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황산 여행기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던 중국의 黃山에 다녀왔다. 안휘성 남부, 남경 부근에 위치한 황산은 중국사람들이 人間仙境, 천하제일의 奇山 등 최고의 찬사를 붙여 자랑하는 산으로서, 자락마다 구름바다 깔리고, 안개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모습이 산수화 같이 아름다운 그 황산에 올라갔다 왔다.


 

내가 황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5년여 전에 우연히, 건축가이며 사진작가인 원대현씨가 펴낸 [여행넘어서기(한국/중국편)]라는 사진집을 보고 나서이다. 황산은 150평방km의 면적에 걸쳐 72개의 저마다 다른 모습의 바위산이 그 맵시를 자랑하는 岩峰群인데, 해발 1,500m 이상의 봉우리가 30개도 넘으며, 그 봉우리들이 구름과 안개 사이에 작은 바위섬처럼 솟아 있어서, 각 지역을 나우어, 가운데는 天海라 하고, 이를 중심으로 동해 서해 북해 그리고 前海(남해)라고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끌리는 것은 그 높은 산 위에 호텔도있고 아담한 레스토랑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 마침 중국여행 중에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황산을 같이 가기로 굳게 약속하였으나 선생인 여자친구의 방학기간 중에 내 쪽에서 마땅한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이를 지키지 못하고 3-4년의 세월이 흘러버렸던 것이다. 이제 퇴직을 하고 쉬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기회를 찾고 있다가, 마침 중국의 조선족 동포 여성의 안내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여행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7월 16일 낮 중국 동방항공 편으로 상해 푸동 공항으로 날아가, 공항에서 내 이름을 크게 써서 들고 있는 현지 비즈니스 걸 미스 김을 만났는데, 그녀는 스스로 소개한 마흔 한 살의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보이는, 작달막한 키의, 눈빛이 빛나고 말끝에 상냥한 미소가 흐르는, 소박하면서도 단정한 원피스 차림을 한 여성이었다. 나는 그녀의 안내에 따라, 공항버스 편으로 그녀의 아파트에 들러 너댓 시간 휴식을 취하게 되었는데, 그 동안 이메일 통신을 통해 쌓은 우정을 확인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한 쌍의 보기 좋은 유람객이 되어 지하철을 타고 상해 중앙역으로 가서는, 역 앞의 대형상점에서 술 등 몇 가지 간식과 행동식을 사 배낭에 챙겨 넣고 밤 9시발 황산행 기차를 탔다. 중국에서 기차는 이번이 세 번째인데, 이 열차는 그 중 가장 수준이 낮은 것이었다. 5-6넌 전 처음 상해에서 소주를 다녀올 때 탔던 열차는 우리의 새마을호보다도 더 고급이었고, 3년 전 열 세시간을 달렸던 하일빈-연변행 열차는 전에 우리의 통일호와 보통열차의 중간급 수준으로 침대가 상하로 두 개씩 놓여있었으나, 이번 열차는 침대도 3층으로 걸쳐 있고 청소 상태도 매우 불량하였다.


 

미스 김의 간절한 희망에 따라 자기는 2층에 나는 1층 침대에 누워 11시간을 달려서 다음 날 아침 8시 20분 기차에서 내리니 황산시는 작고 한산한 도시였다. 역사와 그 앞의 대형 빌딩 등 두서너 건물을 빼고는 모두 오래 되고 낮은 건축물로 시가를 이루고 있었다. 황산 도착 2-3시간 전, 그러니까 남경역을 지나서부터 인가 여행사 복무원 신분증을 목에 건 젊은 사람들이 황산에 가느냐고 물으면서 자기 여행사 상품의 주문을 받았었는데, 사전 예약 없이 와도 황산 오르는데는 문제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산 여행 상품은 1박 2일과 2박 3일, 3박 4일 등 다양하였는데 어느 것이나 황산에서의 숙박은 하루였다. 다른 날은 가까운 구화산과 태평호 등 관광명소를 더 돌아보는 일정으로 짜여져 있었다.


 

황산역에서 또 마중 나온 현지 여행사 직원을 따라가서 입산수속을 마친 후 9시에 작은 승합차를 타고 황산공원 풍경구까지 한 시간 반을 달렸는데, 창 밖으로는 가깝고 먼 산비탈에무수한 茶밭이 이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서 생산되는 황산毛峰茶는 중국 십대 名茶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산에 이르도록 줄곧, 우리의 새마을 도로 같은 한산한 시골길이었는데, 목적지 거의 다 와서야 여관 같은 건물도 있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다. 이어서 십여 분 거리에 있는 황산 입구의, 우리 나라 공원관리소 같은 곳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입산을 대기하고 있었다. 역에서 보지 못했던 인파를 거기서야 만나게 된 것이다. 저 아래서 중국 돈 65원을 내면 케이블카로 쉽게 올라 갈 수 있지만 이들은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들이었으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한 개에 중국 돈 2원, 우리 돈 300원씩 하는 것으로 가이드가 사서 주는 것이었다


 

산을 오르면서 처음 놀란 것은, 대나무 반으로 쪼갠 것 두개를 붙인 막대를 어깨에 걸고 앞뒤 끝에 짐을 달아 메어 나르는 이른바 짐꾼들이었다. 50여 명이 오르막길을 따라 줄을 잇고 있었는데, 그 한 쪽 무게가 100kg는 넘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 들 사이에는 유람객의 배낭도 대신 메어다 주는 비공식 짐꾼도 있지만, 대부분 산 위의 호텔이나 식당에서 쓸 식료품과 일용품을 나르는 고용된 직원들이었다. 무거운 짐을 막대기 끝에 달아, 흔들림도 없이 온 힘을 다해 계단 하나 하나 오르는 그들의 모습은 또 하나의 볼거리일 수도 있겠지만 바로 앞에서 그들의 고통스러운 얼굴표정을 보는 것은 나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또한, 사실인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직업을 얻기 위해서 많은 뒷돈이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는 더욱 가슴 아팠다.


 

케이블카가 도착하는 北海구역에 있는 雲谷嶺 휴게소까지 우리는 그 짐꾼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올라왔는데, 황산의 총 사만 여 개의 돌계단 중, 일만 여 개를 지나 온 것이다. 케이블카도 거기까지만 연결되어 있었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멀리서 어렵게 찾아 온 산이기에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은 욕심에서 걸어 올라왔지만, 이토록 힘들 줄 알았으면 단연코 케이블카를 이용하였을 것이다. 그나마, 상해에서 왔다는 대학생 네 사람과 같은 조를 만들어 오르게 되었는데, 영어 할 줄 아는 사람 만나기가 어려운 중국에서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또 다른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이 작은 즐거움이었고, 서로 웃다 보니 산행도 조금은 덜 힘들었던 같았다. 그리고 상해역을 떠나면서 사온 깨강정이 그들에게도 훌륭한 간식이 되어서 다행이었다. 하여튼 우리는 아침도 못 먹고 점심도 거른 채 올라와서 잠시 쉬었다가 케이블카를 타고 온 사람들과 같이, 여행사 별로 중국인 안내에 따라 오후 두 시부터 황산 유람을 시작하였다.


 

한자로 써있는 표지판을 따라 여러 곳의 전망대를 잇는 돌계단 길을 오르고 내리면서 바라보는 경치는 그들의 말 그대로 천하제일의 선경이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산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만큼, 보이는 것마다 모두가 아름다운 한 폭의, 잘 그린 산수화였다. 더더욱, 구름에 잠기고 안개 휘감기는 雲海 속의 바위산을 보는 것은 황홀한 기쁨이었다. 서해문이라고 이름 붙은 곳에서는 저 아래 깊은 계곡에 일고있는 운무에 넋을 잃고 있다가 일행의 꼬리를 놓치기도 하였다.


 

안내인은, 황산이야말로 중국의 사대 명산인 태산의 웅장함과 로산의 폭포수 형산의 아득한 구름과 안개, 아미산의 서늘한 특색을 고루 갖춘 미려한 산(美麗的황산)이라고 자랑하였다. 황산에 올라오니 다시 삼만여 개의 오르내리는 계단이 있었는데 다섯 시간이나 따라 걸어도 피로하지 않을 만큼 빼어난 경치였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황산은 모두 72개의 岩峰으로 이루어졌으며 중앙부를 천해라 하고 이를 중심으로 방향에 따라 동해 서해 북해, 전해 등으로 구역을 나누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봉우리가 蓮花봉 天都봉 光明頂으로 이름 붙인 해발 1800m급의 3봉이었다. 구름 짙게 깔린 산자락을 내려다보면, 멀리 있는 바위 봉우리들은 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 같았다.


 

황산에는 기이한 모습을 한 소나무들도 많았는데, 한 기둥에서 갈라져 쌍둥이 형제처럼 사이좋게 자란 두 소나무를 團結松이라고 이름 붙였고, 거의 같은 키로 마주 보고 서있으면서 서로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가지가 맞 붙어있는 소나무를 蓮理松이라 했다. 바위에 붙어 가지를 하늘에 늘어뜨린 소나무는 迎客松이라 하였는데 이 작은 소나무의 나이가 천년도 더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산 길의 가지가 위로 올라간 소나무는 送客松이라 하였고, 지나가는 길에 허리를 구부린 체 서있는 나무는 陪客松이라 하였다. 이러한 나무들의 주변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도록 쇠고리 줄을 메어 두었는데, 이 줄에는 더 이상 끼어 들 수 없을 만큼 빽빽이, 크고 작은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 이러한 자물통 채우기는 위험한 곳에 설치한 안전용 쇠줄에도 걸려있었는데, 내인에 물으니, 연인들이 영원히 같이 하겠다는 약속을 다짐하기 위해서, 또는 앞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란다.


 

뾰쪽이 솟아, 믿음 없이 올라 갈 수 없는 바위를 始信峰이라 하였고, 높이 솟은 봉우리에 새처럼 내려앉은 바위는 飛來石이라 하였으며, 관세음보살을 배알하는 동자바위, 바다를 바라보는 원숭이 바위, 수박 먹는 저팔계 바위 등 이렇게 이름 지어진 바위가 1200개나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의 그 것과 너무도 닮은 꼿꼿한 바위도 있었는데, 중국 여성들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탓인지 바로 보지 못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척 하면서 힐끗 힐끗 돌아보는 것이었다.


 

황산의 경치를 굳이 우리의 산과 비교하자면, 설악산의 약 100배, 금강산의 30배쯤 아름다웠다. 하나의 바위도 저마다 잘 생겼지만 바위와 바위의 어우러진 모습은 더 아름다웠으며. 그리고 바위와 바위 사이의 가파른 벼랑에서 오랜 세월 자라면서 저쪽의 나무 가지와 손잡으려는 듯한 뒤틀린 소나무의 모습은 모두 한 폭의 탐나는 동양화였다. 한 무리의 소나무 숲에서 그 끝이 같은 높이로 올라가 지붕처럼 활짝 펼친 모습은 일부러 다듬어 놓는 것 같았다.


 

72개의 봉우리를 다 연결하지는 않았어도 전망 좋은 곳은 모두 튼튼한 돌계단으로 이어 놓아서 하나도 빼 놓지 않고 다 볼 수 있었다. 가파른 비탈의 바위산을 돌아 안전하게 오를 수 있게 하였으며, 이 봉우리와 저 봉우리 사이에 돌다리를 놓아 건널 수 있게 하였으며, 어떤 곳은 바위를 뚫어서 길을 내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작업은 부분적으로는 빼어난 조각예술이었으며, 전체적으로도 조화와 잘 이루어진 대형 건축예술이었다. 그리고 벼랑 쪽의 가파른 길에는 바위를 파서 만든 난간을 이어놓아 어떠한 경우도 사고가 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황산을 사진집으로 소개한 원대씨도 자연경관의 절경만 볼 것이 아니라 이처럼 공을 들여 시설해 놓은 중국인들의 노력을 놓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나 또한 전적으로 같은 생각이다. 만리장성을 쌓은 중국 문화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황산에는 짐꾼도 있지만 노약자를 위한 이른바 들것의자 영업도 있었다. 집이 없는 가마 같은 것으로 가운데에 의자를 놓고 두 사람이 메고 다니는 인간 택시인 것이다. 가히 중국에서나 볼 수 있는, 색다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하루 이용에 중국 돈 550원이라고 했다. 황산의 또 다른 자랑은 여러 곳에 숙박시설과 식당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일박일정으로 구경을 끝내기가 아까워서 2-3일 더 묵을 호텔 방을 구하려는데, 사전예약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가장 좋은 곳이 北海賓館이라는 3성급 호텔이었는데 독방이 중국 돈 800원 정도였다. 여럿이 가면서 사전에 큰방을 예약하면 일인당 200원(우리 돈 3만원)정도면 묵을 수 있었다. 물론 다른 호텔은 이보다 싼 객실요금으로도 이용할 수 있었다.


 

내려올 때는 玉倂樓라는 곳에서 케이블카를 탔다. 어제 올라 올 때의 힘들었던 생각을 하니 이렇게 빨리 내려가는 것이 아쉽지만, 더 묵을 방도 구할 수 없었고 또 여행사와 약속한 정해진 일정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비취라고 하면서 아주 작은 알맹이를 하나씩 기념품으로 주는데, 옆에서는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반지를 진열해 놓고 웃돈을 받으며 하나씩 파는 것이었다. 하여튼 중국사람들의 상술은 어디가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휴게소에 앉아 걸어 내려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황산의 사계]라는 비디오 테이프를 보았는데, 겨울의 설화 만발한 황산도 여간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봄과 가을의 모습이 더 아름답고 구경하기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 여행 중 확인한 상식으로서, 중국은 인구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방학이나 연휴기간에 명소를 찾아 여행 오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방학이 시작되어 유람객이 넘쳐흘렀는데 가는 곳마다 너무 시끄럽고 또 교통편을 잡는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나는 또, 황산을 오르고자 하는 다른 사람들이 묻는다면, 굳이 걸어서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올라가서도 충분히 힘들만큼 많은 계단과 씨름하면서 산행을 하기 때문이며 계곡 속으로 오르는 코스가 생각보다는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두 번 째 날 아침부터 비가 와서, 일정의 반은 안개 속을 헤매다 왔고 황산 4 絶 중의 하나인 온천-옛날 중국의 어떤 황제가 49일간 목욕하고 젊음을 되찾았다고 알려진- 그 온천의 목욕을 즐기지 못했지만, 나는 황산에 크게 반하고 말았다. 따라서 지금의 욕심으로는 매년 한 차례씩 봄과 가을 중 좋은 때를 골라 황산에 다녀올 생각이다. 여기 저기 먼 곳을 이동하면서 힘을 빼는 고단한 여행을 하기보다는, 이처럼 아름다운 선경에 올라 정상의 호텔 여기 저기에 하루 씩 묵으면서, 인간세상의 잡념을 접어두고 휴식을 취하다 보면 내 탁해진 성정이 구름 위의 있을 것으로 믿어지는 선인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것 같아서이다. 황산에 오르는 반복적인 여행은 어쩌면 내 순수를 되찾으려는 가장 보람있는 노력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다음 황산 가는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