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신의터재-화령재-봉황산-갈령) 산행기<13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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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6.16  토요일  날씨:대체로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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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신의터재-화령재-봉황산-갈령)  경북 상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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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터재(05:40)-329.6봉(05:59)-포도밭 농로(06:25)-무지개산 갈림길(07:05)-윤지미산(08:55)-도로(09:33)-화령터널 위(09:48)-화령재(09:56)-수청거리삼거리(10:34)-450봉(11:09)-산불감시초소(11:57)-봉황산(12:52)-비재(14:47)-510봉(15:28)-조망바위(15:52)-억시기갈림길(16:43)-못제(16:54)-헬기장(17:02)-갈령삼거리(17:45)-갈령(18:20)

0 산행 거리

  24.46km(대간 23.26km, 접근 1.2km)   * 총 누적거리 245.61km(대간 236.41km, 접근 9.2km)

0 산행 소요시간

  12시간40분(05:40-18:20)   * 총 누적시간  121시간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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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늪에 빠져들면 질퍽한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보다 더 힘이 드는가보다.

어쩌면 이것도 마약 같은 중독 증상이요, 대간병이 아닐까?

이번에는 신의터재에서 갈령삼거리까지 대간을 잇는 산행으로 상당히 거리가 멀고 시간 또한 많이 소요될 것이라 예상 하며 신의터재에 홀로 도착한다.

 

아직 남아 있는 어둠을 막 쫒아내고 새벽을 맞는 신의터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수많은 왜적을 물리쳤던 김준신 의병장의 높은 혼과 기상이 살아 있는 듯하다.

20번국도 고갯마루에 화동산악회에서 세운 '화동, 상주' 이정표 쪽으로 포도밭이 보이며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가며 대간은 시작된다.(05:40)

 

그리고 약 30m 우측에 '화령재(11.9km/4시간10분), 신의터재'의 이정표가 있어 넓은 흙길을 따라 우측으로 꺾어 언덕에 오른다.

야산지대라 주변에는 묘들이 많이 보인다. 지도상에는 선교공동묘지로 표기하고 있다.

눈부신 햇살이 눈높이에서 대간길 좌우로 왔다 갔다 번갈아 가며 호젓한 숲에 축복의 은빛 가루를 뿌려준다.

새벽을 여는 맑고 청량한 새 울음소리가 대간을 달리는 산객의 귓전에 맴돌아 지상 낙원을 연상케 한다.

 

산책로 같은 넓은 길을 가다 통나무로 만든 계단 오름길 끝에 '화령재 11.4km, 신의터재 0.5km'의 이정표가 있다.(05:51)

부드러운 길은 계속되지만 전날 밤새며 완성해 놓은 거미줄이 얼굴에 마구 달라붙는다.

맨 처음 문을 여는 발걸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리며 길을 계속해 헤쳐 나간다.

전국적으로 봄 가뭄이 심한데 이 지역은 전날 소나기가 내렸는지 땅이 촉촉하고 이슬까지 내려 앉아 등산화며 바지가 흠뻑 젖고 만다.

이럴줄 알았으면 방수 등산화로 바꿔 신었을 텐데.

 

어렵지 않은 오르내림의 반복은 지난 산행과 별반 다름없고 +표시만 새겨진 소 삼각점의 작은 봉우리에 닿는다.(05:59)

지도상의 329.6봉으로써 묘 2기가 우측에 있다.

2분 후 좌측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이 보이고 '화령재 10.8km, 신의터재 1.1km'의 이정표 그리고 묘가 있다.

산림청과 상주시에서 만들어 세운 '서어나무 군락지' 팻말을 지나 약한 오르내림 안부로 내려간다.

'화령재 10.0km, 신의터재 1.9km'의 이정표에서 처음으로 힘이 드는 오르막 봉우리를 오르다 말고 힘이 들 무렵인 8부 능선에서 좌측 허리로 꺾어 돌아간다.

이 후 '화령재 9.7km, 신의터재 2.2km'의 이정표가 있다.(06:20)

 

'노간주나무 군락지' 팻말에서 내려서자 나무를 식재한 넓은 묵밭 옆으로 포도밭 경작지가 보인다.(06:25)

개망초가 묵밭을 덮고 있는 농경지와 연결된 농로(임도)와 마주치고 대간은 숲으로 열려 있다.

또 작은 언덕 위에 닿자 '화령재 8.8km, 신의터재 3.1km'의 이정표가 기다린다.

내려오면서 앞으로 넘어야 할 연봉들이 높지 않게 보여 부담감 없이 바라본다.

안부로 내려서 오름길 뒤에 '노간주나무 군락지'팻말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 5분 휴식 후 내려선다.(06:44)

 

대간 능선 좌우로 옛 고갯길의 흔적이 보인다.(06:48)  하지만 사람이 다닌 흔적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6분을 더 가 돌무더기가 있는 또 하나의 옛 고갯길을 횡단한다.

봉우리를 바라보며 약간의 오름길 뒤 무지개산 갈림길에 도착하는데 '무지개산(해발 441m), 백두대간 화령재 7.4km 2시간40분, 백두대간 신의터재 4.5km 1시간30분'이라 적힌 이정표가 있다.(07:05)

신의터재에서 이곳 무지개산 삼거리까지 1시간15분이 소요되었다.

 

이곳 삼거리에서 무지개산은 0.2km의 거리로 대간과 조금 떨어져 있어 산정에 오르는 것은 생략한다.

여름철은 물론 사시사철 아름다운 무지개가 하늘로 떠올라 세상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줄 것만 같은 동화 속 그림처럼 이름 또한 예쁘다.

안부로 내려선 뒤 '화령재 7.1km, 신의터재 4.8km'의 이정표가 있는 작은 봉우리에서 20여분 긴 아침 식사를 한 다음 윤지미산 자락을 앞에 두며 이동한다.

 

잣나무 조림지역을 벗어나 안부에 내려서니 '닥터블루베리' 팻말과 '화령재 6.7km, 신의터재 5.2km'의 이정표가 있는 길이 뚜렷한 사거리다.(07:49)

통나무 계단 경사 이후 내리막에 뒤돌아보니 숲 너머 무지개산이 보이고 진행 방향으로 윤지미산이 우측으로 뾰족하게 비친다.

내리막 묘 있는 좌측에 마을로 가는 길이 눈에 띈다.

묘에서 오르막 뒤 봉우리를 넘고 또 한 개를 쉽게 넘는다.

대간은 이렇듯 봉우리를 넘고 넘는 반복의 연속이다.

 

통나무 계단 오름길 후 또 봉우리에 닿고 또 내리막이 어김없이 펼쳐진다.

능선 우측으로 낙엽송이 하늘을 찌를 듯 빼곡하다.

길 옆 큰 바위를 지나며 뒤돌아보니 무지개산이 왜 들르지 않고 그냥 갔느냐 섭섭한 표정으로 나무 위로 고개 돌려 살짝 토라져 있다.

봉우리에서 내려간 뒤 안부에서 옛 고갯길을 만난다.

대간에서 이런 곳은 자주 만나지만 대간은 항상 능선이며 리본 달린 길이 훤해 다른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과거 대간을 먼저 다녀간 사람들은 많이 헛갈리고 알바도 했겠다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

특히 대간과 대간을 잇는 고개나 사람들로 인하여 무분별하게 변형된 시설물 등에서는 말이다.

 

죽은 고목나무 한 개가 묘를 지키고 있는 비석 있는 묘를 지나고 또 묘 2기를 벗어나서 능선에 '화령재 3.8km, 신의터재 8.1km'의 이정표를 만난다.(08:21)

오름길 중간에서 봉우리 옆구리를 가로 지를 때 지나왔던 이정표와 뒤바뀐 것으로 여겨지는 '화령재 4.4km, 신의터재 7.5km'의 이정표가 있다.

우측 아래쪽으로 청원-상주 고속도로가 일부 보이며 차 소리가 들려온다.

윤지미산이 가까워지려는 듯 잠시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통나무 계단 오름길에서 일직선상으로 나란히 두 개의 봉우리를 연속 넘고 콘크리트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생긴 둥그런 바위를 지나 해발 538m의 윤지미산 정상에 도착한다.(08:55)

신의터재에서 2시간15분이 걸렸다.

돌무더기 가운데에 매직펜으로 '윤지미산 538m'라 쓴 정상석이 놓여 있어 더욱 정겹고 공터 또한 넓다.

한쪽에는 돌을 가져다 사각형의 앉을 자리를 만들어 놓았으며, 진행 방향으로 '윤지미산(해발 538m)' '화령재 2.9km/1시간, 신의터재 9km/3시간10분'이라 적힌 이정표가 있다.

 

무슨 연유에서 윤지미산이라 불리었을까 궁금하다.

윤지미산에서 화령재로 가는 길은 상당히 가팔라 50여 미터 구간 로프를 붙잡고 내려가라 걸려 있다.

비석이 있는 묘를 벗어나자 인삼밭이 바로 앞인 임도(농로)에 내려선다.(09:23)

숲에는 '화령재 1.7km, 윤지미산 1.2km'의 이정표가 가려져 있다.

모처럼 넓은 시야가 트이며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주변을 살핀다.

 

대간은 검정 대리석 4개가 나란히 줄서 있는 납골묘 방향 우측의 산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이 후 돌로 둥그럽게 둘레를 두른 묘를 만나 뒤돌아보니 윤지미산 몸통이 걸쭉하게 보인다.

인삼밭 농로를 벗어난 지 10분 뒤 차 한 대가 통행 할 수 있는 도로에 내려선다.(09:33)

처음에는 화령재인줄 알았는데 '화령재 1.0km, 신의터재 10.9km'의 이정표를 보며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화령재는 이곳에서 25분을 더 가야 하는 1km 지점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간은 콘크리트길에서 우측으로 꺾어 200m를 가다보면 곡각지에서 '화령재 0.8km, 신의터재 11.1km'의 이정표가 있는 우측 숲으로 인도한다.

다시 숲길로 이어지면서 보이지는 않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많은 차량들의 소음이 이제는 굉음으로 들려온다.

차들이 바로 발 밑 땅 속으로 사정없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이 보일 때에 바로 화령터널 위에 서 있음을 안다.(09:48)

백두대간 줄기를 관통하는 터널 부근에  노랗게 지천으로 피어 있는 금계국 꽃이 화원을 이루어 대간을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

 

고속도로 우측인 화서면 방향 건너 멀리 올라야 할 봉황산이 봉황새의 머리처럼 꼿꼿하게 솟아 보인다.

터널 위를 지나 오르막에 시야가 좋은 묘지에서 지나온 길을 바라본다.

작은 봉우리에 사각 철제 기둥이 박혀 있고 땅에는 흩어진 글씨와 숫자 조각들이 보인다.

조금 더 내려가서 해발 320m의 화령재에 도착한다.(09:56)

신의터재에서 부지런히 걸어 4시간17분이 소요되었다.

 

넓은 공터에 '백두대간 화령'이라 새간 커다란 표석이 있다.

화서면 소재지 방향의 도로 표지판에는 300m 후 삼거리를 알리고 있는데 25번국도 방향에는 '청주.보은',  49번지방도 방향에는 '기산.화북.문장대' 글씨가 적혀 있다. 좌측 도로 300m 지점에 삼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화령재 한쪽에는 화령정이라 쓴 팔각정과 또 다른 화령재 작은 표석이 있다.

 

화령재 역시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고갯마루로써 한국전쟁 당시에는 우리 국군이 인민군 15사단을 섬멸하는 전승지로 이름 난 곳이라는데 이렇듯 고개는 지리적 여건에 따라 예로부터 행정구역을 가르고 전략적 군사 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경계로 상주시에 속하는 6개면 중 중모현(모동면, 모서면)과 화령현(화동면 화서면, 화남면, 화북면)을 통틀어 중화지구대라 부른다고 한다.

특히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상주 관할은 69.5km로써 남한에 속하는 대간의 약 10%를 차지할 정도로 비록 야산지역이지만 넓게 포함되어 있다.

앞으로 속리산 천왕봉을 포함한 문장대 구간도 상주시 화북면 경계에 자리 잡은 구간이다.

 

백두대간 표지석 그늘에서 한참을 쉬며 비재로 전진한다.(10:21)

들머리는 교통 표지판이 있는 곳에 '백두대간' 이정표가 있으며 많은 리본이 나무에 걸려 있다.

숲에 접에 드는가 싶었는데 길가 벚나무 재배지역을 1분도 안 되어 걷게 하더니 이내 자동차들이 달리는 25번도로로 밀어내고 만다.

마치 대간에서 소박맞아 쫒겨난 기분이다.

다시 화서면 소재지 방향(충주.보은)으로 50m 진행하자 '화서IC, 청주.보은, 화서' 사거리를 알리는 교통 표지판 기둥 우측 숲으로 대간이 보여 들어갔다가 또 1분도 안 되어 25번 도로로 빠져 나오고 만다.

 

한반도의 대동맥 백두대간이 산줄기의 흐름을 잃어버린 채 도로를 왔다 갔다 하며 중심과 자존심을 잃어버린 듯하다.

이런 대간도 있을까 의아해 하며 화서 방향으로 약 50m 더 진행하자 또 다른 표지판이 보이는 '수청거리 삼거리'에서 우측 길 건너 창고 건물이 눈에 띄며 '백두대간 안내도'가 번쩍 들어온다.(10:34)

 

전북 남원 고기삼거리에서 노치마을까지 2.2km의 백두대간이 도로를 따라 이어졌듯이 이곳 화령재에서 수청거리 삼거리 구간 300여 미터도 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다.

하지만 짧은 구간임에도 대간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마루금의 흙길을 밟겠다는 신념과 의지가 다분히 서려 있음을 짧은 숲속을 두 번 연거푸 빠져 나오며 읽을 수 있었다.

 

수청거리 삼거리에서 길 건너 대간이 이어져 있기에 산길로 접어들며 백두대간 안내도를 지나자마자 거리 표시가 없는 '화령재, 백두대간' 이정표를 만난다.(10:35)

가끔 길을 잘 찾아 가라는 이정표를 만나게 되고 고만고만한 봉우리 4개를 연속으로 넘으며 잣나무 숲, 문화식당.여인숙 간판이 있는 곳을 지난 이후부터 평탄한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또 이정표와 함께 좌우로 마을로 통하는 옛길이 나타난다.

 

묘가 있는 곳에서는 화서면 소재지가 좌측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정표 직전에 있는 450봉에 이르니 앉을만한 바위가 한가운데 있어 배낭까지 내려놓고 마음껏 쉬고 있을 때 서울에서 왔다는 대간 등산객 한 명을 만나는데 화령재에서 출발 오늘은 피앗재 산장에 머문 뒤 늘재까지 진행할 예정이란다.(11:09)

먼저 출발 하라 권하고 난 뒤 젖은 등산화와 양말을 배낭 위에 매달아 말리며 샌들로 갈아 신고 뒤따른다.(11:30)

 

높은 곳이 있으면 반드시 낮은 곳이 있듯 봉우리에서 내려오면 으레 안부를 만나는 것은 자연의 이치요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 여정과 다름없다.

이정표가 있는 안부에 닿으니 좌측으로 연결되는 길이 보이지만 대간은 직진 능선이다.

진행 방향의 봉우리를 바라보며 '산벚나무' 표찰과 이정표를 지날 때 좌측으로 하산길이 보이며 대간 리본 2개가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탈출로인 것 같다.

 

급경사 오름이 시작되고 산중턱에 도착하니 '백두대간, 화령재' 이정표가 있고 다시 좌측으로 꺾어 오르막이 펼쳐진다.

얼마 후 만나게 될 산불감시초소 봉우리에 오르기 위한 가탈스런 예비 동작이다.

드디어 속리산을 처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산불감시초소 해발 580m의 봉우리에 올라선다.(11:57)

화령재에서 이곳까지 1시간36분이 걸렸다.

초소가 2층 규모라 조망을 조금이라도 넓고 멀리 보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문을 여니 잠겨 있다.

할 수 없이 사다리에 걸터 서 지나왔던 윤지미산과 화서면 소재지를 바라본다.

후백제 견훤이 성을 쌓고 대궐을 지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대궐터산과 그 좌측으로 문장대 바위 끝이 송곳니처럼 돋아 보인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내려오면서 가까이 보이는 봉황산이지만 한참을 땀 흘리며 올라야 한다.

계단을 오르듯 봉우리가 이어지며 점점 고도가 높아진다.

맨 끝에는 봉황산 정상이 숨어 있다.

힘 들면 비록 남루하지만 참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숨을 가라앉히라며 나뭇가지에 걸쳐 놓은 통나무를 지난 뒤 번지르르한 길 하나가 좌측 방향으로 대간과 비스듬히 뻗어 있다.(12:12)

 

북진할 때는 능선을 따르기에 헛갈리지 않겠지만 남진할 때는 능선을 피해 편한 길을 택하다 알바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든다.

리본도 각각 한 개씩만 달려 있어 유의할 지점이라 일부러 다른 곳에 있는 것 한 개를 눈에 쉽게 띄도록 옮겨 매단다.

봉황산 오름길 중턱에 뾰족한 바위가 있어 그 곳에 올라서면 주변 조망이 한층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부지런히 다가서니 좌측으로 우회시키고 만다.(12:29)

중턱에서 다음 봉우리를 오르기 위해 한참을 쉰 뒤 오르막 도중에 지나온 대간 능선이 빤히 바라보인다.

산불감시초소를 벗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상당히 멀어져 있다.

 

윤지미산과 무지개산 그리고 큰재 방향의 연봉 주릉이 백두대간임을 자랑스럽게 알려준다.

절정으로 치닫기 위한 몸부림의 오르막 뒤 맨 끄트머리에 해발 704.8m의 봉황산과 함께 한다.(12:52)

신의터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이곳까지 7시간12분이 걸렸다.

삼각점 앞에 상주시청 산악회에서 세운 '백두대간 봉황산' 정상석이 있으며 백두대간 안내판 그리고 마음 놓고 쉬라는 둥그런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나뭇가지로 인해 조망은 불량하지만 오늘 구간에 있어 최고봉으로써 당당히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이를 말해 주듯 머리를 하늘로 곧추세우고 양 날개를 펼친 봉황을 닮은 산세다.

1300년 전 죽실을 먹고 오동나무에서만 잠을 잔다는 봉황이 날아와 30여 년을 살았다는 전설이 서린 산이다.

큰 의자를 독차지 한 채 땀에 젖은 셔츠를 말리며 느긋하게 점심 시간을 갖는다.

 

간식을 먹는 도중에 등산객 한 명이 다 왔다 소리 지르며 오더니 이어 여자 한 명을 포함한 3명이 뒤 따라 올라온다.

벌건 대낮에 웃통을 벗어 풍기를 문란하게 해서 미안하다 하며 도착하기 전에 얼른 옷을 챙겨 입는다.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는 대간 등산객들이라 더욱 반가운데 오늘 걷는 구간 또한 같다.

정상을 내어주고 먼저 비재로 출발한다.(13:29)

 

5분 뒤 '급경사 위험'을 알리는 팻말에 이어 로프 경사지역을 만난다.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완만하다 안부에서 또 오르막이다.(14:00)

간혹 속리산 방향의 시야가 트이고 창원-상주 고속도로가 보인다.

또 하나의 봉우리를 내려올 때 로프도 붙잡아 보고 대간중에는 항상 겸손하고 예를 갖추라는 뜻인지 한 개도 아닌 여러 개의 나뭇가지가 한꺼번에 쓰러져 길을 막고 있기에 정중히 허리 숙여 통과한다.

 

이렇듯 백두대간은 자연이 길을 내고 자연이 길을 막고 있어 우회하거나 새로운 길을 열어 조금씩 대간은 변천해 간다.

작은 봉우리에 오르자 '백두대간' 이정표 뒤로 나일론 줄을 걸어 놓고 빛바래 헤진 '입산금지' '입찰구역' 표시를 걸어 놓았다.

무슨 뜻에서 그런지 몰라도 다행히 대간을 진행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곧 '급경사 위험'을 알리며 내려서기 직전에 로프를 걸어 놓았다.(14:16)

한참 뒤 황폐된 이장 묘 지역을 넘어가고 이정표를 지나 가파른 통나무 계단 길 후로 낙엽송 밭을 벗어나니 해발 320m의 비재다.(14:47)

백두대간 안내판이 있는 49번지방도인데 머무는 동안 차량 통행이 별로 없다.

 

배낭에 걸어 두었던 등산화로 바꿔 신고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 맨다.

이는 마지막 한 구간인 갈령까지 여력을 다해 오르겠다는 당찬 각오가 배어 있다.

간식을 먹으며 충분한 휴식을 한 뒤 도로를 횡단 철 계단으로 시작하는 대간을 이어간다.(15:03)

비재에 닿기 위해 그동안 고도를 낮춘 만큼 이를 보충하기 위해 급 비탈 오름길이 첫 발부터 기선을 꺾는다.

속리산권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산들이 그렇게 높지 안했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한 곳 또한 없었듯 이곳에서 만큼은 매운 맛을 보여준다.

 

지쳐가는 오후 산행이라 더욱 힘들게 느껴지겠지만 너무 가혹한 오르막에 비재에서의 당찬 각오는 사라지고 숨이 자꾸만 헐떡거린다.

바위 턱에 잠시 쉬며 땀을 거두어 가는 솔바람에 눈이 저절로 감긴다.

하지만 갈령까지 한참을 더 가야 하기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채근한다.

 

눈높이로 약 70m 뒤로 봉우리가 솟아 보이지만 저 봉우리를 넘으면 또 다른 봉우리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역시나 어렵게 첫 번째 봉우리를 오르니 앞에 봉우리 한 개가 빨리 오라 부른다.(15:25)

7분 뒤 힘내어 오르니 어설프게 석축을 쌓은 묘가 나타나고 곧이어 510봉 봉우리가 있다.(15:28)

안부로 내려와 작은 봉우리를 만나고 큰 봉우리 오르기 직전에 어마마한 바위가 길을 가로막고 있다.

하는 수 없이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조망바위' 표지판이 있다.(15:52)

 

조망바위를 관망하지 않고 그냥 대간을 지나갔다는 큰 후회를 할 것 같은 바위에 서면 오늘 산행 중 최고로 뽑히는 동서남북의 시원한 조망이 기다린다.

봉황산은 물론 비재를 출발하자마자 괴롭혔던 510봉이 고소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으며 구병산 줄기를 비롯 충북 알프스라 부르는 봉우리들이 대간 방향에서 분리되어 장대하게 뻗어 있다.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조망을 한꺼번에 전해주려는 듯해 감개무량하여 '나는 왕이다'며 외쳐댄다.

 

조망바위를 벗어나 뒤쪽 봉우리에 오르며 바위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바위산 암릉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속리산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려는 듯하다.

능선 너머 갈령 고갯길과 대궐터산이 빤히 바라보인다.

울창한 송림을 지나자 또 하나의 커다란 바위가 암릉미를 과시하며 길을 막더니 강심장이 아니거든 돌아가라 엄포를 놓는다.

결국 기가 꺾여 꼼짝 못하고 좌측 아래로 우회하는데 반원형 모양으로 내렸다가 다시 바위 뒤쪽 능선에 접어드니 힘이 빠진다.

 

바위를 돌아서 올라오느라 수고했다며 곳곳에 수석 같은 멋진 바위들이 자랑을 한다.

한쪽 바위 앞에서는 소나무가 옆으로 뻗어 있어 마치 발레춤을 추는 것 같다.

이렇게 눈요기를 하며 진행하니 묘 1기가 있는 곳에 모처럼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 삼거리를 만난다.(16:43)

'갈령삼거리 1.7km, 비재 2.3km, 억시기'라 표기되어 있다.

우측은 이름도 깨소금처럼 구수한 억시기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오르막이 계속되고 삼거리에서 11분 뒤 앞에 높은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우측으로 우회한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큰 선물에 기분이 고조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충북 알프스 능선으로 뻗어가는 봉우리다.

우회 끝 지점에 '충북 알프스' 팻말이 걸려 있다.

 

능선 바로 아래에는 백두산 천지의 축소판처럼 비가 오면 물이 빠져나갈 수 없는 움푹 파인 분지의 해발 655m의 못제다.(16:54)

대간 마루금에 유일한 못이라는 못제는 약 오륙백 평 정도 넓고 견훤에 얽힌 전설이 있는 곳이다.

전설을 잠시 읽어보면 상주에서 후백제를 일으킨 견훤은 주변 지방을 장악해 갔다.

이때 보은군의 호족인 황충장군과 견훤은 세력 다툼을 하며 거의 매일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싸움을 벌인 족족 황충은 패하고 말았는데 견훤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캐기 위해 부하를 시켜 견훤을 미행했다.

 

황충의 부하는 견훤이 못제에서 목욕을 하면 힘이 난다는 것을 알아내 이 사실을 황충에게 알렸다.

황충은 견훤이 지렁이의 자손임을 알고 소금 삼백 가마를 못제에 풀자 견훤의 힘은 사라졌고 마침내 황충이 승리했다고 한다.

이렇듯 대궐터산의 성산산성, 속리산 자락인 화북면 장암리 견훤산성과 함께 못제는 천하를 호령하고 싶었던 견훤의 야망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잠시 못제 한 가운데로 들어가 보니 사진과 달리 지금은 물이 완전히 말라 있다.

백두산 천지에 비할바는 못 되지만 형체는 다 갖춘 산정의 소형 못으로 자연의 조화 속에 신기하기까지 하다.

못제를 지나 봉우리에 오르자 넓은 헬기장이다.(17:02)

갈령삼거리 건너 형제봉이 가깝게 보인다.

지난주 이용했던 친절한 화동택시 기사에게 약 1시간 후 갈령에 내려갈 것 같으니 어디쯤에서 다시 전화하면 되느냐 물으니 갈령삼거리에서 하면 된다고 한다.

 

헬기장에서 갈령삼거리까지 가는 짧은 구간은 그야말로 마지막 몸부림을 치듯 몇 개의 봉우리와 씨름해야 한다.

높지 않지만 높게만 느껴지고 힘이 더 드는 것 같다.

한 개를 넘으면 또 한 개의 봉우리가 다가오기를 반복한다.

바위가 막고 있는 '급경사 위험'지역에서는 로프 잡고 아래까지 내려갔다 능선으로 다시 올라오는 수고를 한다.(17:39)

드디어 대간과 갈령으로 분리되는 분기점인 해발 720m의 갈령 삼거리에 내려선다.(17:45)

 

봉황산의 정상처럼 둥그런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중앙에 '천왕봉 6.6km, 비재 3.6km, 갈령재 1.3km, 형제봉 0.7km'의 이정표가 있다.

주변에는 또 다른 의자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다음에 이어갈 형제봉 방향의 들머리를 확인한 다음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하니 불통지역이다.

하는 수 없이 갈령으로 내려가다 통화가 이루어진다.

 

갈령으로 하산하는 길은 내리막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암릉 봉우리가 있다.

오르게 한 만큼 피앗재와 속리산 천왕봉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조망이 뚜렷하다.

그리고 갈령 건너편으로 대궐터산이 지척이다.

멋진 바위들이 놓여 있는 곳을 지나자 헬기장이다.

칡이 많아 이름 붙여졌다는 49번지방도인 갈령에 도착하니 호출한 택시가 먼저 와 기다린다.(18:20)

 

다음 구간은 문장대에서 늘재까지 출입통제지역이 포함된 속리산권으로 사실 이번 구간을 준비하는데 비중을 두기 보다는 앞으로 있을 문장대 구간이 눈에 밟히며 어떻게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의 눈을 피해 통과해야 할 것인가가 먼저 걱정으로 떠올랐던 한 주였다.

좀 더 살펴보고, 알아보고, 지켜보며 다음 구간을 준비하고자 한다.

 

 

* 갈령에서 신의터재에 있는 승용차 회수:화동택시 054-534-4828   택시요금 25,000원

   다음 구간인 화북에는 영업용택시가 없으므로 054-534-7447 식당 자가용을 이용하라며 전화번호를 소개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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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신의터재에서 갈령삼거리까지 대간을 잇는 산행으로 상당히 거리가 멀고 시간 또한 많이 소요될 것이라 예상 하며 신의터재에 홀로 도착한다. 

아직 남아 있는 어둠을 막 쫒아내고 새벽을 맞는 신의터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수많은 왜적을 물리쳤던 김준신 의병장의 높은 혼과 기상이 살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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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번국도 고갯마루에 화동산악회에서 세운 '화동, 상주' 이정표 쪽으로 포도밭이 보이며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가며 대간은 시작된다.(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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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 30m 우측에 '화령재(11.9km/4시간10분), 신의터재'의 이정표가 있어 넓은 흙길을 따라 우측으로 꺾어 언덕에 오른다.

야산지대라 주변에는 묘들이 많이 보인다. 지도상에는 선교공동묘지로 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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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은 오르내림의 반복은 지난 산행과 별반 다름없고 +표시만 새겨진 소 삼각점의 작은 봉우리에 닿는다.(05:59)

지도상의 329.6봉으로써 묘 2기가 우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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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햇살이 눈높이에서 대간길 좌우로 왔다 갔다 번갈아 가며 호젓한 숲에 축복의 은빛 가루를 뿌려준다.

새벽을 여는 맑고 청량한 새 울음소리가 대간을 달리는 산객의 귓전에 맴돌아 지상 낙원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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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간주나무 군락지' 팻말에서 내려서자 나무를 식재한 넓은 묵밭 옆으로 포도밭 경작지가 보인다.(06:25)

개망초가 묵밭을 덮고 있는 농경지와 연결된 농로(임도)와 마주치고 대간은 숲으로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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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길은 계속되지만 전날 밤새며 완성해 놓은 거미줄이 얼굴에 마구 달라붙는다.

맨 처음 문을 여는 발걸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리며 길을 계속해 헤쳐 나간다.

전국적으로 봄 가뭄이 심한데 이 지역은 전날 소나기가 내렸는지 땅이 촉촉하고 이슬까지 내려 앉아 등산화며 바지가 흠뻑 젖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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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로 내려서 오름길 뒤에 '노간주나무 군락지'팻말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 5분 휴식 후 내려선다.(06:44) 

대간 능선 좌우로 옛 고갯길의 흔적이 보인다.(06:48)  하지만 사람이 다닌 흔적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6분을 더 가 돌무더기가 있는 또 하나의 옛 고갯길을 횡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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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를 바라보며 약간의 오름길 뒤 무지개산 갈림길에 도착하는데 '무지개산(해발 441m), 백두대간 화령재 7.4km 2시간40분, 백두대간 신의터재 4.5km 1시간30분'이라 적힌 이정표가 있다.(07:05)

신의터재에서 이곳 무지개산 삼거리까지 1시간15분이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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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로 내려선 뒤 '화령재 7.1km, 신의터재 4.8km'의 이정표가 있는 작은 봉우리에서 20여분 긴 아침 식사를 한 다음 윤지미산 자락을 앞에 두며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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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나무 조림지역을 벗어나 안부에 내려서니 '닥터블루베리' 팻말과 '화령재 6.7km, 신의터재 5.2km'의 이정표가 있는 길이 뚜렷한 사거리다.(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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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 계단 오름길 후 또 봉우리에 닿고 또 내리막이 어김없이 펼쳐진다.

능선 우측으로 낙엽송이 하늘을 찌를 듯 빼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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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옆 큰 바위를 지나며 뒤돌아보니 무지개산이 왜 들르지 않고 그냥 갔느냐 섭섭한 표정으로 나무 위로 고개 돌려 살짝 토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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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고목나무 한 개가 묘를 지키고 있는 비석 있는 묘를 지나고 또 묘 2기를 벗어나서 능선에 '화령재 3.8km, 신의터재 8.1km'의 이정표를 만난다.(08:21)

오름길 중간에서 봉우리 옆구리를 가로 지를 때 지나왔던 이정표와 뒤바뀐 것으로 여겨지는 '화령재 4.4km, 신의터재 7.5km'의 이정표가 있다.

우측 아래쪽으로 청원-상주 고속도로가 일부 보이며 차 소리가 들려온다.

윤지미산이 가까워지려는 듯 잠시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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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 계단 오름길에서 일직선상으로 나란히 두 개의 봉우리를 연속 넘고 콘크리트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생긴 둥그런 바위를 지나 해발 538m의 윤지미산 정상에 도착한다.(08:55)

신의터재에서 2시간15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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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미산에서 화령재로 가는 길은 상당히 가팔라 50여 미터 구간 로프를 붙잡고 내려가라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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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이 있는 묘를 벗어나자 인삼밭이 바로 앞인 임도(농로)에 내려선다.(09:23)

숲에는 '화령재 1.7km, 윤지미산 1.2km'의 이정표가 가려져 있다.

모처럼 넓은 시야가 트이며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주변을 살핀다.

대간은 검정 대리석 4개가 나란히 줄서 있는 납골묘 방향 우측의 산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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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돌로 둥그럽게 둘레를 두른 묘를 만나 뒤돌아보니 윤지미산 몸통이 걸쭉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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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밭 농로를 벗어난 지 10분 뒤 차 한 대가 통행 할 수 있는 도로에 내려선다.(09:33)

처음에는 화령재인줄 알았는데 '화령재 1.0km, 신의터재 10.9km'의 이정표를 보며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화령재는 이곳에서 25분을 더 가야 하는 1km 지점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간은 콘크리트길에서 우측으로 꺾어 200m를 가다보면 곡각지에서 '화령재 0.8km, 신의터재 11.1km'의 이정표가 있는 우측 숲으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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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숲길로 이어지면서 보이지는 않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많은 차량들의 소음이 이제는 굉음으로 들려온다.

차들이 바로 발 밑 땅 속으로 사정없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이 보일 때에 바로 화령터널 위에 서 있음을 안다.(09:48)

백두대간 줄기를 관통하는 터널 부근에  노랗게 지천으로 피어 있는 금계국 꽃이 화원을 이루어 대간을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

고속도로 우측인 화서면 방향 건너 멀리 올라야 할 봉황산이 봉황새의 머리처럼 꼿꼿하게 솟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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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위를 지나 오르막에 시야가 좋은 묘지에서 지나온 길을 바라본다.

작은 봉우리에 사각 철제 기둥이 박혀 있고 땅에는 흩어진 글씨와 숫자 조각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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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내려가서 해발 320m의 화령재에 도착한다.(09:56)

신의터재에서 부지런히 걸어 4시간17분이 소요되었다. 

넓은 공터에 '백두대간 화령'이라 새간 커다란 표석이 있다.

화서면 소재지 방향의 도로 표지판에는 300m 후 삼거리를 알리고 있는데 25번국도 방향에는 '청주.보은',  49번지방도 방향에는 '기산.화북.문장대' 글씨가 적혀 있다. 좌측 도로 300m 지점에 삼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화령재 한쪽에는 화령정이라 쓴 팔각정과 또 다른 화령재 작은 표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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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재로 전진한다.(10:21)

들머리는 교통 표지판이 있는 곳에 '백두대간' 이정표가 있으며 많은 리본이 나무에 걸려 있다.

숲에 접에 드는가 싶었는데 길가 벚나무 재배지역을 1분도 안 되어 걷게 하더니 이내 자동차들이 달리는 25번도로로 내보내고 만다.

마치 대간에서 소박맞아 쫒겨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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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화서면 소재지 방향(충주.보은)으로 50m 진행하자 '화서IC, 청주.보은, 화서' 사거리를 알리는 교통 표지판 기둥 우측 숲으로 대간이 보여 들어갔다가 또 1분도 안 되어 25번 도로로 빠져 나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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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 고기삼거리에서 노치마을까지 2.2km의 백두대간이 도로를 따라 이어졌듯이 이곳 화령재에서 수청거리 삼거리 구간 300여 미터도 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다.

수청거리 삼거리에서 길 건너 대간이 이어져 있기에 산길로 접어들며 백두대간 안내도를 지나자마자 거리 표시가 없는 '화령재, 백두대간' 이정표를 만난다.(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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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길을 잘 찾아 가라는 이정표를 만나게 되고 고만고만한 봉우리 4개를 연속으로 넘으며 잣나무 숲, 문화식당.여인숙 간판이 있는 곳을 지난 이후부터 평탄한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또 이정표와 함께 좌우로 마을로 통하는 옛길이 나타난다.

묘가 있는 곳에서는 화서면 소재지가 좌측으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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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 직전에 있는 450봉에 이르니 앉을만한 바위가 한가운데 있어 배낭까지 내려놓고 마음껏 쉬고 있을 때 서울에서 왔다는 대간 등산객 한 명을 만나는데 화령재에서 출발 오늘은 피앗재 산장에 머문 뒤 늘재까지 진행할 예정이란다.(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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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만나게 될 산불감시초소 봉우리에 오르기 위한 가탈스런 예비 동작이다.

드디어 속리산을 처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산불감시초소 해발 580m의 봉우리에 올라선다.(11:57)

화령재에서 이곳까지 1시간36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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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가 2층 규모라 조망을 조금이라도 넓고 멀리 보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문을 여니 잠겨 있다.

할 수 없이 사다리에 걸터 서 지나왔던 윤지미산과 화서면 소재지를 바라본다.

후백제 견훤이 성을 쌓고 대궐을 지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대궐터산과 그 좌측으로 문장대 바위 끝이 송곳니처럼 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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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감시초소에서 내려오면서 가까이 보이는 봉황산이지만 한참을 땀 흘리며 올라야 한다.

계단을 오르듯 봉우리가 이어지며 점점 고도가 높아진다.

맨 끝에는 봉황산 정상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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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들면 비록 남루하지만 참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숨을 가라앉히라며 나뭇가지에 걸쳐 놓은 통나무를 지난 뒤 번지르르한 길 하나가 좌측 방향으로 대간과 비스듬히 뻗어 있다.(12:12) 

북진할 때는 능선을 따르기에 헛갈리지 않겠지만 남진할 때는 능선을 피해 편한 길을 택하다 알바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든다.

리본도 각각 한 개씩만 달려 있어 유의할 지점이라 일부러 다른 곳에 있는 것 한 개를 눈에 쉽게 띄도록 옮겨 매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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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 오름길 중턱에 뾰족한 바위가 있어 그 곳에 올라서면 주변 조망이 한층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부지런히 다가서니 좌측으로 우회시키고 만다.(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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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턱에서 다음 봉우리를 오르기 위해 한참을 쉰 뒤 오르막 도중에 지나온 대간 능선이 빤히 바라보인다.

산불감시초소를 벗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상당히 멀어져 있다. 

윤지미산과 무지개산 그리고 큰재 방향의 연봉 주릉이 백두대간임을 자랑스럽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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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으로 치닫기 위한 몸부림의 오르막 뒤 맨 끄트머리에 해발 704.8m의 봉황산과 함께 한다.(12:52)

신의터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이곳까지 7시간12분이 걸렸다.

삼각점 앞에 상주시청 산악회에서 세운 '백두대간 봉황산' 정상석이 있으며 백두대간 안내판 그리고 마음 놓고 쉬라는 둥그런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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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재로 출발한다.(13:29) 

5분 뒤 '급경사 위험'을 알리는 팻말에 이어 로프 경사지역을 만난다.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완만하다 안부에서 또 오르막이다.(14:00)

간혹 속리산 방향의 시야가 트이고 창원-상주 고속도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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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봉우리를 내려올 때 로프도 붙잡아 보고 대간중에는 항상 겸손하고 예를 갖추라는 뜻인지 한 개도 아닌 여러 개의 나뭇가지가 한꺼번에 쓰러져 길을 막고 있기에 정중히 허리 숙여 통과한다. 

이렇듯 백두대간은 자연이 길을 내고 자연이 길을 막고 있어 우회하거나 새로운 길을 열어 조금씩 대간은 변천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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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봉우리에 오르자 '백두대간' 이정표 뒤로 나일론 줄을 걸어 놓고 빛바래 헤진 '입산금지' '입찰구역' 표시를 걸어 놓았다.

무슨 뜻에서 그런지 몰라도 다행히 대간을 진행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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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급경사 위험'을 알리며 내려서기 직전에 로프를 걸어 놓았다.(14:16)

한참 뒤 황폐된 이장 묘 지역을 넘어가고 이정표를 지나 가파른 통나무 계단 길 후로 낙엽송 밭을 벗어나니 해발 320m의 비재다.(14:47)

백두대간 안내판이 있는 49번지방도인데 머무는 동안 차량 통행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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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횡단 철 계단으로 시작하는 대간을 이어간다.(15:03)

비재에 닿기 위해 그동안 고도를 낮춘 만큼 이를 보충하기 위해 급 비탈 오름길이 첫 발부터 기선을 꺾는다.

속리산권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산들이 그렇게 높지 안했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한 곳 또한 없었듯 이곳에서 만큼은 매운 맛을 보여준다. 

바위 턱에 잠시 쉬며 땀을 거두어 가는 솔바람에 눈이 저절로 감긴다.

하지만 갈령까지 한참을 더 가야 하기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채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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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첫 번째 봉우리를 오르니 앞에 봉우리 한 개가 빨리 오라 부른다.(15:25)

7분 뒤 힘내어 오르니 어설프게 석축을 쌓은 묘가 나타나고 곧이어 510봉 봉우리가 있다.(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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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로 내려와 작은 봉우리를 만나고 큰 봉우리 오르기 직전에 어마마한 바위가 길을 가로막고 있다.

하는 수 없이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조망바위' 표지판이 있다.(15:52) 

조망바위를 관망하지 않고 그냥 대간을 지나갔다는 큰 후회를 할 것 같은 바위에 서면 오늘 산행 중 최고로 뽑히는 동서남북의 시원한 조망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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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은 물론 비재를 출발하자마자 괴롭혔던 510봉이 고소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으며 구병산 줄기를 비롯 충북 알프스라 부르는 봉우리들이 대간 방향에서 분리되어 장대하게 뻗어 있다.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조망을 한꺼번에 전해주려는 듯해 감개무량하여 '나는 왕이다'며 외쳐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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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망바위를 벗어나 뒤쪽 봉우리에 오르며 바위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바위산 암릉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속리산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려는 듯하다.

능선 너머 갈령 고갯길과 대궐터산이 빤히 바라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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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송림을 지나자 또 하나의 커다란 바위가 암릉미를 과시하며 길을 막더니 강심장이 아니거든 돌아가라 엄포를 놓는다.

결국 기가 꺾여 꼼짝 못하고 좌측 아래로 우회하는데 반원형 모양으로 내렸다가 다시 바위 뒤쪽 능선에 접어드니 힘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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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를 돌아서 올라오느라 수고했다며 곳곳에 수석 같은 멋진 바위들이 자랑을 한다.

한쪽 바위 앞에서는 소나무가 옆으로 뻗어 있어 마치 발레춤을 추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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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 1기가 있는 곳에 모처럼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 삼거리를 만난다.(16:43)

'갈령삼거리 1.7km, 비재 2.3km, 억시기'라 표기되어 있다.

우측은 이름도 깨소금처럼 구수한 억시기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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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이 계속되고 삼거리에서 11분 뒤 앞에 높은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우측으로 우회한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큰 선물에 기분이 고조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충북 알프스 능선으로 뻗어가는 봉우리다.

우회 끝 지점에 '충북 알프스' 팻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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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 바로 아래에는 백두산 천지의 축소판처럼 비가 오면 물이 빠져나갈 수 없는 움푹 파인 분지의 해발 655m의 못제다.(16:54)

대간 마루금에 유일한 못이라는 못제는 약 오륙백 평 정도 넓고 견훤에 얽힌 전설이 있는 곳이다.

잠시 못제 한 가운데로 들어가 보니 사진과 달리 지금은 물이 완전히 말라 있다.

백두산 천지에 비할바는 못 되지만 형체는 다 갖춘 산정의 소형 못으로 자연의 조화 속에 신기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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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제를 지나 봉우리에 오르자 넓은 헬기장이다.(17:02)

갈령삼거리 건너 형제봉이 가깝게 보인다.

지난주 이용했던 친절한 화동택시 기사에게 약 1시간 후 갈령에 내려갈 것 같으니 어디쯤에서 다시 전화하면 되느냐 물으니 갈령삼거리에서 하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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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에서 갈령삼거리까지 가는 짧은 구간은 그야말로 마지막 몸부림을 치듯 몇 개의 봉우리와 씨름해야 한다.

높지 않지만 높게만 느껴지고 힘이 더 드는 것 같다.

한 개를 넘으면 또 한 개의 봉우리가 다가오기를 반복한다.

바위가 막고 있는 '급경사 위험'지역에서는 로프 잡고 아래까지 내려갔다 능선으로 다시 올라오는 수고를 한다.(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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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과 갈령으로 분리되는 분기점인 해발 720m의 갈령 삼거리에 내려선다.(17:45)

봉황산의 정상처럼 둥그런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중앙에 '천왕봉 6.6km, 비재 3.6km, 갈령재 1.3km, 형제봉 0.7km'의 이정표가 있다.주변에는 또 다른 의자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다음에 이어갈 형제봉 방향의 들머리를 확인한 다음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하니 불통지역이다.

하는 수 없이 갈령으로 내려가다 통화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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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령으로 하산하는 길은 내리막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암릉 봉우리가 있다.

오르게 한 만큼 피앗재와 속리산 천왕봉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조망이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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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바위들이 놓여 있는 곳을 지나자 헬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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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이 많아 이름 붙여졌다는 49번지방도인 갈령에 도착하니 호출한 택시가 먼저 와 기다린다.(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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