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2.28/29                    포근하고 맑음


추풍령-용문산-큰재: 18km 


 


 


4:10  새벽공기가 시원스럽고 밤사이 내린 비로 대지가 촉촉히 젖어있다.


갑작스런 봄의 느낌을 접하다보니 이젠 겨울이 더 이상 머무를 자리가 없어보인다.


예보된 대로 비는 그쳤으나 잔뜩 흐린 날씨가 언제 또 비를 뿌려댈지도 모르겠고


산능선위의 추위도 가늠하기가 쉽지않다.


 


추풍령노래비 앞을 들머리로 해서 금산을 숨차게 오른다. 얼마 오르지 않아 채석장 절개지가


나타난다.  절개지의 끝이 어딘지 모르게 한없이 잘려내려간 벼랑에 서서 보니 금산의 아픔이


마음속에 아려온다. 앞서간 어느 산객의 산행기를 읽어 알고는 왔지만 실상을 와서 보니 아픈


마음이 도지는 심정처럼 착찹하다.


구름도 바람도 인간을 저주하며 추풍령고개를 울고 넘어가는 것만 같아 더 그렇고 추풍령노래비의


가사가 괞시리 애절하게 다가온다.


 


절개지옆으로 아슬하게 대간길이 이어지고 있으나 워낙의 급경사길이라 물먹은 마사토길에서


어느쪽으로 미끄러질지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칠흑의 밤이라 한치 앞만 보고 왔으니 다행이지 대낮의 모습은 얼마나 흉물스러울지 생각조차


거부하고 있다.


 


산 어디에도 잔설은 보이지 않고 땅속에서부터 나무가지 끝까지 어느새 봄기운이 역력하다.


봄비를 맞고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서 지금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변모해갈 자연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냥 신비롭고 역동적이다.  이 매력이 나를 자꾸만 산으로 부른다.


 


고온다습한 밤에 바람이라도 좀 불면 좋으련만 애꿎게 껴입은 옷 때문에 일찌감치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됐다. 자크를 풀어제치고 모자도 시원스럽게 접어올려 맨 이마에 헤드랜턴을 걸쳐


놓았더니 길 밝힐 생각은 않고 두레판에서 꺼떡대며 돌아가는 채상모처럼 걸음따라 제멋대로


흔들거리는 것이 가관이다.


 


임도를 따라 사기점고개에 이르러 주저없이 가던 길로 가다보니 건물이 나오고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쪽은 아닐 것이라 지레 결정을 하고 왼쪽 길을 한참 따라가다가 약간의 혼돈중에서 언뜻


생각나는 것이, 아차 선두없이 감각적으로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리번도 없는 길을


왜 여기까지 왔는지 후회해도 소용이 없게 되어버렸다.


 


애꿎은 선두탓만 하다가 돌아서서 다시 갈림길에 와보니 앞에 보이는 난함산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우리를 찾는 소리가 에미의 부르짖음처럼 새벽안개를 타고 들려온다. 반가움 반 허탈함


반을 섞어 사기떨어진 발걸음을 재촉하여 한참을 돌아와보니 난함산 진입로가 또렸하고


성황당자리마냥 오색리번들이 화려하게 나풀거리고 있다. 어찌하여 이런 길에서 알바를 하는지


어리석음에 대해 질책을 한다.



*** 지도상에 있는 卯含山(묘함산)이 誤記였음이 확인되어 卵含山(난함산)으로 정정하였습니다.


 


 


뒤떨어진 걸음을 만회해 보고싶은 마음에 부지런히 걸어 포장도로에 이르고,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막힌길이라고 해서 주저없이 왼쪽으로 돌아내려 오느라니 간간히 리번이 펄럭거리며 불안했던


마음을 도닥거려준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걷다가 작점고개에 이르러 다시 왼쪽 능선으로 올라


용문산 가는 길로 들어선다. 한참을 가다가 앞선 일행의 후미을 발견하고서야 안도의 숨을 쉰다.


어느새 날은 밝아지고 30여분의 알바에 기력이 소진되었는지 허기가 느껴진다.


 


7:45  473고지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단촐해진 식구들이 한데모여 이것저것 나눠먹는 재미에


넉넉한 인심마져 배어나온다.  소주 한잔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9:45 용문산


양평에 있는 용문산은 정기가 출중한 산이라고 어느 스님으로부터 들었는데 이곳 용문산은


어떨런지. 기도원 흔적이 곳곳에 있는 것으로 보아 신령스러움에 대한 호기심을 잔뜩 부풀려도


좋을 듯 싶다.


 


오르고 보니 사방의 조망이 시원스럽다. 시정이 깨끗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쉽지만 그런대로


난함산옆으로 김천지역을 둘러볼 수 있고 반대쪽에는 영동일대가 이름모를 산자락밑을 돌아가면서


널찍하게 자리잡고있다. 지도를 보니 우리는 덕유산구간 이후 줄기차게 경상북도와 충청북도를


넘나들며 행진해 왔다. 이제 곧 상주땅을 지나 충청도로 들어가는구나 생각하니 그 동안 걸어온


길에 뿌듯한 감회를 느낀다.


 


오름만큼이나 용문산을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눈길은 미끄러워도 즐거움이 있었지만


진흙길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경사로를 내려서니 가파른 국수봉길이 앞을 가로 막는다.


단숨에 올라치려하니 가쁜 숨에다 입술만 바삭바삭 탄다. 쉬엄쉬엄 가도 좋은데 뭐 땜시 이렇게


심장이 멎도록 무리를 하나 싶어 조망바위를 찾아가 등짐을 팽개치고 한 모금 남은 물을 들이키며


전신에 흐르는 쾌락을 느낀다.


 


용문산에서 온 길이 능선타고 이어진다. 카메라에 시원스런 대간길을 한컷 담고 천천히 올라


국수봉에 닿는다.


 


        


 


 


10:30  국수봉 


석재준님의 설명을 들으니 멀리 동북방향으로 우뚝 솟은 산이 갑장산이고 그 오른쪽이 김천,


왼쪽이 상주땅이라고 하신다. 이제 김천땅을 떠나 상주땅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오늘의 종착지인 큰재가 보이고 그 넘어로 다음구간이 확연히 보인다.


우리가 가는 대간길이 멀리서 온 길과 멀리 보이는 앞길이 연결되면서


마음을 다시 뿌듯하게 한다.




 


이제부터는 비상(飛上)해온 높이를 이용해서 유유히 활공하는 시간이다.


큰재까지 고작 한시간여를. 꾸덕꾸덕 얼어붙은 진흙경사로를 조심스레 내려오면서


들리는 소리에 귀가 솔깃한다. 큰재마을 못 미친곳에 아담한 연못이 하나 보이고 거기가


진원지인한데, 개구리들의 합창인지 오리들의 집단항명인지 


경칩이 아직도 몇일이나 남았는데 개구리소리라면  너무나 뜻밖이다.


 


허긴 우리집에있는 아자리아가 작년까지만해도 근 15년간이나 1월중순에서 2월초까지 화사하게 붉은꽃을 만개해 어김없는 절기의 변화를 알려주었으나 이번 겨울에는 지난해 11월말에 피어 올


2월까지 3개월씩이나 만개했다. 윤달을 빼더라도 뜻밖의 상황이었는데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는 환경변화에 생물들은 민감하게 적응하는 것이 지혜로워 보이더라.


 


   10:55  어느덧 걸어와 475봉에 이르니 삼각점이 보이고 주위에있는 잡목들이 온통 난도질을 당해


넘어져있다. 지적업무를 수행한 관리들의 흔적이라면 좀 성토를 하고싶은 현장이다.


 


큰재는 땅을 상주와 김천으로 가르고 강물을 금강과 낙동강으로 가르는 분기점이라선지 인심도 넉넉치 않아 보였다.


 


 


    


 




▣ 서정길 - 큰 곳을 다녀오셨군요. 넓직한 발걸음이 부럽습니다.
▣ 김정길 - 김석기님의 백두대간 행보에 맑은 날과 즐거움과 무탈함이 계속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님은 명언을 알려 주시었습니다~~사람이 인식하지 못하는 환경변화에 생물들은 민감하게 적응하는 것이 지혜로워 보이더라. -- 잘 보고 가면서 감사합니다.
▣ 유병복 - 석기가 너무 멋진 인생의 한 능선을 걷고 있구나.
▣ 유병복 - 석기가 너무 멋진 인생의 한 능선을 걷고 있구나.
▣ 유병복 - 처음 쓰다보니 에러가 많다. 언젠가 같이 함 가자꾸나. 건강하고 계속 멋진 산행하길 빈다.
▣ 유병복 - 처음 쓰다보니 에러가 많다. 언젠가 같이 함 가자꾸나. 건강하고 계속 멋진 산행하길 빈다.
▣ 유병복 - 석기가 너무 멋진 인생의 한 능선을 걷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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