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답사 2 (윤선도 유적지 답사로 대신한 보길도 격자봉).

예송리 해수욕장과 예작도 풍경

◈ 위치 :전남  해남군 송지면 땅끝.완도군 보길면.
◈ 일시 : 2004.12.04(토)
◈ 날씨 : 간간이 비뿌림.
◈ 인원 :
3명. 아내와 딸
◈ 지도 :

보길도.완도지도.            <아래의 사진들은 누르면 큰그림이 보입니다.>
보길도 완도지도 

◈ 답사후기 :
오늘아침 일출시간은 해남지방이 07:25분이고 일몰은 17:23분이란 것을 보니 해가 많이도  짧아졌다.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밤새 비가 좀 뿌렸는지 길거리가 질펀하다.
새벽에 마땅히 매식을 할데도 없을듯하고 점심도 시간이 어떨지 몰라서
일찍 일어나서 밥을 해먹고 혹시라도 일출을 볼 수 있을까 해서 땅끝전망대로 차를 몰았다.
올라가는 도로하고  주차장은 변한게 없는듯한데 주차장에서 전망대 가는길은  5분쯤 걸리는데
나무모양을한 시멘트기둥으로 갈고 계단도 새로 만들었다.
전망대도 전에는 나선형 계단으로 이층이었는데 지금은 높은 현대식 전망대로 변했다.
전망대 꼭대기로 오르내리는 에리베이터는  1000원인데 아직 직원이 나오지 않아서 문이 잠겨있다.
이층에 올라가서 바다쪽 보다는 우선 달마산쪽에서 힘차게 내려오는 땅끝기맥을  살펴본다.
땅끝기맥은 호남정맥이 영취산에서 시작해 내려오다가 보림사를품은 가지산에 오기전에   
깃대봉과 삼계봉사이의 바람재옆 434봉에서 왼쪽으로 분기하여
월출산.두륜산.달마산.도솔봉을 거쳐 토말까지 이어지는 123 여km에 이르는 산줄기를 말한다.
이빨빠진것처럼 듬성듬성 가본 저 기맥을  빨리 깨긋이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바다는 비가 오락가락해서 일출을 보는 것은 어림없는 얘기고 그나마 바다에 떠있는 섬들과
지나는 통통선이 보이는것만도 다행스런일이다.멀리서 아직 불을켜고 조업하고 있는 배들이 보인다.
전망대 앞에는 갈두산 봉수대의 설치시기. 봉수 방법등에 대한  안내판이 있고
그아래로 땅끝탑으로 내려가는 계단길이 시작된다.
이왕 왔으니 바닷가에 있는 토말탑도 다시한번  내려 가봐야겠다. 500m라는데 가팔라서 기운깨나 빼는곳이다.
전에도 거길 내려갈려면 한참을 돌길을 내려 갔는데  지금은 요 근래에 새로 한듯한 나무계단길을 만들었다.
지난봄에 왔을 때도 없었다고 마눌이 얘기한다.계단을 세어보면 아마도 수백을 헤아릴것이다.
그래도 돌길보다는 깨끗하고 훼손도 덜될 것이다.중간중간 숨돌릴곳도 만들어 놓았다.
토말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봉화대에서 남쪽 아래 500m 거리에 있는  우리나라 육지부의 최남단인 지점이다.
이곳은 북위 34도 17분 21초, 동경 126도 31분 33초 지점으로
조국의 무궁함과 땅끝임을 알리는 높이 10m에 바닥면적 3.6제곱미터인 땅끝탑이 세워져 있다.

1987년 7윌에 건립된 땅끝탑에는 사면에 시인 손광은이 지은

이곳은 우리나라 맨끝 땅 /
갈두리 사자봉 땅끝에 서서 /
길손이여 /
토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
먼 섬 자락에 아슬한 /
어룡도 백일도 흑일도 당인도까지 /
장구도 보길도 노화도 한라산까지 /
수묵처럼 스며가는 정 /
한 가슴 벅찬마음 먼 발치로 /
백두에서 토말까지 손을 흔들게 /
수천년 지켜온 땅끝에 서서 /
수만년 지켜갈 땅끝에 서서 /
꽃밭에 바람일 듯 손을 흔들게 /
마음에 묻힌 생각/
하늘에 바람에 띄어 보내게

 라는 내용의 시구가 하단부에 음각되어 있다.

토말탑을 둘러보고 아내와 딸은 지름길인 바닷갓길로 해서 막바로 땅끝마을로 가고
나는 차를 회수하러 급하게 올라온다.8시 20분배는 애초에 포기하고 9시 40분배를 탈려고 했는데
뛰어가면 8시 20분배도 탈지 몰라서 서두른다.2분을 남기고 겨우겨우 보길도행 8시20분 배를 탄다.
일반요금 1인 7000원.승용차는 운전자포함 20000원.땅끝에서 보길도 들어가는 배시간표는
07:00. 08:20. 09:40. 11;00. 12:40. 14:00. 15:20. 16:30.전화.061-535-5786.해광운수

▼    땅끝 전망대     07:25  ▼
땅끝 전망대

▼     갈두산 봉수대     07:29    ▼
갈두산 봉수대


 
▼  토말탑 내려가는 긴 계단길   07: 41  ▼
땅끝탑 내려가는긴 계단길 

 ▼      땅끝탑       07:49   ▼
땅끝탑 

▼     땅끝 선착장에서 본 땅끝 전망대    08:20    ▼
땅끝 선착장에서 본 땅끝탑 

8시 20분에 떠난배는 보길도까지 1시간쯤 걸리는데 중간에  넙도를 들린다.
넙도 방파제에 일렬로 늘어선  화물차들이 꼭 사진으로 본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 같다.

▼  중간 경유지  넙도모습    09:03   ▼
넙도모습 

보길도는 완도군에 속하는 도서로서 완도본도에서 32km떨어지고,해남반도 땅끝에서 12km 떨어져 있다.
섬의 크기는 동서거리 12km 남북거리 8km이고 면적은 32.98㎢에 이른다.

보길도에는 예송리.통리.중리등 해수욕장과  격자봉.망월산.뾰족산등산과 송시열 글쓴바위가 있고
특히 보길도에는 고산 윤선도의 유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데 어부사시를 쓴 세연정.
윤선도가 살던집터인 낙서제터.윤선도의 아들이 살던 곡수당터.부용동 제일의 절승지인 동천석실.등이 있다.
보길도홈페이지.  http://wando.koreadong.com/bogil/ .       http://www.bogildo.com/    

보길도 청별선착장에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큰길을 따라 가다 언덕을 올라가서 보길중학교앞을 지나 조금 내려가서는 우측으로 올라가는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 조금 들어가니 세연정 매표소가 나오고 길은 우측으로 꺽어지며 좌측에 보길초등학교가 보인다.
세연정은 내려오다가 보기로하고 계곡안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윤선도 체험장을 지나 좀더 올라가면 부용리 사무소 앞에서 좌측으로  낙서제.곡수당터 안내판이 보인다.
우측길로 들어서 다리를 건너면  우측에 동천석실 0.4k안내판이 있고  주차공간이 있다.
앞에는 수원지 제방뚝이 멀리 보이고 우측 개울건너로 산중턱에 파란지붕의 동천석실이 올려다 보인다.
입구의 하천은 정비중이고 성곽같이 잘쌓은 하천을 건너 숲길로 올라간다.
15분쯤 올라가면 앞에 큰 암벽이 나오고 건너편에 동천석실 정자가 올려다 보인다 .
앞은 인위적으로 만든듯한  작은 소도 보인다.
바위면을 왼쪽으로 올라 우측으로 나가면 사방한칸쯤되는 정자가 보인다.


▼      동천석실입구  뒤로 보길수원지뚝이 보인다   09:41     ▼

동천석실입구 

▼  동천석실입구에서 본 동천석실. 중앙윗부분 파란지붕  ▼
동천석실 

▼  동천석실.  사방한칸쯤되는 정자로 경치가 좋다 09:59 ▼
동천석실 

▼  동천석실에서 내려다 본 격자봉(적자봉) . 낙서제와 곡수당지 09:53  ▼
격자봉과 낙서제


 ▼    소나무뒤로 동천석실이 보인다.    ▼
 
동천석실(洞天石室). 동천이라는 뜻은 산천이 두루 경치 좋은 곳이란 의미도 되고, 신선이 사는 곳도 되며, 하늘로 통한다는 뜻도 된다. 석실은 석조로 된 거실임은 물론이지만 산중에 은거하는 방이나 책을 잘 보존해 둔 곳이란 뜻도 된다.1000여평되는 공간에 석제(石悌)와 석문(石門), 석담(石潭), 석천(石泉), 석폭(石瀑), 석대(石臺) 및 희황교(羲皇僑)유적이 있다. 고산 윤선도는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했다. 그리고 해 저물녘에 차를 끊이는 연기가 선경 처럼 보였다하여 석실모연(石室募烟)이라하고, 부용동 8경이라 했다.

동천석실에서 내려다 보는 부용리 전경이 그지없이 평화롭다.
오늘은 해 저물녘의 차 끓이는 연기가 아니라  비구름 연기가 격자봉을 감싸고 올라가고 있다.
다시 내려와서 부용리 사무소앞에서  낙서제 안내판을 따라 우측으로 들어가니 좁은 산길은 다시
두갈래로 갈라지는데 직진 해야하는지 좌측위로 올라 가야할지 알수가 없다.
나중에 보니 직진길은 격자봉으로 직접 올라가는 산신당골길이다.
망설이다가 좌측윗길로 올라가니 곡수당터 안내판이있고 계곡건너로 발굴현장이 건너다 보인다.
곡수당터(曲水當)는 윤선도의 자제 학관이 기거했던곳으로 규모는 세연정보다 적은 정자였단다.
좁은산길을 더 올라가니 더는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주차할 공간이 있고 우측위로 낙서제터가 보인다.
낙서제(樂書齊)는 윤선도가 살았던 집터이고 둘러쳐진 돌담을 보면 상당히 큰집이었나보다.
뒤에 있는 바위는 소은병(小隱屛)이라는  바위로 윤선도가 사색하던 바위란다.
지금은 복구작업을 하려는지 주변의 나무들을 베어 정리 중이다. 
낙서제에서 우측으로 200m쯤 나가서  산신당골로 오르면 격자봉이라는데  비가 오는데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  산행을 하자고 마눌이나 딸보고 할 수가 없다. 올라봐야 전망도 전혀없을테니 참을수밖에...


▼     낙서제와 소은병 바위    10:42     ▼
낙서제와 소은병 


▼   곡수당지     10:48   ▼
곡수당지 
 

▼   윤선도 체험공원   11:00   ▼
윤선도 체험공원 

세연정(洗然亭)
우리나라 조경유적중 특이한 곳으로, 고산의 기발한 착상이 잘 나타난다. 개울에 보를(판석보, 일명 굴뚝다리)를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로 조성된 세연지는 산중에 은둔하는 선비의 원림으로서 화려하고 규모가 크다. 어부사시사는 주로 이곳에서 창작되었다.세연정에 편액을 달았는데, 중앙에는 세연정, 남쪽에는 낙기란(樂飢欄), 서쪽에는 동하각(同何閣), 동쪽에는 호광루(呼光樓)라 하였다. 세연정은 1992년 12월 복원 되었다.(청별선착장에서 도보로 20분,차량소요시간 5분).민박시설 잘되있다. 고산의 5대손인 윤위가 쓴 "보길도지'에 나온 윤선도의 세연정에서 지낸 모습이란다.호화의 극치를 보는듯한데 그때 평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 거대한 돌들은 계곡위에도 아래에도 안 보이는데 어데서 가져온것일까?
 

◈공은 늘 무민당에 거처하면서 첫닭이 울면 일어나서 경옥주(瓊玉酒)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세수하고 단정히 앉아 자제들에게 각기 배운 글을 읽고 토론케 했다.
아침식사 뒤에는 사륜거(四輪車)에 풍악을 대동하고 곡수(曲水)에서 놀기도 하고 혹은 석실(石室)에 오르기도 했다.
일기가 청화(淸和)하면 반드시 세연정으로 향하되, 곡수 뒷산 기슭을 거쳐 정성암(靜成庵)에서 쉬곤 했다.
학관(고산의 5남)의 어머니는 오찬을 갖추어 소거(小車)를 타고 그 뒤를 따랐다. 정자에 당도하면 자제들은 시립(侍立)하고,
기희(妓姬)들이 모시는 가운데 못 중앙에 작은 배를 띄웠다. 그리고 남자아이에게 채색옷을 입혀 배를 일렁이며 돌게 하고,
공이 지은 어부수조(漁父水調)등의 가사로 완만한 음절에 따라 노래를 부르게 했다.
당 위에서는 관현악을 연주하게 했으며, 여러 명에게 동?서대에서 춤을 추게 하고 혹은
긴 소매 차람으로 옥소암(玉簫岩)에서 춤을 추게도 했다. 이렇게 너울너울 춤추는 것은 음절에 맞았거니와
그 몸놀림을 못 속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서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칠암에서 낚시를 드리우기도 하고
동?서도(東西島)에서 연밥을 따기도 하다가 해가 저물어서야 무민당에 돌아왔다. 그 후에는 촛불을 밝히고 밤놀이를 했다.
이러한 일과는 공이 아프거나 걱정할 일이 없으면 거른 적이 없었다한다.
이는 ??하루도 음악이 없으면 성정(性情)을 수양하며 세간의 걱정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


▼  세연정  좌우에 춤을 추었다는  동대 서대가 있다 11:19  ▼
 
세연정

▼  세연정  뒤에서 본 모습      11:25  ▼세연정

▼  어부사시사 시비 춘.하.추.동   11:25 ▼
어부사시사 시비
 
▼     세연정  연못     11:30  ▼
세연정 

▼ 세연정 내부 온돌난방 하는 아궁이가있다  11:37▼
세연정내부 온돌난방 

▼    판석보(板石洑·굴뚝다리)     11:44   ▼
판석보(굴뚝다리) 
<우리나라 조원 유적중 유일한 석조보로 세연지의 저수위 조절을 위해 만들었다. 평소에는 돌다리가 되고 우기에는 폭포가 되어 수면이 일정량을 유지하도록 했다. >

세연정을 둘러보고 나와 보길중학교앞에서 청별 선착장은 왼쪽으로 내려가고 직진해서 섬 우측의 예송리로 가본다.
좌측에 글쓴바위. 통리. 중리. 해수욕장가는 갈림길을 지나서  꼬부랑도로를 따라 산을 넘어가면 전망대 정자가있고
 예송리해수욕장과 예작도의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진다 .날이 좋으면 우측위로는 격자봉이  올려다 보일텐데 오늘은
비가 와서 구름에  덮혀 있어 보이는 것이 없다. 예송리 몽돌 해수욕장에 떠있는 작은 배들이 정겨웁다.
비가 오는데도 세명의 등산객이 격자봉쪽에서 내려온 것을 보니  격자봉을 오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  전망대에서 본 예송리 해수욕장과 예작도 12:06. ▼
예송해수욕장과 예작도

      예송리 해수욕장 과  예작도    12:15.  ▼
예송리 해수욕장과 예작도 


같은 배를 타고온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를 찾은  " 문화유적 답사반 "이  예송리 해수욕장엘 오는 것을 보면서
차를 되돌려 고개를 다시 넘어와서  우측의 통리.중리 해수욕장을 지나 중리 선착장엔 여름에만 정기여객선이 들어오는지
매표소 간판만있고  시간표도 없고 안에는 어구들만 보인다.도로는 여기서 끝이 나는 듯 보이지만 매표소를 돌아가면
다시 길이 이어진다. 좀더 가면 백도리 마을이 나오고 송시열 글쓴바위는 해변을  좌측으로 돌아서 산을 넘어 가는데
좁은 외길이라서 마음이 불안하다. 넘어가다가 저쪽에서 넘어오는차와 마주치면 진퇴양난이다.비는 쏫아 지는데
피할곳도 없다.고개를 넘어서  내려가니 몇가구 있는 선백도 마을이고 글쓴바위 500m 안내판이 보인다.
도로끝에는 주차공간이 있는공터가 있고 차에서 내려서 해변쪽으로 나가면 글쓴바위 안내판이 있는데 송시열의
글쓴바위의 위치가 좌측인지 우측인지를 지워놔서 알수가 없다.절벽아래를 내려가서 좌측 우측으로  한참을 헤맨다.
결국 찾은 곳은  우측으로 30여 m 돌아서 남쪽으로 꺽어지는 지점에 있는데 글씨가 마구잡이로 탁본을 해서
검게 물들어서 무슨  글자인지  알수가 없다.글자도 생각보다는 크기가 작다.이글은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숙종5년(1689) 왕세자 책봉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제주도로 귀향을 가는도중 풍랑을 만나
이를 피하려고 백도에 내려 며칠 머무는 동안에 새기었다고 한다.윤선도와 송시열의 인연은
참으로 질기고 질긴 모양이다. 윤선도를 귀양살이로 내몰았던 송시열이 말년에 귀양살이를 떠나다
머문곳이 보길도였으니 말이다.  이내용은 이렇다.

 八十三歲翁 蒼波萬里中  (팔십삼세옹 창파만리중)  
여든셋 늙은 몸이 멀고 찬  푸른바다 한 가운데 있구나.

 一言胡大罪 三黜亦云窮 (일언호대죄 삼출역운궁)
한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이길래 세 번이나 쫓겨나니 궁한 운수로다.

 北極空瞻日 南溟但信風 (북극공첨일 남명단신풍)

북녘 끝 부질없이 님을 우러르며 남녘바다 바람 잦기만 기다리네.

 貂裘舊恩在 感激泣孤衷  (초구구은재 감격읍고충 )

담비 갖옷 내리신 옛 은혜에  감격하여 외로운 충정으로 흐느끼네.

▼ 송시열의 글쓴바위 건너편은 소안도이고 북으로 노화도가 보인다. 13:15.▼

글쓴바위

서둘러 청별 선착장으로  돌아와서 2시에 떠나는 완도 화흥포로 가는 배를 탄다.
이배는 노화도 이목항.동천.소안도를거쳐 완도 화흥포로 가는데 소요되는 시간도 비슷하고(1시간)
요금도 같다.일반7000원 차량20000원(운전자포함). 소안농혐에서 운행하는 카페리호 시간표는
보길도에서 6:50. 8;20. 9;30. 12:00. 14:00. 15:00. 16:40.에 있다.(http://www.soannh.com)

▼보길도 청별항모습 . 보길도와 노화도.소안도를잇는 다리가 공사중이다 ▼
보길도 청별항 모습 

▼ 완도가는 배안모습.땅끝에서 보길도 가는 배는 난방이 안됐는데
완도가는배는 바닥이 난방이 돼 있다 ▼
 
선실내부

완도 화흥포에 내려서 정도리 쪽으로 갈까 하다가 소세포에 있는 드라마 "해신(海神)촬영지를
들려 보기로 하고 좌측의 방파제길을 따른다.승용차만 겨우 지날수 있도록 막아 놓았다.
이길이 섬을 좌측으로 도는 77번도로(전에는827번도로)인데 이렇게 불량한가   했더니  아니다.
77번도로는 제방길을 건너가서 좁은 마을길을 건너가면 본래의 77번도로가 나온다 .좌회전하여
언덕을 넘어가니 왼쪽 아래로 해신 촬영지와 바다가에 셋트장과 배들이 보인다.
마침 촬영이 있어서 최수종이도 오고 누구도 오고 했단다.비가와서 엉망인 흙길을 내려가 보니
비를 홈빡 맞아가며 촬영을 하는데  저짓도 자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못할짓이리라...

▼ 완도 소세포에 있는드라마 "해신" 촬영장 15:53 ▼
드라마 해신 촬영장 

촬영장을 나와서 북으로 달려가 전남 도립 완도 수목원을 들려 보려고 이정표를 따라서 우측으로 들어간다.
곧을길을 따라 들어가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 멀리 큰집들이 있는 마을길로 차들이 드나들어 지도를 보니
그길은 싸리재방향이고 수목원은 우측좁은길로 더 들어간다. 저수지를 우측에 끼고 조금 오르니 그림같이
아름다운 수목원 나온다.입장료는없고 나무마다 이름표를 달아서 그동안 자주 보기만했지 이름은 모르는
나무들이 많다.차근차근 둘러보고 배우면 좋겠지만 비는 오고 날은 이미 어두워서 시간이 없다.
백운봉.상황봉으로 오르는 산길 이정표가 있으니 이쪽으로 올라서 한바퀴 도는것도 좋을듯싶다.
간단히 돌아보고 밤길을 달려 완도를 반바퀴 돌면서 불묵리쪽 숙승봉 들머리와  대야리 백운봉 들머리를
짐작해 보면서 완도읍에가서 바다가 보이는 모텔에 짐을 푼다. 여기도 깨끗하고 괜찮다.(35000원)

▼  전남도립 완도 수목원 17:05 ▼
완도 수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