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제12차 구간종주 산행기

1.산행일정 : 2002. 4. 6(토)
2.산행구간 : 버리미기재-장성봉-은치재-백화산-이화령(27.5Km)
3.산행동지 : donkey only
4산행여정
- 4/6 : 제17소구간(버리미기재-장성봉-은치재-백화산-이화령 : 27.5Km)
01:33 울산출발
06:20 이화령(승용차 parking)
07:00 버리미기재 도착 및 산행시작
07:56 장성봉
08:25 827봉
09:37 악휘봉
10:18 은치재
11:28 구왕봉
12:34 희양산
13:28 시루봉 안부
14:17 이만봉
16:41 백화산
17:25 황학산
18:52 이화령 도착

5.산행기

- 우중 산행
짐을 싸 들고 집을 나서니 비가 내린다. 지난주에도 산행을 못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갈려고 나선 것이다. 원래 이번 주는 2박3일 산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외조부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조금 조정을 한 것이다. 주초에는 고종 사촌 여동생이 교통사고로 꽃다운 스무 살의 생을 마감하고 저 세상으로 갔다. 이미 몇 해전 똑 같은 사고로 부산 영락원에 있는 조카 옆으로 돌아간 것이다. 갈 사람은 가더라도 가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왜 가는가!

이래 저래 마음이 어지러워 비가 와도 어쩔 수 없이 길을 떠나기로 했다. 달리는 차창에 빗방울이 부딪히며 산산이 깨진다. 제법 낯 익은 길을 따라 이화령에 도착하니 이미 예약 해 둔 택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화령 고개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 택시기사도 산을 무척 좋아 한단다. 주5일 근무하고 나머지는 전국의 산을 찾아 나선다면서 이 곳 문경의 산 자랑을 시작한다. 차 안에서 우중산행준비를 한다. 택시는 가은을 지나 버리미기재에 다다른다. 택시는 나를 내려 놓고 아주 천천히 올라온 길을 되돌아 간다. 고개는 안개로 휩싸여 있다. 바람과 함께 내리는 봄비가 몸을 때린다.

산불방지 출입금지 간판을 뒤로 하고 비오는 산으로 숨어 든다. 길가에 붉은 진달래가 비에 젖어 곳곳에 피어 있다. 대간길에서 처음 보는 꽃이다. 아침에 오르는 대간 초입은 언제나 힘이 든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장성봉을 향해 오른다. 바람까지 불어 악천후에 온몸이 노출되어 있다. 450여 미터의 고도를 극복하며 장성봉에 오르면 평균 고도 800미터를 유지하며 크고 작은 10여개의 봉우리가 은치재까지 계속된다. 비오는 능선길이지만 산행하기가 좋다. 안개 속에 갇혀 있어 경치를 구경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악휘봉을 지나면서 대간길은 갑자기 남쪽으로 휘어진다. 은치재로 내려서니 텐트하나가 쳐져 있다. 비를 맞고 있는 텐트에는 아직도 인기척이 없다. 자고 있는 모양이다. 희양산 아래에 있을 봉암사로 내려서는 길에 출입금지 간판이 서 있고 오봉정고개라는 이름도 함께 있다.

은치재에서 주치봉(683m)을 오르는 길은 비가와서 굉장히 미끄럽다. 구왕봉(877m)을 지나면서 몇 군데의 슬랩과 위험구간은 빗 길에 어려움을 더해 준다. 구왕봉 내리막길을 내려 서면 희양산을 오르는 급경사 바위길이 기다리고 있다. 암릉 구간이 거의 클라이밍 수준이다. 빗 길이라 더욱 미끄럽고 겁이 난다. 경사와 오름폭이 워낙 크기 때문에 진을 다 빼 놓는다. 지난번 조항산에서 본 희양산은 하얀 비단 치마를 두른 듯한 우뚝 솟은 바위로 된 산이었다.
성터가 있는 능선을 지나 주위가 펑퍼짐한 숲속 길을 한참을 간다. 빗방울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안개 속의 숲속은 너무나 적막하다. 산수유의 노란 꽃이 더욱 노랗다. 대간길도 어느새 봄이 왔는지 길가에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어 있다. 시루봉안부를 지나 배너미평전을 지난다.
지도를 보면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를 사이에 두고 시루봉, 이만봉, 백화산, 황학산, 이화령이 말발굽형태의 U자형 대간을 형성하고 있다. 날씨만 좋았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 산행이 되었을 텐데 안개로 인하여 시야는 완전히 제로 상태다. 능선에 올라서면 떨어지는 것은 빗방울이요, 보이는 것은 안개뿐이고 좌우 계곡은 온통 깊은 안개 바다를 이루고 있다.

- 당나구 머리는 깨어지고...
배너미 평전을 지나 이만봉 못 미쳐 좁은 암릉 구간이 나타난다. 능선을 올라 서 보았자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다. 이런 저런 암릉을 지나자 높이가 2미터를 훨씬 넘는 바위에 조그만 밧줄이 매어져 있다. 아래에 있는 뾰쪽한 바위를 발판 삼아 줄을 잡고 올라선다. 줄을 당겨 중심을 잡고 줄이 매어져 있는 바위 위의 나무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 발이 미끄러지면서 몸이 뒤로 넘어 진다. 이미 줄을 놓아 버린 손은 줄과 나무에서 멀어지고 몸은 허공에 떴다 싶었는데 머리가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이젠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몸은 바위 위에 누워 있다. 정신은 말짱하다. 머리가 부딪힌 바위에 머리털이 한 움큼 떨어져 있다. 몸을 일으켜 서 본다. 머리에 손을 대어 보니 면 장갑에 머리털과 함께 피가 묻어 난다. 얼굴에도 피가 난다. 왼쪽 엉덩이와 무릎 위 허벅지가 엄청나게 아프다. 어디가 부러졌는지 확인해 본다. 부러진 곳은 없는 듯하다. 발을 내 딛어 걸어 보는데 왼쪽 다리와 엉덩이가 아파 힘을 쓸 수가 없다.

사고 시간은 14:03분, 마당바위와 이만봉 사이에서 일어났다. 흐르는 머리의 피는 스카프로 메고 모자를 눌러 써 지혈을 했다. 아픈 다리를 끌다시피 하여 이만봉에 오른다. 이만봉에 오르니 증평소방서의 긴급구조 안내 표지판이 서 있다. 휴대전화는 불통이다. 신고가 된다 해도 구조대가 오기까지 몇 시간이 걸릴 것이고, 걸을 수 있다고 하면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간 탈출 할 것이냐 아니면 끝까지 이화령으로 갈 것 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이화령까지는 최소한 5시간을 잡아야 하지만 내려서는 길도 마땅하지 않아 이화령으로 가기로 한다. 백두대간을 하면서 어찌 어려움이 없겠는가? 이를 악물고서 라도 이길을 끝까지 가리라!

정말 불행 중 다행이다. 혼자 사고를 당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던가, 더 큰 부상을 입었으면 어찌 되었겠는가? 누군가가 왜 너 혼자 산에 가느냐고 물으면 난 "반성할 인생이 있어서요."라고 했다. 이렇게 큰 사고 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반성의 덕인가 보다. 오늘 우중산행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어려움도 피하지 않고 계획했던 대로 한번 가 보자는 의도도 있었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아무 생각이 없다. 걸으면서 자꾸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이만하기에 다행이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만봉을 내려서서 평전치로 가는 길은 다행스럽게도 심한 오르막이 없는 능선길이다. 왼쪽다리 때문에 조심해서 걷는데도 통증은 가시질 않는다. 평전치를 지나면서 백화산 오르막이 시작된다. 왼쪽 다리를 딛고 올라 설 때 마다 통증이 더한다. 백화산에 오르니 바람은 잔잔하다. 안개 속이긴 하지만 비는 그쳐 시원한 느낌을 준다. 백화산에서 조금 내려 가면 완만한 내리막길에 시원하게 뻗은 대간길이 쭉쭉 벋은 참나무와 함께 운치를 더해 준다. 황학산의 조그만 표지석 위에 안전산행을 비는 돌 하나를 얹어 놓고 갈 길을 재촉한다. 왼쪽다리에 신경을 쓰다보니 오른쪽 무릎에도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얼마를 걸어 내려 왔는지 모르겠다. 안개 속의 숲속은 어두워 지고 있다.
낙엽송의 가지런한 숲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왔다. 금방 나타날 것만 같던 이화령고개는 흔적조차 보여 주지 않는다. 헬기장을 몇 개나 지나고 681.3봉에서 급하고 미끄러운 내리막을 절뚝이면서 내려서니 이화령이다. 몸도 마음도 차림새도 만신창이가 된 모습이다. 비와 안개에 갇힌 고독한 12시간의 산행을 마감한다.(終)

- 백두대간의 계급장
이화령에서 차를 몰아 문경읍을 가다가 아마도 응급실이 없을 것 같아서 좀 더 큰 문경시(점촌)로 향한다. 배가 고파 온다. 문경에서 상주로 가는 길목에 제일병원이라는 제법 큰 병원 응급실로 들어 선다.
응급실은 정말 한가하다. 앉아 있던 간호사며 의사들이 나에게로 다가 온다. 피 묻은 얼굴을 보면서 이것 저것 캐어 묻는다. 아픈 곳을 말하자 C/T며 X-RAY를 찍자고 하는 것을 모두 거부하고 응급처치만 좀 해 달라고 한다. 상처 난 부위에 머리를 밀어 내고 소독을 하고 꿰매어 준다. 다른 부위는 울산의 병원에 가서 보면 될 것 아닌가?
머리 두 곳에 상처가 났을 뿐이다. 1.5Cm짜리 하나, 2.5Cm짜리 하나. 치료를 하고 얼굴의 핏자국을 씻어 낸 다음 처음으로 거울 본다. 백두대간의 선물인 하얀 계급장 두 개가 머리에서 빛난다. 바위에 부딪힌 왼쪽얼굴은 많이 부어 있다. 거울을 보며 또 한번 웃어 본다. 그만하기 천만 다행이라고... 착한 당나구한테 무슨 일이 있겠냐고...(아직도 엉덩이와 다리는 몹시 아픔)

6.접근로 및 복귀로
- 접근로 : 울산-이화령(승용차), 이화령-버리미기재(택시 3만원)
- 복귀로 : 이화령-울산(승용차)

7.제13차 구간 종주 계획
- 일정 : 2002. 4.14(일)
- 구간 : 이화령-하늘재(16.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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