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릿지코스가 많은 북한산을 종주한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도 못 한 일이었으나 북한산 산행안내책자와 여러 산행기를 읽고 눈이 와서 산행이 위험해지기 전에 결행하기로 한다. 북한산은 우이동에서 출발하여 백운대매표소에서 하루재를 거쳐 백운산장과 위문(백운암문)을 지나 백운대에 올랐다가 원점회귀하든지 백운암문에서 돌밭길을 내려가서 대서문을 거쳐 포장도로를 구불구불 내려가 산성매표소로 하산하는 코스만 알고 애용했는데 90년대 중반부터 1년에 한두번씩 다니던 북한산의 새로운 모습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12월 17일(금요일) 8시 35분에 집을 나와서 쌍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충무로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 타고 불광역에서 내려서 다시 6호선으로 갈아 타고 한 정류장 만인 독바위역에서 내린다. 6호선은 특이하게 응암역이 종점이고 연장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 응암역에서 역촌, 불광, 독바위, 연신내, 구산역으로 가서 다시 종점인 응암역으로 돌아오는 구간은 한 방향으로만 운행하게끔 돼 있어서 지하철로도 단선으로 돼 있다. 이 구간은 여태까지 타 볼 기회가 없었는데 처음 타 보게 된 것이다.

 9시 45분에 독바위역 출구를 나서니 출구 좌측에 북한산 산행안내도가 두 개나 설치돼 있다. 차도 왼쪽의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니 수양헬스사우나 앞이고 사우나를 끼고 골목으로 쭉 들어가서 야산의 산길 같은 곳을 지나서 내려가니 정진사와 등산로의 갈림길이 나온다. 일단 초라한 슬레트지붕의 절인 정진사로 올라가 보고 나서 다시 내려와 등산로로 오른다. 등산로 입구에서 5분 쯤 걸어 오르니 정진매표소가 나타난다. 1600원의 국립공원 입장료를 지불하고 매표소를 통과한다. 등로를 오르니 북한산의 낯선 암봉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인왕산과 안산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족두리봉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족두리봉의 우회로를 한참 걸어 오르니 독박골 입구로 내려가는 길을 가리키는 이정목이 나오는데 철막대를 잡고 족두리봉으로 오르는 길은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는다. 오르던 우회로로 다시 내려가서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 봐도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다. 족두리봉은 그냥 우회하기로 하고 비교적 쉬운 릿지도 하면서 오르다가 바위 틈의 좁은 길도 통과하고 향로봉을 우회하여 비봉으로 향한다.



정진사(좌측)와 정진매표소로 오르는 등산로(우측)의 갈림길.



오늘의 북한산 들머리 - 정진매표소.



족두리봉.



바위 틈의 좁은 길.



쉬운 릿지코스.


 향로봉을 우회하다가 향로봉을 출입통제하는 위험경고판과 목책을 두 번째로 만나는데 이 곳은 오르기가 수월해 보인다. 목책을 넘어서 오르니 우회하지 않고 내가 서 있는 곳까지 오르는 향로봉능선의 위험한 릿지코스가 눈 앞에 전개된다.

 향로봉 정상의 바위 위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다가 눈 앞의 비봉을 줌으로 당겨 찍는다. 다시 향로봉을 내려와서 등로로 나아가니 비봉이 눈 앞에 다가오는데 이 곳은 족두리봉과 향로봉과 마찬가지로 위험경고판과 목책이 설치돼 있다. 주의해서 살펴 보니 암봉 중간 쯤에 난이도가 높은 릿지구간이 있어서 우회하여 나아간다. 그리고 반대쪽의 릿지가 비교적 쉬워 보여 주의해서 오른다. 그러다가 중간 쯤에서 위험을 느껴 기암괴석과 가까이 내려다보이는 사모바위의 전경을 찍고 다시 조심해서 내려온다.



우회하여 오른 향로봉의 위험한 릿지코스.



향로봉 정상.



향로봉 정상에서 바라본 비봉.



비봉으로 오르는 위험한 릿지코스.



비봉 중간 쯤에서 바라본 기암괴석 - 이 쯤에서 릿지 오름을 포기하고 되내려감.



사모바위의 전경.


 사모바위에 닿으니 사모바위도 꼭대기까지 올라간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해 보이고 족두리봉과 비봉에는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았지만 사모바위에는 꼭대기까지 올라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 위험하기 때문일 게다. 사모바위에서 다시 등로를 진행하니 주변의 험한 암봉들이 눈 앞에 다가설 듯한 선명한 조망을 보여주는 승가봉이 나타나고 이어서 돌문바위가 나타난다. 돌문바위를 통과하니 제법 험한 암릉의 내리막길이다. 그리고 북한산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암봉들의 모습에 압도된다. 우이동에서 오르는 등로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암봉들이다. 계속 등로로 나아가니 문수봉을 우회하는 등로를 지나게 된다. 가파른 돌밭길을 숨가쁘게 15분 쯤 오르니 청수동암문이 나타난다.



사모바위의 근경.



승가봉.



돌문바위 입구.



돌문바위 출구.



문수봉을 우회하여 청수동암문으로 오르는 가파른 돌밭길.



청수동암문이 보이는 나무계단길.



청수동암문.


 청수동암문을 통과해서 대남문으로 가는 우측길로 향한다. 오르기 힘든 문수봉에는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 나무 줄기에 앉아 있다가 공중을 선회한다. 문수봉 옆의 국기가 게양되지 않은 국기봉에 올라 늦은 점심 식사를 한다.

 국기봉에서 바라본 보현봉의 모습이 멋지다. 까마귀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 오른다. 이 역시 멋진 모습이다. 문수봉 밑의, 비봉능선 쪽의 기암괴석들도 빼어난 암릉미를 보여주고 있고 기암괴석들이 미의 제전을 벌이는 위쪽으로는 비봉능선의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의 모습이 보란 듯이 장쾌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저 멀리로는 산성주능선을 통해 도달해야 할 삼각산의 세 봉우리와 노적봉의 모습이 우이동 쪽에서 보는 것에 비해 훨씬 더 우람한 모습으로 늠름하게 시야에 펼쳐진다.



점심 식사를 한 국기봉.



국기봉에서 바라본 보현봉.



국기봉에서 내려다본 기암괴석의 향연.



까마귀들의 비상.



까마귀들의 소굴인 문수봉.



비봉능선의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과 사모바위.



국기봉에서 바라본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와 노적봉.


 국기봉을 내려와서 대남문 쪽으로 향하니 비봉능선의 끝이자 산성주능선의 시작이 되는 대남문과 북한산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성곽을 따라 걷다가 대남문의 성루에 닿아 계단을 내려가서 정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대남문 앞에는 구기동으로 내려가는 기나긴 나무계단길이 설치돼 있고 그 우측의 샛길을 150 미터 내려가면 문수사로 가게 된다. 암릉을 오르고 식사를 하느라고 수통의 물이 다 비어서 식수를 구하기 위해 문수사로 내려간다. 문수사에 닿으니 암벽의 천연동굴에 암자를 만들어 놓은 삼각산 천연문수동굴의 모습이 이채롭다. 그리고 절벽 위에 세워진 문수사의 난간 앞에서 바라본 보현봉의 장엄한 모습에 시선이 집중된다. 문수사의 약수터에서 물을 잔뜩 마시고 수통에 가득 채우고 나서 다시 대남문으로 오른다.


대남문과 북한산성.



대남문.



대남문에서 문수사로 내려가는 길.

 

삼각산 천연문수동굴.



삼각산 천연문수동굴 내부.



문수사에서 바라본 보현봉.



문수사 대웅전.



문수사 약수터.



대남문에서 구기동으로 내려가는 기나긴 나무계단길.


 성곽을 따라 오르니 인공적으로 축조한 성곽이 아니라 자연적인 바위로 이뤄진 성곽이 나타나는데 절벽을 향해 돌문이 나 있다. 이 이채로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성곽을 따라 진행하니 저 멀리 동장대가 보인다.

 대성문에 닿아서 성루에서 내려가 정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런데 이 때부터 디지털 카메라의  LCD 모니터에 전지 잔량이 부족하다는 표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중에 헤아려 보니 벌써 251장째의 사진을 찍은 것이다. 북한산의 우이동 쪽에서 보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경치에 반해 셔터를 정신없이 눌러대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예비전지도 준비하지 않았으니 앞으로 아주 긴요한 사진 몇 장 이외에는 찍지 못 하게 된다.

 북한산성을 따라 진행하면서 바라보이는 삼각산과 노적봉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삼각산의 모습이 시야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런데 암문인 보국문은 보지 못 하고 지나치게 된다. 아마 보국문 부근에서 성곽과 조금 떨어진 등로로 진행하다 보니 못 보고 지나친 모양이다. 대동문을 지나서 조선시대 북한산성의 최고지휘소였다는 동장대에 도착한다. 그리고 동장대를 지나서 용암문에 이른다.



북한산성의 돌문.



길게 이어지는 북한산성길.



대성문.



북한산성에서 바라본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



동장대.


 용암문을 지나서 완만한 흙길을 걷다 보니 가파른 돌밭길이 기다리고 있다. 돌밭길을 한참 지나고 나니 드디어 만경대의 와이어로프지대가 시작된다. 배터리가 거의 다 소진돼 이 지대와 노적봉, 만경대, 원효봉, 염초봉과 스타바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오지 못 한 게 너무나 아쉽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경대의 와이어로프지대는 무척 길다. 위문에서 백운대를 오르는 와이어로프지대에 익숙하다 보니 이 지대도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군데군데 가파르고 위험한 부분이 있어서 조심해야 되고 특히 암반에서 흘러나온 물이 고여서 군데군데 결빙이 돼 있어서 이 곳을 밟다 미끄러지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만경대의 와이어로프지대에서 바라본 백운대의 웅장한 슬랩을 카메라에 담는다. 백운암문에서 백운대로 오를 때 보이는 모습과 비교해 보면 더 우람하고 남성적인 모습이다. 록클라이머가 아닌 한 접근할 수 없는 수직의 거대한 슬랩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백운대 밑의 노적봉의 슬랩도 상당히 우람한 진면목을 보여준다.

 만경대의 와이어로프지대를 통과하니 백운암문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백운대에서 주로 대서문으로 하산하던 내게는 낯익은 계단이다. 이 나무계단도 내 기억으로는 작년인가 재작년에 설치된 것이다. 그 전에는 울퉁불퉁한 돌밭길을 내려가느라고 고생했었는데 산행객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인공의 계단이다. 나무계단을 올라 백운암문에서 백운대로 오르다가 중간에 바위 위에 앉아 쉬면서 간식과 따뜻한 코코아차를 마신다. 일몰시각이 다 돼서 오래 쉬지도 못 하고 서둘러 백운대의 와이어로프지대를 오른다.

 17시 경에 간식을 먹으며 쉴 때에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하산하는 것을 보았는데 힘겹게 백운대를 오르니 일몰시각이 지난 17시 18분이다. 정상에는 아무도 없고 수분간 주위를 조망하다가 하산을 서두른다.

 와이어로프를 잡고 백운대를 되내려와서 백운산장에 도착하니 17시 47분. 벌써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져 있다. 배낭에서 후래쉬를 켜 들고 등로를 내려선다. 이 길은 십오회 이상 오르고 다섯 번 이상 내려갔었지만 오늘처럼 일몰 후의 하산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서 긴장이 된다. 더구나 장시간의 종주 산행을 한 후의 지친 상태라서 각별히 조심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군데군데 물이 얼어 있어서 살짝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조심스럽게 등로를 따라 내려간다. 그러다가 후래쉬의 불빛이 약해져서 건전지를 교체하니 꽤 밝아진다.

 인수산장에서 하루재로 가는 돌계단길을 오른다. 하루재에서 돌계단길과 돌밭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와서 도선사 광장으로 내려오니 18시 41분. 손목시계와 디지털 카메라의 시각 표시가 달라서 나중에 확인해 보니 디지털 카메라가 5분 정도 더 빠르다.

 11월 하순부터 통증이 있었던 무릎이 장시간의 산행으로 꽤 아프다. 아무래도 앞으로는 산행횟수를 줄여야겠다.

 도선사 광장에 대기하고 있던 도선사 버스에 오른다. 운전기사가 등산객은 적당히 시주를 해야 된다고 해서 요금함에 천원을 넣고 자리에 앉는다. 잠시 대기하고 있던 버스는 출발하여 가파른 내리막길을 달려서 5분 만에 버스 종점에 닿으니 19시가 다 된 시각이다.

 독바위역부터 도선사 광장까지 9시간에 걸친 장시간의 고달픈 산행이었지만 결코 단조롭지 않은 북한산의 더 웅장하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뜻깊은 종주 산행이었다.



만경대의 와이어로프지대에서 바라본 백운대의 웅장한 슬랩.


일몰 직후에 오른 백운대를 내려서며... - 해발 836.5 미터.



오늘의 북한산 날머리 - 백운대매표소.



오늘의 산행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