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구간

한남정맥

산행일

지지대고개~광교산~신갈분기점

(18km, 7시간40분)

2007년 7월 17일(화)

 흐림


 

<산행 기록>

지지대고개-백운산갈림길-광교산-형제봉-버들치고개-상현초교앞-여성개발원앞도로

  8:30          10:00          10:30   11:30        12:25       13:40              16:10   


  

안개속에서 수원의 경계를 지난다

 

  한남정맥 8번째 산행을 간다. 며칠 전부터 주시해 온 날씨는 흐림이다. 비가 오면 시원하기는 하지만 진행이 느리고 불편이 따르는데, 구름이 가득하고 흐려서 비가 올 듯 하면 조망은 없지만 최적의 산행조건이 된다. 오늘이 딱 그러한 날씨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출발한다. 구리방향의 서울외곽순환 고속국도를 이용하여 경부고속국도와 영동고속국도를 연결하여 북수원IC를 빠져나간다. 지지대고개의 프랑스 참전비 앞에 주차를 하고 산행준비를 한다.

<능선에서 내려다본 북수원IC 요금소>

  8:30

  간밤에 내린 비로 대지는 젖어 있고 안개는 자욱하다. 그러나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었기 때문에 우의는 준비하지 않았다. 프랑스군 참전기념비 앞에 광교산 등산안내도가 큼지막하게 서 있고 그 옆으로 백운산, 광교산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있다. 지하통로를 지나 올라가면서 되돌아보니 북수원IC 요금소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길은 고속도로처럼 잘 나 있다. 잠시 후에 산마루 이정표를 만나고 범봉 이정표도 지난다. 이 고속도로 같은 능선길은 광교산 산줄기를 벗어날 때까지 계속되는데 수원과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주요 등산로이면서 수원시의 북쪽에 위치하여 의왕시, 용인시와의 경계가 된다. 그러므로 오늘은 수원의 북쪽 경계를 지나가는 산행이 되는 것이다.


 

  수원(水原)이란 지명의 유래는 본래 내륙이 아닌 바닷가 갯마을에서 비롯되었다. 2천여 년 전의 현 화성군의 서쪽은 대부분 바다였으리라 짐작되는데 화성과 수원은 그 지형이 낮은 야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본래 바닷물로 출렁거렸을 이 지역에 차츰 물이 빠져나가면서 작은 섬들은 산으로, 그리고 깊은 곳은 지금처럼 호수나 웅덩이로 변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원은 삼한시대는 모수국(牟水國), 고구려 장수왕 때는 매홀(買忽), 통일신라 때는 수성군(水城郡)으로 개칭되고 고려 때는 수주(水州)가 되고 조선 태종때 비로소 수원(水原)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데 이는 모두 대체로 물이 많은 곳, 곧 ‘물나라’란 뜻으로 쓰인 것이다.

<광교헬기장>

  지지대에서 출발한 지 45분이 지나자 넓은 헬기장에 이른다. 광교헬기장이다. 한 두명의 주민들도 보인다. 배낭을 메지 않고 간단한 등산복 차림을 한 사람은 산밑 동네사람들일 테다. 잠시 휴식한 후 다시 산길을 간다. 20분 후에는 통신대 헬기장에 도착한다.

<통신대 헬기장>

  통신대 헬기장 한쪽에는 의왕시 왕곡동과 수원시 상광교동을 나누는 수원시 경계 이정표가 서 있다. 상광교동은 광교저수지에서 올라오는 긴 골짜기를 가진 동네인데 예로부터 불당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다. 고려 시대에 89개의 절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올 만큼 절이 많은 불교 성지였다고 한다.

  통신대 헬기장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간다. 잠시 후에 미군부대 철조망을 만나고 통신기지 후문을 지나 계단길을 올라가니 백운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10:00

  백운산 갈림길에 이르자 꽤 많은 등산객을 만난다. 광교산이 가깝고 청계산 방향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합세하기 때문이다.

  한강 이북의 종주코스로 ‘불수사도북’이 있다면 한강 이남에는 ‘광백청우관’이 있단다. 즉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을 잇는 한강 이북의 종주코스에 대하여 한강 이남에서는 광교산-백운산-청계산-우면산-관악산을 잇는 코스를 자랑한다는 것이다. 두 코스 모두 산줄기를 잇는 등산열기가 가득하기도 하다.

  백운산 갈림길을 지나 광교산 방향으로 산줄기는 이어진다. 오전 10시를 지났지만 안개는 걷힐 줄 모르고 잠시 후에 노루목을 만난다. 노루목은 광교산 시루봉과 억새밭 중간쯤에 있는 지점으로서 해발 507m이다. 노루목이란 지명에 대해 주민들은 노루가 왕래하며 뛰놀던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노루목이란 지명이 없었으며 등산객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하기도 한다.

  10:30

  광교산 정상(582m)에 오른다. 수원을 상징하는 듯한 정상비가 이채롭다. 1992년에 세운 이 정상비석에 뒷면에는 광교산의 유래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수원의 북쪽에서 찬바람을 막아주며 수원 시가지를 품에 안고 있는 해발 582m의 광교산은 원래 이름이 광악산이었다. 고려야사에 의하면 서기 928년 고려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친히 정벌하고 귀경하는 길에 광악산 행궁에서 군사를 위로할 때 이 산에서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고 부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 하여 산 이름을 광교산이라 하였다.”

<광교산 시루봉>

  ‘물나라’라는 어원을 가진 수원시는 수도 서울에서 남쪽으로 40.7㎞가 되는 경기도 중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용인시 수지면(水枝面) 및 기흥읍(器興邑)에, 서쪽은 안산시와 화성군 매송면(梅松面), 남쪽은 화성군 태안읍(台安邑)과 북쪽으로 의왕시(儀旺市)에 접해 있다.

  한남정맥은 마치 양팔로 수원시를 감싸안은 듯한 형국으로 수원의 지형을 형성한다. 즉북,동 및 서쪽의 3면이 광교산 줄기에 에워싸이고 남쪽만이 넓은 평야지대로 열려 있는 것이다. 

  안개에 가려 조망을 잃었지만 맑은 날은 빼어난 조망을 가졌을 것 같은 광교산 정상에는 등산객들이 안개속에 가려져 있는 수원시가지를 아쉬운 듯 내려다보고 있다. 광교산 정상에서 휴식한 후 형제봉을 향하여 발길을 돌린다.

<김준룡장군의 전승음각>

  잠시 후에 능선길에 김준룡 장군의 전승음각화 이정표가 있어 방문하였다. 숲속을 150m 내려가니 안내문이 서 있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면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대피하여 적과 대치하였다. 이 때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전라병마절도사에 있던 김준룡장군도 근왕병을 모병하여 남한산성으로 향하였는데 수원지역에 이르러서는 적을 광교산으로 유인하여 호군의 대장이며 청태조의 부마인 백양고 장군을 비롯한 호장 3명과 다수의 호구을 무찌르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후 정조대에 이르러 화성성역을 관장하던 영의정 체제공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광교산 전첩장소에 전승을 기념하는 각자(刻字)를 새기게 하였다.

  충양공김준룡장군전승지(忠襄公金俊龍將軍戰勝地)라는 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김준룡 장군은 1608년(선조 14)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고 여러 고을의 수령을 거쳐 1628년 황해병사가 되었으며 1636년 전라도 병마절도사가 된 인물이다.

  

  전승지를 돌아나와 계속하여 길을 간다. 한남정맥을 가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능선길은 잘 정비되어 있고 많은 등산객을 만난다. 진행해 온 정맥능선 중에서 가장 정비가 잘 되고 넓은 길을 가는 것 같다. 능선주변은 상수리나무와 신갈나무 등이 숲을 이루어 산길은 여름에도 시원함을 안겨줄 듯하다.

  토끼를 잡으러 다니던 골짜기 위에 있는 곳이라서 불렸다고 하는 토끼재를 지난다. 토끼재는 많은 등산객들로 붐빈다. 서울주변의 많은 산들이 등산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닌데, 날씨가 좋지 않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고 있다.

<잘 정비된 능선길>

  능선길에는 나무에 이름표를 달아 놓아 나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안내역할을 하고 있다.  신갈나무, 노린재나무, 떡갈나무 등 친절하게 붙여 놓은 이름표 앞에서 잠시 서서 쳐다보며 지나가게 되었는데 처음 만나게 된 회잎나무에도 이름표를 붙여 놓아 사진을 찍어 와서 이 나무를 조사하였다.

  “회잎나무는 높이가 아담하고 수형이 깔끔한 나무로 작은 정원의 관상수로 키울 수 있는 나무이다. 5월에 피는 황록색 꽃은 귀엽고 앙증맞은 모양이고 가을의 낙엽과 열매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이른 봄이면 새순은 새순대로 나물로 무쳐먹을 수 있고 줄기에 달려있는 날개는 암치료와 중풍의 특효약이라 알려져 있다. 주로 산록이나 계곡에서 자라는 회잎나무는 햇빛을 좋아하는 양수식물로 추위에 강해 우리나라 전국에서 키울 수 있다”

<나물로 무쳐먹기도 한다는 회잎나무 잎>


 

  11:30

  형제봉 정상에 오른다. 형제봉은 하광교동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광교산의 남쪽에 솟아 있는 돌산이다. 봉우리가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져 두 개가 있어 형제봉이라 불린다.

<형제봉 정상>

  형제봉 정상에는 고등학생들이 다수 올라와서 정상정복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첫 산행길이면 자신감과 함께 가슴속이 뿌듯하지 않겠는가.

  정상의 한쪽에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한다. 안개는 아직도 자욱한데 하늘은 흐림에서 조금씩 구름이 걷혀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습도가 많아져서 흐린 날씨임에도 땀은 제법 흐른다. 땀을 딲으며 먹는 음식이라 여름에는 가져간 음식을 먹는 것보다 남기는 경우가 많고 물만 잔뜩 들이키게 된다.

   

<붐비는 등산객들>       

  형제봉 정상에서 휴식한 후 바윗길을 내려간다. 밧줄까지 설치되어 있으나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 잠시 후 삼거리를 만나는데 경기대 방향의 왼쪽으로 내려간다. 직진하면 고속도로 육교쪽으로 가게 되므로 주의해야 할 지점이다.

  형제봉부터는 지명이 수원시 장안구 하광교동에서 수원시 팔달구 이의동으로 바뀐다. 물론 산줄기 저쪽은 용인시 수지구가 신갈인터체인지까지 이어진다. 이의동은 원래 용인시 수지관할이었는데 1983년부터 수원시관할로 변경되었다.

  산길은 다소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서다가 완만하게 이어지는데 백년수 약수터 갈림길을 만난다. 백년수정상 쪽으로 직진하여 진행하니 백년수정상 사거리가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쉬지 않고 계속 진행하니 천년약수 안부사거리에 닿게 되고 버들치 고개방향으로 진행하니 268m봉에 닿는다.

  북적이던 등산객들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산길은 혼자가 되었다. 간혹 지나치는 등산객을 만날 정도로 호젓한 산길은 버들치 고개까지 이어진다.

 

<버들치 고개>

  12:25

  버들치 고개 사거리에 닿는다. 포장마차가 보이고 한쪽에는 등산안내도와 함께 수원시와 용인시의 경계 이정표가 서 있다. 버들치는 옛날 이 고개 양쪽이 늪지대였으므로 버들이 무성하여 키나 고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버들을 많이 채취하였는데 이러한 연유로 버들치 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버들치 고개에서 잠시 휴식한 후 다시 출발한다. 잠시 후에 군부대 철망을 만나게 되고 약수터를 지나 능선을 올라서면 넓은 공터가 있는 응봉이다. 능선길은 우측으로 휘어가는 철망과 그 맞은편에 또 다른 철망을 만나게 되는데 철망과 철망사이의 길로 이어진다. 좁은 길로 내려서니 왼쪽으로 90도 꺾이어 내려가고 잠시 후에 왼쪽으로 내려가는 철망을 버리고 오른쪽 3시 방향으로 이어지는 삼거리를 만나 내려간다.

  왼쪽으로 LG아파트가 보이고 계속 내려가니 오른쪽으로 현대에서 아파트 터파기 공사가 한창이다. 곧장 내려서면 43번국도를 만난다. 망가리 고개라고 불리는 곳이다. 2차로의 건너편에는 벽산아파트와 상현골프클럽의 연습장이 보인다.

 

<43번국도앞-능선길은 정면 오름길로 이어진다>

  43번국도에서 횡단보도를 건넌 후 벽산아파트를 보면서 올라가니 정문에 풀빛촌 삼호벽산아파트 안내석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서 벽산슈퍼를 따라 왼쪽으로 들어가는 차도로 진행하니 108동이 나온다. 길은 오른쪽으로 휘어지면서 노인정을 지나면 도로로 나서는 출구를 만난다. 쪽문을 빠져나와 왼쪽으로 올라가니 초등학교를 지나 삼성쉐르빌아파트를 지나게 된다. 잠시 후에 오른쪽으로 언덕을 내려가면 도로를 만나고 횡단보도를 건너 도로밑을 통과한다. 진행하다가 왼쪽에 있는 현대아이파크 아파트방향으로 가니 상현초등학교 이정표가 나온다. 아! 복잡하고 헷갈린다. 개발된 지역을 통과하는 어려움이라니...

  13:40

  상현초등학교앞 도로에 도착한다. 정맥산줄기는 온전하지 못하여 흔적을 잃은 현장을 지나고 나니 정신이 없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 본다.

  상현초등학교 앞에서 계속 진행하니 오른쪽에 소실봉으로 오르는 길이 있고 10분후에 소실봉 정상에 도착하는데 오른쪽에는 소실봉 높이만큼이나 높은 18층짜리 아파트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소실봉>

  소실봉을 지나자 소현중학교가 능선을 가로질러 버티고 서 있고 능선길이 온데간데 없는 현장을 보게 된다. 우회를 해야 하는데 내려가다보니 길은 아파트 후문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한참을 아파트 뒤뜰을 따라 진행하니 다행히 오른쪽으로 산길을 만나 능선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애초에 이 길은 잘못된 것이다. 능선에서 우연히 혼자 한남정맥을 종주하고 있는 이낙용 씨를 만난 것은 뜻밖이었다. 이 분은 아까 내가 아파트 후문을 들어서기 전쯤의 위치에서 소현중학교 뒤쪽으로 올라가서 능선상에서 길을 잘못 들어 나를 만난 것이다.

  나침반으로 지도를 대조하면서 길을 찾았는데 서로 각자의 길을 가보기로 결정하고 나중에 전화로 바른 길을 알려주기로 하고 헤어졌다. 나는 능선을 곧장 내려가고 이낙용 씨는 소현중학교 뒤쪽 능선에서 철망따라 진행하는 것이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철망따라 진행하는 것이 옳다고.

  다행히 150m봉으로 올바른 방향을 잡는다. 길흔적이 뚜렷한 능선길을 한참동안 진행하니  한진교통 건물이 바라다보이는 공터로 나선다. 이곳은 또다른 도로가 건설되고 있는 곳이어서 도로가 완성되고 나면 절개지를 따라 내려서서 한진교통 건물 방향으로 건너가야 되지 않을까싶다.

<한진교통 건물이 보이는 언덕>

  한진교통 건물앞 도로에서 건물 뒷편으로 능선길은 이어지지만 올라가지 않고 도로따라 지하통로까지 간다. 경부고속국도가 지나는 지하통로를 지나면서 이곳이 신갈분기점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지하통로를 빠져나와 만나는 넓은 광장에서 능선길을 더듬어 보았는데 수풀이 무성하고 지나가기가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하고 우회하려고 되돌아 나오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우회하는 길을 알려준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농로를 따라 산길을 올라간다.

  지저분하고 정비되지 않은 으스스한 산길을 지나간다. 광교산의 잘 정비된 산길을 걷다가 그와 대비되는 으스스한 산길이라니... 산길을 가는 이내 마음도 착잡하다.  조심스레 길을 내려가니 늘푸른 빌라의 앞마당이 나오고 경기도 여성개발센터 정문으로 나가게 된다. 23번국도를 만난 것이다.

  오른쪽 수원방향에 있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오늘의 산행을 끝내기로 한다. 날씨가 맑아지면서 햇빛이 내리쬐어 진행할 여력도 없다.

<여성개발원앞 정류장>

  택시를 잡아서 지지대고개로 되돌아간다. 개인택시인데도 기사아저씨는 고속도로로 올라가더니 어찌나 고속으로 달리는지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 그러잖아도 산길을 긴장하며 쉼없이 달려오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는데 기사분은 한술 더 떤다.


 

참고문헌>

한국의 발견<경기도편>...뿌리깊은 나무(1983년)

영진 5만지도...영진문화사

수원시청 홈페이지

아주대학교 박물관 홈페이지<수원의 지명유래>

산경표 마룻금을 따라 홀로 걸어가는 산꾼의 산행이야기<한남정맥6구간>...성봉현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