겠다. 대신 김치전 하나를 시켰다. 옆에 앉은 동네 청년들이 농담을 한다. 이 곳 사람들은 서울 사람이 싫으면 정선쪽으로 보고 오줌을 누고 강릉사람이 싫으면 강릉쪽에 오줌을 눈단다. 정선쪽으로 누면 오줌이 한강으로 가고 반대로 누면 강릉 쪽으로 흘러 들어 간단다. 김치전을 먹다가 한 바탕 크게 웃는다. 삽당령도 물줄기가 넘지 않는다는 백두대간의 기본 이념에 바탕을 둔 우스개 소리 일 것이리라.

- 닭목령을 향하여
삽당령 주막의 할머니에게서 물 한 병을 얻어 담아 오늘의 목적지 닭목령을 향해 길을 떠난다. 몸은 다소 지쳤지만 산길은 걸을 만하다. 1시간 정도를 가면 대용수동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곧장 시야가 탁 터인 방화선 작업지가 나온다. 방화선은 사계 청소 하듯 깨끗하게 벌목되어 있지만 곳곳에 큰 소나무들이 남아 있고 길 따라 억새 풀들이 이리저리 파도를 치듯 바람 따라 움직인다. 방화선 너머로 석두봉에서 화란봉으로 이어 지는 대간 능선이 선명하게 보인다.

참으로 많이 걷는다. 백두대간도 이젠 몇 구간 남지 않은 것 같다. 갈 수록 집에서 더 멀어져만 간다. 한 번 올 때마다 마음의 욕심이 생겨 다소 무리라 싶을 정도로 걷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다. 걷고 또 걸어 석두봉을 지난다. 닭목령을 향해 가다가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느 정치 하던 분이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한 말이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물론 그 분은 그 분에게 찾아 온 새벽의 덕분인지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기도 했었다. 난 내일의 새벽이 오더라도 반드시 닭목령까지 가리라고 다짐해 본다. 이미 땀으로 온 몸은 젖었고, 다리 사이의 피부는 헐어서 따가워 미칠 지경이다. 다리를 벌려 엉거주춤한 이상한 자세로 걷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나 혼자 인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가!

소기동 갈림길을 지나 힘들게 정말 힘들게 화란봉(1,069.1m)을 오른다. 화란봉 이정표에 누가 조그맣게 매직 펜으로 적어 놓았다. 조금만 참자고.... 그 말이 무척이나 위안이 된다. 누군가가 여기까지 힘들게 와서는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한마디 적어 놓았으리라. 오늘의 목적지가 눈앞에 있는데 조금만 참고 가자. 화란봉의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 오니 닭목이 마을의 넓은 밭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불어 오는 바람을 마주하고 길가에 주저 앉아 남아 있는 자두와 귤, 참외를 모조리 먹어 치운다. 큰 소나무 숲 길을 지나 닭목령에 내려 선다. 오늘의 힘든 대간 길을 마감한다. 손을 들어 지나가는 차를 잡으려 해도 잘 서 주질 않는다. 몇차례 시도 끝에 한 분이 세워 주신다. 장애인용 차량에 젊은 부부가 부모님을 모시고 간다. 강릉까지 태워 달라고 하자 타라고 한다. 정말 기분 좋은 산행의 끝이다.(終)

- 긴급 복귀
닭목령이 가까운 강릉 성산의 모텔에 하루를 묶기 위해 들어 선다. 25,000원을 지불하고 급한 샤워부터 한다. 휴대폰을 켜니 문자메세지가 와 있다. 통화를 하니 회사 직원이 교통사고를 당했단다. 이튿날 산행을 포기하고 부산행 심야버스에 피곤한 몸을 싣는다.


6.접근로 및 복귀로
- 접근로 : 울산-동해(기차 17,500),동해-백복령(택시 22,000)
- 복귀로 : 닭목령-강릉(히치하이킹),시외버스터미널(택시 7,800),
강릉-부산(심야버스 28,100),부산-울산(승용차)

7.제21차 구간 종주 계획
- 일정 : 2002. 7.17(수)
- 구간 : 닭목령-대관령(12.6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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