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1)

1. 산행일자 : 2004. 2.28-3. 1
2. 산행구간 : 지리산 중산리-천왕봉-성삼재
3. 산행동지 : 영산, 청산, 문산, 공산
4. 구간별 소요시간
- 2004. 2. 28
19:30 서울 경부고속터미날 출발
24:10 진주도착후 택시로 24:50 중산리 도착(민박)

- 2004. 2. 29 (제1소구간 : 중산리-천왕봉-선비샘)
05:30 기상 - 06:35 매표소 출발(산행시작) - 08:06 칼바위 - 09:39 법계사 도착 - 11:30 천왕샘 - 12:04 천왕봉 도착(13:00 출발) - 13:30 제석봉 도착(14:00 출발) - 14:30 장터목 도착 - 15:40 촛대봉 - 17:10 세석대피소 - 18:00 칠선봉 - 19:00 선비샘(비박)

- 2004. 3. 1 (제2소구간 : 선비샘-성삼재)
05:00 기상 - 06:10 선비샘 출발 - 07:30 벽소령 - 09:20 연하천 - 12:25 토끼봉 - 13:05 화개재 - 13:38 삼도봉 - 14:10 임걸령 - 16:00 노고단(16:30 출발) - 17:20 성삼재 도착 - 17:50 구례구 도착 - 18:21 서울행 새마을 - 23:03 서울역 도착

5. 백두대간을 시작하면서

백두대간에 있는 천지신명께 고하나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효자촌에 사는 1959년 1월 18일생
공영찬은 지난 45년동안 용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핑계로
이리저리 미루어왔던 우리나라의 백두대간 산행을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듯이
무거운 등짐을 지고 산길을 가는 것이 산꾼의 인생이 아닌가 합니다.
그냥 마음이 끌려서 그냥 산줄기를 따라 걷고 싶어서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합니다.

나중에 은퇴하여 한번에 백두대간을 걸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엔 또 그때 가서 무슨 일이 생겨
이 앞길을 막을 것인지 몰라서

돌아가신 아버님의 좌우명, "생각이 미친 일은 곧 바로
행하라", 에 따라 이제 그만 이리저리 미루지 말고
그냥 떠나 보려고 합니다.

가다보면 큰 바위가 앞을 막을 것이고
가다보면 큰 빗줄기가 앞을 막을 지도 모릅니다.
가다보면 큰 뱀이 앞을 막을 지도 모르며,
가다보면 큰 동물이 앞을 막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느림과 비움 그리고 침묵의 마음가짐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알파가 있으면 오메가가 있듯이
산을 내려와 내려온 산을 다시금 쳐다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나온 나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며
느림과 비움, 침묵으로 나의 정신세계가
가득 참을 느끼고 싶습니다.

6. 산행기

2004년 2월 28일(토) 흐림 그리고 비

바로 1년 전의 일이다. 3월 3일부터 5월 31일까지 '봄철 산불예방을 위한 출입로 통제'로 지리산이 통제된다는 기사를 보고 미뤄왔던 지리종주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확히 1년이 지나고 나니 마치 지리산 귀신이 나를 부르는 듯 이번에는 거꾸로 지리종주를 하기로 했다.

오전 중에 다시 한번 배낭을 꾸려 본다. 산행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퇴근하고 나서 집에 들어오면 배낭을 꾸리고 짐을 넣었다 뺐다 한 것이 모두 합하면 5번은 될 것 같다. 배낭무게는 20kg. 백두대간의 첫 번째 구간인 지리산 종주동안 이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의문스러워지지만 이제 더 이상 줄일 것도 없다. 3월 2일부터 5월 31일까지 전국의 국립공원 출입이 통제되는 관계로 지리산국립공원 대피소도 이번 주는 예약이 꽉 찬 상태다. 벽소령대피소에 전화를 해서 대기자로 사전등록이 안되냐고 하니 예약이 안 되어있으면 오지 마시라고 한다. 그래서 비박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짐을 꾸리니 무게가 많이 나갈 수 밖에 없다.

경부선 터미널에 나가 있으니 산우들이 큰 배낭을 메고 속속 모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진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진주까지 가는 중에 빗방울은 더욱 굵어진다. 이 우중에 이 배낭을 짊어지고 1박 2일 동안의 지리산 종주가 과연 가능할 것인지. 괜히 무리를 하는 것을 아닌지. 작년 이맘때 최초로 지리산종주를 했을 때도 성삼재에서 비를 맞고 시작했었다. 둘째 딸아이인 효원이가 메시지를 보냈다. '백두대간대장정 잘 갔다오세요~~ㅋㅋ^0^'. 아빠가 왜 대간을 시작하는 것인지 이 아이는 이해를 할까?

비로 인해 예정시간보다 늦게 밤 12시 10분 진주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중산리로 향했다(택시비 4만원). 중산리 매표소 앞에 있는 여니재민박(055-973-7172)에 도착하니 밤 12시 50분이다. 민박집은 2층집인데 깨끗하다(3만원). 백두대간 시작 자축연을 하고 잠자리에 드니 1시 30분. 4시간 자고 일어나서 대간을 시작해야 한다니 까마득해진다.

2004년 2월 29일(일) 흐림 그리고 맑음

중산리 매표소의 새벽 아침 5시 30분에 기상을 하여 아침으로 누룽지를 먹고 파이팅을 외친 후 6시 35분 중산리매표소를 통과한다. 일단 날씨는 좋아서 다행이다. 일반적으로 중산리 버스 주차장에서 칼바위까지 1시간 10분, 칼바위에서 천왕봉까지 2시간 40분 걸린다고 하니 중산리매표소에서 천왕봉까지 오르는 길은 일반적으로 3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우린 아침이라 몸도 안 풀리고 각자 배낭무게에 짓눌려 40분이면 칼바위까지 올라 갈 길은 1시간 30분이 걸렸다. 칼바위 도착하니 8시 6분이다. 우리가 출발할 때는 사람도 없었는데 날이 밝아지니 휴일이라 꽤 많은 사람들이 우릴 추월한다. 그러면서 우릴 쳐다보고 어떤 사람은 '짐을 제대로 못 꾸리면 저렇게 되는 거야'하고 한마디하고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수고하신다고 하며 비박을 하시나 봐요'하며 수고하시라고 북돋아 준다.

9시 39분 로타리대피소에 도착하여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식수를 청하니 법계사에 가서 식수를 보충하라고 한다. 그러면 대피소에는 물이 없다는 것인가? 있는데 귀찮아서 없다고 하는 것인가? 아무튼 법계사로 올라가서 식수를 보충하고 절구경을 잠깐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가 새롭고 절집의 배치 및 주변 경관이 멋스럽다. 그런데 지리산 국립공원으로 출입할 때 천은사매표소나 화엄사매표소는 절관람료로 1,600원, 2,200원을 각각 별도로 받는다. 하지만 법계사의 경우 나와 같은 산꾼들이 식수를 보충하며 절구경을 하지만 사찰관람료를 받질 않는다. 문제는 천은사의 경우 지리산 등산객들의 대부분이 절구경을 하지 않은 채 그냥 통과하는 데로 불구하고 사찰관람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원칙이다.

11:30 천왕샘에 도착하여 가파른 길을 기어올라 천왕봉(1915m)에 도착하니 오후 12시 4분이다. 집에 휴대폰으로 효원에게 감격을 전한다. '아빤 지금 천왕봉이야' 일반적으로 3시간 20분이면 오를 거리를 5시간 29분이나 걸렸다. 1.6배나 더 걸린 셈이다. 날씨가 좋아 멀리 우리가 가야할 종착지 노고단이 보인다. 어휴 언제 저기까지 가나. 정상에는 사람들이 많이 올라와 있어 사진만 찍고 내려왔다. 내려와서 아이젠을 갈아 신고 배낭을 둘러보니 날진물통이 안 보였다. 천왕봉에 놔두고 왔나? 아님 오다가 흘렸나? 작년에는 장갑 한 쪽을 놔두고 와서 기분이 상했는데 이번에는 물통인가? 내가 아끼던 것이라 기분이 석연찮다.

오후 1시 30분경 제석봉(1808m)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는다. 식은 맨밥에 반찬은 김과 김치뿐이다. 그래도 맛있다. 시장이 반찬이라나. 작년 이맘때는 눈이 많이 와서 제석봉 경관이 제법 멋있었는데. 그래도 제석봉의 고사목은 여전히 자태를 뽐내고 있으니 시간은 흘러가 나의 흰머리는 늘어도 지리산은 여전하다. 산꾼 한무리가 지나가는 데 배낭을 보니 내가 잃었던 것과 똑 같은 녹색 OR 물통커버를 단 물통을 달고 가는 사람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내것이라는 감이 들었다. 나와 저 수통이 인연이 있으면 장터목대피소에 만나겠지. 오후 2시 30분. 장터목에 들르니 아까 본 산꾼들이 식사를 하고 있어 가서 물어보니 주운 것이라고 한다. 고맙게도 무사히 집에 돌아온 길을 잃은 양을 만나는 기분이다.

어둡기 전에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여야 하는데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걱정이다. 문산의 컨디션이 또다시 악화되어 시간은 자꾸만 지체가 된다. 촛대봉(1704m)을 지나 세석에 도착하니 오후 5시 10분. 이제 곧 어두워질 것 같다. 세석대피소에서 하루를 지내고 거림으로 탈출하려는 문산을 설득하여 일단 선비샘에서 비박을 하기로 의견을 모으다. 어두워지니 기온도 떨어진다. 배낭은 여전히 무겁고 이제 허기도 진다. 이 고생을 왜 하는 거냐고 되물어 보지만 내가 결정한 것이라 아무도 답을 해 줄 수 없다. 헤드랜턴을 켜고 얼어붙은 산길을 조심조심 걸어 선비샘에 도착하니 저녁 7시. 물이 졸졸 흐른다. 샘물이 얼지 않아 다행이다.

하늘을 보니 달과 별이 보이는 데 달무리가 있어 내일 날씨가 흐릴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계속 기온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소주로 몸을 녹이고 시장기를 때우고 밤 10시경 침낭 속에 들어가다. 2년 전 구정기간동안 처음으로 비박을 했을 때의 기온이 영하 15도였다. 그 땐 열악한 장비였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업그레이드된 장비로 비박을 하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을 하며 옷을 다 입고 침낭 속에 몸을 놓이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감이 없지는 않다.

한밤중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눈을 떠 청산에게 시간을 물어보니 밤 2시다. 밖으로 나와보니 진눈깨비가 오고 있다. 침낭 속으로 다시금 기어 들어가 누우니 오늘 산행일정이 걱정스럽다. 강풍이 몰아치니 바람 소리는 왜 그렇게 나를 심란하게 하는 지. 문산이 괜찮을까 걱정스럽기도 하고. 정말 이 짓을 왜 하는 거야? 세찬 강풍 속에서도 수마는 다시 나를 찾아온다. 다시금 눈을 떠니 4시 반이다.

2004년 3월 1일(월) 흐림 그리고 맑음

오늘은 삼일절이다. 침낭 속에서 꾸물꾸물 대다가 5시경에 일어나 어둠 속에서 짐을 챙기고 6시 10분경 선비샘을 출발하다. 아침을 가다가 벽소령대피소에서 컵라면을 사먹기로 하고 걷기를 강행하다. 7시 30분. 벽소령에 도착하니 컵라면이 품절이란다. 다른 따뜻한 것도 없단다. 우린 시간이 없어 해 먹기도 곤란하고 연하천대피소에 가서 라면을 끓여 먹기로 하고 벽소령을 떠나다. 형제봉(해발 1452m)에서 연하천대피소로 가는 길은 험하기도 하지만 바람이 엄청 매섭다. 고어쟈켓을 꺼내 입고 땅만 보고 걷는다.

연하천산장 오전 9시 20분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하다. 우린 짐을 줄이기 위해 앞으로 먹지 않을 런천햄과 참치캔을 대피소에 주고 다른 간단히 먹을 것으로 교환을 원하니 없다고 해서 커피로 교환했다. 라면을 끓여 맛있게 먹고 남은 국물을 버리려니 대피소관리인이 자연보호를 위해 버리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그럼 이걸 어쩌나. 그 국물에다 먹다 남은 김치며 반찬 등을 넣어 버렸는데 다시금 먹을 수도 없고. 청산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건데기는 따로 골라 내어 빈통에 넣고 국물은 날진물통에 넣기로 하다. 어휴 날진물통이 주인을 잘못 만나 별 수모를 당한다. 연하천에서 토끼봉까지는 약 3시간 걸리는 먼길이다. 그래도 따뜻한 국물이 배 안에 들어가서 그런지 세찬 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걸었다. 느림, 비움 그리고 침묵의 자세로....이제 말하는 것도 답하는 것도 징그럽다. 그냥 머리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며 걷기만 한다. 여대생같은 아가씨 두명이 마치 안나푸르나로 가는 모습 같이하고선 우리만큼 큰 배낭을 지고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오후 12시25분 토끼봉(1534m) 도착. 멀리 노고단이 보이고 눈앞에 삼도봉이 보인다. 이제 저 봉우리만 올라가면 높은 봉우리는 없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뱀사골대피소로 통하는 화개재로 내려서니 오후 1시 5분. 지난 6월에 왔을 때 공사중이였던 쉼터가 완성되어 있다. 충북 증평에서 오셨다는 노부부로부터 사이다를 얻어 마시고 답례로 호박죽을 드리니 아주머니께선 사양하시더니 그림자도 무거워 보이니 짐을 들어주시겠다고 하신다. 그렇다. 지금은 나의 그림자도 무겁게 느껴진다. 그래도 어쩌나. 내가 택한 길인 것을 누굴 탓할 것인가.
그래 가자. 이제 저 눈앞의 저 봉우리만 넘으면 노고단이다. 구례구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예매를 해 놓았기 때문에 계속 시간에 쫓기기만 하는 느낌이다.

오후 1시 38분 전라북도, 전라남도, 그리고 경상남도의 도경계선이 만나는 지점인 삼도봉에 도착하다. 오늘은 생각보다 잘 걷는 문산이 사진을 찍자고 하지만 이제 배낭 속에서 사진기를 꺼내기도 버겁다. 노고단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오후 2시 10분 임걸령에 도착하다. 임걸령 샘물이 맛있다고들 하던데 마음이 급하다. 물통이 비었지만 바로 지나간다. 임걸령에서 노고단까지의 길은 아늑한 산책길처럼 아주 좋다. 바닥은 약간 얼었지만 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 겨울의 정취를 느끼기에 아주 그만이다.

노고단에서 오후 4시경. 드디어 노고단 도착이다. 아침 6시경에 시작하여 오후 4시까지 꼬박 10시간을 걸은 셈이다. 연하천대피소에서 라면을 먹은 것을 빼곤 제대로 먹지도 않은 채 양갱, 비스켓, 쵸코파이, 쵸코바, 건빵으로 시장기만 때운 채 20kg 배낭을 지고 10시간을 걸었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나. 환희...카타르시스...안도감...성취감...

날씨가 좋아 육안으로도 잘 보이는 천왕봉을 배경으로 백두대간 첫 번째 구간을 증명하는 사진을 찍는다. 성삼재로 내려오니 오후 5시 20분. 시간이 없다. 택시를 타고 구례구역으로 오니 5시 50분이다(택시비 3만원). 역앞 식당에서 섬진강의 명물인 재첩국을 먹다. 기차시간에 쫓겨 허기에 쫓겨 국에 밥을 말아 먹으니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서울행 새마을 6시21분발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니 밤 11시 3분이다. 집에 가니 밤 12시. 짐을 정리하고 나니 다음날 1시다. 잠자리에 들어가니 발바닥, 종아리, 무릎, 어깨가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을 징그럽게 했다고 앙갚음을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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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 것 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0^


▣ 웃자 - 장터목까지 같은 길을 같은 시간대에 걸었네요..힘찬 대간 완주하시길를 바라며....저도 산행기 준비해서 올려야겠어요...^^*
▣ 김근일 - 같은길을 우리가 몇시간 먼저 지나 갔군요~. 비박 하시면서 고생 하셨읍니다~..제가 다녀온 산행사진 구경하러 오세요~ 네이버에서 "사패산산악회"를 검색 하시면 됩니다~ ^_^*
▣ 조재현 - 몇구간 나누었서 대간종주하는지 몰라도 체력이좀문제가 되게네요
▣ 조재현 - 저는29구간으로 나누었서 한달에두번가니가 일년사개월소요되었는데 지리산은당일종주17시간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2-20 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