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산정호수 좌능선

산행시간  . 2시간30분 완료

산행의 목적 . 송년회

참가인원:  137명

 

산정호수 주변 산행시작  11시출발 좌능선 등산로가 확실하지 않아 선두에서 길을 내면서 산행을시작한지 30분정도 능선에 도착하니 건너편 양쪽에는 한쪽은 명성산이요 또한쪽에는 골프장이니 앞으로가는 능선에는우리산악회원뿐 이 길을 산행하니  모두들 경치에 놀라와한다 사실 산정호수 물을보면 완전히 막걸리처럼 오염되있지만 그곳에는 오리배 를타고 물놀이 하는모습도 보이지만 ...

 

이 산정호수는 1925년 토지개량 조합에서 저수지로 만들어진 인공 호수이며 .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1960년 초반부터 관광지로 각광 받기 시작하여 현재는 각종 위락 시설을 갖춘 호반 유원지가 되어 있는곳이다.

그리고 그 위에 위치한 명성산은 강원도 철원군갈말읍과 경기도 포천군 영북면 그리고 이동면과 경계를 이루는 산이며 이산은 글자그대로 울음산 이라고 전하는 이유는 . 신라말 마의 태자가 망국을 한탄하며 울 때  명성산이 같이 울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궁예가 부하였던 왕건에게 쫓기어 명성 산에서 성을 쌓고 버티었으나 운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식솔들과 헤어질 때 대성통곡하여 명성산이 함께 통곡하며 울었다는 설도있다.

지금도 여름 비가 내린 밤이면  그 울음 소리가 메아리 처럼 들린다고 한다.

 

 

인간이 태어난 것을 생이라고 하며 생은 어린 시절 청년기를 거쳐 노년기를 밟는다.

그과정을 장이라고도 하며 ,장의 종점은 늙음인 셈인데 그 종점까지 다 밟는 사람도 있고 다 가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명은 목숨의 것이 아니라 하늘에 것이라고 하며 철학적 해석에서 운명은 천명을 깨우치게 한 것이다

포천에는 큰 인물이 많이 묻혀 있는 곳이다.  당대에는 난신 이요 죽어서는 충신 소흘면 무봉산 입구 충신 목단 유응부 만인에 애송시 ,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봉래 양시언. 양시언은  금주산에 묻혀 있으며 사랑인 길병사는 일동면 에 세워져있다. 양시언은 글씨와 문장이 뛰어났으며 , 전설을 많이 남긴 인물이다.

이시대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어디 가서 아픔을 고칠까 정신병원을 찾는 경우도 있겠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우리 세상을 내주머니 속에든 지갑이다. 손수건처럼 생각하지 말고 분수대로 덕을 쌓으며 산을 통해 산문화를 꽃피우자,

갖가지 웃음을 제조하는 우리산악회 웃음이 없는 하루는 지극히 삭막한 하루일것이다.

 

 

포천에 황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한집에서 본처와 소실을두고 살았다. 그러니 본처와 소실이 매일 싸움질을 하다보니 황씨가 외출에서 돌아와보니 싸움질이라.  집안이 말이 아니다.

이웃보기도 부끄럽고 동네 사람보기도 부끄러울 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두둔할 수 없는 형편이니 겨우 싸움을 말리고 두 사람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조용히 타일렀다.

,, 밤낮 싸움질이니 부끄러워 어디 살겠느냐 도대체 외들 그러는거냐 제발 이 지 아비좀 생각해라,, 타이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 두 사람이 다시 싸움을 시작하니 본처를 쥐어박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소실 멱살을 잡아끌면서 ,, 이런 년은 당장 죽여 없애야해,, 하면서 옆방으로 끌고 들어 갔다   그런 뒤로 한시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는지라 본처는 정말 죽인게 아닌가 겁이 났다. 그래서 옆방 문틈을 들어다보니 두년놈이 옷을 홀랑 벗고 꼭 껴안은채 그짓이 한창이니 본처는 두 눈이 뒤집힌 채로 방문을 활짝 열면서 방으로 들어가 황씨 물건을 잡고 이런 것이 죽인 것이 라면 이놈아 나부터 죽여라 왜날 안죽여 주고 이년을 이런식으로 죽여주는 거냐고 황씨 물건을 힘껏 잡아당기니 황씨 물건이 쓸모 없게 되었다고 한다 ..

 

 

인생을 살아가면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사랑병과 상사병이 아닐까, 지나간 사랑의 그림자 순수하게 불타올랐던 그 마음 그리고 상대방의 모습일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결국 사랑을 얻기 위해 부단한 노력, 문학에서 포현하는 이런 사랑  인생은 사랑으로써 아름다 워지고 보람있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래 사랑이 어찌 남녀간의 사랑만 있겠는가

부모 자식 이웃 종교적 사랑이 있는가하면 나라사랑 자연사랑 이있다.

요즘 남녀 사랑이 다른 문화도 그렇듯이 세대간 모습이 매우 다르다 40대 이상의 새대는 요즘 현대적 사랑을 이해히기어렵다 결혼도 늦고 독신주의자가 늘고 있으며 성을 소중히 하기보다는 상품화 내지는 즐기는 도구로 변해가고 있다.

사랑은 더 이상 생각이나 상상 하기보다는 직접 자극을 통해 확인하고 표현하려 한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결정도 빨라서 결혼도 속히하고 이혼도 즉시하는 것이 현주소다.

무엇보다도 뚜렷한 것은 불확실성에대한 참을성이 부족한 탓아닐까 생각든다.

 

그러나 아무리 역사가 흘러도 남녀간의 사랑 그애절함과 격렬한 그터질듯한 실망과 좌절은 예나 지금이나 같을 것이다. 요즘 사랑은 세대간 망라해서 범위는 넓어진 것 같은데 깊이는 얕아진것같다. 우리 문학에는 물론 역사에서도 기막힌 사랑의 싱금을 울린 사랑하던 님과 이별하고 나서 우울증에 빠지거나 간혹 심각한 정신병적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별이 한이 되어 한평생 우울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종종 보게된다.

옛날 이야기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별당아씨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 이야기.

또다른 아씨는 상사병이라는 것이다

그슬픔이 얼마나 깊었기에 죽음과 상사병에 이르렀던 것일까 상사병은 여자에게만 있었을까,,

아니다 가슴 찡한 황진희의 이야기를 알아보자   황진희를 죽도록 짝사랑한 총각 홍윤보가 상사병에 죽었는데 상여가 황진희 집앞에서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래서 황진희는 속적삼을 내다가 관에 덮어 주었더니 비로써 상여가 움직였다는 사랑 이야기 황진희는 진실하게 목숨을건 홍윤보의 짝사랑에 감동적인 시 한수를 지었다,

 어머 내일이여 그럴 줄 몰랐던가 이 사람아 가는 사람 제를지내 보내고 그리는 정 나도 몰라하니 나의 할 일을  해놓고. 막상 보내고 보니 그리워하는 이 심정 참으로알다가도 모를일이로구나,

 

황진희도 이성에 끌려 사랑을 알게되면서부터 순수한 사랑은 오늘날 의학지식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상사병 즉. 우울증을삶의 생리기능 저하를 동반하는 병에 걸리면 죽음에 이를수 있다고 말할수 잇을 것이다.

순수한 사랑은 무모 할수도 있으며 맹목적 일수도 잇다고한다.

그러나 사랑의 순수함은 약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개인적 사건일 것이다.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 하는 것이 아니라 대게 사람들이 하는말은 저사람 사랑에 빠져서 제 정신이 아니야 비웃는 말을 한다.

 

사랑의 순수하고 진실함을 해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사람은 남의 일처럼 쉽게 비웃고 농담으로 말하지만 진실한 사랑에 몰두하면 그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느라 일도 못하고 단순한 마음의 움직임일까 아니면 병일까 사랑의 상사병 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전생에 수많은 공덕을 쌓았기에 사람의 몸을 받고 태어났는지 모른다.

인간의 세계를 보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행복한 일이다. 날마다 좋은 사람을 만난 이는

복인 이라고 말핬다.

사람이 너무 머리로만 살면 모가 나서 진실을 빠뜨리기 쉽고 정으로만 살면   흘러 가버려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기 쉬우며 의기로만 살면 딱딱하게 굳어져 선으로 대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익살스러운 내용이 있어야 훌륭한 옷보다도 따뜻하고 가벼운 웃음으로 읽은 글은 우리 선조 들이 말한 지의 극치 정의극치 미의 극치는 해학 골계 익살 풍자의 우리 산악회

유우머니 예술적인 문학으로 그곳을 가보자..

 

 

포천에서 사는 지씨라는 사람과 철원에 사는 여씨라는 여자가 산정호수 김일성 별장에서 함박눈 내린 동계절 한날에 술을 밤늦게까지 마시다가 여씨 여자가 산정호수 얼음판에다 요강을 비우다가 여씨 여자 음부에 탈모가 너무 많고 길어서 얼음 위에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일어날수도 없어서 소리를 부르짖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지씨가 달려와 머리를 낮추고 입김으로 녹이고자 후후 불고 있는데 지씨 역시 수염이 많고 길어 수염마저 얼어붙어 버렸다.

 

지씨는 여씨 옥문을 앞에서 마주바라 본채 엎드려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 다음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지씨를 보며 바로 이런 현상을 바라보고만 있지 어떤 사람은 내년 봄에나 떨어지겠구먼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여씨 남편과 지씨 부인이 달려와서 지씨 수염은 여씨 남편이 여씨 음부 탈모는 지씨 부인이 가위로 잘랐다고 하며

 지씨 부인도 여자가 이렇게 긴 탈모는 처음 보았다고 하면서 남편 지씨를  긴 탈모 애인을 둔 사람아라고  긴탈모지센 이라고 부르니 포천에서는 긴탈모지센 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며 여씨 남편도 부인이 수가 많고 수염이 길던 지씨를 애인으로 둔사람 이라고 긴털보여사라. 부르니 철원에서 털보여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포천 가는길 광릉 못가서 진접면 에 들어서면 오른쪽 벼락소 유원지가 있다

벼락소에 관하여 이런 일화가 있으니 . 산행가시는 길에 각고을 마다 알고 가시는 것도 아는 것 힘 아닐까  옛날 이곳에 매우 인색한 신강역 이란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한 스님이 찾아와 시주를 부탁하자 쇠똥을 퍼 주었다고 한다 . 이를 안타깝게 여긴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쌀 한바가지를 퍼주자 스님은 며느리에게 절대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하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 스님을따라 얼마쯤가니 갑자기 뇌성벼락이치고 폭우가 쏟아져 며느리는 집이 걱정되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순간 며느리는 돌부처로 변했고 집은 벼락을 맞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큰 구덩이가 생겨 훗날 연못이되엇는데 바로 이곳이 벼락소인 것이다. 벼락소를 지나면  광릉이 나온다

광릉은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가 묻혀있는 곳이며  세조는 1417년에 태어나 임금의 재위는 1455년부터 1468년까지 13년 재위동안 전국 명산을 돌아다니며 자기가 묻힐 곳을 찾아 다녔는데 세조가 어느 날 광릉 근처를 지나는데 상주가 뫼 자리를 파고있어 둘레를 살펴보니 불길한곳이었다.

그래서 세조는 상주에게 300냥을주며 다른곳에 뫼자리를 찾아보라고 말하면서 이곳에 묘를 쓰라고 한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런데 그곳에 묘를 쓰라고 한사람이 바로 세조가 찾고있는 이생원이었다.

이근처에 명당이 있으나 그자리는 금방 300냥이 생길 자리이기 때문에 그곳에 묘를 쓰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왜너는  이런 초막에 사느냐,,

국왕이 친히 오실 자리이기 때문에 이곳에 삽니다,,

이렇게 이생원은 말하고 마당에다 멍석을 깔고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이생원 풍수지리에 놀란 세조는 그를따라 능자리를 정했는데 이곳이 바로 광릉이다.

이 능을팔적에 박만한 벌이나와 이생원을 죽이려고 했으나 이생원은 미리 알고 머리에 큰 독을 쓴채 장현리에 숨어 벌에게 쏘였으나 죽지 않았는데 지금 그 동네를 벌우개 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

조선시대 광릉주변 약 400년 동안 풀이나 나무를 일절 베지 못하게 하여 산림이 울창한  곳이다..  그리고 광릉은 세조유언대로 석실과 병풍석을 쓰지않고 석실은  회벽 으로하고 12지신  상호석이 아닌 능 난간의 기둥에 새겼다고 한다

세조는 문물을 정비하고 국조보감 경국대전등의 각종 서적을 편찬하여 해를 입은 사람이다

 

포천 산정호수 가는길 운악산 기슭에는 세조명복을 비는 봉선사가있다.

이사찰은 969년 고려 광종때 지어진 것으로 당시에는 운악사라고 불렀으나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가 세조의 명복을 빌기위해 크게 중창하고 봉선사라고 했다고한다.

봉선사 편액은 예종이 직접 쓰고 같은 해 보물397호인 범종을 주조해서 봉안했으며, 봉선사 에는 우리나라 사찰가운데 처음으로 대웅전을 한글로 법당이라고 큼직하게 써 걸었다,

법당 앞 오른쪽에 있는 동종시를 보면 ,,

능침 곁에 보찰을 지으니

금벽이 우뚝하게 솟아났구나

법악이 인천까지 멀리들리니

묘한 소리 유명을 화하게 한다

그중 커다란 방망이 잇어 고래가 두드리는 듯 소리가 높다 연모로써 두드려서 울리기만 하면 귀있는자 들을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은하수와 같은 강 포천과 연천을 끼고 흐르는 한탄 강은 태봉국을 세운 궁에가 부하 왕건에게 쫒기어 이 강을 건너면서 한탄을 했다하여 한탕강 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으며 포천의 명소인 재인 폭포가 있는데 하루종일 오색무지개가 피어나는 아름다운 곳이다 .

그러나 이 폭포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줄타기를 잘하는 광대가 아주 예쁜 아내와 이곳에 살았었다.

그런데 포악한 고을 원님이 그 예쁜 아내를 몹시 탐냈다.

그아내를 차지하기 위해서 큰잔치를 베풀었는데 폭포에 줄을 메어 놓고 광대에게 줄을 타고 폭포를 건너도록 시켰다.

광대가 중간쯤 이르렀을 때 숨어있던 병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줄을 끊어버린 바람에 광대는 떨어져서 죽었다.

원님은 매일 그의 아내를 수청들게 했는데 광대아내는 어느날 남편 원수를 갚고자 원님의 코를 물어뜯었는데 이때부터 이 마을을 코문리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고문리라 부른다고 한다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천부적 안목과 해안을 가지고 있으며 . 그것은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 아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할 수 있다  .

산행을 하면서 단풍의 가을 산보다 그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중는 겨울 숲에서 아름다움의 본질을 산행을 하면서 알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우리산악회 송년 산행이 뜻깊은 하루와 추억에 남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되시길바랍니다..

2004년 12월 두번째 일요일에   ..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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