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7년 11월24일(음력10/15일) 날씨 : 비 그리고 흐림

 

산행지 : 백두대간 북진24구간 (고치령~도래기재)

 

산행자 : 백두대간 꿈의 종주대

 

산행코스 : 고치령~마구령~갈곶산~늦은맥이~선달산~옥동봉~도래기재

 

도상거리 :20.4km , 어프로치 :2.5km

 

산행거리 : 22.9km ,  산행시간:11시간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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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태백산과 소백산을 이백이라 하고

이백을 이어주는 산줄기를 양백지간이라고 한다.

 

우리가 이 번에 이어가는 고치령에서 도래기재까지는 이백을 이어주는 오작교의 역할을 하는 구간으로 배달민족의 설화와 함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공존하는 구간이다.

지리산에서부터 끊어질 듯 이어져 온 북진하는 백두대간은 소백산에서 비로봉을 낳고 동북을 가로지르며 국망봉을 지나 고치령에서

  자세를 낮추면서 도래기재까지 이어가는데 중간에 선달산을 솟구치며 아치형 오작교를 만들어 준다.


 

산신이 되기 위 해  태백산으로 향 하는 단종대왕이 가는 길 편안하시라고

잠시 능선을 낮춘 마루금은“미네치”를 지나 마구령(현지 주민들은 “메기재”라 부르며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임곡리를 이어주는 령이다)가는 길목에서 춘양목의 향기에 취해 또 한 번 쉬어가게 한다.


 

마구령은 일반인들 접근이 어려운 외지이지만 간혹  부석사에 관광차 온 사람들이 승용차나 봉고차를

이용 해 오르기도 한다.


 

마구령을 횡단하여 갈곶산 가는 길은 비교적 부드러운 길이며 암릉인 1057봉에 이르면 사방으로 조망되는 경관과 함께

옥동천의 시작을 알리는 북쪽의 남대리와 부석사가 있는 남쪽의 북지리 일대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세의 아름다움은 

궁예의 야망과 부석사의 신비를 풀어줄 것이다. 

 

갈곶산에서 가지 내리는 봉황산 자락에 자리한 부석사는 자개지맥을 우백호로 하고 문수지맥을 좌청룡으로 하는 명당으로

타가 공인하는 사찰건물의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과 조사당(국보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45호)

조사당벽화(국보46호) 석등(국보17호) 등이 있는 중요한 사찰로 676년 문무왕의 명을 받아 의상조사가 창건한  화엄종의 “근본도량”이다.


 

갈곶산에서  늦은맥이재에 내려서면  왼쪽은 옥동천이 발원되는 남대리 계곡이며 오른쪽은 오전약수(조선조 때 전국약수대회에서 1등먹었다)로

유명한 오전리로 가는 방향이다.

 

늦은맥이재에서 선달산으으로 이어지는 500여미터의 오름길은 인내심으로 요구하는 구간이다.

(바닷가 돌출부위에 쓰는 "곶"이라는 문자를 사용한 갈꽂산의 유래는 산행글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소백과 태백을 이어주는 오작교의 중앙에 위치하여 주변 산군들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선달산은

 신선이 놀았다고하여 “仙達山”, 먼저 올라야 한다고 하여 “先達山”,남쪽 기슭에  신선굴(神仙窟)이 있어 선달산이라 하며, 남쪽으로 “봉황산”

서쪽으로 “어래산과 소백산” 동쪽으로“옥석산” 동남쪽으로 “문수산”이 있어 정상에 오르면 “一望無際“세상만사 모든 것을 잊게 한다.

 

선달산을 지나 내리막길을 한 시간 정도 내려서면 박달재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에는 태백산의 산신을 모시는

산령각이 있고 그 옆에 정자가 있다.(산령각 앞에 있는 박달령 안내문에는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고개"로 써 있으나

 이 부분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소백산에서 태백산까지 역사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소백산은 불교에 관한 지명이 대부분이나 고치령부터는

배달민족(삼일신고.격암유록.정감록 등.) 고유의 지명이 사용되고 있고 단군신화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단종의 비극과 김삿갓의 해학 그리고 부석사의 정서가 어울어진 양백지간에 속하는 고치령에서

도래기까지 마루금은  오전약수 한모금에 목축임하고  산신에 대한 애니미즘과 토테미즘, 불교의 정서가 가득

배어있는 사찰에 대한 고찰과  배달민족(백의민족)의 뿌리인 단군의 성지(천제단 등)가 있는 태백산을

소백산과 이어주는 샤머니즘의 길목이기에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 해 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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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에 열거한 내용은 다른 차원에서 나열 해 보았다 -

 

선달의 뜻

조선시대의 무관(武官)은 식년무과(式年武科)·증광무과(增廣武科)·별시무과(別試武科)·알성무과(謁聖武科)·중시무과(重試武科) 등을

 통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한정된 과(:정원) 때문에, 급제하여도 상위 입격자인 갑과(甲科)·을과(乙科)는 바로 임관되어도

병과(丙科)의 일부는 임관되지 못하고 자리가 날 때까지 대기하는 예가 많았다.

그런 경우에 선달이라고 불렀다.

(네이버 백과사전)


 

갈곶산의 "곶의 뜻

바다로 돌출한 육지로 꽂 보다 크면 반도라 하고 반도의 말단부를 "곶"이라 한다.(갑(岬)=단(端)=관(串)

장산곶,장기곶.호미곶.월곶.어랑단.수원단 등이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박달의 뜻

배달(倍達)→백산(白山)의 다른 표기이다.

백산(白山)→백달(白達:밝달 .박달)→배달(倍達:ㄱ탈락)

배달은 백달의 음운변형이고,

박달은 백달의 모음변형이며,

백달은 백산의 다른 표기이다.

박달나무는 배달민족의 나무라는 뜻이며 우리는 백산(=배달)민족.곧 백두산 민족이다.

 

(대종언어연구소=박대종)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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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도

(산행 계획은 도래기재였으나, 박달령에서 종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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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글

 

단양에서 간단한 식사를 마친 후 버스에 오르니 때 마침 쏟아지기 시작하는 빗 줄기는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예감으로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산행 들머리가 되는 고치령에 오르기 위해 좌석리 이장님께 전화는 넣어 두었지만 겨울철 내리는 비를 맞으며

산행 하기란 가장 싫어하는 것이라서 갈수록 강해지는 빗줄기에 걱정만 늘어 나는데 작년 봄 혼자 이 곳에 왔다가

마루금 밟아보지도 못하고 되 돌아가야 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계속하여 비가 내린다면 마구령까지만 산행하기로 결심하고 좌석리에 도착하니 이장님 나와 계시고 ..

트럭을 이용 해 고치령 가는 4km의 거리는 정면으로 받아야 하는 차가운 빗방울에 얼굴 찡그리게 하지만

그래도 가야할 길이라면 팔자라거니 하여 순응하기로 한지 오래이다.

 

03"58

트럭에서 내려 장비를 준비한다.

 

이 때부터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싸래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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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쪽 산신각의 문 고리를 열면

태백으로 떠 나는 단종대왕의 말을 탄 모습과

신선이 되어 호랑이를 타고 노니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향불 피워 놓고 합장한 후 산행길 준비를 마친다.

 

이 곳을 지나는 길손들이여!

 고리문 열고 산신령님께 묵례를 올리는 것도 수 천년을 이어 온 우리네 전통이니

종교에 관계없이 절 한 번 하는 것!

손해보지 않으리라.

 

 

 

(23구간 종료 때 찍어놓은 사진임)

 

吉祥雲集(상서로운일이 구름처럼 모인다) 

  兩白大將軍(소백과 태백의 양백을 가리킨다)

   太白天將(태백산의 하늘을 지키는 장군)

 恒樂(항상 줄겁기를 바라는 것)

 

등을 표현하는 장승의 전송을 받으며 태백산의 신선이 되기 위해

 이 길을 떠났던 단종대왕의 혼백을 따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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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분 고치령을 떠난 후 500m지점을 통과하고

   05:15분 미네치에 도착하여 

07:01분 마구령에 내린다.

 

마구령까지 오는 동안 어둠속을 지났기에 특별한 사진을 남길 수는 없었다.

 

다만

눈과 비가 내린 후여서

물기에 젖어 있는 낙엽이 산행길 어렵게 하였다.

 

그래도 미네치 지나 마구령 가는 길에 간혹 만나는 아름드리 춘양목의 곧게 뻗은 기상은

우리들 마을을 줄겁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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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양목

 

춘양목의 자랑은 보통 소나무보다 생장이 3배 이상 느리고 곧게 자라며 심재(나무의 가운데 부분)가 붉으며 제재하거나 재목으로 사용하였을 때

뒤틀림이 거의 없는 나무이기도하고, 조선조에 궁궐에서 쓰이는 나무는 거의가 이 나무를 사용하였고 최근에는 유명사찰, 고궁보수 등에

사용하고 있으며 그 가격은 보통 소나무의 10배이상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네이버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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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가는 길은 영월방향이다.

 

궁예가 극락정토를 꿈꾸던 곳!

김삿갓의 해학을 그리게 하는 곳!

단종대왕의 통곡이 서려 있는 곳!

 

오른 쪽으로 가는 길은  부석사와 연결 되는 도로로 이 곳을 찾는 이 거의 없으나

사찰에 들리는 사람들이 승합차를 이용 해 찾아오곤 한다.

 

마구령의 유래는 옛날에 보부상들이 말을 타고 넘나드는 길이라

마구령 이정표 뒷 면에 적혀 있다.

 

 

 

07:23

894봉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1057봉

 

 

암릉지대

위험 구간은 아니나 새벽에 내린 비 때문에 산행길 더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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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갈곶산 정상과 봉황산

 

산 이름에 "곶"이라 표현 해 놓아 그 뜻을 백방으로 찾아 보았으나 알 길이 없다.

다만 바다와 연결 된 육지의 끝 부분인 돌출부위를 "곶"이라 하는데 운해(구름)와 연계하여 유추 해 볼 따름이다.

 

아래 사진은 구름바다에 잠겨 있는 덕유산의 삿갓봉에서 동업령 구간이다.

이와 같이 산줄기 아래 분지는 구름에 잠겨 마치 바다처럼 보이게 되는데 산줄기 역시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돌출부위까지 뿌리를 내리게 된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선조들은 곶 곶(串)자를 연상시켜 갈곶산이라 지명 했을 것으로 유추 해 본다.

그렇다면 "갈"은 땅이름 갈(乫)자를 붙여서 갈곶산(乫串山)?

 

애고~~

여기까지 생각하느라 머리만 희여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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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용 사진(한국의 산하 풍악님의 백두대간기 중에서 훔쳐옴)

 

구름바다 가운데 섬 하나 있고..

 

저 끝에는 곶이 있네~~

 

물 줄기 따라가며 낚시대나 펼쳐 볼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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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2

선달산의 시작을 알리는 고개

 

여기에서 선달산까지 500여미터의 오름길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구간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서서히 오름질 해야 하는 구간이다.

 

뒷짐지고 팔자걸음 걷는 양반네처럼...

 

 

처음 오름길은 임도이다.

예전에 춘양목을 싫어 나를 때 사용했던 도로로 보인다.

 

소위 말하는 "제무시"라는 차가 다니던 도로

 

 

고치령을 출발할 때 쏟아지던 비는 이곳에서는 눈으로 내렸나 보다.

 

12:27

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아늑함을 주는 곳!

 

 

과거에 합격하고 입궁할 날만 기다리는 느긋한 선비들이 찾아와 마음의 평화를 얻을만한 곳!

그래서 신선이 살았던 곳의 선달산이 아닌 재충전을 위해  찾아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선달들의 산이기를....

 

 

선달산 정상에 있는 백두대간 안내도!

 

 

박달령 가는 길

 

소복히 쌓인 눈 위를 걸어가는 기분은 "짱"이다

 

 

이 번 구간은 대부분 평탄한 육산으로 암릉을 찾아 볼 수 없는 곳이다.

 

 

14:43

박달령

 

 왼쪽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르면 도래기재까지 이어진다.

오른쪽은 주실령으로 이어지고 거미줄처럼 파 헤쳐진 임도는 나한진을 쳐 놓은 듯 하다.

 

이러한 임도는 춘향목을 싫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지금은 산불방지라는 미명아래 방화벽으로 둔갑되어 있다

산자락을 유린하여 곳곳을 파 헤치고 사철 푸르던 춘향목은 벌목하여 잠목이나 자라는 황페화 된 산이 된지 오래인데

방화벽 운운하며 위장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산령각 앞에 있는 박달령의 유래는 보부상들이 넘다 들던 길이라 되어 있다.

어찌보면 억지춘향 격이다.

 

어떻게 하여  이곳을 보부상들이 넘나드는 고개로 보았을까?

시간을 다투는 상인들이 인적이 드문 가장 험한 이 고개를 참말로 넘나 들었을까?

 그 정도로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고 대동강물 팔아먹는 사람들이다..

 

 박달령 안내판이 말하는 보부상은 춘양목을 벌목하기 위한 벌목꾼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들을 보부상으로 보는 것은  너무 오버한 것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박달령을 표기하는 한자의 뜻을 보면 "朴達嶺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것은 개요에서 밝혔듯이 배달민족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제천에 있는 박달재가 금붕이와 박달이의 애뜻한 사랑이 "울고넘는 박달재"의 노랫말로 표현되어 수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주듯이 박달령도 밝고 깨끗한 백의민족의 기상을 담아 새롭게 조명 되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 억지 춘향의 뜻

 

1.춘양역에서 유래했다는 설


억지 춘향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정확히는 "억지 춘양" 이라는 말이 옳지요.

춘양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을 말하는 것으로서 영주와 강릉을 잇는 영동선 철도가 만들어질 때 자유당 국회의원 한 명이

본래는 철도가 건설되지 않을 계획이었던 춘양면으로 철도를 휘어져 들어오게 만든 것에서 유례했습니다.

 영동선이 유독이 춘양면 근처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처럼 움직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2.춘향목에서 유래했다는 설
억지춘향에서 춘향은 성춘향이라는 인물이 아니고요,

 좋은 소나무종인 춘향목을 말한다고 합니다.

춘양목인데 향기가 나서 춘향목이라고도 한답니다.

워낙 귀하고 비싼 나무라 장사하시는 분이 일반소나무를 춘향목으로 속여서 판다고 해요.

억지로 춘향이다라는 말이지요.

 

3.춘향이의 수청에서 유래했다는 설
(어원)억지춘향 : 일을 순리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우겨 겨우 이루어진 것을 이르는 말.

고소설 [춘향전]에 나오는 것처럼 변사또가 춘향으로 하여금 억지로 수청을 들게 하려고 핍박한데서 나온 말이다
출처:국립국어 연구원

 

 

 女心

 

산령각 내부

 

고치령에는 山神閣으로 되어 있고 박달령에는 山靈閣으로 되어 있다.

같은 말이나  사찰에서는 "산령각"으로 쓴다.

 

 

 

여기서 모시는 城隍의 뜻은?

 

1 <가톨릭>‘천사’의 전 용어.
2 <민속> 하늘에 있다는 신 또는 하늘의 신령. ≒함지(咸池).
3 <역사>하늘의 풍운 뇌우와 산천 성황(城隍)을 이르던 말. 중춘(仲春)과 중추(仲秋)에 날을 받아 제향을 지냈다.

-네이버 사전-

 

우리는 고치령에서 묵레를 올렸고

여기에서 삼배를 올렸다.

 

그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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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기재까지 예정 되었던 산행을 박달령에서 끝내고 오전약수터로 하산 하기로 한다.

 

예정된 산행시간을 초과 하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합류하신 분들의 하산이 늦어지고  기제사를 모셔야 하는 대원님의

사모곡이 산그림자 대장님으로 하여금 산행종료 결정을 내리게 한다.

 

나 또한 의성에서 있는 제삼리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일정 때문에 사전양해가 되었지만  박달령에서 산행을 접어야 하는 안타까움은

도래기재로 진행중인 선두팀과 연락두절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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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

오전약수터 하산로

 

오전약수터에 도착하여 모든 일정을 산대장님께 인계한 후 음식점의 겔로퍼 20.000원 지불하고 봉화로 이동하여

40여분 기다림 끝에 도리원행 버스타고 뛰뛰 빵빵 달려간다.

제삼리주민들 만나러....

 

 

 

오전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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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돌봉

봉화로 이동 중에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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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예정대로 진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다.

다음에 다시 이어가면 되지만 때로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불가피함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조직의 문제이기 때문에 서로의 이해와 동료애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하물며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선행대장으로서의 고뇌는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조금 더 노력하여 일치단결된 모습으로 향로봉에 발도장 찍는 순간까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동료애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함께 한 모든 대원님들께 국화꽃 향기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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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리 주민모임에서...

 

하룻밤에 100리를 달리는 철각들...

그 들의 모임에 초청받아 참석하였다.

 

지리산 태극종주를 필두로 영남알프스 실크로드92 등

장거리 산행문화를 선도하는 등산동호인들이 모여 이끌어 가는 다음카페 " http://cafe.daum.net/J3C1915"은

지리3대 종주 코스의 약자로 전국에 700여명의 회원이 모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산러브짱님이 운영하는 농장에 전국에서 모여든 7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하는 캠프파이어는 모처럼 청춘으로 되 돌아가게 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회원님들이 가져 온 팔도의 진미를 하룻밤에 모두 음미 해 보는 미각이 있는 시간이었고  

꾼들의 산행에 무용담은 참으로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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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상주로 이동하여 인천으로 올라오는 시간은 피곤함의 연속이었지만

제삼리주민들과 하룻밤은 영원히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

 

 

 

j3클럽 회원님들께도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