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산 산행기                     만수산 산행기

                                 

 

                                 *산행일자:2004.12.12일
                                 *소재지  :충남 보령/부여
                                 *산 높이 :575미터
                                 *산행코스:성주산휴양림주차장-시비조각공원-전망대
                                                 -정상 문수봉-비로봉-만수마을회관
                                 *산행시간:9시57분-13시37분(3시간40분)

어제는 충남 보령과 부여를 경계짓는 나지막한 만수산을 올랐습니다.
과천시 산악연맹의 송년산행으로 오른 만수산은 석탄을 캐냈던 폐광지로 아직도 곳곳에 채광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길 양옆에 시커먼 흙이 드러나 있고, 계곡을 건너 갱도입구가 보였으며 산이 가라앉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안내판도 세워져 있었습니다. 또 차들이 다녀도 좋을 만큼 고개 마루까지 길이 잘 닦여 있었습니다.

아침 9시57분 보령시 성주면의 성주산 휴양림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매표소에서 주차장까지 차창 밖으로 내다 본 휴양림은 고고하고 깨끗하게 잘 자란 소나무들로 그 풍광이 돋보였습니다. 시비조각공원에 다다르자 정 한모님의 시"어머니"가 저의 눈을 끌었습니다.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로 시작되는 이 시처럼 자식들을 진주로 만들기 위해 우리 어머니들이 흘렸을 눈물이 얼마나 될지 헤아리기 쉽지 않을 듯 싶습니다. 바쁘게 산을 오르느라 한국의 현대시를 일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10시48분 고개마루 쉼터에 오르자 사방이 조망돼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한 여름이라면 햇빛을 가릴 나무가 없어 땀 깨나 흘렸을 포장도로를 25분간 오르자 흙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저희 산악회와의 산행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어느 분이 하모니카를 연주해 힘드는 줄 모르고 그 흙 길을 걸어 고개마루에 올라섰습니다. 산을 오르며 하모니카를 연주하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음량도 충분했고 연주솜씨도, 선곡도 모두 좋았습니다. 휴대하기 간편하고그 소리가  이름그대로 자연과 하모니를 잘 이루기에 저도 대학시절 산에서 야영을 할 때는 하모니카를 가지고 가 즐겨 불곤 했습니다.

11시9분 해발 575미터의 만수산 정상인 조루봉에 도착했습니다.
충남 부여시에서 세운 표지석에 배낭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 등정을 기록했습니다. 바로 하산하지 않고 맞은 편의 능선을 따라 비로봉을 오른 후 하산하기로 하고 정상에서 500미터 떨어진 전망대로 되돌아갔습니다.

조루봉-전망대 능선에 세워진 안내판에 이 산이 폐광지라서 가라앉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이 실렸는데 이를 보자 이 만수산의 과거사를 규명하고 싶은 장난기가 동했습니다.  만수산의 과거사규명은 이 산의 형성을 알아보는 지질학적 접근이 아니라 만수산의 현대사를 들여다보는 정도로 그치고자 하며  그 죄상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만수산의 과거사를 규명해보니 그 죄상이 다음과 같이 밝혀졌습니다. 첫째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제 육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몸 속으로 갱도라는 길을 내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악한 인간들의 강권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었다는 당시의 상황논리로 만수산은 제 몸에 길을 내고 제 살을 퍼 내가도록 방치한 점을 변명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 어려운 시기를 살아 온 다른 산들은 지금도 멀쩡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필이면 보통의 흙이 아니고 석탄으로 살을 만들었냐는 점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따뜻하게 살아보고자 만수산의 몸 속에서 파낸 살을 태워 한반도의 공기를 오염시킨 데 대하여 준엄한 역사의 징벌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몸 속에서 캐낸 것이 천연가스였다면 지구를 데우면서도 오염을 최소화 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하필이면 석탄으로 살을 만들어 한반도를 오염시킨 점은 설혹 채광기간 중 그 공이 있다해도 중죄임에 틀림없습니다. 셋째 채광이 끝난 후부터 산을 오르는 산 꾼 들에 산이 가라앉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안내판을 세워 겁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많은 소시민들이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건강지키기 프로그램이 등산인데 만수산이 이 소시민들을 받쳐주지 않고 가라앉는다면 이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불법 파업을 자행하는 것이 분명하기에 법으로 단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정도면 만수산의 유죄를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만수산의 과거를 규명했느냐, 그래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이냐에 생각이 머물자 답이 궁해졌습니다. 제가 무슨 역사의식을 갖고 만수산의 과거사를 규명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수산과 마찬가지로 제 과거사를 누가 캐낸다면 저 역시 중벌을 면할 수 없다고 봅니다.  역사란 과거와의 대화라고 갈파한 E.H.카의 탁견을 새삼 새겨보는 것은 과거사를 규명하는 목적이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교훈을 찾아내는 데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11시15분 되돌아온 전망대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비로봉으로 내 달렸습니다.
많은 대원들은 정상에서 바로 무량사로 하산하는데 저는 이 코스가 너무 짧은 것 같아 비로봉을 거쳐 우회하는 먼 길을 택해 저 혼자 고즈넉한 능선 길을 밟았습니다. 산중의 고요함을 시샘하듯 새들이 짖어대어 정적을 깨는가 싶더니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와 자연의 청음과 기계음의 탁음이 어떻게 다른 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12시2분 해발 563미터의 비로봉에 도착, 짐을 풀고 귤을 들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 비로봉을 바로 오르지 않고 트래파스를 해 다다른 안부에서 5백미터를 반대방향으로 올라갔다 다시 안부로 되돌아오느라 30분 가량 지체되었지만 안부에서 비로봉까지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걸으며 땀을 빼 온 몸이 개운했습니다. 해발 460미터대의  무명봉에서 남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무명봉에서 도솔암까지 거리가 1.8키로가 된다하니 서둘러도 13시까지 만수리주차장에 대는 것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돼 회장등 집행진에 먼저 출발하라고 전화를 시도했으나 통화가 안되어 기사 분에 전언을 부탁했습니다.

13시26분 무명봉에서 능선을 따라 50분을 걸어 다다른 안부에서 우측으로 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안부에 도착하기 얼마 전에 만난 노부부 두 분에 물어 하산 길을 확인했습니다. 어차피 시간 내에 도착하기는 글러 만수리에서 성주면소재지까지 택시로 이동하기로 작정한 터라 하산속도를 조금 늦추고 이제까지 올라선 봉우리들과 걸어온 능선 길을 되돌아보고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또 한차례 집행진에 전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난감해 하는 중 전임회장께서 전화를 해와 버스는 먼저 출발하고 음식점에 가서 봉고차를 보낼 터이니 주차장에서  기다리라고 알려주었습니다.

13시40분 만수리 마을 회관에 도착해  버스에 올라 타 약 4시간의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음식점에 봉고가 없어 도중에 차를 돌렸다 하니 모든 대원들에 고맙고 죄송했습니다. 비로봉을 바로 오르지 않고 트래파스를 해 역방향으로 오르내리느라 30분을 까먹어 본의 아니게 모든 분들에 기다리는 괴로움을 드렸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며 인종의 역사를 살아온 분들이 바로 저희들의 어머니입니다.
정한모 님의 시 "어머니"를 올리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주신다.

                   씨앗은
                   아들들의 가슴속에서
                   벅찬 자랑
                   젖어드는 그리움

                   때로는 저린 아픔으로 자라나
                   드디어 눈이 부신
                   진주가 된다.
                   태양이 된다.

                   검은 손이여
                   암흑의 광명을 몰아 내듯이
                   눈부신 태양을
                   빛을 잃은 진주로
                   진주로 다시 쓰신 눈물로
                   눈물을 아예 맹물로 만들려는
                   검은 손이여 사라져라

                   오늘도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