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산토끼가 선도한 대간 가는길 그리고 소백산의 연봉들(6회차 22구간. 고치령 - 죽령)


● 일시 : 2002년 5월 25일 ~ 5월 26일
● 날씨 : 맑음
● 동행 : 이찬영. 가고파 산우회 회원
● 구간 : 백두대간22(고치령-마당치-상월봉-국망봉-비로봉-제1연화봉-연화봉-제2연화봉-죽령)

● 산행시간
- 5월 25일 토요일
22:10 = 동대문 주차장 출발(동방관광버스)

- 5월 26일 일요일 (총 산행시간 : 8시간20분. 도상거리 25㎞)
03:10 = 세거리 도착
03:40 = 고치령 도착
04:15 = 고치령 출발. 산행시작
04:55 = 1,032봉
05:05 = 마당치(910m)
06:50 = 신선봉 갈림길(늦은맥이 고개. 1,264m)
07:15 = 상월봉(1,395m)
07:30 = 국망봉(1,420.8m) 도착. 아침식사. 휴식
08:00 = 국망봉 출발
09:00 = 비로봉(1,439.5m)
10:05 = 제1연화봉(1,394.4m)
10:40 = 연화봉(1,383m. 천문대)
11:10 = 제2연화봉(1,357m. 통신중계소)도로변 . 휴식
12:35 = 죽령 도착. 산행 끝
14:35 = 죽령 출발
18:45 = 강남역 도착
19:40 = 집 도착


●산행기

지난주 초등학교 총동창회 참석 때문에 황학산 구간을 빼 먹은 것이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지. 몸도 뒤틀리는 것 같고, 다리 근육도 달라붙는 것 같다. 마치 낙오된 듯한 느낌 때문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런 현상이 대간종주 중독증세인지, 완전히 산에 미쳐가고(?) 있는 건지 알 수 가 없다. 근데 지리산 대종주를 앞두고 있어 사전에 체력을 소비하면 다음주 지리산 구간에 무리는 없을까? 연속 2주를 산에 가고자 집을 비우는 것도 문제가 있고, 또 하나 마음 쓰이는 것은 휴일날 차분하게 6월 23일로 정해진 초딩 동참모임 개최를 위한 추진계획도 수립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해서 고민을 하다가...... 가고파 2차 대간팀의 고치령 - 죽령구간에 참여하기로 마음 먹는다.

토요일 퇴근하여 산에 간다고 하니 이번주는 대간 산행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과 아내는 삼성산 간다는 줄 만 안다. 이를 어쩐다. 아내가 잡아 놓은 스케쥴이 취소되고 게다가 무릎보호대를 사러 가자는 말에 아무 소리 않고 따라 나선다.

동대문에 도착하여 보니 차량이 동방관광으로 바뀌어 있다. 소백산 철쭉제 가는 인파인지 좌석이 꽉 차고 넘치는데 그 가운데 4차 대간팀 대원들이 여럿, 반가이 인사를 한다.

영주 단산면 단산리 세거리 부락에 도착한 시간이 03:10분, 반정도의 인원이 마을 이장님의 타이탄 트럭을 타고 새벽 공기를 가르며 고치령까지 올라가는데 웬 산토끼가 트럭의 헤트라이트 불빛을 따라 차량 앞에서 선도를 하며 뛴다. 그것도 두마리의 토끼가 교대하면서.... 토끼가 선도하는 오늘의 산행! 웬지 잘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만월의 새벽달은 백열전구를 켜 놓은 듯 하늘의 별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휘영청 밝다. 고치령에 걸려 있는 아름다운 달의 모습을 정말 오랬만에 본다.

먼저 트럭을 타고 올라가 후발자들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이 밤에 고치령으로 올라오는 영업용 택시 한대, 산꾼이 대절해 타고 오는 승용차 이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아파트까지 차 대절하는 건 봤어도 산에까지 차 대절 해서 오는 사람 첨 보는구먼" 농 섞인 한마디에 여럿이서 웃는다. 백두대간을 단독 종주하는 산꾼, 오늘은 화방재까지 간단다. 랜턴 불빛은 마구령 쪽 숲속으로 총총히 사라져 버린다.
기다리는 동안 고치령 약수물을 한 바가지 받아 먹는다. 그리고 잠시후 후발자들이 트럭을 타고와 내리는 순간부터 산행은 시작되었다. 이때가 04:15분.

어둠 속에서 잠깐 운행한 것 같은데 1,032봉을 지나고 곧 이어 마당치를 통과 한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산신각이 있고 등산객의 촛불에 화재가 있었고 아직도 나무가 시커멓게 탄 흔적이 있다 하나 어둠속에서 아무 것도 찿을 수가 없다. 북쪽 방향으로 표시된 형제봉 이정표가 나타난다. 앞 사람만 보고 진행하는 운행. 그리고 벌써 날은 훤하게 밝아와 랜턴을 끈다. 계속되는 잡목 숲이라 날은 밝았으나 경관이 잡히질 않는다. 아주머니 두분이 뛰어서 추월해 가고 얼마 뒤 또 두분 아주머니들이 뛴다. 기록을 경신하려고 하는 게임을 방불케 한다.

연화동(崔昌祚 교수의 「땅의 논리, 인간의 논리」에 소개되고 있음. 풍수적으로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에 속하는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지역의 명당으로서 물 위에 뜬 연꽃 형상의 지세를 형성하여 연화동이라 불리어지고 있다함) 가는 이정표가 나타나고, 아주머니들에게 질세라 정신없이 운행을 한다. 갑자기 앞에 나타나는 저 봉우리, 누군가가 비로봉이라고 하는데 아마 상월봉이 아닌가 싶다.

신선봉 갈림길이라는 표지와 함께 구인사, 신선봉 가는 이정표 서있다. 여기가 늦은맥이 고개이다. 갈림길에 접어들면서 잡목 숲 지대를 벗어난다. 비로소 펼쳐지는 경관, 앞에 뾰족하게 암봉으로 우뚝 보이는 봉우리가 상월봉, 그 뒷편이 국망봉이다. 진행방향에서 오른쪽 뒷편으로 보이는 신선봉의 웅자가 날렵하게 나타난다. 신선봉에서 1박을 하고 아침을 지어 먹고 온다는 산꾼 두 분을 만난다.

그 산꾼이 핸드폰 통화를 한다.
"여보 나여, 신선봉에서 아침 해먹고 국망봉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지. 아직도 자고 있어?"
아마 와이프가 지금은 새벽이라고 하는가 보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무슨 새벽이야?"
시계를 보고나서
"아직 7시가 안뎠구먼, 더 자라구"

아마 산꾼은 시간을 잊는 거 같다. 내 역시도 가끔은 시간을 잊을 때가 있으니까?

철쭉과 고만 고만한 잡목을 젖히면서 상월봉으로 오른다. 상월봉에 올라 사방이 탁 트인 경관을 조망하며, 국망봉 쪽으로 펼쳐진 철쭉군락이며, 분홍색의 철쭉꽃 장관을 이룬 상월봉과 국망봉 사이의 잘 정돈된 대간로를 보면서 뾰죡한 암봉으로 구성된 상월봉에서 호흡을 크게 한다. 상월봉에서 국망봉으로 오르는 길은 천상의 화원이 아마 이런 모습이리라. 붉으면서도 홍조를 띤 만개된 철쭉사이를 신선처럼 거닌다. 아~ 이것이 극락이 아니고 무엇이랴?

國望峰!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와 경북의 도경계를 이루는 소백산의 한 봉우리. 정상의 암봉에 서서 소백산을 생각해 본다. 태백산에서 서남으로 갈린 지맥이 충청·경상·강원 3도의 경계를 이루면서 구불구불 백여리를 내려 뻗어 일으킨 소백산은 영주·예천·단양·영월 네 고을의 배경이 되어 고장의 평화와 행복을 수호하며, 기품있는 선비의 풍모처럼, 영험한 성산의 자태로서 한반도의 척추 부분을 이루고 있다.

전해오는 국망봉의 전설이 대간꾼의 마음에 와 닿는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나라를 왕건에게 빼앗기고 천년 사직과 백성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제천 백운에 동경저(東京邸)라는 궁궐을 짓고 머물러 있었는데, 마의태자의 신라 회복운동이 실패하자 엄동설한에도 베옷 한 벌만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이 곳에 올라 멀리 옛 도읍지 경주를 바라보면서 눈물지었다 하여 이 곳을 국망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조선시대에 나라가 어지러울 때 이 고장 선비들이 한양의 궁궐을 향해 임금과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하니 대단한 봉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백두대간상 소백산이 갖는 지리적 위치가 한반도의 중심축에서 연유되는 까닭일 것이다.

또 다시 가야할 비로봉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는다. 산행시작 후 공식적 휴식시간을 갖는다. 등줄기와 이마에 땀이 축축하건만 순식간에 추워진다. 소백산의 바람이 그래서 유명하지 않던가.

국망봉에서 비로봉을 가는길, 계단을 타고 내려와 철쭉 터널을 통과하고, 잡목숲 사이를 통과하고, 또 비로봉 안부에 도착하여 흐드러지게 만개한 철쭉 군락지대를 통과한다. 그리고 다시 비로봉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길을 따라 오른다. 그러나 계단 길이 육산을 오르는 것 보다 더 힘이 드는 것은 어인 일일까?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 정상엔 등산객이 바글바글, 마치 사진 못 찍어 환장한 인파만이 산 정상을 가득 메우고 있구나. 철쭉제와 관련한 무슨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으나 MBC 카메라 맨은 수염을 날리며 계단 길을 뛰어 오르는 어느 할아버지를 촬영하기에 바쁘고..... 사람 키보다도 큰 비로봉 표지석 앞은 사진촬영으로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었다. 비로사, 연화봉 이정표가 사진촬영의 뒷배경이 되어 주고..... 저 행락인파가 백두대간상의 비로봉임을 알까?
비로봉 북사면에는 천연기념물인 주목(朱木)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나 접근금지, 아마 접근을 허용하면 다 베어 가거나 캐 가고 말겠지. 산봉우리 자체를 화원처럼 모양을 내었다. 등산로로 인한 산림훼손 방지 목적의 목책 설치와 나무계단은 오히려 산상의 화원으로서 뽐내고 있다.

천문대가 보이고 다시 발길을 옮겨 연화봉으로 운행을 한다. 제2연화봉에 도착하니 단양소방서에서 119 구급대원이 나와 대기하고 있다. 철쭉제 행사 때문에 나와 대기하고 있단다. 연화봉쪽에는 수백개의 연을 연결하여 띄워 놓고 있다. 페더글라이더가 몇 개 떠있고, 인파가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오늘이 철쭉제 날이란다. 철쭉미인 선발대회를 비롯하여 월드컵 16강 기원 및 남북통일 기원 산제 등 다양한 행사 프로그램이 있다 한다. 연화봉에 당도하니 풍기인삼 농축액을 무료시음토록 하게 한다. 갈증이 나는 참에 2컵이나 들이킨다. 여기는 완전히 놀이 마당, 여기저기 둘러앉아 음식먹는 인파 뿐. 저 밑으로 내려가면 신라천년 고찰 희방사가 그리고 희방폭포가 있겠지. 서둘러 하산길을 재촉한다.

천문대 앞을 지나 여기부터 죽령까지 시멘트 포장도로이다. 대간길상에 이렇게 긴 포장도로는 없다. 죽령까지 7.2KM의 시멘트 포장길. 제2연화봉에는 통신중계소가 자리잡고 있다. 물론 접근은 안되고 옆으로 난 길 가장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페더글라이딩 활강장면을 본다. 멋지게 하늘을 나는 저 들의 스릴있는 비행! 공포감은 없을까? 여자들이 더 많은 거 같다.(페더글라이딩를 즐기는 이들을 부르는 용어가 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페더글라이더 아닌가?) 언젠가 신문에서 이곳이 페더글라이딩 비행에 가장 적지라고 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하늘에 유유히 떠다니는 저들의 멋진 취미생활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계속되는 시멘트포장 내리막길. 가도가도 죽령휴게소는 나오질 않는다. 철쭉제를 보러오는 행락 인파인지, 산행인파는 수도 없이 올라오는데 아뿔사! 날은 뜨겁고 발바닥이 다 타는 것 같다.

천문대와 통신중계소 때문에 대간상 도로가 이렇게 길고도 높게 760고지부터 시작하여 1,300 고지까지 포장도로가 놓여 있으니 죽령에서 시작하면 2시간여 계속 오르막 길이고 연화봉에서 시작하면 1시간 반정도의 시간이 계속 내리막 길이다.

새벽 4시 15분에 시작한 산행이 종료되는 시점이다.

대간에 붙으려 고치령 오르는 길을 산토끼가 선도하고 굽이쳐 흘러내린 소백 연봉들을 섭렵하며 내달려 온 오늘의 종주는 휴식시간을 좀 줄였으면 시간을 더 단축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너무 여유를 부린 산행이 아니었나 하고 자문해 본다.
그러나 기록경기가 아니고 철인경기가 아닐진대 그런대로 잘 마무리 했다고 자평 하면서 소백산 허리를 감돌아 오르는 아흔아홉 굽이며, 영남의 3대 관문중 하나이고, 그 옛날 과거길 선비들의 수많은 애환이 서려 있는 곳, 죽령에 드디어 도착한다.
이로서 대간길 한 굽이를 또 이으고 산우회원들과의 하산주 한잔에 오늘의 피로가 잊혀진다.

그 옛날의 풍취는 다 어디 가고 차량만 북새통만 이루는지 어수선한 죽령을 뒤로 하고 한숨 자고 깨어 보니 영동고속도로, 차량은 밀리어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다.

얼른 가서 프랑스와의 축구를 봐야 할텐데 .....마음이 조급해진다. (끝)


에필로오그

죽령에서 출발전 이종기 대장의 소개로 인사를 나눈
조은산(이재홍) 선생님의 백두대간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그리고 「산은 자만하면 대가를 받는다는 」산꾼으로서의 자세에 관한
진심어린 충고의 말씀을 가슴깊이 아로새기고자 한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