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산줄기환주42

                                                          (백두대간종주 3)


                                         *환주구간:사치재-고남산-여원재

                                         *산행일자:2008. 10. 10일(금)

                                         *소재지  :전북남원/장수

                                         *산높이  :고남산847m

                                         *산행코스:사치마을-사치재-유치-매요마을-고남산-여원재

                                         *산행시간:7시-13시55분(6시간55분)

                                         *동행    :나홀로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시작한 사흘간의 섬진강 산줄기 환주산행을 남원시의 여원재에서 마쳤습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옮긴 다음 택시를 타고 남원역으로 갔습니다. 남원 시내를 벗어나 외곽에 넓게 자리 잡은 남원역사는 구 역사의 전통 한옥 양식을 그대로 따라지어 처음 보는 데도 눈에 많이 익었습니다. 대학시절 지리산을 오를 때는 야간열차를 타고 남원역으로 내려와 역사에서 얼마간 눈을 붙였다가 이른 아침에 마천행 버스를 타곤 했었는데 역사를 외곽으로 옮긴 다음 옛날의 저처럼 기차타고 내려와 지리산으로 향하는 손님들이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 버스기사분과 택시기사분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기차이용고객이 역이 멀어 고속버스를 대신 이용한다면 주머니 돈이 쌈지 돈이기에 별반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유력전자회사의 공장유치를 정읍에 뺏겨 발전기회를 놓쳤다는 택시기사 한 분의 지적은 그러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외지인의 한가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남원시만은 우리 고유의 것으로 도시가치를 훨씬 더 높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소리도 아니고 저 소리도 아닌 우리 고유의 소리가 바로 판소리입니다. 위로는 임금과 아래로는 천민까지 모두 즐긴 대표적인 대중음악인 판소리는 양반들이 즐기는 아악이나 창부 또는 서민들이 즐겨 부르는 타령을 모두 어우릅니다. 17세기(?)에 시작된 판소리는 1860년대에 들어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뉘는데 동쪽의 동편제는 빠르고 웅장하며 서쪽의 서편제는 애잔하다 합니다.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물리치고 지켜낸 운봉은 판소리동편제의 발생지여서 판소리의 고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로미오와 주리엣을 필적할 이몽룡과 성춘향의 러브스토리가 살아있는 곳이 남원이고 흥부와 놀부가 태어나서 큰 곳이 또한 남원입니다. 우리 고유의 이야기와 소리가 만나 예술로 승화한 것이 판소리이기에 판소리와 연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남원시는 상당 수준 도시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새로 지은 남원역사는 제 몫을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못마땅해 하는 것은 역사 안의 대합실 안과 밖에 설치된 TV입니다. 유명MC들의 판에 박은 이야기들을 이 역사에서 또 들어야하는 고객을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2대의 TV 세트를 한 대는 줄이고 판소리를 들려주는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조용히 앉아 쉬거나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도 좋을 것입니다. 잘은 몰라도 우리나라처럼 다중이 모여드는 공공장소에서 TV가 주인행세를 하는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TV를 못 보아서 애를 태우는 것은 아닐진대 공공장소 어디에서나 TV가 설치되어 조용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뺏어가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입니다. 우리의 이야기와 소리를 탄생시킨 남원에서만이라도 제발 TV의 소음공해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영취산을 출발해 사치재에서 예정했던 이틀간의 산행을 잘 마치고도 하루를 더 잡아 여원재까지 가보겠다고 생각을 바꾼 것은, 오는 11월1일 모교인 경동고교 총동창회가 주관하는 산행이 정령치-만복대-성삼재 코스로 예정되어 있는데 이번에 여원재까지 진출하면 하루 전날 내려와 여원재-수정봉-정령치 구간을 마치고 그날 정령치로 합류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할 것 같아서입니다. 남원시내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5시50분에 남원을 출발하는 사치마을 행 첫 버스에 올랐습니다. 전날 밤에 넘은 여원재는 안개가 자욱한 이른 아침에 넘어도 꼬부랑 고개 길이 길고 높았습니다. 3년 전에 와 본 봉대마을을 들렀다가 사치마을에 도착한 것은 7시가 다 되어서였습니다. 


 

  아침 7시 정각에 사치마을을 출발했습니다.

전날 저녁 이 곳에서 뵈었던 할아버지 한 분이 제게 조심해서 산행하라고 말씀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추수를 막 끝낸 다락 논바닥에서 아침요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새들이 제가 지나자 놀라서 산으로 날아갔습니다. 그 위 밭가에 세워둔 허수아비들은 새들에게 미안해하는 저를 보고 어쩌면 새들이 사람들을 그리도 잘 알아보고 도망치나 해서 많이 부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어쨌거나 이제 추수가 끝나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터이니 그동안 적으로 알고 쫓아내려했던 허수아비들도 새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다가올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7시18분 사치재에 올라 섬진강산줄기를 다시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차들이 뜸한 88고속도로를 건너 산길로 올라선지 10분이 채 못 되어 사치재라는 표지목을 보았고 표고가 500m로 표기되어 있어 고도계를 보정했습니다. 왼쪽으로 향하다가 오른 쪽으로 휘어지는 잡목풀숲 길을 지나 봉우리하나를 넘자 왼쪽 바로 아래로 동네가 들어선 안부사거리가 나타났습니다. 안부에서 가파른 길을 오르다가 며칠 전에 지리산 천왕봉을 출발해 대간 종주에 나섰다는 젊은이 두 명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야영장비 때문인지 짐이 보통이 아니어서 역시 젊다 했습니다. 600봉을 올라 오른 쪽 아래 88고속도로와 나란한 방향으로 걸으면서 아기들의 울음소리만 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사치마을을 조망했습니다. 편안한 솔밭 길을 지나 유치삼거리에 도착한 시각은 8시30분이었습니다. 


 

  8시47분 매요마을을 빠져나가 “고남산4.4Km/사치재3.2Km”의 표지목을 지났습니다.

뻥 뚫린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세례로 물에 빠진 생쥐모양으로 지났던 매요마을을 3년 후 다시 와 이 마을에 서운해 했던 이제까지의 제 생각을 바꾸게 해준 분들은 이 동네 아주머니들이었습니다. 비를 쪼르륵 맞으며 마을회관을 지날 때 마침 이 곳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여러분들이 작은 동네잔치를 벌인 듯 여흥을 즐기고 계셨는데 이분들 모두 길을 묻는 제가 귀찮은 듯 퉁명스럽게 말씀해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에도 잠깐 앉아 뭐라도 좀 들며 쉬었다 가라고 권하는 것이 시골인심인데 묻는 말에 대답도 제대로 안하는 것은 영 아니다 한 것이 세 해 전의 일입니다. 이번에는 동네 안에서 길을 찾느라 골목길을 두리번거리는 저를 보고 아주머니 두 분이 다가와 묻지도 않은 길을 친절하게 안내해주셨습니다. 본시 이런 것이 시골인심이고 이런 인심에 고마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유치삼거리에서 서쪽으로 아스팔트길을 따라가다가 삼거리에서 오른 쪽 시멘트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폐허가 된 매요마을 분교를 지나 오른 쪽으로 조금 꺾어 동네 안을 지났습니다. 뒤쪽으로 대나무 숲이 우거진 매요마을을 빠져 나가 조금 후 고남산4.4Km의 표지목을 만났습니다. 표지목을 지나 산길로 들어서자 길 위에서 반짝 반짝 빛나는 운모들이 많이 보여 이번 하루산행이 무탈하게 잘 끝날 것 같았습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걷다가 해발고도530m 대의 야트막한 구릉에 다다른 시각이 9시10분으로 이곳에서 사과를 까먹으며 18분을 쉬었습니다.


 

  10시7분 임도가 지나는 안부사거리를 지났습니다.

맑은 하늘에 짙은 구름이 들이기 시작해 20분 가까운 휴식시간이 끝날 때쯤 해서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솔밭 사이로 이어지는 길은 510-530m대의 낮은 봉우리 몇 개를 넘으며 평탄하게 이어져 종주산행이 편안했습니다. 20분을 걸어 만난 삼각점이 573.2봉인 것 같은데 평평한 능선 길이어서 봉우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500m대의 안부에 내려서자  마침 스쳐 부는 골바람에 반하는 방향으로 팔랑거리는 노랑나비가 많이 힘들어보였습니다. 다시 낮은 봉우리를 넘어 다다른 안부사거리가 지도상의 통안재 같은데 표지물이 없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모처럼 고바위 길을 걸어올라 670m대의 봉우리에 올라섰다가 왼쪽 군사도로로 내려섰습니다. 참나무 나목 몇 그루와 그 밑의 시멘트 길을 덮은 낙엽들에 찌푸린 하늘이 더해져 고남산의 정취가 스산했습니다.


 

  11시28분 해발 846m의 고남산을 올랐습니다.

시멘트길을 따라 오르다가 산속으로 들어가 바짝 고도를 높인 후 다시 시멘트길 을 만나기를 세 번이나 하고나서 KT중계소 정문 앞에 이르기까지 20분이 조금 못 걸렸는데 마지막 산길은 경사가 가파른 계단 길이어서 힘들었습니다. 한번 지난 곳인데도 길을 못 찾아 십 수분을 허비했습니다. 빠끔히 열린 쪽문으로 중계소 안으로 들어갔다가 길이 없어 다시 내려와 한참동안 지도를 보며 고민했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조금 내려가 찾은 제 길은 왼쪽 산길로 들어가는 길로 표지기가 걸려있었습니다. 중계소를 오른 쪽으로 에돌며 풀숲 길을 지나 고남산의 표지석이 서 있는 헬기장에 이르러서도 한참을 더 올라가 고남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고려 말 이성계장군이 저 아래 넓게 자리한 운봉벌의 곡식을 탐하는 왜구를 물리치지 못했다면 그의 조선건국의 꿈도 무위로 끝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저 벌이 이성계장군의 양명을 도왔다 싶었습니다. 표지목과 삼각점이 서 있는 비좁은 정상에서 사진 몇 커트를 찍은 후 이내 여원재로 향했습니다. 


 

  12시47분 전주이씨 묘 앞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고남산 정상에서 여원재까지는 그 거리가 5.4Km로 사치재에서 정상까지 7.6Km보다는 짧은 거리지만 단숨에 내달릴 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상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가며 바라다 본 오른 쪽의 병풍 같은 암벽 띠는 그 아래위로 막 들기 시작한 단풍이 받쳐주어 참으로 볼만했습니다.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암릉 길을 지나 해발고도가 620m대로 떨어지자 길이 잠시 편안해졌습니다. 다시 풀숲 길을 지나 잘 다듬어진 묘지로 내려선 후부터는 이번 사흘간의 환주산행에서 가장 평탄하고 편안한 솔밭 길이 꽤 길게 전개됐습니다. 다시 서쪽으로 진행하며 540m대까지 내려갔다가 600m대의 봉우리에 올라 왼쪽으로 진행해 3년 전 비가 잠시 그친 틈을 타 점심을 들었던 전주이씨 묘소 앞에 다다랐습니다. 하늘을 덮은 먹구름이 조만간 비를 몰고 올 것이라는 제 생각이 딱 들어맞아 묘소 앞에서 점심을 드는 동안 비를 만났습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비 채비를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15시55분 해발480m의 여원재로 내려가 환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전주이씨 묘에서 얼마간 걸어 만난 삼거리에서 밭떼기 위쪽으로 방향을 틀어 잠시 벗어난 마루금으로 복귀했습니다. 평평한 길을 걷다가 가파른 비알 길을 걸어 올라선 봉우리가 562봉으로 이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5-6분을 진행했습니다. 느낌이 이상해 지도를 꺼내보았더니 정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어 다시 원위치 하노라 10여분을 까먹었습니다. 562봉에서 왼쪽으로 확 꺾어 동쪽으로 진행하다 얼마 후 오른 쪽으로 내려가 시멘트길 안부를 지났습니다. 여원재 0.4km 전방에서 마루금을 이어가기가 고약했던 것은 마루금이 평평한 밭과 묘지를 지나서였습니다. 빗발이 굵어지고 길이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먼저 지난 분들이 걸어놓은 표지기 덕분에 간신히 알바를 모면했습니다. 묘지와 밭, 그리고 솔밭을 여러 번 지나 여원재로 내려서서 길 건너 장승을 사진을 찍은 후 왼쪽 아래 정류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여원재에서 남원시내로 들어가는 시내버스가 20분에 한 대씩 있어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탔습니다.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외곽의 남원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역전 광장이 꽤 넓어 웬만한 야외행사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역사 안에서 기차를 기다려야 했는데 50분여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두 대의 TV가 뿜어내는 소음공세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몸에 해롭다는 이유로 공공장소에서 담배는 못 피게 하면서 사람들을 멍청하게 만든다는 바보상자 TV를 곳곳에 설치하여 계속 켜대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흘 연속 산줄기를 타면서 깨끗이 닦아 낸 눈과 귀를 다시 피로하게 만드는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