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영신봉!!

낙남정맥 17차 최종구간<고운재-영신봉>

머구리+머구리1

2005년12월27일


 

같이 가자고 약속했던 님은 오지 않고 아쉬운 시간만 흘러간다.

낙남의 대미를 장식할 날에 처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해 조금은 서운한 마음에

서둘러 마누라랑 집을 나선다. 늦은 것 같아 아예 처음부터 들머리인 고운재까지

택시로 이동을 하는데 고운재 못 미쳐 길이 얼어 있어서 도중에 하차, 걸어서

약20여분 이동 여기서 또 아까운 시간을 허비 하는구나.

오늘의 무사 종주를 빌면서.........


 

들머리인 고운재의 굳게 닫힌 철문앞에 도착.(08:05) 바로 산행시작.

철문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왼쪽으로 20여m 가서 철망 뒤로 난 오솔길로 하여

완만하게 오른다. 처음부터 산죽지대인줄 알고 긴장을 했었지만 아직은 아니다.

980봉을 올라서고(08:19) 완만한 내리막 후 넝쿨지대를 지나 너른공터가

나오고(08:27) 산죽사이로 길이 나있다. 산죽지대의 서막인가......

잠시의 산죽지대를 벗어나니 둥근 공터가 나온다. 묵계치(810m) 이다.(08:51)

헬기장은 눈에 파 묻혀 보이지 않는다. 마누라와 잠시 휴식.

묵계치에서는 두 군데에 표지기가 달려 있는데 직진 길은 가파른 오름길이고

산죽터널 지대이며 좌측으로 가는 길은 아마 다른 팀들이 우회로를 만든것 같다.

마누라는 산죽지대를 통과하는 것이 재미있다며 직진으로 가잔다.

(지금 까지도 앞으로 다가올 눈에 대한 공포는 전혀 모르고 그저 지금과 똑 같은줄

알고 낙남종주를 끝낼 순간만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다.)

묵계치에서 직진으로 올라치니 길은 가파르고 산죽을 헤집고 나가느라 금방 지친다.

지친몸을 이끌고 도착한 1050봉(09:29)에는 반가운 석천표지기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1050봉을 뒤로하고 암릉구간을 지난다. 무명봉을 지나고 산죽지대를 통과하니

암벽에 로프가 매달려있다.(10:40) 걱정했지만 마눌도 잘 올라간다.*^^*

암벽을 올라서니 처음으로 지리산다운 외삼신봉이다.(10:45)

정상에는 정상비가 있고 외삼신봉 1288.4m로 적혀있다. 그 뒤에는 깃대가 서 있다.

그런데 정상에 부는 바람이 엄청나다. 가만히 서 있으려니 날아 갈 것 같다.

경치를 구경할 엄두가 안난다. 서둘러 외삼신봉을 지나 산죽지대를 통과하여

내려서니 사거리 안부다.(11:05) 우리가 내려 온 곳과 우측은 탐방로가 아니라는

경고팻말이 붙어있다. 이정표가 있다. -청학동 2km 세석대피소 8.0km-

이제부터는 정맥길도 일반 등산로와 같이 가는 모양이다. 평일이어서 인지 등산객은

보이지 않는다. 세석대피소 쪽으로 오른다. 10분여 가니 삼신봉(1284m) 밑을 지나니

바위에 삼신봉이라 적혀있다.(11:20) -청학동 2.5km 쌍계사 8.9km 세석대피소 7.5km-

삼신봉에는 오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진행속도가 너무 느린 것 같다.


 

이 후 계속되는 이정표들과 조난표지기둥을 지나고 진행하는데 서서히 눈길이 발목을

잡기 시작한다. 어느곳은 무릎위까지 푹 빠진다. 처음으로 눈에 대한 공포가 밀려온다.

정맥길이 눈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곳도 있고 앞서간 발자국이 없어지기도 하고

표지기도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때 늦은 후회가 들 때도 있지만 이제 와서는 되돌릴

수도 없다. 나도 나지만 따라나선 마누라도 걱정이다. 그런데 어떨때는 마누라가

나 보다 더 침착하고 진행을 잘한다. 같이 오길 잘한건가?


 

한벗샘 이정표를 지나고(12:23) 헬기장같은 둥근 공터를 지난다.(12:36)

다행히 눈이 없는 고개마루 같은 곳에서 씽씽부는 찬바람을 맞으며 늦은 식사를 한다.

식사 후 출발.(13:23) 이정표를 지나 자연의 예술품인 석문에 도착된다.(13:54)

사람이 과연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대성골 이정표가 붙어 있는 삼거리(14:15)에는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만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이 구간부터 영신봉까지 나는 처음으로 눈속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고 왜 내가 낙남종주를 한다고 했는지, 왜 내가 다음으로 미루어도 될 일을

굳이 올 해 안에 끝내야 한다고 생각해 무리한 진행을 했는지 후회했다.

보이는 세상은 온통 하얗고 서있는 거라곤 나무와 나와 마누라뿐,

눈 속에 파묻힌 발은 차갑게 얼어오고 한걸음이 천린데 내가 이런데 마누라는

어떨까 보니 나보다 낫다. 길은 보이지 않고 한 걸음 떼고 두 번 넘어지고 넘어지면

몸까지 눈 속에 파묻히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


 

악전고투끝에 도착한 음양수.(14:50) 이정표가 서있고 물은 얼어서 나오지 않는다.

바위 위쪽에는 돌로 만든 제단같은 곳이있다. 서둘러 음양수를 지나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마지막 남은 힘으로 영신봉을 오른다.


 

아 영신봉!!

지난 4개월간의 고생과 마지막 이 순간의 모든 고생이 봄 눈 녹듯이 사그러지고

감회에 젖지만 영신봉은 말이 없고 묵묵히 제자리만을 지키고 있다.

영신봉 정상은 출입통제 라인이 쳐져있고 밑의 탐방로의 이정표에 영신봉 팻말이

붙어있다. (영신봉 1651.9m) 로프너머 눈길을 올라 정상의 바위위에 선다.(15:53)

정상에는 세찬바람이 불어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다. 기온은 영하9.7도,

체감온도는 영하20도정도. 물병의 물은 꽁꽁 얼었다.


 

나도 해냈다!! 나도 할 수 있다!!


 

늦은 하산길이라 서둘러 내려온다.

세석대피소 도착.(16:25) 백무동쪽에서 홀로 오신 등산객과 잠시 얘기하고

출발(16:30) 10여분 내려오니 이정표 -거림5.5km 세석대피소0.52km 의신8.6km-

거림쪽으로 하산 세석교를 지나고(16:46) 연속으로 3개의 이름없는 나무다리를

지난다.(16:51) 곧 어두워지리라 생각하니 발걸음이 빨라진다.

북해도교를 지나고(17:23) 길은 온통 바위 너덜이다. 눈이 쌓인 길은 얼어

빙판이 되어 바쁜 산객들의 발목을 움켜쥔다. 천팔교를 지나고(17:30)

산속은 어두워지며 적막에 휩싸인다. 홍수경보시설을 지나며(18:00)

랜턴을 켠다. 길도 조금은 양호해지고 랜턴에 의지해 진행하다보니 저 멀리

파란 불빛이 보인다.(18:20) 불빛을 보며 진행하기를 10여분 갑자기 앞에

문이 나타나고 어둠에 잠긴 집이 보인다. 거림매표소다.(18:30)

다 왔구나!! 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오늘의 피로감이 한 순간에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