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정책 해부] 이제 야간산행 금지는 해제해야
야간등반 통제는 자연공원법 위반
입장료 수입 노린 계엄령 선포로 건전한 야간산행 막아

국립공원관리공단은 1991년 11월 15일부터 15개 산악공원에서는 일몰 후부터 일출 2시간 전까지 야간등반을 금지한다고 공고했다. 올해 19년째 시행 중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강산이 두 번 바뀐 셈이다.


“5·16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등장했다가 제5공화국 때 사라진 야간통행금지의 망령이 10년 만에 산에서 부활하려고 한다”며 등산객들은 옛일을 회상했다. “산은 자유로운 곳이요, 조용한 곳이다. 조용한 산에 무슨 야간등반 금지냐?”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 지리산 정령치를 출발한 야간 등반객들이 서북능선에서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세걸산 정상에서 운무가 깔린 계곡에 취해 있다. 반야봉이 보인다.

한국 등반사에 듣도 보도 못하던, 야간등반을 통제한다는 공고가 나가자 조용하던 산악계가 잠시 술렁거렸다. 통금 해제 당시 언론에서는, 군사 분쟁지역을 빼고 지구상 유일하게 존재했던 굴레가 마침내 사라지게 되었다고 법석을 떨었지만, 통금이 야간등반금지라는 이름으로 산에서 되살아나던 당시에는 언론이나 산악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통제근거로 공단은 자연공원법 제28조(출입금지등) ① ‘공원관리청은 공원구역 중 일정한 지역을 지정하여 일정한 기간 그 지역에의 출입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다’를 들고 있다. 또한 동법시행규칙 제20조(출입제한 또는 금지의 공고)는 ‘출입제한 또는 금지에 관한 공고를 함에 있어서는 그 자연공원의 명칭·구역·목적 및 기간을 명시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 (좌)철망에 붙은 철문이 열리자 등산객들이 입산하고 있다. 설악산 한계령 오전 2시.(우)24시간 매표했던 구 백담매표소. 야간산행금지라 쓰인 경고판 앞에서 야간산행하려는 등산객들이 입장권을 사고 있었다.

환경부, “‘별도 개방시까지’ ‘무기한’은 ‘일정한 기간’ 아니다”
공단은 지금까지 2회 공고했다. 첫 번째는 공고 국립공원 제11호로서 1991년 11월 5일자 서울신문 등이며, 두 번째는 1998년에 공고 제98-11호로서 공단 홈페이지에 올렸다. 제한시행기간은 첫 번째 공고에는 ‘1991년 11월 15일부터 무기한’이라 공고했으며, 두 번째 공고에는 ‘1998년 9월 7일부터 별도의 개방시까지’다.


국립공원시민연대는 ‘기간’에 대해 환경부에 법리해석을 요청했다. 그러자 환경부는 “자연공원법 제28조가 규정하고 있는 일정한 기간은 금지 또는 제한을 시작하는 날짜와 종료하는 날짜를 설정하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종료하는 날짜를 설정하지 않은 ‘별도 개방시까지’ 나 ‘무기한’은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법령을 해석했다. 환경부의 해석이 맞는다면, 야간등반 제한 공고는 자연공원법을 위반한 것이다.(환경부 회신공문 참조)


자연공원법에 어긋난 불법시행으로 추정되는데도 불구하고 공단은 야간 등반객들에게 자연공원법 위반이라며 20만 원씩의 과태료를 물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과태료를 물린 경우는 2008년 5월 24일 19:25 지리산 장터목에서 세석 방향 1명, 6월 7일 19:20 중봉 1명, 같은 날 21:15 선비샘 2명 등 4명이다.                


▲ 자연공원법이 규정한 ‘일정한 기간’은 종료하는 날짜를 설정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별도 개방시까지’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환경부 법리해석 회신공문.

그렇다면 시행 이유는 무엇일까? 공단이 밝힌 이유는 3가지다. 첫 번째는 안전사고 예방이다.


공단은 “야간등반 하다가 조난당해 사망한 사람이 1989년에 5명, 1990년에 6명”이라고 밝혔다.(공단 홍보실장 L씨가 월간 산 1991년 12월호에, 이ㅇ복 보호과장은 주간신문인 레저 11월 5일자에 밝혔다) 보호과장은 1991년 11월 8일자 한겨레신문에서 “무리한 야간등반으로 한 해 평균 5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말했다.


횡설수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보호과는 1992년 6월 1일 “야간등반 하다가 1989년 이후 11명(1989년 4명, 1990년 4명, 1991년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필자는 1991년 12월 초순에 공단 홍보실과 보호과장에게 직접 확인했더니 두 실·과는 “사고분석의 어려움 때문에 주·야간별 통계는 없다”고 말했다. 공단은 일구이언(一口二言)을 넘어 일구다언(一口多言)을 했다. 그러나 공단의 주장과는 달리 1989~1991년에 국립공원에서 야간등반으로 인한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는 물론 2~3학년생들도 부모를 따라와서 야간등반을 하고 있다. 그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25시산악회 김영길 회장은 “야간등반은 이마등(헤드랜턴)이나 파카 등 등산장비를 갖추고 등산경험이 많은 사람을 따라 오르고 있다. 야간에 등산 초보자들끼리 등반하라면 무섭다며 안 간다”며 “야간등반은 등산로가 잘 나있는 코스를 택하며, 이정표가 곳곳에 있어서 길 잃을 염려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 야간등반 제한 공고문(1998년 9월 7일)

초등 2학년 어린이도 즐기는 야간등반
두 번째 시행 이유는 산불예방이다. 1987년 7월 공단 창단 이후부터 1992년 6월 1일 사이에 산불건수는 모두 35건인데, 전부가 야간이 아닌 낮에 발생했다. 임업연구원(현 국립산림과학원)은 “밤에는 이슬이 내리고 온도가 낮아져 산불 발생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담뱃불로 인한 산불 발생’에 관한 미국의 실험보고서를 보여주었다. 보고서는 밤에는 이슬 및 낮은 온도로 불꽃이 생기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해가 떨어지면 이슬이 이내 내린다. 풀잎도 옷도 텐트도 공중의 수분이 물방울로 변해 내려오는 이슬에 이내 젖어버린다. 그런데도 공단이 산불예방을 들먹인 것은 직원들 대부분이 등산경험이 거의 없다는 걸 말해준다.


산불이 야간등반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공단의 공원 관리방식에서도 알 수 있다. 공단은 산불이 나기 쉬운 늦가을과 이른 봄인 산불경방기간에도 많은 등산객들이 산 위에 남아 있는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산불감시 직원들을 해지기 전인 오후 3시 30분~5시에 이미 감시현장에서 철수시켰다.


▲ 야간등반 제한 공고문(1991년 11월 15일)

세 번째 시행 이유는 먹고 마시고 떠들며 쓰레기 버리는 행락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야간등반 시에는 헤드랜턴을 켜고 조용히 오르내리지, 먹고 떠들거나 샛길로 빠지지도 않는다. 이렇듯 야간등반 시 행락문제는 없다. 그래도 문제가 있다면 계도나 홍보를 해야지, 전면 금지한다는 것은 미개발국이나 독재국가에서나 벌일 일이다.
그렇다면 공원마다 실제로 야간등반을 통제하고 있는 것일까? 실제로는 활짝 개방되어 있었고 현재도 그렇다.


국립공원시민연대는 야간등반 실태조사보고서를 2002년 9월 발표했다. 조사기간은 1년(2001년 8월~2002년 8월)이다. 야간입산 실태 조사위원회 김정현 위원장은 “통제원을 파견한 곳은 한 군데도 없으며, 매표원만 있다”고 말했다. 공단이 야간 통제를 빌미로 실질적으로 노렸던 것은 등산객의 안전 따위가 아니라 현금이 들어오는 매표였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보고서는 ‘야간입장료 불법 수입’은 연 2억 원 이상으로 11년 동안(1991~2002년) 약 20억 원 정도로 추정했다.


소백산 죽령, 희방사, 삼가, 덕유산 삼공리, 설악산 백담사, 설악동매표소 등은 24시간 매표했는데도 역시 통제는 없었다. 설악산 십이선녀탕계곡 입구의 매표소 직원도 오후 4시면 철수했다. 북한산 송추계곡~여성봉 코스의 매표소는 오후 3시 30분이면 철수했다. 매표직원들은 입산객이 거의 없어진 시각에 철수한 것이다. 이렇게 15개 국립공원 150개 매표소 어디에도 ‘등산객을 위한 야간통제’는 없었다.


▲ 공단이 공원사무소에 24시간 매표를 지시한 공문.(1995년 8월 1일)

야간산행 금지 경고판 앞에서 24시간 매표
해가 지면 입산을 금지하는 곳이 있었다. 지리산 중산리, 백무동, 설악산 장수대, 한계령, 오색매표소 5개소다. 그러나 대부분 자정 또는 오전 2시를 넘기면서부터 매표했기 때문에 야간산행을 일부 허락한 셈이었다.


저녁시간에 입산을 통제한 5개 매표소는 공단이 직영하는 대피소가 있는 코스 입구에 위치했다. 이에 대해 설악산 오색 주민들은 “안전 때문이 아니다. 대청봉대피소(지금은 중청산장) 관리자들이 밤늦게 올라오는 등산객들로 잠을 깨야 하기 때문에 귀찮아서 저녁에는 입산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지리산 천왕봉 코스에는 로타리대피소와 장터목대피소가 있다. 중산리 주민도 “대피소 관리인이 밤늦은 시각이나 이른 새벽에 올라오는 등산객들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일부 매표소에서 저녁입산을 막은 이유가 ‘관리 편의’라는 의혹을 품게 한 사례다.


결국 공단의 야간등반 금지는 안전사고 예방이나 산불 예방, 행락 문제 때문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입산금지하고 있을까?


야간등반 금지는 시행 초부터 허울 좋은 계엄령이었다. 무박산행이 유행하자 야간입산자는 입장권도 구입하지 않고 입산했다. 공단 ㄱ부장은 야간 안내산행에 동행해 대부분 무료 입장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러한 발상을 내놓았다고 한다. 공단은 야간등반을 막으면 낮에 입산할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야간산행은 계속되었다. 일부는 국립공원이 아닌 다른 산으로 행선지를 바꿔버렸다. 입장료 수입을 늘린다는 공단의 의도는 빗나갔으며, 산악 계엄령은 실패작에 그친 것이다.


야간입산을 금지한다고 했으면,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 입산을 막아야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공단은 단속은커녕 야간에도 매표하라는 공문을 공원사무소에 보냈다.


공단은 1995년 8월 1일자로 공원관리소에 발송한 <입장료징수 업무요령(내부관리지침 관리 3200-1973)>에서 ‘입장권 판매시간은 24시간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지시하고 있다. 1996년 12월 당시 공단 기획부장 신ㅇ환씨는 “매표소는 24시간 운영체제를 갖추고 있다”라고 밝혔다. 공단은 외부적으로는 야간입장료 징수를 숨기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징수를 독려해왔던 것이다. 매표소마다 야간등반금지라는 안내판을 내건 채 매표를 했다. 공단은 국민이 아니라 자기네 조직의 편의나 이익만을 위해 여러 제도를 만들고 시행해온 것이다. 국민을 우롱한 것이다.


국립공원 철조망 역사는 오색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오색매표소 좌우로 무료입장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 철망(펜스)으로 국립공원마다 공원경계를 따라 빙 둘러쳤다.


▲ (좌)야간산행금지 경고판.(우)무료입장을 막으려고 국립공원 최초로 철조망을 쳤던 구 설악산 오색매표소. 깜깜한 이른 새벽에 등산객이 입장권을 구입하고 있었다.

입장료 수입 올리려 철조망 치고 야간등반 금지
저녁시간이나 새벽녘 입산을 금지하면 토요일 오후에 집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입산하지 못하고, 공원 입구 업소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당일 등반을 해야 한다. 대도시에서 휴일 아침 일찍 출발해도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의 정상을 당일로 등반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무박등반은 산 위에서 해돋이를 맞고 오후 12시30분~2시경 현지를 출발하여 교통난이 심해지기 전에 귀가하는 등산패턴으로, 바쁜 도시인에겐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하고도 건전한 등반방식이다. 전문산악인들의 등반훈련에서도 야간산행은 필수적이다. 야간등반이 개방되어야 하는 주요 이유다.


입장료제도는 2007년 1월부터 없어졌다. 입장료 수입 올리려던 통제는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이다. 지난해 야간등반금지 위반으로 과태료를 물린 경우는 지리산 4명뿐이다. 그만큼 야간등반으로 인한 유해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했다. 야간등반 금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철조망도, 야간등반도 활짝 열어야 할 때다.


 ▲출처: 글 이장오 국립공원시민연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