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동양화를 그려 내는 설악의 아침 [미시령-황철봉-마등령]

백두대간의 설악산 구간은 미시령을 시작으로 황철봉, 마등령, 공룡능선, 대청봉, 서북릉, 한계령을 지나 남으로 점봉산까지 33.5킬로미터 거리입니다. 이 구간 가운데 미시령-황철봉-마등령 구간 산행을 하기 위하여 내설악 관문인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 들어가서 '나무꾼과 선녀' 라는 이색적인 이름이 걸린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집 바깥주인으로부터 밤이 이슥하도록 동화 속의 주인공 같은 사랑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도회지에서 피신하다시피 설악에 묻혀 살며 목공예 기예(技藝)를 습득한 나무꾼이 북한 피난민들이 모여 사는 '아바이 마을'의 예쁜 선녀를 낚아채어 미시령 아래 용대리에 둥지를 짓고 정착을 하게 된 러브스토리를 좁쌀 막걸리를 곁들이며 흥미 진지하게 들었던 것입니다.
용대리의 나무꾼은 선녀를 꼬셔서 남매를 두었는데도 선녀가 달아날까 조바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짓궂은 관광객들의 유혹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가 봅니다. 열 다섯 연하의 선녀는 마흔이 넘었는데도 아줌마답지 않게 예뻤습니다. 누가 봐도 산 속의 선녀라 할 정도이니 오십대 중반의 나무꾼이 불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

용대리의 선녀가 새벽잠을 설쳐가며 마련해준 도시락을 챙겨서 아침해가 설악 능선을 넘어오기 전에 서둘러 대간 길을 나섰습니다. 미시령에서 주능선에 오르자 동해에서 태양이 빙그레 떠올라 설악의 생명들을 깨우며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몰려든 운해(雲海)는 울산바위에서 동양화를 수없이 그려대고 있었습니다. 황철봉에 오르자 설악의 주봉(主峰)인 대청봉이 구름 사이로 그리움처럼 살포시 내다 보였습니다. 멀리서 바라본 대청봉은 안정감 있는 삼각형 구도를 갖추어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팔월 중순의 설악 산길에 이따금씩 동해바다 바람이 불어왔지만 덩치 큰 너덜바위가 길게 널려있어 진행이 더디며 힘에 버거운 산행이었습니다.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내려올 때에는 설악이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대구-홍천-인제-용대리] [용대리-미시령]
[미시령-황철봉-마등령-비선대-설악동]
[설악동-강릉-포항-대구] (01.08)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