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건의령에서 자암재까지 [건의령-덕항산-자암재]

동대구역에서 부산발 강릉행 무궁화호 열차를 탔습니다. 휴일 전 날 밤에만 운행하는 심야 열차에 정동진과 설악산 쪽으로 여행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젊은이들의 즐거운 여행 기분 때문에 휴면(休眠)을 청하려는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차는 경부선에서 경북선으로 이어가다가 영동선으로 들어갔습니다. 산간으로 달리는 차창 밖의 밤하늘에는 눈비가 온다던 주말 일기 예보와는 달리 별들이 총총했습니다.
새벽에 통리역에 도착하여 미리 예약을 해둔 '백산식당'으로 갔습니다. 산골의 새벽 공기가 차가웠지만 청량했습니다. 백산식당은 지난 대간 산행(싸리재-매봉산-피재) 때 통리 파출소장의 안내로 알게된 동동주로 이름난 집입니다. 반갑게 맞은 식당 아주머니께 된장찌개를 주문하고는 산에 가지고 갈 더운물을 보온병에 담았습니다.
식당을 나와 시내버스로 태백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갔습니다. 아침이 밝아오자 태백산과 함백산,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태백 시외터미널에는 하장, 임계 방면으로 떠나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산행의 들머리인 35번 국도상의 상사미동 다리까지는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동대구역 밤11:53-통리역 새벽04:50]
[통리 06:50-태백 버스터미널 07:10]
[태백 터미널 07:20-상사미동 다리 07:40]

상사미동 다리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건의령에 올라섰습니다. 백두대간 산행은 건의령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푯대봉, 구부시령을 지나서 덕항산(1070.7미터)에 이르자 오른쪽으로 동해 바다가 내려다 보였습니다. 덕항산을 조금 지난 안부에서는 환선 동굴(삼척시 신기면 대미리) 쪽으로 내려가는 철계단이 놓여 있었습니다. 차가운 날씨임에도 환선동굴 주차장에는 관광버스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두대간 능선 멀리는 광동댐 건설로 이주한 수몰민의 정착지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광동댐은 백두대간의 금대봉 아래 검룡소에서 비롯하여 정선 아우라지로 흐르는 골지천을 막은 것입니다. 수몰 지역 사람들을 이주시켜 일구어 낸 광활한 고랭지 채소밭이 백두대간에 넓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댐 건설로 자연을 또 한번의 훼손시킨 현장이었습니다.
덕항산에서 지각산을 지나 자암재에 이르러 백두대간 구간 산행이 끝났습니다. 건의령에서 5시간 20분이 소요된 셈인데, 대간 구간에는 낙엽이 무릎까지 잠길 만큼 수북이 쌓인 곳이 많았습니다. 눈길을 헤쳐 나가듯 낙엽 길은 신이 났습니다. 산행 도중에 휴식을 할 때는 솜 이불처럼 편안한 갈잎에 누워 파란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파란 하늘에는 당신의 얼굴이 그려졌습니다.
자암재에서 왼쪽으로 광동리 이주 마을로 내려가면 35번 국도를 쉽게 만날 수 있으나, 영동선의 신기역에서 강릉발 동대구행 열차를 이용하기 위해 오른쪽 등산로를 따라 환선동굴 입구로 내려왔습니다. 환선동굴의 내부도 볼거리라지만 동굴 외부에 절벽을 이룬 기암괴석들도 장관이었습니다. 자암재에서 환선동굴까지의 급경사 등산로에는 로프와 철계단이 설치되어 안전하게 내려올 수가 있었는데, 환선동굴 주변에는 영동 지방에 쏟아진 폭우의 상처가 흉물처럼 남아있었습니다. 천재(天災)가 자연을 훼손했다지만 천재를 인간이 저질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사미동 다리 07:40-건의령 07:55]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