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종주기 15


 

              *정맥구간:예재-계당산-개기재

              *산행일자:2007. 10. 1일

              *소재지  :전남 화순/보성

              *산높이  :계당산 580m

              *산행코스:예재-378봉-계당산-개기재-옥리 중촌마을

              *산행시간:11시20분-17시30분(6시간 10분)

              *동행    :나홀로


 

  올처럼 끈질지게 비가 내렸던 가을이 언제 있었는가 할 정도로 9월 들어 어느 한주도 온전하게 비를 거른 적이 없었습니다. 일조량의 절대 부족으로 추수를 앞둔 농민들의 시름이 당연히 더 해 갈 수 밖에 없어 호남정맥을 종주하며 지나는 시골풍경이 마냥 여유로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여전히 흘렀습니다. 내리는 빗줄기와 같이 흘렀고 내리쬐는 태양과 함께 흘렀습니다. 그렇게 흐르고 또 흘러 10월에 접어 들자 논뜰도 산골마을도 가을색이 완연했습니다. 몇 번의 태풍으로 논바닥에 쓰러진 벼들을 일손이 달려 아직도 일으켜 세우지 못한 채 눈 멀거니 바라보아야 하는 시골아낙들의 가슴 속이야 새까맣게 타버려겠지만,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혼자서 정맥길을 종주하는 제게는 고개 마루에서 종주산행을 마치고 가까운 마을로 내려가 버스를 기다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제 저녁 화순의 옥리마을에 다소곳이 내려앉은 가을 풍경은 이러했습니다. 예재-개기재 구간의 호남정맥 종주를 마치고 개기재에서 반시간 가까이 걸어 내려가 만난 옥리 중촌마을에서 한시간 남짓 버스를 기다리며 저녁시간을 이 가을과 함께 했습니다. 이 마을의 버팀목은 다섯아름도 훨씬 더 되어 보이는 거목 느티나무였습니다. 아직도 나뭇잎은 푸르른데 밑동의 수피가 단풍처럼 붉으스레 보였습니다. 이 나무 줄기에서 첫 번째로 뻗어나간 커다란 가지가 밑으로 쳐져 내려앉는 것을 막고자 쇠파이프로 받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마을에서 이 거목이 어떻게 대접받고 있는가가 쉽게 짐작되었습니다. 느티나무 옆에 자리한 장방형의 쉼터 사각정은 장정들 15-20명은 넉넉하게 누워 쉴 수 있을 만큼 넓었습니다. 저 또한 이 사각정에서 마루에 등을 눕혀 편히 쉬고 싶었지만 남의 동네 정자에서 벌렁 누워 있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냥 걸터 앉기만 했습니다. 느티나무 앞으로 화순군과 보성군을 동서로 잇는 58번 도로가 지나고, 도로변에 “옥리 중촌마을”의 화강암 이정표가 서 있었습니다. 자연부락은 느티나무 뒤쪽으로 들어 앉았고 그 앞으로 느티나무보다 먼저 가을이 내려앉은 논뜰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태풍으로 쓰러진 벼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안스러웠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서편으로 넘어갈 즈음 한 할아버지가 풀들을 가득 실은 경운기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며 4-5세로 보이는 어린 손녀(?)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건너편 한우를 기르는 축사에서는 한 아주머니가 지난 가을 사료로 쓰고자 쌓아 둔 볏짚 건초단을 풀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몸을 불살라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처럼 어둠을 맞는 도로변의 코스모스도  지나가는 차들이 일으킨 바람으로 형형색색의 꽃송이들이 하느적거렸습니다.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몰려 오기 시작하자 느티나무에 몸을 숨겼던 새들이 길 건너 산속으로 날아 들어갔습니다.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맥 놓고 버스를 기다리는 저를 보고 지나가는 차들에 부탁하면 태워줄 거라며 손을 흔들어 보라고 일러주셨습니다만 급할 것이 없어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시골의 저녁 풍경을 조금 더 지켜보다가 라이트를 켜고 달려온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일면 평화로워 보이는 시골의 가을 풍경 속에서 속을 끓이고 있는 농민들의 고된 역정을 읽어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60대부터 우리 농촌은 발빠른 근대화를 따라 잡고자 헐떡거리며 쫓아 왔습니다.  아들 딸들이 도시에서 벌어들인 농외소득을 농사지어서 올린 농가소득에 합해도 도시보다 가구소득이 적었습니다. 벌써부터 그들도 먹고 살기가 만만치 않아 고향의 어르신들께 매달 꼬박꼬박 돈을 보내는 자식들이 이제는 거의 없어 오로지 농가소득만으로 살아가야하는 농민들로서는 우루과이 라운드니 한미FTA 체결 같은 굵직한 환경변화 자체가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살아 갈 길이 막연해 망연자실해 하고 있을 우리 농민들이 맞는 올 가을은 잦은 비로 그나마 소출도 줄어들것이 뻔하기에 더욱 우울할 것입니다. 더할 수 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산골마을이 겉만 아니라 속도 편한 그런 날들을 그들과 함께 기다리며 옥리마을 정자에서 일어섰습니다.


 

  아침 6시5분 강남의 센트랄시티를 출발하는 광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야간열차나 심야버스보다 몇 배나 편안했던 것은 집에서 충분히 잠을 자고나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9시55분에 광천터미널을 떠나는 장흥행 직행버스를 타고 가다 이양에서 하차하여 택시비 만오천원을 들여 이곳 예재에 도착한 시각이 11시10분이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이번 구간은 예재에서 시작해 개기재에서 끝나는 5시간 반 정도 걸리는 짧은 코스여서 굳이 밤차를 타지 않아도 됐습니다.


 

  11시20분 예재를 출발했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었고 바람도 불지 않아 또 비가 오는 것이 아닌가 신경이 쓰였습니다. 얼마 후 만난 임도 삼거리에서 직진하다 바로 왼쪽 산 능선으로 올라섰습니다. 예재 출발 15분 후에 헬기장을 지나 우측사면이 벌목지인 능선 길을 걸었습니다.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벌목지 상단의 능선길은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덤불을 만들어 발목을 잡기가 일쑤여서 이런 구간은 통과하기가 여간 짜증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측백나무가 길 양옆으로 들어 선 능선을 따라 올라 무명봉을 넘자 이번에는 철쭉나무와 죽어 쓰러진 다른 나무들이 길을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10분을 내려가 안부사거리에 도착했습니다.


 

  12시13분 378봉을 올랐습니다.

안부사거리에서 조금 오르자 밋밋한 풀 숲길이 나타났습니다. 378봉에 올랐어도 나무들로 시야가 막혀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가파른 내림 길을 한참을 내려가 무성한 칡넝쿨이 하늘을 가린 칡넝쿨 터널을 지났습니다. 안부에 내려서자 햇살이 다시 퍼지기 시작했고 그동안 조용했던 바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능선 길 오른 쪽 아래로 창천제 호수가 보였습니다. 379봉에 올라서서 전번에 알바를 한 봉화산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360봉에서 급하게 내려가 밋밋한 길을 걷다가 무명봉 바로 아래에서 치받이 길을 올라 460봉 어깨에 다다랐습니다. 그새 13시가 넘어 배낭을 풀고 점심을 들면서 2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13시53분 523봉에 올랐습니다.

460봉의 밋밋한 어깨 능선 길은 이내 끝났고 직등길을 올라 다다른 460봉에서 얼마간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 남쪽으로 제암산이 보이는 바위에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523봉 턱 밑에서 치고 올라가는 길도 힘들었습니다. 똬리를 틀고 길 한가운데 가만히 자리잡은 누런 뱀을 보고 가던 길을 멈추고 스틱으로 쫓아보았습니다만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게거품을 내뿜은 채 오래 전에 죽은 뱀을 산 길에서 만나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523봉에서 왼쪽으로 내려섰다가 철쭉나무 숲길과 억새밭길을 지나 560봉에 다다랐습니다.


 

  15시 정각 해발580m의 계당산에 올라섰습니다.

철지난 꽃들은 왠지 모르게 제 철의 꽃들보다 초라해 보이는 것은 꽃송이수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4년 11월 금강산에서 만나 본 진달래 꽃들도 활기가 없어 보였고 560봉을 오르며 우연히 눈에 띈 철쭉 꽃(?) 한 송이도 너무 애잔해 보였습니다. 어렵게 올라선 560봉은 덤불 숲이어서 표지기가 잘 보이지 않아 처음에는 길을 못 찾아 당황했습니다. 560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다다른 바로 옆 572봉에서 서서히 내려섰다가 마지막에 조금 비알 길을 오르는 동안 잠시 억새 밭을 지났습니다. 계당산 정상은 2-3평의 좁은 풀밭으로 삼각점이 세워졌고 계당산이라 적힌 스텐판도 걸려있어 이 지역 최고의 봉우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상에 빙 둘러 서있는 보리수는 아직도 열매가 익지 않아 시큼새큼한 보리수 특유의 신맛을 볼 수 없었습니다. 동쪽 아래 저수지 뒤에 멀리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조계산이 아닐까 싶었고 그 오른 쪽으로 기지국이 보이는 산은 아마도 고동산이겠다 하니까 저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일었습니다. 잠자리와 노랑나비의 작별인사를 받고 계당산에서 일어나 오른 쪽으로 내려가 만난 헬기장은 철쭉 터널을 지나느라 애를 먹은 제게는 천상낙원처럼 보였습니다. 쑥부쟁이, 엉겅퀴 외에도 이름을 모르는 가을 꽃들이 20-30평은 될 법한 헬기장 공터에 가득히 피어 있어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헬기장을 지나서 풀 숲길은 조금 후 끝났고 보통의 산길이 이어져 걸을만 했습니다. 15시55분에 509봉에 다다르자 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16시50분 개기재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509봉에서 조금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 16시 정각에 490봉에 이르자 표지기들이 잔뜩 걸린 엄청 큰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산 길인데다 어차피 개기재 왼쪽 아래 옥리마을에서 18시40분까지 기다려야 버스를 탈 수 있기에 서두를 이유가 없어 자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490봉에서 오른 쪽으로 확 꺾어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가는 곳마다 표지기가 걸린 “비실이 부부” 두 분들도 이 금을 이어 갔을 것입니다. 봉화산에서 한번 된 알바를 치르고 나자 먼저 오른 많은 분들의 표지기가 한없이 반갑고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많은 표지기들 중에서 부부 두분이 함께 정맥길을 올라 걸어 놓은 것이 유독 눈에 띈 것은 진작 그리하지 못하고 뒤 늦게 홀로 종주 길에 나선 제가 부끄러워서입니다. 묘지를 지나자 오른 쪽 아래로 황금색 벼들이 출렁이는 네모 반듯한 논뜰이 정연하게 들어섰고, 그 뒤로 저수지와  고동산(?)이 보였습니다. 마지막 봉우리인 380봉에서 개기재로 내려서는데 20분이 걸렸습니다. 개기재 고개의 절개면 꼭지점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의녕남씨 묘지를 지난 후 얼마 안되어 개기재로 내려섰습니다.  오른 쪽 고개 마루로 올라섰다가 다시 내려와 길 건너 계곡물로 손을 씻은 후 옥리마을로 출발했습니다.


 

  ·17시30분 옥리 중촌마을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개기재에서 옥리마을로 내려가는 58번 도로는 차량소통이 비교적 뜸해 찻길을 걷기가 덜 신경이 쓰였습니다. 1-2백미터를 내려가 상촌을 지났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군내버스는 이곳까지 올라온다 합니다. 도로변의 코스모스와 갈대들이 차가 지나가는 대로 하느적거리는 것을 보고 흔들릴 망정, 또 허리를 굽힐 망정 결코 꺾이지 않는 저들의 유연성이 오늘을 사는 지혜이다 싶었습니다. 옥리 마을에 도착해 사각정 쉼터에서 짐을 내려 놓고 한 시간 여 푹 쉬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골의 가을 풍경을 지켜 보았습니다.


 

  제가  대중교통을 이용한 단독종주를 고집하는 것은 안내산악회를 따라 가서는 산악회와 보조를 맞출만큼 주력이 빠르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번처럼 시골마을에서 짧으나마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종주산행을 마치고 지친 몸을 추수려 바로 차에 오를 수 있는 안내산악회는 비용도 저렴하고 몸도 편하지만, 산골마을의 정자에 걸터앉아 넉넉한 자연풍경을 관조하고 촌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겨움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옥리 중촌마을에 내려 앉은 이 가을이 이제부터라도 비를 멈추고 이 마을의 가을걷이가 풍요로울 수 있도록 도아주십사 하고 이 마을 떠나며 마음 속으로 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