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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산 산행기/포토 에세이
(2005.1.4/ 경기 연천군 신서면, 강원철원/매표소-2코스-삼각봉-정상-3코스-표범폭포-매표소/한뫼산악회와)

*. 시산제 산행
오늘 우리 한뫼산악회에서는 2005년 시산제를 지내려고 해발 832.1m의 고대산(高臺山)을 갑니다.
12시까지 다녀와서 주차장 근처 식당에서 시산제를 지낼 모양입니다.
신탄리는 경원선이 휴전선에 끊겨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철마는 달리고 싶다(We want to be back on track.)고 통곡하는 곳입니다.
고대산은 분단과 망향의 한으로, 망향의 북녘 땅을 바라볼 수 있는 복계산(福桂山.1057m), 지장봉(地藏峰·877m)과 함께 꼽히는 3대 명산이기도 하다.


매표소에서 고대산 오르는 길은 3 코스가 있습니다.
고대봉 1코스는 큰골 따라 오르는 7.4km(왕복 약 4시간 30분).
2코스는 칼바위 넘어 가는 길(왕복 6.6km 약 4시간)이고,
표범폭포로 쪽으로 해서 760m의 군부대 쪽 7.0km(왕복 약 4시간 20분)로 오르는 3코스가 그것입니다.














고대산 매표소 앞의 '고롱이'와 '미롱이'가 우리를 환영합니다. 이곳 연천군의 전곡리는 선사유적지거든요. 고대 석기 및 고인돌 등을 상징하는 옛 고'高', 고롱이와 미래의 지향적인 미래의 '美', 미롱이랍니다.

매표소를 지나 구절양장(九折羊腸) 같은 꼬불꼬불한 길로 울긋불긋한 등산복의 산꾼들이 올라가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산에 미쳐서 올라가는 이도 있지만, 일만은 산의 아름다움을 찾아 간직하고 싶어 카메라를 품에 깊숙히 품고 오릅니다. 디카 배터리는 추위에 약해서입니다. 그러나 등산길이 아스팔트길여서 아쉬워하는 이가 많습니다.

*.제2코스 칼바위 능선으로
400m쯤 올라가니 이정표가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가면 정상까지 3.25km로 시간 걸리는 제1코스이고, 왼쪽은 2.78km로 2시간 18분이 걸리는 능선길인 제2 코스입니다.
우리는 험하지만 제일 아기자기하고 돌아보는 경치가 좋다는 능선 길 제2코스로 올라갑니다.
이 친절한 이정표에 빠진 것이 있습니다. 편도인지 왕복인지를 혼동하게 하니까요.









고대산은 기차로도 갈 수 있습니다. 의정부역에서 1시간마다 매시 20분에 출발하는 57.6km의 신탄리역까지밖에 갈 수 없는 '강원선'이 되고 말았지만, 분단 이전의 옛날 같으면 금강산을 찾아 가는 사람들이 용산에서 원산까지 달려갈 수 있는 총 길이 222.7km의 '경원선'이었습니다.

산의 층계는 돌길보다 통나무길이 보기도 좋지만 걷기에도 편합니다. 그 통나무 길 위에 겨울의 서정시 흰눈이 쌓여서 운치를 더하여 주고 있습니다.

칼바위 능선은 흰 밧줄을 잡고 오르는 데에도 힘에 겨워 포기하고 하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덕담을 들려 줍니다.
"내가 간 곳까지가 '나의 정상이지요.' 하고 생각하세요."
이정표에 의하면 칼바위서 고대봉 정상까지는 1km가 남았습니다.


고대산 제2코스는 능선 코스로 앞뒤로의 전망이 일품입니다. 주차장에서는 보이지 않던 멀리 정상 능선과, 고봉산 정상의 헬기장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금 저 앞의 봉이 827m 대광봉인 것 같습니다.

드디어 정상능선이 시작되는 하얀 눈이 아름답게 꾸며놓은 대광봉입니다. 1,2코스의 갈림길이기도 하지요.

우측의 커다란 산이 이 산의 정상 고대봉이고, 그 아래 태극기 휘날리는 곳이 760봉입니다. 그 능선 위에 일만의 까마득한 후배들인 열쇠부대 장병 둘이 이 매서운 추위 속에서 저렇게 나라를 지키고 있습니다.
저는 젊었을 때 5사단 35연대 3대대 1소대 1분대 8번 소총수로 제대하였거든요. 교사들에게는 교보(敎保)로 1년 동안만 군복무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후배 두 사람이 삼각봉 능선에서 탼투룰 치고 작전 수행 중입니다. 줄 것이 없어 핸드폰을 내밀며 전화라도 고향부모님께 하라고 했더니, 아뿔싸 이곳은 통화가 미치지 못하는 지역입니다.
이 정상 능선부터는 안전을 위해서 아이젠을 해야 합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니까요.


리본 사이로 보이는 저 고대봉이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봉우리는 난지도 같이 성형 수술한 모습입니다. 정상에 대형 헬기장을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저 모습 하나만으로도 우리나라 분단의 비극을 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눈에 덮인 모습이 아름다움의 하나를 이룩하고 있었습니다.


320m 삼각봉에서의 전망입니다. 여기서는 사방이 확 트여서 동으로 947m 금학산과 지장산이, 남쪽으로 관인봉 북대산이 서쪽으로 고왕산 줄기가 있고 760봉 쪽으로는 김일성이 6.25 때에 빼앗기고 사흘 동안 통곡했다는 철원평야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 왜 고대산이라 했을까요?

신탄리 지역에서는 이 산을 '큰고래'라 부른답니다. 신탄리(新炭里)의 ‘炭’(탄)은 숯 ‘炭’(탄)이니 ‘숯’과 ‘고래’를 연결하여 말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바다의 고래가 아니라 방의 구들장 밑에 있는 불길과 연기가 나가는 길을 고래를 말합니다. 고대산은 삼림이 욱어져서 옛날에는 숯으로도 유명한 곳이었거든요.
정상에서 보면 산이 높고 골이 깊어서 고래산이라고 한 것 같고 그걸 바라다보는 곳이라서 은밀대, 문장대처럼 높을 ‘高’(고) 높고 평형한 ‘臺’(대)라서 고대산(高臺山)이라 한 것 같습니다.


김일성 앗기고 사흘 간 통곡했다는
철원평야 그 건너 휴전선 바라보며
오늘도
분단을 우는가
서러운 저 고대산이여!
-고대산



두 번째 봉우리가 삼각봉이고 그 다음이 대광봉인데 자세히 보면 모노레일이 산 능선 따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장병들에게 보급품을 날라 주는 고마운 시설입니다. 타이아로 파놓은 교통호는 우리들 젊은이들의 피땀이요, 철통같은 국방의 의지입니다.
이 모노레일이 설치되기 전에는 얼마나 많은 우리의 군인들이 힘들여 820m의 고산에 운반하였을 것입니다. 그 무거운 물까지 말입니다.

*.제3코스 하산 길

길이 교통호이기도 합니다.
정상 능선부터의 모든 길과 교통호 등이 폐타이어를 이용하였더군요. 그 위에 눈이 쌓여 푹신푹신한 것이 잔디 위를 걷은 기분입니다.


다시 또 아름다운 통나무 층계가 계속됩니다.
우리는 올라가는 층계에서는 급할 때는 두 칸씩 올라가기도 하지만 내려가는 층계를 2칸씩 내려가는 사람을 본 일이 없습니다.
산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지만 내려갈 때에는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만사도 다 이와 같이 시작보다 끝이, 처음보다 나중이 중요한 것이지요.
베트남에 갔더니 전 국민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물이 호치민이더군요. 호치민은 통일을 못보고 갔지만 세계 제1의 군사대국 미국과 싸워서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어 놓은 영웅이었습니다. 국민 모두가 그를 믿고 하나가 되어 따랐기 때문에 생긴 저력입니다. 우리도 언제나 이런 자랑스런 지도자를 만나 보게 될까요?
그때 한국은 그들의 적이었지만 그들은 미국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이해하고 우리들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경제 발전의 모델이 되는 나라라고 한류 열풍이 대단했습니다.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산에 오르다가 멈추는 행동의 반복입니다. 100 컷을 찍는다면 남들보다 그만큼 뒤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남들이 모두 가버린 뒤에 있지만 이렇게 혼자일 때가 가장 나와 산이 함께 할 때입니다.
오늘도 혼자 가다 보니 심심해서, 가지고 다니던 종을 배낭에 답니다. 이 종은 풍경 같이 울리면서 청량한 소리로 나의 하산 길을 도와 줄 것이지요. 여름 같으면 종소리를 두려워하는 뱀도 쫓아도 줄 것이구요.
지금 산 아래 식당에서는 산신제가 한창일 시간이지만 하산 길은 1시간도 더 남았습니다. 왕복 8km로 4시간 30분이나 걸리는 산행을 주최 측은 2~3시간에 다녀오도록 한 것은 아무리 해도 잘못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꽁꽁 언 눈 덮인 겨울 산이아닙니까.
아이젠을 풀고 걸음을 빨리 하니 종소리가 요란합니다.


표범폭포를 옛날에는 자벽폭포라고 하였답니다. 스스로 벽에 멋진 모양을 만들었다 해서 생긴 이름이지요. 폭포는 그냥 지나칩니다. 400m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지금은 빙벽뿐일 테니까요.



거대한 낙엽송 사이를 갑니다. 유럽이나 캐나다 여행에서 보던 그런 삼림지대입니다.
그 사이로 하얀 길이 나 있습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산신제를 지내느라 잡은 돼지 한 마리로 지금 한창 시산제 잔치가 벌어졌을 술판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일만이 여자보다, 섹스보다 더 사랑하며 목숨을 걸고 마시는 술자리를 향하는 길입니다.

이렇게 가장 험하고 아름답다는 제2코스로 해서 제3코스로 하산하는 나의 산행을 이정표가 축하해 주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