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녹아있는 속리산

                                                                                                                                                                     권 용 옥

  삭막하고 우중충한 콘크리트 숲 속을 벗어나 산을 마음껏 보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만 해도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곤 한다.

  오늘도 내일의 산행을 위하여 거실 한편에 놓여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열심히 움직여 보지만 가보고 싶은 산이 너무 많아 쉽게 결정하기가 어렵다.

  이 산도 가고 싶고 저 산도 가고 싶다가 작년 겨울에 문장대 휴게소에서 시원한 열무김치 국수의 맛을 보러 따뜻한 날씨에 다시 오기로 한 주인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속리산으로 결정하였다.

  속리산은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군에 걸쳐있는 산으로 유명한 대찰 법주사를 품고 있는 산이다. 정상인 천황봉을 중심으로 비로봉, 문장대, 관음봉, 입석대 등으로 이루어진 장쾌한 산이다.

  속리산은 계절에 주는 변화를 봄에는 산벗꽃, 여름에는 맑은 옥수와 소나무 숲, 가을에는 곱게 물든 단풍, 겨울에는 낙낙장송에 솜처럼 쌓인 눈과 바위가 어우러진 설경이 변화무쌍으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찾아도 새로움을 맞보고 느낄 수 있는 명산이다.

  속리산은 집에서 먼 거리고 도로 사정이 열악하여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차는 도심을 빠져나와 푸른색으로 색칠하지 못한 논밭을 지나 시원스레 달린다. 피부에 닫는 봄바람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길가 가로수의 신록이 싱그러움을 더해주고 멀리 보이는 부드러운 산등성이가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항상 떠나는 산행이지만 떠날 때마다 가슴이 설레인다. 산 속에 나를 감추면 한없는 힘을 느끼고 코끝에 전해지는 자연의 향기는 나와 산과 하나가 되어 즐거움으로 느껴진다.

  차는 시원스레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다 옥천 IC에서 속리산 방향으로 선회한다. 길가의 가로수 숲 터널이 하늘을 가리고 따뜻한 봄 햇살이 가로수 사이사이에 조명을 비추어 신록의 잎과 갈색의 줄기, 봄 햇살이 모자이크 되는 자연의 오묘함이 신비스러움으로 다가온다.

  속리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늘의 산행 코스를 안내도 앞에서 일행에게 설명을 한다. 매표소에서 휴개소  세심정  용바위골   보현재  문장대   문수봉   신선대  입석대  비로봉  천황봉  천황석문   배석대  석문  세심정  법주사 주차장으로 결정한다.

  국립공원 속리산은 항상 산행 객이 많다 그 이유는 뭇사람에게 볼 것과 느낄 것을 무한으로 주는 명산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산의 입구에 서면 언제나 그렇듯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은 산에서 풍겨오는 맑은 공기가 내 코 속을 자극하고 신록의 바다가 바람에 몸을 의지하여 파도가 되어 싱그럽게 밀려와 눈을 즐겁게 한다.

  매표소에서 세심정까지는 산 속의 고속도로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한 시멘트 길과 암자를 찾는 불자들의 고행을 없애주는 자동차길 등이 매우 못마땅하다. 옛날 고승들은 석가의 고행을 몸소 체험하기 위하여 본전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암자를 세워 수도하였는데 기복신앙이 판을 치는 요즘음의 일부 불자들의 세태가 이런 자연 파괴로 나타나니 참 신앙이 무엇인가 다시 한번 나를 일깨워준다.

  속리산을 찾은 등산객과 뒤 섞여 조금 오르다 보면 계곡을 건너지르는 다리가 나오는데 다리 아래로 흐르는 맑은 물에 물고기들이 무리를 지어 유유히 헤엄을 친다. 이 모습을 한가롭게 바라보던 아내가 가지고 온 과자를 던져 주니 평화롭던 물속이 먹이 경쟁으로 어수선해진다. 저 물속의 물고기들은 스스로 먹이 활동을 잊어버리고 인간의 짓궂은 장난에 속아 인간의 눈요기 도구로 살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루한 인공 도로가 끝나면 세심정에 도착된다. 세심정이란 마음 깨끗하게 닦는 곳이라는 뜻이지만 인간의 자연 파괴와 많은 등산객과 휴게소 등이 세심정이란 곳을 무색케 만든다.

우리 일행은 본격적인 산행을 위하여 휴게소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도토리 묵 한 접시와 동동주 한 병을 시켜 먹는데 부족한 것처럼 느꼈는지 주인장께서 도토리 묵 한 접시를 내주며 하산하면서 다시 오라고 인심을 쓰는데 천박한 상술로 느껴지지 않고 후한 인심으로 느껴지는 것이 산의 여유로움이 마음에 와 닫기 때문인 것 같다.

  도토리묵과 동동주에 목을 적신 우리는 정상인 천황봉을 찾기 위하여 발걸음 옮겼다. 한발 한발 옮기면서 땅의 소중함을 체험하면서 지저귀는 산새의 울음소리를 벗 삼고 자연과 동화되고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야생초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며 오름을 계속한다.

  산 속의 등산로는 제법 넓고 오름이 완만하여 가족이 함께 하는 산행지로는 알맞은 산이라 생각이 든다.

  산행은 언제나 고행이다. 가파른 오름에서는 차오르는 숨과 묵직하게 전해오는 발걸음이 고행이고 바람 한 점 없는 골짜기에서는 찜통 같은 더위에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고행이고 땀 냄새를 맡고 어디에서 날아와 내 얼굴 주변을 맴도는 파리의 괴롭힘도 고달픔으로 느껴지지만 능선에 오르면 별천지가 눈앞에 다가와 이제까지의 고달픔은 한꺼번에 날려 보낸다.  굽이굽이 펼쳐진 산야의 아름다움, 넘치거나 과하지 않는 산새와 중봉들의 조화로움이 답답한 가슴을 확 트여준다

  저 산야에서 땅이 주는 고마움을 푸른빛으로 살아가는 온갖 나무들의 아름다움과 따뜻한 햇살과 맑은 공기의 고마움을 몸소 느끼며 살아가는 맑은 물과 짐승들의 삶의 질서를 모두 창조하신 하느님의 크나큰 능력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산을 그토록 열심히 찾는 것이다.

  산행은 용바위골에서 보현재를 넘는 코스로 이어진다. 돌계단이 나의 다리를 무겁게 하고 숨이 차지만 문장대의 열무김치 국수의 맛이 그리워 오름을 계속 한다

  이름 모를 바위가 등산로 곳곳에 서서 큰 나무와 하나 되고 길가에 돋아난 이름 없는 풀 한 포기가 피어내는 앙증맞은 야생화의 끈질김 속에서 나의 일상생활을 돌아본다.

  상업화되고 주어진 틀 속으로 찌들어가는 삶 속에서 무명의 바위나 앙증맞은 야생화처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지 못하고 이해 타산적인 삶을 계속하는 내 속세의 모습이 가련하게 느껴진다. 인생의 종말은 공수래공수거라고 했는데 눈앞에 작은 욕심을 위하여 얽혀진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반복된 생활 모습에서 아무런 느낌이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산행은 보현재를 넘어 오름을 계속 한다 눈앞에 문장대의 웅장한 바위 모습이 들어온다. 그런데 하늘의 구름이 심상치 않다. 해 맑은 햇살을 품속에 감추고 희뿌연 구름으로 하늘을 색칠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날씨다.

  가파른 오름을 계속하니 문장대 휴게소에 도착된다. 너럭바위 사이에 제비집 같은 건물을 지어 휴게소를 차려놓고 등산객에게 요기가 되는 음식을 팔고 있다. 이곳에서의 별미는 열무김치 국에 넣어 먹는 국수의 맛이 일품이다. 땀 흘리고 허기진 몸에서 느끼는 시원하고 새콤한 열무김치 국수는 진수성찬이 아무리 맛있어도 이 국수 맛에는 비교가 되지 못 한다. 아마도 시장이 반찬이고 귀한 것이 약이라는 식도락가의 말이 이 경우에는 걸 맞는 말이지만 그 옛날 우물 속에서 막 꺼내온 열무김치에 국수를 말아 주시던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어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

  문장대에서 내가 보는 풍경은 우리나라 산의 극치이다. 상주 쪽에서 올라오는 능선들의 암봉은 용틀임으로 나타나고 우리가 계속 산행해야할 운수봉, 비로봉, 천황봉이 형제처럼 다정하게 보아고 이 모든 것이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로 눈앞에 전개된다. 구름이 낀 날씨라 멀리 조망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가까운 곳이라도 조망할 수 있으니 이것만 이라도 허락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날씨가 심상치 않아 함께한 일행과 상의를 하여 등산 코스를 변경할 수밖에 없다 하산 코스를 문수봉에서 신선대  경업대  복전암 주차장으로 등산 코스를 줄였다.

  문장대에서 휴식을 끝내고 하산을 시작하니 구름의 양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금방이라도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로 변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하산을 재촉하였다.

길은 문장대에서 바라본 험한 등산로가 아니라 암봉 사이사이로 이리저리 비껴가면서 평탄한 하산 길로 이어져 있다. 내려오면서 하늘을 자꾸 바라보았다 먹구름이 자꾸 짙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업대 마당 바위를 베개 삼아 누우니 나는 신록의 바다를 뱃사공이 되어 산의 아름다움을 찾아 힘차게 노를 젓는다. 만약 내가 항상 산의 푸르름 속에서 산다면 산의 아름다움을 보고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이따금 산을 찾는 나는 산과 동화되어 산의 아름다움을 가슴 시리도록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산을 찾는다. 유명한 산악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아무 욕심 없이 평범한 마음으로 산행의 즐거움을 찾는다.   산을 오르면 가슴이 트이고 땀의 소중함을 깨닫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산을 찾는 이유 중 하나가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여가생활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면서 집에서 못 다한 가정 사를 산의 너그러움을 배경으로 대화를 나누면 모든 가정사가 물 흐르듯 풀린다. 여기에 가정 사 때문에 매사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산행의 즐거움이 새로운 생활의 활력소가 되게 해주고 아내의 큰 자리와 참 사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고달픈 산행이지만 먼저 챙겨주고 가정 사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웃음을 잃지 않고 산행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느낄 수 있고 아내의 속 깊은 사랑을 가슴에 새길 수 있어서 산을 찾는다.

  경업대에서 쉼을 하다보니 심상치 않던 하늘의 먹구름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중의 산행을 대비한 간이 비옷을 입고 하산 길을 재촉한다. 어딘가에 숨어있다 비와 함께 불어오는 바람에 빗방울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비옷 사이로 스며든다. 비바람의 차가움이 시원함을 밀어내고 온 몸에 적셔온다. 땀방울이 아닌 빗방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린다. 우중의 하산은 주차장까지 계속 되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에서 맑은 햇살이 대지를 비춘다. 자연의 변화무상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 우중의 산행을 끝내고 오늘 산행 코스를 되짚어 본다. 입구에서 능선을 타고 저 봉우리와 저 봉우리를 지나 정상에 도달하고 다시 하산 길로 접어 개울과 골짜기와 계곡을 지나 주차장까지 오는 동안 보고 느낀 것을 다시 생각해본다.

  등산로 돌 틈에서 땅의 소중함을 간직하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라고 있는 풀 한 포기의 청순함, 이름 없는 바위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낙낙 장송의 모습, 가여운 물줄기가 골짜기가 되고 다시 계곡이 되어 힘차게 용솟음치는 자연의 무한한 힘, 오름길에서 뚝뚝 떨어지다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의 의미 등을 다시금 생각하며 오늘 산행도 무사히 마친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이곳 주차장을 빠져 나가면 일상생활로 되돌아가겠지만 산에서 얻은 소중한 보물들이 내 삶 속에 동화되어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밑거름이 될 것을 생각하며 차창 밖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는 가로수에 눈길을 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