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칠선계곡 10년만의 개방!
한 순간도 끊이지 않은 절경 암반ㆍ소와 담의 연속
백무동~하동바위~장터목대피소~천왕봉~칠선골~추성동 25km 답사

지리산 칠선계곡이 10년만에 다시 열렸다. 칠선계곡 하류의 추성리 어느 주민이 ‘이제 겨우 바늘구멍 뚫린 정도’라고 했듯, 비록 전면 개방이 아니라 주 2회 왕복의 극히 미미한 수준이지만, 이로부터 시작해 차차 개방의 폭은 넓어질 것이다.

칠선계곡 전 구간을 가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아슴하다. 늦가을이었고, 천왕봉을 출발한 시각이 이미 오후 2시로 늦어져 칠선골 하산을 마칠 즈음은 이미 캄캄해져서였다. 때문에 칠선골의 진면목을 보았다기엔 한참 미흡했던 당시의 산행이다.


▲ 칠선계곡의 대표적 폭포인 칠선폭포.
그러나 아침 7시경 천왕봉을 출발, 환한 시간대에 느긋이 여유를 갖고 내려온 이번의 칠선골 산행이었어도 여전히 “반도 못 본 것”이라 말하고 싶다. 하산 중 길이 계곡가로 다가들 때마다, 그것이 암반이든 아니면 크고 작은 바윗덩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든 언제나 발길을 붙잡는 일품의 풍광이었다.

흡사 일부러 경치 좋은 곳으로만 길을 연결해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때문에 등산로에서 뵈지 않는 곳들의 경치가 갑자기 궁금해져, 작심하고 1시간쯤 계곡 암반만 따라 내려가 보았다. 여느 계곡들은 대개 경치가 좋았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1시간 내내, 칠선골은 한 순간도 끊이지 않는 절경의 연속으로 우리를 매혹케 했다. 특정 구간을 골라서가 아니라 무작위로 시작한 그 1시간 동안의 계류만을 따르는 탐승으로 우리는 칠선골 전구간의 풍치가 특A급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잔설이 간혹 얼룩처럼 남아 있고 산비탈은 칙칙한 갈색 일변도인, 연중 가장 경치가 신통치 못한 시기의 감흥이 그러했으니 5월 이후 신록으로 성장한 칠선골은 기가 막히지 않겠나 싶다.

▲ 백무동에서 장터목 오름길 중간의 대숲지대.
1박2일 산행으로 천왕일출까지 욕심 내

칠선계곡은 설악산의 천불동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계곡의 하나이며, 7개의 폭포와 33개의 소가 있다고 한다. 10여 년만의 이 칠선골 탐승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천왕일출까지도 욕심을 내고 등행 아닌 하행으로, 백무동~하동바위~장터목대피소~천왕봉~칠선골~추성동의 순으로 길을 결정했다. 취재엔 아무래도 가외의 시간이 더 필요하기에 하산하며 시간을 절약할 필요도 있었다. 백무동과 추성동은 능선자락 하나 건너이니 차량을 가지러 가기도 편하다.

새벽 일찍 서울을 출발한 덕에 백무동에 정오경 다다라 산채백반을 맛있게 들고 길을 나섰다. 이구 사장(자이언트트레킹 대표ㆍ거인산악회 총대장)은 말띠들 모임인 말오름산악회 중에도 54년생 준족들로만 엄선해왔다면서 김대윤, 김옥희, 전순주씨 세 사람을 소개한다. 등산로 점검차 나선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의 김종희 팀장 일행도 만나 칠선골 산행까지 함께 하기로 했다.

백무동은 몇 년 새 몰라보게 달라져 있다. 과거의 그 깊은 산촌 분위기는 간 곳 없고 서울 근교의 관광지처럼 알프스풍으로 단장한 펜션들이 길 양쪽에 늘어섰다. 국립공원 탐방안내소를 지나자마자 맨 마지막 집 모퉁이에서 왼쪽 산록을 향해 백무동길이 시작되고 있다. 곧장 뻗은 넓은 길은 세석대피소로 이어지는 한신계곡 길이다.

작년부터 중산리~장터목~천왕봉, 백무동~장터목~천왕봉 길은 연중 개방되었고, 토요일 오후임에도 우리 일행 이외엔 장터목을 향해 오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오늘 4월5일 밤부터 흐려져서 내일은 비가 올 것이란 일기예보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지리산 관리사무소 김종희 팀장의 “장터목대피소 예약자들이 어제 갑자기 무더기로 취소했더라”는 말로 미루어보아도 그렇다.

▲ 장터목대피소 옆 식탁에 앉아 노을을 즐기고 있는 등산객들.
이미 오후 2시지만 요즈음은 오후 7시까지 훤한 때이니 서둘 것 없다. 대피소 담요를 빌려 쓸 요량으로 침낭도 없이 배낭을 꾸린 데다 무거운 먹을 거리는 힘이 장사인 홍장천씨(자이언트트레킹 이사)에게 훌 몰아주고나니 나머지 일행들은 배낭이 당일산행용처럼 홀가분하다.

백무동 길은 거림골과 더불어 지리산 주능선으로 오르는 가장 편하고도 우아한 길이 아닌가 싶다. 서서히 뜸을 들이다가 잠시 힘을 쓰면 곧 고전적 분위기의 거대한 장산 능선으로 올라서며, 그 후 절로 유유자적하는 걸음걸이로 걷게 된다. 오로지 천왕봉을 향해 애걸복걸 매달리듯 해야 하는 급경사의 법계사 코스나 유암폭포계곡 길과는 사뭇 기품이 다르다.

10여 년 전 녹음이 무성했을 시기에 이 하동바위 길을 감탄과 더불어 오른 적이 있다. 숲 짙은 능선은 대개 공기가 잘 소통되지 않아 답답하기 마련이지만 이 하동바위 길은 그렇지 않았다. 사진기 노출이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숲이 짙기는 해도 수목들 사이의 공간에 잡목이 없고 시원스레 트여 있어 항상 서늘한 바람이 스쳐갔다. 거대 산릉의 북사면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직 새순 한 점 돋지 않은 이 4월 초에도 하동바위 길은 숲이 짙다는 느낌이 여실할 만큼 연회색의 굵은 수목들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