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주산행 첫째날 =

축구를 봐야 하나? 산행을 가야 하나?
6.22 아침에 눈을 뜨니 5시25분.
모처럼 쉬는 토요일인데 축구를 보려면 오후 3:30까지 몇시간을 기다려야 하나?
그렇다고 따로 할일도 없고…

지난 주말 아픈 발목을 끌고 땜빵 두 구간을 마치고 나니 이제 남은 구간이 육십령-신풍령이다.
밤에 산악회를 따라 무박산행을 가면 무룡산-신풍령 구간은 하겠지만 육십령-무룡산은 또 구멍난 채 남게 된다. 찝찝하다. 발목만 아니면 딱 하루 산행거리인데 …
그러나 지난달 지리종주에서 다친 발목이 아직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지만 압박밴드 도움을 받으면 그런대로 속도를 포기하고 걸을 만 하다.

축구를 생각하면 바로 고속터미널로 곧장 달려가서 7시 이전에 출발하는 전주행 버스를 타야 한다.
전주에서 거창 경유 대구행 버스를 타면 육십령으로 쉽게 갈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되면 삿갓골대피소에 빠듯하게 도착해 한국-스페인전 축구를 볼 수 있겠지?
아니야, 전주에서 장계를 거쳐 육십령까지 가려면 1시간 20분이 넘겨 걸린다는데 그렇다면 장계로 바로 가는 버스와 시간상 별차이가 없지 않는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육십령 아래 장계로 바로 가는 시외버스는 남부터미널에서 9:20분에 출발하는 장수행 버스가 첫차다. 그렇게 되면 축구는 포기해야 한다.

어찌 됐든 신문을 뒤적인 후 평소와 같이 과일쥬스 한잔과 우유에 시리얼을 타서 아침 요기를 하고 나니 시간은 벌써 8시가 가까워 지고 있다.
축구냐 산행이냐로 갈등하는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간다
그런데 이대로 뭘 해도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다.

<출발>

그래 무조건 떠나자!
내가 응원하지 않는다고 4강에 갈 것 못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응원한다고 해서 못갈 4강에 가게 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더구나 요즘 월드컵 축구로 시간을 모두 채우는 TV는 게임장면을 수없이 되돌려 줄 것이 아닌가? 꼭 리얼타임으로 보지 않으면 어때!

부랴부랴 배낭을 챙겨 전철에 올라타 시계를 보니 8:50.
이런 제기랄. 이래 가지고는 9:20분발 버스를 타겠나? 전철 안에서 시계만 연신 들여다 본다.
남부터미널역에 내려 터미널로 통하는 계단을 급하게 오르며 시계를 보니 9:17. 그렇면 됐다. 매표창구에 달려가 무조건 만원짜리 두장을 내밀고 장계!하고 외치니 매표원이 버스표와 거스름을 내주며 5번 승강장으로 가란다.
달려가 버스에 올라타니 시계는 9:20. 어휴 성공이다.
버스는 나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내가 타자마자 바로 출발이다.

버스가 무주를 거쳐 장계에 도착한 시간은 12:30.
거창경유 대구행 버스를 찾으니 마침 12:40발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운전사에게 육십령 거치느냐고 물으니 고속도로로 가기 때문에 육십령은 안간단다.
이런 제기랄.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국도를 이용하던 버스들이 고속도로를 이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택시를 불러타야지 생각하면서 헛일 삼아 매표구에 가서 물어보니 12:50분발 부산행(거창 산청 경유) 버스가 있는데 혹시 모르니 운전사에게 확인해 보란다.
마침 승강장에 버스를 대려는 운전사에게 물어보니 육십령을 지나 간단다.
시간을 벌겠다고 전주까지 가서 거창경유 대구행 버스를 탔더라면 낭패를 할 뻔 했다는 생각이 든다. 장계에서 육십령까지 택시요금은 1만원이라는데 버스는 단돈 1천원을 받는다.

육십령에 도착해 아무리 바빠도 점심은 먹고가자는 생각에 휴게소식당에 들어가 지난달에 앉았던 자리를 찾아 앉아 비빔밥을 주문한다.
산꾼들에게 육십령 아줌마로 통하는 나이 지긋한 여주인은 산에서 내려왔느냐 올라가느냐고 묻기에 올라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밥을 두 그릇이나 내놓으며 많이 드시라며 웃는다. 여벌 밥은 남겨놓은 채 비빔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더위를 식히기 위해 얼음과자 하나를 입에 물었다.

<산행>

육십령 정상 우측의 들머리에 올라서니(1:27) 얼마 가지 않아 할미봉으로 올려치는 경사가 간단하지 않다. 급하게 먹은 점심이어서 그런지 트림은 계속 나오고 새벽에 올려치는 무박산행과 달리 한낮 무더위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숨이 차올라 오름길에서 잠시잠시 숨을 골라야 될 정도다.
거기에 왼발 뒤꿈치 바깥쪽 복숭아뼈 쪽의 인대에 무게가 실리면 통증이 적지 않다.

뿐만 아니다. 지난 주말 산행 때 물이 떨어져 고생한 것을 잊지 않고 물만 5.1ℓ(1.8ℓ 2병에 1.5ℓ 1병)를 준비했고 여기에 토마토쥬스 1병, 떡과 과자, 빵, 여벌옷,비상약품, 랜턴 등등으로 가득 채워진 배낭은 왜 그리도 무거운지 허리가 휠 지경이다.

걸음을 재촉해 할미봉(1026.4m)을 거쳐(2:05) 장수덕유(1500m)에 올라서면서(4:25) 빨리 가면 5시 이전에 도착해 막판 몇분이라도 축구를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아주 건방진 망상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축구보기는 틀렸는데 쉬엄쉬엄 가자.

삿갓골재와 남덕유 갈림길의 넓은 공터에 배낭을 내려놓고 남덕유(1507.4m)에 올라 서서(5:15) 여유를 부리며 사방을 둘러본다. 육십령에서 할미봉 봉우리와 장수덕유를 잇는 능선이 눈아래 선명하다. 반대쪽엔 내가 가야할 삿갓봉과 무륭산 백암봉이 아련하다. 지도를 보면 동쪽으로 보이는 산줄기 가운데 금원 기백이 여기서 보일 텐데 어느 봉우리인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날씨는 무척 덥지만 청명하고 시계가 확 트여 속이 시원하다.

더구나 지금 이 산줄기엔는 아무도 없다. 4시간 가까이를 걸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하긴 모든 사람들이 4강을 가름짓는 한국-스페인 축구전에 들떠있고 거리마다 붉은 악마들로 가득차 온나라가 집단흥분상태인 이 시간에 배낭 짊어지고 산에 올라온 나 같은 abnormal이 또 있을 리가 없지.

남덕유를 내려서 월성치로 향하며 시원한 바람골을 만나면 땀을 식히며 유유자적 걸어가는데 등로에 1m쯤 돼 보이는 뱀 한마리가 인기척에 숲 속으로 숨어든다는 것이 길섶을 따라 움직인다. 순간 온몸이 오싹한다. 스틱으로 길을 톡톡 치니 이내 방향을 바꿔 풀숲으로 숨어버린다.

<여유>

나는 나무이름 풀이름 꽃이름 새이름을 모른다. 산에 오르기 시작한 지도 일천하지만 감각이 워낙 둔하고 이름을 외우는 것이 서투르기 때문이다.
사람이름을 잘 외워야 출세한다는데 사람이름을 제대로 외우지 못해 난처했던 경우도 많다.
바닷가에 살아 육류를 거의 모르고 생선만 주로 먹어온 내가 외울 수 있는 생선이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학시절 제과점에 가서 빵을 주문하면서 빵이름을 몰라 각종빵을 달라고 주문해 같이 갔던 친구들의 조롱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런 내가 요즘 산에 다니면서 나무이름 풀이름 꽃이름 새이름들이 궁금해진다. 자연환경보호라는데 눈이 떠진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 나무이름 풀이름 꽃이름 새이름을 얼마나 많이 외우게 될 지는 자신이 없다.
다만 길을 내면서 터널을 뚫어야 하는데도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산줄기를 무참히 자른 모습을 보면 내몸에 깊은 상처를 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검단산에서 용마산을 넘어 광지원을 거쳐 광주로 뻗은 산줄기가 새로 만든 중부고속도로 고속주행로에 잘려 산행을 거기서 멈춰야 했던 기억이 마음 아프다.
옛날 중부고속도로는 이곳을 모두 터널로 처리했는데…. 이런 곳에는 넓은 생태다리라도 놓아 얼마 되지 않은 야생동물은 물론 식물들도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할 텐데… 항상 안타깝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전망이 트인 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동남쪽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고 멀리서 천둥소리까지 들린다.
비가 오려나? 일기예보에는 이쪽 동네에 비온다는 말이 없었는데.
월성재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의 밝기가 떨어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 사이 구룸이 바로 머리 위에 까지 밀려와 있다.
더위가 한풀 꺾여 오히려 걷기에는 좋아졌다고 생각하는데 빗방울이 나뭇잎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비가 정말 제대로 오려나? 그러나 아직 우의를 꺼내 입을 정도는 아니다.

비가 더 오기 전에 삿갓골재 대피소에 도착하려면 걸음을 재촉해야지.
여유를 부리던 걸음걸이를 다시 재촉하니 다시 발목에 통증이 온다.
월성재에서 이정표를 흘깃 쳐다본(6:11) 다음 걸음을 계속해 삿갓봉(1,400m) 갈림길을 그대로 지나치니 곧 대피소에 도착한다(7:10).

<삿갓골재 TV>

대피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필요한 것 있습니까? 하고 묻는 관리인에게 축구가 어떻게 됐지요? 하고 물으니 연장전까지 갔지만 무승부로 비겨 승부차기로 우리가 이겼단다.
아니 이럴 수가. 우리가 무적함대 스페인을 이기다니. 강호 스페인이 히딩크호의 태극전사들에게 종이함대가 돼버렸구나.
대피소의 TV에서는 현란한 축하쇼가 연출되고 전국에서 열광하는 붉은 응원단을 간간이 비치며 주요 경기장면들을 보여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TV를 보다가 땀은 씻고 자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빗방울을 맞으며 대피소 건너편 계단 아래 있는 우물가로 내려 가는데 오싹 한기가 엄습한다. 일단 머리에 찬물을 끼얹고 목수건에 물을 적셔 가슴과 등의 땀을 닦아내자 차가운 감각이 오히려 상쾌하다. 다시 대피소에 올라와 터키-세네갈 축구전을 연장전까지 보고 잠자리에 들며 시계를 보니10시58분. 평소에 비해 2시간은 빠른 잠자리다.


= 완주산행 둘째날 =

이튿날(6.23) 눈을 떠 야광버튼을 눌러 시계를 보니 4시58분이다.
지금은 일년중 해가 가장 먼저 뜨고 가장 늦게 지는 때이니 지금쯤 먼동이 트였겠지만 대피소 침실에 창이 없어 실내는 아직 어둡다.
잠자리에 누운채 한참을 뒤척이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일찍 깬 산꾼들은 벌써 아침식사를 마치고 산행을 떠난다.

현관 밖에 나가 보니 제법 굵은 비가 계속 내리는데 여자 1명을 포함한 등산객 7-8명이 비에 젖은 채 처마밑에서 간식을 들거나 웅성거리며 정담을 나누고 있다.
모두 Be the Reds! 라는 글씨가 적힌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있다. 이색적인 것은 아랫 부분에 win win자유인이라는 글씨도 크게 프린트돼 있다.
자유인이 등산동호회 이름이냐고 물으니 산악회 이름이란다.
오늘 신풍령까지 간다는 대간팀이다. 이 붉은 티를 입고 지리 천왕봉에서 16강전 응원을 했단다.

다시 안으로 들어와 아침식사를 간단히 때운 후 고양이 세수를 하는 등 출발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이번에는 온몸이 비에 젖은 남자 등산객 2명이 처마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일기예보 들으셨나요? 오늘 여기 비온다는 소식은 없었는데…영동 산간지방에는 때때로 비가 온다고 했지만… 하고 대답한다.
육십령에서 2시30분에 떠나 이 시간(6:35)에 대피소에 도착했으니 이 양반들 우중에 날라온 모양이다.
한 사람은 배낭도 아주 가볍고 아예 운동화 차림이다. 정말 달려왔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분들의 일행이 뒤이어 도착한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추워서 못견디겠다면서 떠나야겠다고 하고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그래도 따뜻한 컵라면이라도 하나 먹은 다음 같이 가자고 입씨름을 벌인다.

<산행>

이들의 입씨름을 들으며 계단에 앉아 발목의 압박밴드를 한번 더 감아 타이트하게 조여 매고 신발끈을 묶은 다음 우의를 입고 배낭을 둘러배니 7시6분이다.
먼저 갑니다. 조심해 가세요. 인사말을 마치고 대피소 옆의 통나무 계단을 오른다.
한참 걷다 보니 숨이 차오르고 온몸이 더워지며 이마에서 땀이 흐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속 올려치니 어느덧 무룡산 정상(1491.9m)이다(7:51).

무룡산에서 내려와 걷는데 압박밴드를 타이트하게 동여맨 왼발의 통증이 갈수록 심하고 온몸이 더워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적당한 자리를 잡아 우의를 벗어 매낭에 걸치고 신발끈을 풀러 압박밴드를 약간 느슨하게 다시 맨다.
여기서 부터는 조깅코스로 해도 적당할 만큼 길이 좋다.

그러나 길섶의 풀잎에 맺힌 빗물에 바지 가랭이가 모두 젖은 지 오래다.
드디어 왼발 윗쪽에서 질퍽거리는 감이 온다. 아마 압박밴드를 타고 물이 신발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 같다.
동엽령 못미쳐 이미 양쪽 신발 속에 물이 차 모두 질퍽거린다.
위에서 흘러드는 물은 방수 등산화인들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 판에 어떻게 하겠는가? 양말을 벗어 물을 짜낸들 몇분 이내에 다시 질퍽거릴 텐데…

동엽령에서 이정표만 확인하고 그냥 지나친다(8:00).

어쨌든 무룡산을 지나면서부터 등산로는 오르내림도 힘들일 필요가 없을 정도여서 조깅코스로 해도 좋을 것 같다. 이러한 길은 백암봉 오르막으로 올려칠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나 왼쪽 발목 복숭아뼈 주위를 감은 압박밴드 때문에 통증이 심해온다.
특히 오르막에서는 발목이 위로 꺾이면서 압박붕대가 발목 윗부분을 눌러 통증이 심하다. 아마 빗물에 밴드와 발이 불어 더욱 압박이 더 심해진 것 같다.
다시 압박밴드를 조정하고 통증을 참으며 백암봉(송계사 삼거리)에 올라선다(8:55 ).

정상에서 선 채로 쉬고 있던 일행 7-8명이 “어서 오세요” 하고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둘러보니 이른 아침에 대피소에서 만났던 자유인 일행들이다.
일행중의 한 분이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기에 신풍령까지 가야 한다고 대답하고 오늘은 대간을 마치는 날이니 날씨가 어찌 됐든 하늘이 두쪽나도 꼭 신풍령까지 가야 한다고 웃으며 강조하자 축하한다면서 신풍령에 가서 축하주 한잔 하자고 제의한다.
혼자서 무엇을 타고 왔느냐고 묻기에 어제 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 타고 왔다니까 그렇다면 서울 갈 때는 자기네 버스를 타고 가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유인의 정우현 대장이다. 자리에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우회전해서 내리막 대간길에 다시 들어서니(9:07) 바로 자유인 일행들이 뒤따르는 소리가 들린다.

비옷을 벗으면 춥고 입으면 덥다. 비옷을 벗으면 반팔티를 입은 양팔 살갗에 소름이 솟고 손가락이 곱는다. 그렇다고 비옷을 입으면 땀이 비오듯 한다.
아이구 땀에 젖으나 비를 맞으나 젖기는 마찬가지인데 시원하게나 가자 하고 비옷을 벗었다가 추우면 다시 입기를 몇번 되풀이 한다.
오늘 거리로 보아 템포를 조금 늦춰도 신풍령에 오후 1시까지는 도착할 것 같다.

잦은 쉼으로 왼발목을 달래가며 산행을 계속한다. 헬기장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산꾼들과 인사를 나누고 지나치다 보니 시장끼가 느껴진다.
이상하다. 아직 12시도 안됐는데. 아마 다른 때보다 아침을 1시간 먼저 들어서 그런가?

횡경재에 도착해(10:58) 배낭을 안내판 옆 위치표시 말뚝에 걸어 놓고 한참을 쉬어가기로 한다.
앉을 자리도 없다. 에라, 그냥 서서 쉬자.
우선 누가 뭐래도 담배 한대 피워야겠다. 아무리 국립공원구역이 금연이라지만 빗속에 피는 담배야 화재염려가 100% 없는데 어떻랴 하는 생각으로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열어보니 아뿔싸 단2대밖에 피우지 않은 새 갑인데 필터 밑부분까지 몽땅 젖었다.
오는 도중에 핸드폰만 배낭 속에 넣을 것을 생각했지 담배 생각은 못했다.
사실 핸드폰이야 작년 장마 때 대간길에서 물에 흠뻑 젖어 케이스만 남겨놓고 부품을 몽땅 바꿔 새로 조립하느라고 돈푼이나 깨지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핸드폰을 챙긴 것은 당연한 일.

물에 부러지지 않은 개피를 찾아 조심스럽게 불을 붙이니 가히 꿀맛이다.
배낭 안에는 3개의 물병에 물이 가득하다. 물욕심에 어제 처럼 병마다 물을 가득 채우고 떠났으니 배낭무게가 보통이 아닐 수밖에.
아니 이 바보야! 오늘은 비가 오잖아? 무슨 물이 그렇게 필요하다고…
정말 오늘은 습도가 높아 목이 별로 마렵지 않다.
병2개의 물을 모두 비우고 빈병만 배냥 안에 넣는다.

그리고는 선 채로 빵을 꺼내 시장끼를 달랜다. 빵먹고 물먹고 빵먹고 토마토쥬스 먹고를 반복하니 배가 불러온다.
내가 멍청하게 과식해서 걷기 힘든 거 아냐? 식사를 마치고 젖은 담배를 다시 한대 피워 물고 여기저기 갈림길도 어슬렁거리며 쉬다보니 시간이 적지 않게 흐른다.
그사이 여러 사람들이 앞질러 지나간다.

다시 배낭을 짊어지니 한결 가볍다. 오랫동안 쉬어서 왼발목 통증도 한결 적어졌다.
횡경재를 떠나(11:25) 지봉안 가는 길에서 앞에 가던 분들이 길을 비켜준다.
옛날에 연꽃이 피는 연못이 있었다는 못봉(1342.7m) 정상을 지난다(11:45).

대봉(1,300m)에 도착하니(12:15) 조금 전에 내가 추월한 남녀 한쌍이 곧바로 된비알을 쳐 올라온다. 미쓰인지 아줌마인지는 몰라도 젊은 여자의 등판능력이 보통이상이다.
부부신가요?하는 물음에 아니요. 산악회에서 만나 오늘 같이 산행하는데 여자분 걸음이 너무 빨라 따라가기 힘이 듭니다. 안경쓴 젊은 남자분의 대답이다.
대봉 오르는 길에 주은 빨간 배낭커버가 주체스럽다. 그래서 정상 한 가운데 커버를 펴고 큰 돌맹이를 주워 위에 올려놓는다. 신풍령쪽 가는 산꾼배낭에서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백암봉쪽 가는 산꾼배낭에서 떨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이 가져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젊은 남자분이 여기가 어디냐고 묻기에 대봉이라면서 앞으로 40분 정도면 신풍령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젊은 남자분이 앉아서 쉬어 가야겠다면서 주저 않는다. 나도 좀 쉬어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우측 대간길을 따라 나서니(12:27) 내리막이다.
한동안 내리막이 계속되다가 또 한참을 올려치니 평지 같은 길이 나온다.
산의 정상같지도 않은 길옆에 갈미봉(1210m)이라는 돌팻말이 보인다(12:52).
신풍령에 도착할 때가 됐는데도 오르내림을 몇고비 더 넘긴 후에야 드디어 신풍령 정자가 보이고 포장도로에 내려선다(13:31). 예정시간보다 30분이나 늦었다.

<샤워 그리고...>

체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휴게소 화장실의 청소용 걸레를 빠는 칸에 들어가 흥건히 젖은 옷을 벗고 팬티차림으로 몸 구석구석 찬물 샤워(?)를 하고 팬티부터 상하의 모두를 마른 옷으로 갈아입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발을 닦으니 오른쪽 엄지발톱이 힘없이 빠진다. 왼발 엄지발톱을 누르니 고여 있던 핏물이 모두 빠진다. 모두 지난번 산행 때 적은 신발을 신고가 문제가 된 발톱들인데 오늘도 왼발목이 아프다 보니 오른발에 힘이 더 들어갔나 보다.
왼쪽 발목의 부기는 통증에 비해 생각보다 심하지 않다. 상처가 남보다 일찍 낫기 때문에 주말까지는 완쾌할 것 같다.

휴게소 안에 들어가 자유인 대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안면을 튼다. 후미를 기다리며 이미 얼큰해진 일행들을 위해 소주 5병을 추가로 시켜 놓는다. 뒤이어 도착하는 일행들이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모두 즐겁다. 모두 대간완주를 축하한다고 한마디씩 한다.


= 에필로그 =

어쨌든 등산을 시작한 지 1년여만에 대간 38구간을 모두 마쳤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벅차고 희열이 솟구친다. 운동이라고는 골프밖에 모르던 나는 작년초 우연히 마누라 손에 끌려 청계산과 아차산 구경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로 높지도 않은 산인데 왜 그렇게 힘이 들었는지!

<달밤에 체조하기?>

등산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북한산 능선을 처음 밟아본 지 3개월 째인 작년 어린이날에 산악회 백두대간 종주를 따라 나섰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이후 몇 달간 대간길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xxx이 달밤에 체조한다더니 작년 여름과 가을에는 내가 시간을 낼 수 있는 밤이면 아차산을 찾아 오르락 내리락 군대훈련보다 더 심한 체력훈련을 했으니 내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주말이면 빈번히 생기는 애경사에 사람을 대신 보내거나 봉투만 전달하는 실례를 범해 여러 사람들에게 가졌던 미안함은 얼마나 많았던가. 때로 인간도리를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갈등도 많았다.

또 무박산행 때문에 주말 외박이 잦다고 잔소리하는 마누라와는 얼마나 부딪혔는가.
지금은 마누리도 종주산행에 재미를 붙여 가고 있다.
산에 혼자 다닌다고 짜증내는 마누라를 돌려놓기 위해서는 우선 훈련을 시켜야 된다는 생각에서 훈련을 시키기로 했다. 평소 훈련만 잘 하면 날쌘 산꾼이 될 수 있다고 내가 분위기를 잡는데 핑계를 자주 만들어 훈련을 피하는 것이 문제다.
5월초에는 5-6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사기를 쳐 마누라를 지리산에 데리고 가 12시간 짜리 산행도 시켰다. 사기꾼이라고 나에게 험담을 해대더니 천왕봉을 밟아본 후 자신감이 붙었는지 비록 후미를 도맡았지만 대간 중재-육십령 구간과 한북정맥 첫구간도 해냈다.
그런데 산에서 내 얼굴만 보면 투정이 심하다. 잘 가다가도 짜증을 내고 주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산에 가면 가급적 얼굴을 보이지 않게 멀찌감치 앞서 간다.

그러나 요즘에는 마누라도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장거리 종주산행을 해야 한다는 데는 토를 달지는 않는다. 작년 등산을 시작하기 전에 77.5kg이던 체중이 지금은 66kg으로, 35인치가 넘던 허리가 30.5인치로 줄어든 나를 보고는 체중줄이기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마움>

자유인 정우현 대장의 배려로 버스를 얻어 타고 귀경하는 길에 정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손님인 나의 대간완주를 축하한다고 말하자 대원들이 와하고 소리치며 박수로 다시 축하해준다.
모두 오늘 산에서 만난 초면들이지만 산꾼들의 인정어린 고마움이 솟아난다.

친구들이 12명 연명으로 아주 이쁜 수석(壽石)으로 완주패를 만들어주기 위해 글을 새겨넣도록 맡겨 놓았다고 한다. 모두 고맙다.
회사 안에서도 축하와 격려가 잇따른다.
그동안 많은 격려와 함깨 지켜봐주신 안일준 사장(준치)과 단풍 등 oksadary.com의 친구들에게도 큰 고마움을 전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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