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남용 기자]“허가증 보여 주세요.”“직장인이라 미리 신청하지 못했는데 어떡하죠?”

“그럼 내려와요!”

새해부터 삼각산(북한산)·도봉산의 암봉에서 벌어지리라고 예상되는 풍경이다. 2005년 1월 1일부터 이 지역에서 암벽등반허가제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지난 6일 북한산국립공원 관리공단은 “무분별한 암벽 등반과 안전사고 및 자연자원 훼손 예방을 위해 영구적으로 암벽등반허가제를 실시한다”는 내용의 '암벽등반 제한공고'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공고문에 따르면 2005년 1월 1일부터 인수봉·노적봉·족두리봉(독바위)·선인봉 암벽 등반은 허가를 받아야 등반할 수 있는 지정허용구역으로 하고, 이 지역을 제외한 곳에서는 암벽등반을 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자연공원법 제86조를 적용, 과태료(50만원)를 내야 한다.

“허가증 없이 등반할 경우 범법자”

한해 유료 등산객만 400만명, 비공식적으로는 800만명이 북한산국립공원을 찾는다. 이 중 암벽(암릉)을 이용하는 인구는 50만명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전 구간 암릉을 통제한다는 공고가 사전 홍보나 정책 설명 없이 이뤄져 산악인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산악인들은 이번에 발표한 암벽등반허가제 시행 규칙이 현실과 다소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시행규칙에 따르면 북한산에서 지정허용구역을 암벽등반하기 위해서는 3일 전까지 각 관리사무소에 허가 신청서를 제출하고, 등반 전에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신청서는 팩스로 보낼 수 있지만, 신청(허용) 자격을 최종적으로 얻으려면 직접 관리사무소를 찾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아래는 북한산국립공원이 밝힌 자격이다.

신청(허용) 자격

- 전문산악단체에 소속(추천)되어 등반 경험이 있는 자

- 전문암벽등반 교육수료자로서 등반 장비 및 건강 상태에 이상이 없는 자

- 해외 등반을 위하여 국내 훈련 목적으로 신청하는 자

- 암벽이용신청서 및 이용서약서, 각서 등을 제출하여 허가 조건에 동의한 자

- 전문산악단체의 추천 불가시 공단직원에게 당일 암벽등반 장비 검사를 득한 자

위의 내용으로 볼 때 신청(허용) 자격은 기본적으로 전문산악단체에 있다. 일반적인 산악모임이나 개인은 안전장비, 등반 경력이나 건강을 증명할 문서 등을 들고 직접 관리사무소에 가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전문산악단체나 전문암벽등반 교육수료자라는 기준도 모호하다. 산악회는 대부분 자생적인 모임이다. 공인된 산악단체는 대한산악연맹, 한국산악회 정도일 것이다. 북한산에서 암벽 등반을 하려면 최소한 이들 산악회에 가입하거나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서약서나 각서도 문제가 된다. 등반 신청서에 첨부하는 각서의 내용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통제 구간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며, 사고시 본인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전문산악단체를 통하지 않으면 암벽등반 불가능”

이와 관련해 북한산국립공원 홈페이지와 각 산악 사이트에는 관리공단을 비난하는 글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호민관'이라는 누리꾼은 암벽등반허가제를 미국의 금주법에 비유하며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소산인 금주법은 없어졌지만, 그 법으로 인해 한동안 미국 사회는 마피아가 활개치고 무법과 불법 사회로 전락했다"며 "차라리 난립해 있는 등산학교를 정비해 안전등반 교육을 지원하는 게 올바른 행정일 것"이라며 질타했다.

'암벽사랑'이라는 누리꾼도 "20여년 전에 인수봉에서 바위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인수봉을 아끼고 사랑하며 등반하고 있다"며 "지금 독재시대인가? 그런 정책을 발표할 때는 산악운동을 하는 단체들과 협의 내지는 공청회를 거쳐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대한산악연맹 관계자는 "이번 암벽등반허가제 시행을 공고한 관리공단측의 정확한 의도를 모르겠다.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결정을 한 데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며 "이번 주 관리공단 관계자와 면담을 요청했으니 그 결과에 따라 대응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북한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북한산만의 조치가 아니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시행 공고가 내려왔으며 금지구간 등 구체적인 사항만 북한산측에서 정했다"고 밝혔다. 또 "주 5일제 등으로 레저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암벽 등반이 많이 늘어났다. 또 "올해 안전사고가 40~50% 증가했는데 그 중 상당수가 초보자들이었다"며 "초보자들이 사고를 당하는 데는 장비의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관계자는 "대한산악연맹 등 전문산악단체에 속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당일 장비 검사를 받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때문에 사전에 서류 등을 처리하고 당일에는 장비 검사만 받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휴일에 북한산을 찾는 암벽등반인들을 일시에 처리할 수 있겠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10가지 사항 정도만 체크하면 되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지금 암벽전문직원이 대피소에 1명, 구기분소에 1명 있는데 추가 채용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또 "2005년 1월 1일부터 허가제가 실시되지만 1년 동안 조정 기간을 거친 뒤 2006년부터 과태료를 부과할 것"이라며 "지금은 시행 초기라 다소 혼란스럽겠지만 산악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론이다. 이번 주중으로 대한산악연맹 등 단체들을 만나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악인들 “지금이 독재시대?”... 관리사무소 “예정대로 시행”

바위비알에서는 한순간의 실수가 사망사고나 큰 부상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올해에도 이 지역에서 수십 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점에서 관리공단에서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여러 가지 제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암벽등반허가제는 북한산국립공원의 특수성을 간과한 조치로 보인다. 우선 북한산국립공원의 산들은 가장 높은 백운봉이 836m밖에 안 돼 세계의 고봉들에 비하면 동산 수준이지만, 암릉과 육릉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쉬이 길을 내주지 않으면서도 공을 들이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살가운 악산(岳山)이다.

전 구간에 화강암 거벽들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어느 길로 오르든 가파른 암릉을 만날 수밖에 없다. 암릉 사이로 안전하게 우회하는 길도 있지만 등산객들은 바위에 오르는 즐거움을 애써 피하지는 않는다. 산책 삼아 등산을 시작한 사람도 자연스럽게 바위를 즐기게 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 때문에 삼각산과 도봉산은 한국 산악 운동의 메카가 되었다. 한국은 전 세계에 11명밖에 없는 히말라야 14좌 완등자 중 3명이나 배출했다. 인수봉과 선인봉이 없었다면 엄홍길·박영석·한왕용과 같은 위대한 산악인의 탄생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삼각산·도봉산은 한국 산악운동의 메카”

또 암벽등반허가제의 시행목적이 주로 산악인들의 안전사고 예방에 있다면 안전사고를 방지하는 데 실효가 있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해서 바위 4군데만 터주고 나머지 곳은 아예 오를 수 없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떤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고 그 도로를 폐쇄할 수 있는가? 전면 통제는 해결책이 아닌 행정편의주의적인 극약처방일 뿐이다.

삼각산과 도봉산을 오르는 일은 그 자체가 산악운동이다. 우리 산악운동 100년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암벽등반허가제는 관리자의 입장만으로 우리 산악운동을 부정하는 일이며, 이렇다할 여론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월권 행위다. /김남용 기자-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마이뉴스   2004-12-13 11:1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