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산이라는 산이름에 대한 혼자 생각


 


 


 

청파 윤도균 님의 글을 읽고,


 

청파 윤도균님의 여러 산행기들 잘 읽고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2006.4.11. 한국의 산하에 청파님께서 원미산 산행기를 올리셨더군요. 역시 잘 보았습니다.


 

청파 선생님께서 위 산행기를 쓰시면서 그 도입부에 “遠美山의 한자를 해석해보면 멀 遠, 아름다울 美입니다. 즉 "멀리서 봐도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 입니다. 원미산 주변은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멀리서도 잘 보이고 산모양이 운치 있게 생긴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특별하게 자랑거리로 내세울만한 것은 없습니다. 단지 부천을 상징하는 산이 성주산보다는 원미산이 더 알려져 있고(원미동 사람들이라는 소설 덕분이기도 합니다) 부천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라고  원미산이라는 산 이름의 유래에 대해 적으신 것을 보았는데 위와 같은 내용은 원미산에 대한 유래를 설명할 때 일반적으로 나오는 것으로서 청파 선생님 역시 그러한 설명문을 옮겨 적으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미산의 유래에 대해 적은 또 다른 글을 보면


 

“원미산은 멀미산, 멀뫼, 장대산, 둔대산(일명 춘덕산), 벼락산, 포대산 등으로 불리우고 있는 부천의 주산 중의 하나이다.

원미산이라 불리게 된 것은 옛날 부평부 관아(현 인천직할시 북구 계산동 소재)의 동헌에서 이 산을 보면 정통으로 바라보이는 데 아침 해돋이 때의 산세는 그지없이 선연하고 아름다우며 해질 녘 노을에 반사된 그 푸르름은 단아하기가 비길데 없었다. 더욱이 부천벌을 굽어 감싸는 듯한 정경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멀리서 바라본 산 풍경에 누구나 감탄했다 한다. 이에 도호부사가 산의 이름을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부사가 그 즉시 산이름을 遠美山이라 지어 오늘날까지 원미산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18년에 나온 《조선지자자료》에는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산이 아니고, 멀리 보이는 눈썹 같은 산이란 뜻으로 遠眉山이라 표기되어 있다.

(http://www.cyville.net/bucheon/edu/buchoen_land_detail04.asp)“

라고 적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글을 보면 원미산이 한자로는 원미산으로 읽히나 그 표기는 遠美山 혹은 遠眉山 등으로 서로 다르며, 고유어로 멀미산, 멀뫼 등으로 불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겠습니다.


 

우선 고유어 지명인 멀미를 살펴보면 위 글자는 ‘멀’과 ‘미’로 합쳐진 글임을 알 수 있는데


 

첫 째. ‘멀’은 우리의 산, 또는 높은 곳, 머리 등을 뜻하는 고유어인 ‘말’의 다른 발음이며, ‘말’은 으뜸을 뜻하는 ‘맏’이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맏아들, 맏딸에서의 ‘맏’이라는 접두어가 으뜸, 처음이라는 뜻임은 누구나 아는 것이지요.


 

‘말’은  발음이 늘어지면서 마리(마리산=마니산), 마루(산마루), 머리(頭) 등으로도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말’은 산이라는 뜻으로서 지역에 따라 말, 물, 몰, 멀 등으로 발음이 되었던 바, ‘말’은 그 뜻을 斗나 馬로 생각하게 하여 斗山, 馬山, 馬峴(말티고개)등의 지명을 낳게 하였고, 물은 우리가 산에서 자주 접하는 ‘무너미고개’라는 지명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무너미고개란 ‘물+넘이+고개’로 이루어진 말로서 말 그대로 산 너머에 있는 고개, 산 넘는 고개라는 뜻의 일반적인 말인 것입니다. 물박달나무, 물푸레나무 등의 접두어 ‘물’ 역시 산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몰’이라는 말이 쓰인 대표적인 지명은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모란이라는 곳입니다. 모란은 ‘몰 +안’으로 구성된 말로서 말 그대로 산 안쪽이라는 뜻입니다. 성남에 있는 영장산 줄기 끝 안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지요. 의왕시에 있는 모락산 역시 고유지명을 한자로 옮겨 쓴 것으로서 ‘몰+앗+산’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으며(배우리 선생) 저는 위 견해가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멀’이라는 말이 쓰인 대표적인 지명은 바로 원미산의 고유지명인 멀미, 또는 멀뫼입니다.

멀미 또는 멀뫼에서의 멀은 산(山)을 뜻하는 고유어입니다.


 

둘 째. 멀미나 멀뫼에서의 미나 뫼는 모두 역시 산(山)을 의미하는 고유어입니다.


 

‘뫼’가 산을 뜻한다는 것은 ‘山’이라는 한자를  배울 때 ‘뫼 산’이라고 외운다는 데에서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뫼가 메로 발음이 변하여 산에 있는 바위를 메바위(파주 비학산)라고 하는데 ‘메’라는 발음이 ‘매’로 변하여 산에 있는 바위를 매바위(과천 청계산)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나아가 산봉우리를 매봉(메봉)이라고 하며 이를 나름대로 한자로 옮기면서 梅峰이라고 기재하거나 심지어 응봉(鷹峰)으로 바꿔 표기하고서는 맹금류인 매가 사는 바위라거나 매가 사는 봉우리라는 등의 설명을 붙이곤 합니다. 그러나 매봉, 응봉은 모두 산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일반적인 명사일 뿐입니다.


 

‘미’ 역시 산이라는 뜻을 가진 고유어인데  대표적으로 할미봉(남덕유산)이라는 지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할미봉이라는 지명은 ‘한+미+봉’으로 이루어진 지명인 한미봉이라는 발음이 할미봉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한’은 크다는 뜻의 고유어(한숨, 한가람, 한탄강, 한길,...)로서 ‘한미’ 즉 ‘할미’는 큰 산이라는 뜻의 우리말입니다. 그 뒤의 봉은 역시 산이라는 뜻의 한자로서 할미에 덧붙여진 말에 불과하지요.

북한산 맞은 편의 노고산, 서울 강남의 대모산, 지리산의 노고단 역시 큰 산이라는 뜻의 할미를 한자로 옮겨 적은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위에서 살핀 바에 따라 원미산의 고유어인 멀미나 멀뫼의 뜻을 보면 이는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산이라는 뜻의 일반 명사가 중복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원미산은 한자로 ‘遠美山’ 혹은 ‘遠眉山’으로 기재되고 있는데 이는 원미산에 대한 한자 표기가 한자의  뜻을 가진 표기라기보다는 단순한 가차(假借) 표기일 가능성이 많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遠美’와 ‘遠眉’의 발음은 같으나 그 뜻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나라 지명의 경우 대부분의 지명은 고유 지명을 나름대로 뜻풀이를 하거나 그 발음을 옮겨적은 것이 많으며 따라서 한자 지명이라 하더라도 이를 뜻으로 새겨서는 안 되는 것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지명인 한강의 경우 한자로는 漢江이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큰 강이라는 뜻의 고유어 ‘한가람’을 한자로 표기한 것일 뿐입니다.  漢江이라는 표기를 갖고 그 뜻에 따라 해석한다며 중국 한나라를 흐르는 강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산지명의 경우는  설령 한자로 기재되었다 하여도 거의 우리 고유의 산 이름을 한자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대사찰이 있거나 하는 등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 우리나라에 있는 수많은 산에 각자 고유한 뜻을 가진 한자명이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지금처럼 각 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습니다. 산들은 그저 마을 앞 또는 뒤에 있는 산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국 각지에 있는 산 이름 중 동일한 산 이름이 아주 많습니다. 한국의 산하에 등록된 산 이름을 살펴보니 ‘매봉산’만 전국적으로 아홉 개입니다. 전국적으로 자세히  조사하면 아마 수백개가 될 것입니다.(서울 남산 맞은 편 남산타운아파트 뒷산이 매봉산이고, 서울 강남구에 있는 영동 세브란스 병원 뒷산이 매봉입니다)


 

산이름의 유래를 살필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그 산이름을 표기하고 있는 한자(漢字)의 뜻을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자 표기의 경우 그 한자의 발음이 현재의 발음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충북 보은에 있는 속리산(俗離山)의 경우 현재의 발음은 속리이나 예전에는 수리였다고 합니다(배우리 선생). 따라서 속리산, 즉 수리산은 군포시의 수리산, 시흥시의 소래산 등과 아울러 높은 산이라는 뜻을 가진 고유한 산 이름임을 알 수 있고 나아가 위 산에 쓰인 ‘俗離’는 단순히 지명 표기를 위해 쓰인 가차 표기인 바, 이를 갖고 뜻으로 파악하여 산이 속세를 떠났느니, 속세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느니 하는 해석을 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원미산이라는 표기는 고유어인 멀미나 멀뫼를 한자로 표기한 것입니다.

즉 고유어 멀을 나름대로 뜻으로 파악하여 한자 遠으로 표기하고 미를 그 발음대로 美 또는 眉로 표기하여 산이름을 ‘遠美山’ 혹은 ‘遠眉山’으로 기재한 것입니다.

원미산은 결국 ‘멀+미(뫼)+산’인 바 이는 산(山)을 세 번에 걸쳐 중복한 이름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