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간 : 수피령 ~ 하오현 고개 , 도상거리 약 17.9km
6시간 43분 소요 (1.20 - 8.03 ): 휴식포함

2. 일시 : 2004년 3월 7일, 일요일

3. 동행 : 문학기(달님), 이오범(산막)

4. 산행기 :


`수피령`으로 가는 길은 멀기도 하다.
여기까지 이르는 물리적인 거리도 그렇지만 대간상의 분기점이 북쪽에 있어 온전하게 잇지도 못하는 상황이라서 더욱 그렇다.
게다가 한북정맥은 처음부터 예정했던 산행은 아니었다.

`기네시오테이핑`의 `인스트럭터` 과정의 강의를 들으려 서울에 왔는데 토요일은 오후 4시에서 10시,
다음날은 오후 1시부터 7시로 예정되어 있었다.
해서 아침의 자투리 시간에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올까 하는 마음에 간단히 장비를 챙기고 나섰는데
우연히도 `달님`과 `산막`님의 산행에 동반하게 된 것이다.
밤10시가 넘어선 여의도에서 두 분과 반가운 조우를 하였고 달님의 차로 출발.




[ 수피령 ]

`광덕고개`에 차를 세워놓고 `사창리`에서 불러온 택시에 올라 `수피령`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시 10분.
보름달이 떠있어 사위가 밝은데다가 날이 맑아 산행이 수월할 듯 한데 세차게 불어와 몸에 닿는 차가운 기운 때문에 귀가 떨어져 나가는 듯 하다.

적당한 방한장비가 없어 반다나로 머리와 귀를 임시로 감싸니 조금 부족하지만 맨몸으로 때우는 상황보다는 낫다.
다행히 등로에 눈이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얼어붙어 있어서 두 번을 잼쳐 미끄러진 끝에 아이젠을 착용하고 걷는다.(1.20)
랜턴을 켜지 않고도 산행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밝았고 고도를 올릴수록 보이는 조망도 나쁘지 않아 뒤쪽 산꼭대기의 레이돔도 잘 보인다.

임도에서 오른쪽으로 산허리를 질러가다가 왼쪽으로 가파르게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는데
`복계산 갈림길`이라 하며 정맥은 왼쪽으로 잠시 오르다 급하게 내려선다.(1.57)
두어 번 가파르게 내려서고는 산허리를 약 8 내지 9부 정도로 운행하게 되는데 쓰러진 나무하나가 길을 막고있어
잠시 반대쪽으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도 하였다.


[ 고사목과 달빛 ]

아무도 걷지 않은 하얀 길에 사브작 사브작거리는 발걸음은 귀를 간질이고 간간이 보이는 흔적은 토끼와 노루의 것이 분명하렸다.
문득 행복한 마음에 산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해줄 표현을 영어로 중얼대 보지만 혀가 짧은지 머리가 짧은지...

즐거운 마음으로 걷다보니 또 다른 `헬기장`이 나왔고 하늘에 덩그렇게 빛을 발하는 달님을 올려본다.(4.20)


[ 941봉과 온누리를 비추는 달빛 ]

화생방 훈련 교장인 이곳에서 잠시 일행을 기다렸다가 벙커에서 잠시 쉬고자 들어갔더니
바람만 막아주어도 이렇게 따뜻하다는 것이 새삼 고맙지 뭐~유!!!
벙커를 나서자 어김없이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감싸고 왼쪽으로 돌아 타이어로 만든 계단으로 가파르게 내린다.
능선에 오를 때 길옆 나뭇가지에 두툼한 가죽장갑 한 짝이 꽂혀 있는 게 슬쩍 보이고.

만나는 봉우리마다 어지러이 파져있는 교통호와 벙커시설 모습을 계속 대하니 분단의 상채기를 보는 것 같았다.
너른 지역에 미로처럼 얽혀있는 교통호를 지나며 제법 오르니 임도가 나오고 내친김에 곧장 벙커가 있는 산정에 올라가 보지만 길은 아니다.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또 헬기장을 지나는데 그 앞의 작은 봉우리에 올라보니 또 헛걸음.

바람에 나부끼던 위장막의 헤진 천 쪼가리가 표지기 처럼 보였는데 여튼 뒷사람은 발자국을 쫒아오기 바쁘다.
이렇게 미안할 수가...
지도와 자료로 확인하니 작전도로를 타고 한참을 가야하는 모양이다.
길은 사행을 하면서 산 속으로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데 도로를 따라도 상관없겠다.

이젠 날도 많이 밝았고, 작전도로 끝에서 교통호를 타고 올라선 봉우리에는 벙커가 있고 종 같은 것이 있어
마산 정상에서 했던 것처럼 얼른 세 번을 두드려본다.
해뜨기를 기다리며 주변이 트인 자리를 잡으려 기웃대니 헬기장이 그래도 나은데 조금 서 있다가 추위에 쫒겨 벙커로 들어간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모두의 카메라 밧데리가 얼어붙어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긴 배낭 속의 물조차 얼어붙은 상황이니 당연하지만 일출을 앞두고 그러니 난감할 밖에..
전지를 빼어 바지 주머니 속에 넣고는 따뜻하게 하느라 비비고 문지른다.
정성이 통했는지 겨우 살아났는데 벙커를 네 번이나 들랑거린 끝에 저 북녘의 마루금을 헤치고 돋아나는 해 오름을 보게 되었다.


[ 아침에 지는 달님 ]


[ 북녘 능선에서 돋아나는 아침 ]

다시 벙커 속에서 아침을 먹고 나서고 곧 삼각점과 깨뜨린 정상석이 자리한 봉우리에 도착하였는데 실제 `복주산`은 더 가야 한단다.(7.28)
암릉 구간을 조심스레 지나고 나서야 철원군에서 세운 표석이 있는 `복주산`에 오르게 되었고 약간 아래에선 조망이 제법 트인다. (7.41)


[ 복주산 전위봉의 달님과 산막 ]


[ 가야할 하오현 고개와 광덕산 ]

가파르게 내리기 시작하며 길게 줄이 쳐있는 곳을 달리듯 내려서는 호기도 부려가며 달리는데 능선이 아니고 산머리 부근으로 질러가게 된다.
간간이 트이는 곳에선 `광덕산`의 레이돔이 올려다 보이고 이름은 모르지만 한눈에도 좋은 산들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저 멀리 아래로 고개가 보이기 시작하였고 산중턱의 헬기장에는 발자국이 어지럽게 나있고 되돌아 내려간 족적이 보인다.
긴 타이어 계단 길을 내려서서 드디어 `하오현`의 고갯마루에 닿았고 일행이 올 동안 앞의 둔덕에 올라본다.(8.03)


[ 하오현으로 내려서는 길 ]


[ 고갯마루의 초소에서 바라보는 산하 ]




초소 같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산들이 겹겹히 둘러쳐진 가운데 그 사이에 난 길이 잘 보인다.
한참만에 내려선 두 분은 무릎이 별로 좋지 않아 보여 안타까운데.

짐작컨대 두분 다 아이젠 한쪽씩이 달아나 미끄러움을 느낀 데다가 달님은 운동부족과 산막님은 지난 대간 연속 종주의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내 자신은 스틱은 없었지만 신발에 단단히 고정되어 땅을 움켜쥐어 준 아이젠 덕을 톡톡히 본 셈이고.

아이젠을 넘겨주고 샤베트가 되어버린 배즙을 하나씩 나눠 마신 뒤 임도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한다.(8.40)
두 분은 예정대로 `광덕고개` 까지 가야하지만, 산행을 마친 마음은 여유로와 지는데 오후 1시까지 `여의도`에 도착하려면 정말 그럴까?


[ 절벽에 걸린 고드름 ]


[ 얼음기둥 ]

전화기도 얼어있어 애를 쓰고서야 겨우 택시 기사와 통화가 되었고 도로에 내려서 뒤안길을 올려다보니 하오현의 잘록이가 뚜렷하다. (8.54)


[ 위쪽의 하오현 고개와 아래의 터널 ]

사창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두시간 걸려 상봉터미널에 도착한 뒤 택시로 여의도에 닿았고
점심을 먹고 목욕까지 곁드렸지만 강의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하였다.
이로써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한북정맥 1구간"을 마쳤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대간 꾼 이라면 누구나 갖고있을 "북녘 대간 길을 걷고 있는 행복한 꿈"을 꾸며....


교통)
광덕고개 - 사창리 : 사창리 택시이용 / 야간 36,000원
하오현고개-사창리 : 사창리 택시이용 / 1만원
사창리 -상봉터미널 : 시외버스 7,600원 / 2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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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세요? ]


▣ 김용진 - 추운날씨에 고생하셨습니다.. 그것도 야간산행을.... 저도 이제 이 구간이 남은셈입니다. 광덕에서 운악산은 구간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계속된 한북정맥구간 완주를 빌겠습니다. 즐산하시고 강건하십시요
▣ 김정길 - 복주산의 원래 정상은 삼각점이 있는 곳인데 요즈음 전국적으로 도처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자기 지역에 유리 할 대로 정상을 옮겨놓고 있으니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짧은 간단한 코스지만 야간산행으로 무사히 마치신것에 축하드리며 한북 완주를 기원합니다.
▣ 윤기웅 - 김용진님! 1구간을 남겨놓고 계시는군요. 대간을 할 때부터 야간산행에 맛들린터라,게다가 달빛이 너무 좋았거든요. 모쪼록 건강하시고 즐거운 산행 이으세요.
▣ 윤기웅 - 김정길 선생님의 산에 대한 해박함에 놀라곤 합니다. 이번 구간은 묻어 가는 경우라 지도나 사전 준비가 없어 깨진 정상석이 의아했는데 의문이 풀렸습니다.
앞으로 많은 정보를 기대하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바랍니다.(강산에님으로 부터 말씀은 많이 들었답니다)
▣ manuel - 어려운 고행의 길입니다. 늦게나마 글을 발견하고 응원을 드립니다. 무탈, 강건하십시요.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