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벽을 오르며
언제: 2004년 12월 12일
누구와 : 계우산악회원 님과 함께
어디로: 밤골매표소--폭포--해골바위--숨은벽--여우굴, 호랑이굴--밤골매표소


숨은벽 사진은 컴퓨터 바탕화면에 올려 놓은지 3개월이 되었다.
언제 한번은 오르겠노라고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장비도 장비지만 길도 모르고 아직도 나의 산행능력으로봐서 워킹에도 자신이 없는데 릿지산행을 한다는 것이 사치라생각되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그리고만 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제의가 들어왔다.


같은 직장 동료가 산에서 알게 된 산우로부터 숨은벽 등반을 하는데 동참할 의사가 없느냐고 의사를 타진해왔던것이다.
나는 하고 싶었지만 지난주 손가락을 다쳐(15바늘 꿰맴) 아직까지 엄지손가락의 통증이 있는지라 대답을 해놓고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11일날 관악산 찾아 평소 다니던 작은 바위들을 오르면서 손가락의 통증을 확인하니 참을 만했다.
12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배낭을 꾸리고 구파발을 향했다.

 

아직 릿지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지라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라 새로산 등산화를 신고 나섰다.
구파발역에서 만난 산우들은 초면이었지만 믿음직 스러웠다.
윤호님을 대장으로 소개를 받고 차에 올랐다.
모두 계우회 산악회원들로 수십년 산을 타신 베테랑이란 말을 듣고 내심 안심이 되었다.
말로만 듣던 숨음벽을 향해가는 나의 발걸음은 든든한 산우들로 인해 가볍게 느껴졌다.

골이 깊어서인지 계곡에는 제법 물이 많이 흘렀다. 

폭포를 지나고 능선을 따라 오르다  왼쪽 능선을 치고 올라 서니 해골바위(바위에 난홈)에 다다랐다.


신기하게도 해골바위에는 물이 고여 있었고 얇은 얼음으로 가면을 쓰고 있는 듯했다.

이곳에서 릿지 산행이 시작 되었다.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배낭에서 자일과 안전벨트를 꺼내 준비를 서둘렀다.
난 어쩔 줄 몰랐다. 안전 벨트도 신발도 릿지를 하기에는 미흡한 워킹화고, 너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아무말도 못하고 안절 부절하며 멍하니 서 있으니일행중 한분이  간이 안전벨트를 만들어 주었다.
이제는 오르는 일만 남았다.
리더가 먼저 올르면서 로프를 설치하고 우리를 뒤를 따랐다.

 

첫 번째 릿지에서 힘겹게 올라서던 나는 조그만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다친 손가락에서 피가나고 바위에 부닺힌 무릎은 찰과 상을 입어 시큰거렸다.
행여 일행이 볼까봐 몰래 감추며 배낭에서 벤드를 내어 붙였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고라 어떻게 당했는지 몰랐다.
 일행들이 올라오고 마지막 주다가 자일을 걷으며 올라왔다..
첫 번째 관문이었는데  잘했다며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오른쪽 백운대의 뒷모습은 꼭 금강산의 한 봉우리를 옮겨놓은 듯 가히 절경이었다.

백운대를 중심으로 좌측의 인수봉과 우측의 염초봉이 감싸안고 보일듯 말듯 숨어있어 숨은벽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절경을 감상하기도 잠시 눙앞에 아찔한 절별이 나타났다. 일명 대슬랩.


눈앞에 펼쳐진 슬랩이 족히 3-40m는 되어 보였다.
이곳을 오른다니 보기만 해도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리더가 올라 자일을 메었지만 슬립에 올라서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어차피 올라 갈 것 한발 한발 온 정신을 쏟았다.
중간쯤 올라 갔을까 신발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등어리에 식은 땀이 흘렀다. 손바닥으로 바위에 온힘을 다해 접지 시켰다. 자일을 메었지만 한번도 떨어져 보지 않은지라 미끄러지면 뒤따라 오는 사람까지 위험 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미끄러지는 발에 힘을 주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났다.


멈춰서서 발에 온 정신을 쏟았다. 다행이 더 이상은 미끄러지지 않았다. 천길 낭떨어지에서 다시 한발을 디딜 수 있었다.
온힘을 다해 오르고 보니 다리가 떨려 설수가 없었다.
왜 이런 위험한 일을 자초했는지? 장비도 없으면서.
신발이라도 릿지화를 준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홈, 조그만 돌기 하나가 얼마나 고맙고 힘이되는지 몰랐다.
내가 컴퓨터 바탕화면에 갈아놓고 본 슬랩의 사진의 보며 꿈을 키웠던것이 후회가 되었다.
산행기에서 읽어본 간접 경험은 너무나 쉽게, 위험 하지도 않은것 처럼 씌여 있었는데 모두 거짓말 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너편 인수릿지에는 곡예를 하듯 바위를 타는 산꾼들이 벌집처럼 매달려 있었다.
위험한 만큼 매력이 있는 것일까?

그래서 산꾼들은 자꾸 더 높은 곳으로, 더 험한 곳으로 자산을 몰아 가는 것일까?
아직도 중간밖에 못 올라 온 것 같다.

백운대는 아득하게 멀어 보였다.

남은 길은 위험하지 않다는 일행의 말에 위안을 삼았지만  한곳도 호락호락 나에게 몸을 내어주지 않았다.
나의 엄청난 경험은 정상까지 이어졌다.
건너편 인수봉에 매달린 크라이머들을 보면서 나자신을 위로했다.
엄청난 경험을 하고난뒤 능선에 올라서야 뒤를 돌아보며 올라온 능선을 바라 보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될지 모르는 길위에 한없는 마음을 던졌다.


둘 때 손가락에 손톱이 젖혀져 엄청난 통증이 생긴것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백운대를 머리에 이고 점심을 먹었다. 

여우굴과 호랑이굴을 지나  밤골로 향했다....

오늘 엄청난 경험을 하고난 나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기분이었다.


숨은벽! 이름 만큼이나 숨어서 산꾼들을 유혹하는 마녀라부르고 싶다.

숨은벽 다음에 또 당신의 품에 안길 초보 산꾼에게 안전한 길 내어주길 기원해 본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오늘산행에 도움을 준 계우산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절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