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와 만나면 도망가지 말고 가만히 바라보세요”

태백산 관리소, 멧돼지 대처요령 등산로 곳곳에 설치
        “개체수 늘어난 때문…등산객 공격한 예는 없어”

멧돼지의 개체수가 늘어나며 전국 여러 산에서 멧돼지와 느닷없이 조우한 등산객이 놀라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또한 멧돼지가 산비탈 전체를 뒤집는 등 극심한 산지 훼손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태백산 도립공원에서는 8월 중순 하산길에 멧돼지 세 마리가 길에 서서는 사람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아 놀란 등산객이 달아나다가 실족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태백산 관리소는 “이전에도 멧돼지를 보았다는 신고가 여러 건 있었다”면서 “사람들이 멧돼지를 보았을 때 놀라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등산로 입구와 주요지점에 멧돼지 관련 주의사항을 명기한 안내판이나 현수막을 조만간 설치키로 했다”고 밝혔다.


▲ 먹이를 찾아 달려가고 있는 멧돼지무리. <조선일보 DB사진>

작년 가을 북한산에서는 새끼가 포함된 멧돼지 일가족 다섯 마리를 보고 놀란 등산객이 관리소에 신고했다. 이에 도봉구는 ‘즐거운 산행, 야생 멧돼지 조심하세요’라는 제목의 포스터와 산에서 멧돼지를 만났을 때 대응하는 요령을 적은 주의문을 공고했다.


몇 해 전 경기도 연천군 고대산에서 어미 멧돼지를 비롯한 일가족 10여 마리가 줄지어 등산로에 나타나 등산객들이 막대기로 겁을 주어 쫓은 적도 있다. 이태 전 전북 순창군 강천산 군립공원은 등산로에 간혹 나타나는 멧돼지를 쫓기 위해 전주동물원에서 받아온 호랑이똥 5kg을 등산로 여러 군데에 나누어 뿌리기도 했다.


▲ 민가에 내려왔다가 포획된 멧돼지. <조선일보 DB사진>

그러나 태백산 관리소 직원은 “우리도 순찰 중에 멧돼지를 만난 적이 있지만, 멧돼지가 사람을 공격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전하는 등 등산객을 직접 공격한 일은 거의 알려진 바 없다. 동물연구가인 최현명씨는 “멧돼지가 사람에게 대드는 경우는 5~7월 갓 태어난 새끼를 거느린 때 이외는 거의 없다”면서 “멧돼지는 단거리 달리기 속도가 사람보다 훨씬 빠르고 어떤 동물이든지 등을 보이고 피하면 공격하는 것이 습성이므로, 멧돼지를 마주쳤을 때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눈을 주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멧돼지가 산사면 전체를 벌겋게 뒤집어놓으며 설악산의 자주솜대같은 희귀식물 군락을 훼손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동북아식물연구소 현진오 소장은 “희귀식물 자생지는 방책을 해서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멧돼지에 의한 자연적 훼손까지 막는 것은 지나친 개입이란 것이 대체적인 견해”라고 말했다.


멧돼지는 전분질이 많은 고구마, 칡뿌리, 도토리 등을 특히 좋아하고 지렁이와 같은 무척추동물도 먹는다. 최현명씨는 “이들이 필요한 먹이의 양은 하루 약 5kg으로, 이 정도를 구하려면 상당한 면적의 산지를 뒤집을 수밖에 없으며, 그러므로 흔적이 많고 광범위하다고 해서 개체수가 많은 것은 아니므로 섣부른 개체수 조절은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멧돼지가 어느 한 종의 식물을 집중적으로 먹어치워 멸종시키는 일은 거의 일어나기 어렵고, 멧돼지가 땅을 뒤집는 일은 밭갈이와 같은 효과를 발휘, 종국엔 그 지역의 식물 생장상태가 더 좋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安>

▲ 출처: 월간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