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연인지맥 종주기4

 

                             *지맥구간:절고개-불기산-빛고개

                             *산행일자:2010. 9. 23일(목)

                             *소재지 :경기가평

                             *산높이 :불기산601m

                             *산행코스:두밀리버스종점-절고개-529.7m봉-수리재-불기산-빛고개

                             *산행시간:11시7분-17시31분(6시간24분)

                             *동행 :나홀로

 

 

  텔레비전에서 추석 명절에 수해를 입어 망연자실해 하는 수재민들을  보고 나자 배낭을 걸쳐매고 산나들이를 나서기가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102년만의 집중호우로 발생한 자연재해라지만 달리 피하거나 그 피해를 줄일 길은 과연 없었는지 치산치수를 책임진 역대 통치자들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향의 형님은 벼들이 쓰러지지 않아 다행이지만 배추농사를 망쳐 걱정이라 했습니다. 북한강의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 여전히 탁해 요 며칠 하늘이 쏟아낸 장대비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됐습니다. 사람들만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자란 잣나무들도 뿌리를 뽑혔거나 허리를 꺾여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땅위를 기는 잡풀들은 말짱했지만 잘 자란 억새들은 모두 쓰러져 억새밭 방화로가 폐허 같았습니다.

 

 

  닷새 전 한북연인지맥의 마지막 구간인 빛고개-호명산-조종천을 잇는 산줄기를 종주했으면서도 내심 찜찜했던 것은 제가 몸담고 있는 경동동문산악회에서 바로 앞의 절고개-불기산-빛고개 구간을 다음 달로 미뤄놓아 끝 지점인 조종천에서 연인지맥 종주를 매듭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때 마침 추석연휴기간이어서 10월 달까지 기다릴 것 없이 하루 날 잡아 건너 뛴 구간을 마저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터에 어제  며칠 장대비를 쏟아낸 하늘이 모처럼 활짝 개고 날씨도 선선해 이 때다 싶어 못 다한 구간을 마저 뛰었습니다. 중간의 구간을 미루어 두었다가 종주한다 해서 본질이 달라질 바도 아닌데 찜찜한 마음을 하루 빨리 털어버리고 싶어 어제 서둘러 마쳤습니다.

 

  오전11시7분 두밀리 버스종점을 출발했습니다. 가평에서 10시30분에 출발하는 군내버스가 참으로 오지다 싶은 삼일리를 들어갔다 나오느라 11시가 다되어 종점인 윗두밀에 도착했습니다. 종점삼거리에서 등산안내판이 세워진 오른 쪽의 시멘트 길을 따라 직진하다 자그마한 “대금산정상2.3Km"안내판이 세워진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올라갔습니다. 이 마을 식수통인 커다란 물탱크를 지나 산허리를 잘라 낸 임도를 따라 절고개로 향했습니다. 절고개에서 이 길로 내려가 두밀리에서 택시를 탄 것이 불과 두 달 전인데 동네 안에서 길을 잘 못 들어 몇 분간 왔다 갔다 했습니다. 오른 쪽 위로 대금산 정상 길이 갈리는 임도를 따라 걸어 고도를 330m 가량 높이자 지난 7월 종주산행을 끝낸 절고개가 나타났습니다.

 

 

  12시11분 해발고도가 500m가량 되는 절고개에서 연인지맥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어제가 추분인데도 쾌청한 하늘에서 내리쬐는 한낮의 가을 햇살은 여전히 따가웠습니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임도길이  편해 끝까지 이 길을 따라 걸어 지난 주 금요일에 올랐던 청우산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절고개에서 10분을 걸어 왼쪽 위로 4.4 Km 떨어진 불기산 길이 갈리는 임도삼거리에 도착해 그늘에서 점심을 들며 가을의 넉넉함을 완상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솜털구름은 여름의 먹구름처럼 요동치지 않아 한껏 여유로워보였습니다. 혼자서 식사하는 제가 안 되어 보였는지 잠자리와 나비들이 곁이라도 같이 할 양 가깝게 날아들었습니다. 바람소리도 들리는 듯 마는 듯 조용했지만 여름의 폭풍보다 훨씬 선선했습니다.

 

 

  13시3분 592.7m봉에 올랐습니다. 모처럼 맞은 가을의 넉넉함은 임도에서 왼쪽 방화로로 올라서자마자 끝났습니다. 임도보다  70-80m 높은 592.7m봉을 다른 때라면 십 수분이면 족히 오를 터인데 이번에는 그 배가 넘는 반시간이 걸렸습니다. 작년 여름 키를 넘는 억새들이 방화로를 가득 덮은 화악지맥의 몽가북계 능선 길을 종주한 바 있어 임도에서 이 봉우리 너머 안부까지 이어지는 방화로를 지나기가 쉽지 않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는 어려움이 그 때보다 몇 배 더해 엄청 힘들었습니다. 태풍과 폭우로 억새들이 거의 다 쓰러져 길 찾기가 어려웠고 쓰러진 억새를 넘어 몇 분 나아가자 금세 힘이 빠져 이 또한 계속 할 수 없었습니다. 억새밭을 헤집고 걷느라 제가 낸 소리에 놀란 시꺼먼 멧돼지가 억새밭 속에서 산속으로 신속히 이동하는 것을 보고  놀이터가 산 속인 그녀석이 부러웠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전하다가 억새밭에서 왼쪽 가로 이동해 길도 없는 산 속 풀숲 길을 걸어 오르며 혹시라도 지맥에서 벗어날까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교통로를 건너고 억새밭을 들락날락하면서 간신히 올라선 592.7m봉에 다소곳이 서 있는 삼각점이 반가웠습니다. 억새밭 방화로는 이 봉우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쪽 깊숙한 안부까지 이어진 방화로의 억새들도 쓰러지기는 마찬가지여서 오른 쪽 끝 나무 숲길을 따라 걸어 내려갔습니다. 올해 74세가 되셨다는 할아버지 한분은 오른 쪽 아래 수리재마을에 사신다는 데 젊어서부터 이 근처 산을  다니셨다 합니다. 592.7m봉에서 안부로 내려가는 길이 이봉우리를 오를 때보다 훨씬 편했던 것은 이 할아버지를 따라 안부로 내려선 덕분입니다.

 

 

  14시32분 수리재를 지났습니다. 산삼과 버섯을 캐시는 이 노인은 안부를 조금 지나 다른 산으로 옮기셨고 저 혼자 앞 봉우리를 올랐습니다. 앞서 뵌 할아버지께서 수리봉이라 말씀하신 가파른 암봉을 지나 만난 또 다른 작은 암봉에서 이제는 힘든 길은 끝났다 싶어 가져간 맥주 한 캔을 까 들면서 10분 간 편히 쉬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10분 남짓 가파른 길을 내려가 100m가량 고도를 낮추었다 다시 조금 오른 후 고도를 50m가량 더  낮추어 오른쪽 아래로 상천3리수리재 가는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로 내려섰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2-3분 걸어내려가 다다른 수리재에 커다란 고목에 오색 천을 걸어놓은 것으로 보아 이 고개가 상천리와 두밀리를 이어주는 고개 마루가 분명한데 이제는 이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이 없어 두 마을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리재에서 90m가량 고도를 높여야 이를 수 있는 헬기장까지 오르는 길도 가팔랐습니다. 헬기장에 오르자 북쪽 멀리로 화악산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15시48분 해발601m의 불기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헬기장을 조금 지나 그늘에서 잠시 쉰 후 비알 길을 올라 고도가 500m넘는 봉우리 몇 개를 넘었습니다. 고도계를 보고 이제 다 올라왔다 싶은 봉우리에 “빛고개1.7Km/정상300m/두밀리2.4Km"의 이정표가 서 있어 오름 길에 두 번째로 만난 심마니(?) 한분의 일러준대로 정상이 마냥 멀게 느껴졌습니다. 정상까지 300m의 능선 길은 고도차가 거의 나지 않아 길이 편안했습니다. 정상에 올라 배낭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는 동안 두 젊은이들이 올라와 빛고개 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앞서 지나온 “빛고개1.7Km” 봉우리로 되돌아가 내려가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동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된다고 자세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지도를 꺼내 확인해본 즉 이 젊은이들 이야기가 맞았습니다. 그러면 앞서 지난 봉우리에 세워진 “빛고개1.7Km"의 이정표는 뭔가 잘 이해 되지 않았습니다. 정상을 출발해 동쪽으로 몇 분 내려가자 과연 빛고개 길을 알려주는 낡은 표지목이 보였습니다.

 

 

  17시31분 빛고개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표지목이 세워진 능선삼거리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가 얼마간 진행하자 왼쪽으로 검은 비닐 천을 둘러 울타리를 만든 산양재배지 옆길을 지났습니다. 공손하게 “들어오지 마십시오” 해도 뜻은 충분히 전달될 터인데 출입하면 형사고발하겠다는 살벌한 경고판을 여러 개 걸어놓은 것을 보고 세상인심이 참으로 각박해졌다 했습니다. 두 번째 묘지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오른쪽으로 희미하게 난 길을 따라 내려가 편한 길을 걸었습니다. 얼마 후 쓰레기소각장의 철망 울타리를 만나 왼쪽 공사용 도로로 내려섰습니다. 송전탑공사차 낸 길로 보이는 도로를 따라 오르자 오른 쪽으로 소각장 안으로 들어가는 엉성한 목제 문이 보였습니다. 문은 자물쇠로 잠가 놓았지만 틈새가 커 비집고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내려가 소각장을 지나고 가평군자원순환센터를 지나 내려선 도로가 청평-가평을 잇는 46번 도로였습니다. 빗고개 정류장에서 조금 더 내려가 46번 도로를 횡단해 새한레미콘 앞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길로 조금 더 올라가 다다른 싸이클공원 끝의 빛고개 들머리를 사진 찍은 후 절고개-불기산- 빛고개 구간 종주를 끝냈습니다.

 

  자연재해를 입고나면 많은 사람들이 인간은 자연에 더 겸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자연을 해하지 말고 자연과 공존해야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그 분들 의견에 상당부분 공감하지만 전적으로 같이 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오만을 지적한 점은 백번 맞지만 이제껏 자연을 개발해 잘 살아온 사람들이 자연과 공존하겠다며 겸손해진다해서 자연재해가 멈출리는 없습니다. 빙하가 내습하고 노아의 홍수가 있었던 것은 인간이 자연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을 때 일어난 일들입니다. 공룡이 지구 상에서 사라진 것은 사람들 때문이 아닙니다. 자연조건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라지는 것도 진화입니다. 자연을 거스릴 줄 전혀 모르는 억새들도 잣나무도 자연재해를 입어 쓰러졌습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자연의 자해를 예방하고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지혜일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해진다고 자연재해가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면 보다 적극적으로 자연재해와 맞대응해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또 자연재해와의 맞대응이 또 다른 재해를 불러오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모두 아우르면 치산치수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