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 지리산 천왕봉에서

 

산행일:2004. 12. 19. 일(흐림)

산행코스 및 소요시간

  중산리매표소(04:12)

  칼바위(04:48)

  법계사, 장터목 갈림길(04:53)

  로터리산장(06:27. 1335m)

  개선문(07:26)

  천왕샘(07:58)

  천왕봉(08:20~08:23. 1915m)

  통천문(08:35. 1811m)

  장터목산장(09:07~09:44. 1653m)

  유암폭포(10:22)

  법천폭포(11:12~11:28)

  법계사, 장터목 갈림길(11:38)

   칼바위 아지트(11:41~11:45)

  중산리 야영장(12:07)

  중산리매표소(12:11)

총 산행시간 : 약 8시간 ( 산친구 의 탈진으로 많은 시간소요. 보통 7시간이면 충분)

대 구간별 거리 : 중산리야영장→(3.4km)→로터리산장 및 법계사→(2.0km)→천왕봉→(1.7km)→장터목산장→(5.3 km)→중산리 야영장

소 구간별 거리 : 중산리야영장→(1.3km)→법계사,장터목갈림길→(1.1km)→망바위→(1.0km)→로터리산장,법계사→(1.2km)→개선문→(0.5km)→천왕샘→(0.3km)천왕봉→(0.5km)→통천문→(0.6km)→제석봉→(0.6km)→장터목산장→(1.0km)→병기막터교→(0.6km)→유암폭포→(2.4km)→칼바위→(1.3km)→중산리야영장

총 산행거리 : 12.4km

산행지도

 

산행기

 

“먼저 불암산님의 백두대간 3차 출정을 축하합니다.”

 

   토요일 저녁 7시경. 불암산님 선물 사느라 OKOUTDOOR에 들려서 집에 가는 길이었다. 커브를 돌면 왼쪽은 동천 고가도로로 올라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아랫시장 가는 길이다. 고가도로로 올라서려는 순간.

  컴컴한 고가도로 초입. 60대 후반의 부부로 보이는 노인들이 5m 간격으로 앞엔 할아버지, 뒤에 할머님이 왼손으로 고가도로옹벽을 짚고, 오른손엔 지팡이로 바닥을 더듬으며 편도 왕복2차선 고가도로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앞서가는 차들이 서행을 하며 그들을 피해 고가도로로 올라간다.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 판단하고 비상등을 켜고 차를 급히 세웠다. 유리창을 내리고 보니 두 분은 앞을 보지 못하는 분들이다.

 

  소리를 지르며

“어르신! 여기로 계속 올라가시면 고가도로라 위험합니다. 제차로 길을 막고 있으니까 걱정 마시고 오른쪽으로 무조건 건너가세요. 오른쪽이요. 오른쪽.”

창밖으로 왼손을 내밀어 오른쪽으로 손사래를 치면서 소리를 질러댄다.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앞서가시던 할아버지가 더듬더듬 길을 건너 오른쪽 인도로 올라서신다. 뒤이어 할머니가 내차 보닛을 만지며 길을 건넌다. 룸미러로 뒤를 보니 차들이 줄줄이 서서 기다린다. 두 분이 무사히 길을 건너는 동안 뒤차들은 단 한대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새벽 1시 30분.

아내의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간다. 1시간 정도밖에 못 잤다. 11시쯤에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좀처럼 오질 않아 거실과 방을 왔다 갔다 하다 12시 훨씬 넘어 잠이 든 것 같다.

아들 녀석을 깨워 옷을 입히고 차를 몰아 광양으로 향한다.

광양에서 백운산님을 태운 차는 어둠 속을 뚫고 지리산 중산리로 향한다. 예전 같으면 중산리를 가려면 한참을 돌아서 물어물어 가야했지만, 지금은 삼신봉 터널이 뚫려서 청학동에서 바로 넘어갈 수가 있으니 최소한 20분은 단축된 듯 하다.

 

  중산리 주차장에서 주차비를 받지 않아 흐뭇한 마음으로 주차를 하고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사려는데 여기서 주차비를 받는다. 그것도 4천원씩이나. 좋다가 말았다. 

적지 않은 산님들이 헤드렌턴을 쓰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른다.

칼바위 못 미쳐서부터 백운산님은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잘된 일이다. 저 먼 곳까지 같이 간다는 것은 그의 걸음걸이로 봐서 어울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불암산님은 벌써 앞서 오를 것으로 예상이 되니 그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서 가야할 것이다.

 

어둠 속의 중산리 매표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들 녀석이 아까부터 배가 아프단다. 차안에서 빵을 먹고 바로 잠들은 것이 탈이 난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두 번이나 설사를 한다. 구급낭을 열고 약을 찾아보았지만 소화제와 지사제만 없다. 평상시엔 필수응급약품으로 꼭 가지고 다녔는데,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정작 필요할때는 없다.

  그렇게 탈진상태에서 20여m가다 쉬고, 또 쉬기를 천왕봉까지 반복한다.

따뜻한 물을 먹여가며, 아들녀석의 배낭(2kg 내외로 가벼움)을 아기 앉듯이 앞에 차고 올라가는데 그놈의 작은 배낭이 여간 성가신게 아니다.

하지만 아들녀석의 육체적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진데,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무어라 궁시렁거릴 처지도 아니다.

 

  백운산님에게 전화를 해도 휴대폰이 꺼져있다. 항상 그렇다. 중간에 한 번쯤은 켜보아 누구한테 전화가 왔나 확인 좀 하면 좋으련만....

 전화 통화만 되면

우리가 늦어질것같으니까 기다리지말고 추운데 고생할것 없이 계획대로 불암산님은 대간을 타시고, 백운산님은 장터목산장에서 기다리라고 말하고 싶었다. 

탈진상태에 이른 산친구 1

 

 여기서 포기하고 내려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들 녀석이 참을 만 하단다.

밤하늘에 별들이 초롱초롱하다. 오늘은 일출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반반. 그렇게 어둠 속을 부자는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로타리산장을 지나 개선문에 올라 잠시 땀을 식힌다. 사방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기 시작한다. 일출보기는 글렀다.

 

적막한 로타리대피소

 

  그런데 아들 녀석 배낭에 찔러 놓았던 고소모가 보이질 않는다. 십오륙년전인가 굉장히 비싸게 산 좋은 모자인데 중간에 빠져버린 모양이다. 지지난주에 주작능선에서 강풍에 모자가 날아가 버리더니 오늘도 한 건 했다.

 총각때 어느 해 여름에 이 코스로 아침에 오르다가 가죽수낭(서부영화에서 말을 타고 사막을 횡단할시에 주인공이 먹는 수통하고 똑같이 생겼다. 그 당시엔 굉장히 귀했던 물통이었다.)을 잃어버려 그것을 찾으려고 한참을 내려갔건만 내 뒤에 따라오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한 분이 주웠을 것인데,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하여 결국 못 찾았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요즈음엔 모든 것이 풍족해 그런 일이 있으면 주운분이 손에 달랑달랑 들고 올라가면서 주인을 찾아주었을 것인데....

개선문에서

 

  비상용으로 가져갔던 목도리 겸용 빵모자를 씌워준다. 천왕샘에서부터 강풍이 몰아친다.

천왕봉에서 내려오시는 산님들 옷과 모자에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불암산님의 백두대간 출정식이 천왕봉에서 7시 30분이라 했던가? 출정식을 끝내고 이 모진 바람과 추위에 기다리다 지쳐서 이미 출발을 했을 것이다. 두 분 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정상 50m전 최선호님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불암산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내게 전화를 하셨단다. 축하한다고 전해달란다.

 

천왕샘

 

 강풍과 안개에 휩싸인 천왕봉. 정상석을 찍고 있는데 백운산님이 보인다.

“어! 안 내려갔어?”

곧이어 눈만 빠끔히 내놓은 낯선 남자가 양팔을 벌리며 다가온다.

“○○이 형님!”

목소리는 불암산님이 분명 맞는데 눈만 보이니 언뜻 봐서는 전혀 모르겠다.

진한 포옹을 한다.

“추운데 고생했지. 장터목에서 기다릴 것이지. 괜히 나 때문에 생고생했구먼 그랴아~~. 전화가 돼야지.”

“형님하고 인범이가 온다는데 어떻게 내려가요. 보고 가야지. 전화는 일부러 꺼놨어요.”

“아이고 고맙구먼. 추우니까 장터목가서 아침 먹자구.”

그렇게 짧은 만남이었다.

영하 3.6°C. 체감온도로는 강풍으로 인해 영하 20°C는 될 것 같다.

 

천왕봉에서. 좌로부터 불암산, 산친구1, 히어리, 백운산. 참으로 소중한 사진이다.

 

  그들 두 사람은 안개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그들 뒤를 부자가 부지런히 따라 가지만 그들은 끝내 보이질 않는다.

정상에서부터 장터목대피소까지 상고대가 제법 멋있게 피어있다. 사진 찍으랴 미끄러운 길 아들 챙기랴 바쁘게 쫓아가다보니 장터목이다. 대피소 여기저기를 찾아 돌아다녀보아도 두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다시 전화를 해보지만 “고객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어쩌고저쩌고…….”

백운산님! 제발 전화 좀 가끔씩은 켜보세요.

마지막으로 회색문을 열어보니 아니 이곳은 실내에서 취사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옛날부터 있었던가?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쪽에서 백운산님이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계신다.

“불암산님은?”

“기다리다가 안 오셔서 오늘 성삼재까지 가야 된다고 아까 출발 했어요.”

불암산님 잘하셨습니다. 큰 뜻을 이루시는데 제가 방해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준비한 선물은 어떡한대요. 이럴 줄 알았으면 천왕봉에서 건네드리는건데. 나는 어떡하라구~~~~

부디 무탈 산행, 안전 산행하시어 대업을 이루시기를...

 

천왕봉 부근의 상고대

 

천왕봉을 내려가다가

 

통천문 주변의 풍경

 

제석산 오르다가

 

제석산 고사목 지대에서

 

제석산 고사목

 

고사목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한다.

 

  시장이 반찬이다. 배탈로 고생하던 아들 녀석도 잘 먹는다.

원래는 세석까지 불암산님과 동반산행을 하다가 세석에서 거림으로 하산하려하였으나 그는 이미 떠났고, 게다가 우리 부자가 너무 늦어지고 날씨까지 모지니 여기서 바로 중산리로 하산하기로 결정을 한다.

 지사제를 구하려고 2층으로 올라갔다.

매점 직원에게

“지사제 있어요?”

“예? 지사제가 뭐래요?”

“지사제도 몰라요? 설사 멈추게 하는 약 말이요.”

“내복약은 안팝니다.”

“소화제도 없습니까?

“예. 없습니다.”

“까스명수도 없어요?”

“없다니까요.” 약간 신경질적이다.

“그럼,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어떡합니까? 죽으란 말입니까?”

대꾸가 없다. 졌다. 그냥 돌아서 내려간다. 

의료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겠지만, 이런곳에서 간단한 응급약품(소화제, 지사제, 진통제라도)은 팔 수있게 예외 조항은 두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인범아! 배는 좀 어떠냐.”

“아빠! 이제 괜찮아요.”

다행이다.

 

장터목 대피소의 실내 취사공간에서 백운산님. 렌즈가 금새 김이 서려 사진을 찍는데 애를 먹었다.

 

  병기막터교 못 미쳐서 계곡의 작은 빙폭이 제법 볼만하다.

유암폭포를 지나 한참을 가다가 지도 속의 법천폭포를 오늘은 찾고야 말리라 생각하고 오른쪽의 계곡을 유심히 보면서 내려간다.

 제법 큰 폭포가 나무사이로 희미하게 보인다.

“법천폭포 드디어 찾았어.”

희미한 길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서니 법천폭포 상단부다. 아까 보았던 폭포를 찾아 위로 올라가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내려와보니 백운산님은 이미 법천폭포 하단부에 내려가 있다. 이미 폭포구경을 다하신 백운산님이 계곡에서 올라오시고, 나 혼자 배낭을 내려놓고 다시 계곡으로 내려가 법천폭포 하단부에 이른다.

병기막터교 전의 빙폭

 

유암폭포

 

유암폭포 조금 지나 나오는 고목.

 

해발 약 885m전후에 나오는 무명구름다리.

장터목으로 오를경우 사진의 구름다리 건너기 전에 왼쪽 계곡으로 내려가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큰 계곡과 만난다. 큰 계곡 윗쪽을 쳐다보면 웅장한 법천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안내려왔으면 크게 후회할 뻔 하였다.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족히 높이가 30여m는 될 것이다.

폭포를 좋아하는 내가 웬만한 폭포 보아서는 장관이란 소리를 하질 않는데, 법천폭포는 정말 장관이다. 십여장을 촬영하고 등산로로 다시 올라선다. 법천폭포 안내표시가 전혀 없으니 그동안 이곳을 수없이 지나다녔어도 보질 못했었다.

 

웅장한 법천폭포

 

무명폭

 

법계사와 장터목으로 가는 갈림길.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중산리

 

 칼바위 전에 있는 칼바위 아지트(빨치산)를 둘러보고 중산리 매표소로 세사람은 정다운 얘기를 나누며 내려간다.

 

칼바위 아지트

 

공룡알인가? 칼바위 아지트 앞에서

 

칼바위

 

                                                                                                                                   중산리 야영장

 

    중산리 매표소

 

  오늘은 불암산님도 만나고, 법천폭포도 보았으니 뜻 깊은 산행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산행기 작성하는 동안 불암산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천왕봉에서 만나서 너무 좋았고, 늘보팀 따라잡느라 장터목에서 연하봉까지 8분만에 주파를 하고, 뛰다시피내려가다가 바위에 정통으로 무릎을 부딪쳐 결국은 성삼재까지 가지 못하고 벽소령에서 늘보팀과 함께 마천 삼정리 음정마을로 하산을 하였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다. 3일동안 육십령까지 가려고 준비를 하고 내려오셨다는데....

모든게 내탓인것같아 미안하고, 안타까워 죽을 지경이다.

불암산님! 빠른 쾌유를 빌겠습니다. 죄송해요.

  

 백운산님!

천왕봉에서 불암산님과 추운데 기다리시느라 고생하셨죠?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고함.)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워쩐대유. 

다음부터 그런일(악천후)이 있으면 무조건 장터목 산장에가서 몸 좀 녹이고 쉬도록하세요.

설렁탕 잘 먹었습니다. 아우님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진국 설렁탕을 맛보았습니다.

다음에는 갈비탕으로 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