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신년산행(관악산)
언제: 2005년 1월 3일(바람도 북고, 싸락눈이 내리고, 비가 오다)
누구랑: 나홀로

어디로: 서울대 입구--4야영장--깔딱 고개 가는길 --오봉 가는길--오봉 국기봉--송신소--팔봉--무너미 고개우측능선 --삼막사--안양대림 아파트....


산에 올라 일출을 보며 새해의 설계를 한다고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설레이는 벅찬 감동이야 무슨 말로 표현을 다하랴.
그 감동 언제 한번 맛볼 날이 있겠지만 아직은 나에게는 그런 행운이 찾아오리라는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현실의 삶이 내 두 어깨를 누르고 있어, 그 무게를 떨쳐 버리고 일어 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올해도 그런 행운을 접은지 이틀이 지나 배낭을 꾸릴 수 있었다.


늦었지만 연주대에서 아침 해를 맞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고양이 세수만 하고 서둘러 집을 빠져 나왔다.
5호선을 타고 영등포 구청역에서 환승하여 서울대 입구역에 내리니 눈앞에 관악산에 작년이ᅳ 그 모습으로  태연스레 앉아 있다.

언제 보아도 산은 그 자리에 태연히 서 있다.
언제 누가 왜 왔다갔는지 묻지도 않으며, 두팔만 딱 벌리고 앉아 나를 품에 안고 애무를 하면서,  거침 숨소리에 뜨거운 땀방울이 흐르게 하고야 마는 매력 때문에 오늘도 내가 산을 찾아 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이른 시간이라 산꾼들이 드문드문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부지런히 걸어야 청계산에 걸린 해라도 볼텐데,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구름이 해를 덥고 보여 줄 기색이 없어 보인다.
복도 복도 이런 복이.


수많은 코스중에 관악의 품을 속속들이 볼 수 있는 깔닥고개 우측능선을 택하여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숨이 가슴까지 차오르고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 할 무렴 하늘은 작은 흐느낌으로 빗줄기를 뿌리기 시작했다.
비는 눈으로 눈은 비로 시시각각 재주를 피우면서 나의 발길을 제촉했다.(겨울산행의 참맛)
국기봉까지 올라서야 오던길을 돌아 보며 한잔의 커피를 마셨다.
그래도 오봉을 올르때는 눈으로 내려 기분이 좋았지만 일기 예보를 듣지 못하고 올라온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되었다.
우의도 없고, 유동식도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비마져 내리고, 덧옷은 물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미끄러운 바위길을 우회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아마도 내가 관악산에 다니고는 제일 빠른 속도를 내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산을 즐기며 걸어야 하는데....발걸음만 제촉할수 밖에 없었다.
산은 날씨 탓인지 조용했다.


간혹 스쳐가는 산꾼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며 팔봉내 달았다. 이제는 제법 빗줄기의 갯수가 많아져 겉옷이 다젖어 물기가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겨울나무에 떨어지는 겨울비 소리를 감상하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었다.
우의만 있었다면, 천천히 겨울비를 맞으며 낭만에 젖어 볼수도 있었는데, 아쉽고도 아쉬웠다.
어디 겨울비를 맞으며 산행 하기가 그리 흔한 기회는 아닌데.
비상용 잠바를 꺼내 갈아 입고, 젖은옷으로 배낭 카바를 대신하며 정신없이 걸었다.
팔봉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위인 왕관바위를 지나 계곡으로 빠져들었다.


어제 보아도 길이 없을 것 같은 그 계곡.
언제 한번 헤멘 기억이 뇌리를 스치고 지난다.
무너미 고개로 올라 서는데 시장기가 돈다.
커피한잔 달랑 마시고 계속 걸었으니 배도 고플때가 되었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조금 지났다.
배낭에서 컵라면을 꺼내 먹을 여유조차 생기지 않았다. 혹시나 삼성산에 으르면 길 카폐(?)에 막걸리나 한잔 할 생각으로 오르막에 힘을 보탰다.
건너편 관악산에 짙은 운무에 쌓여 그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걸어 온 길도 걸어 갈길도 희미하게 펼쳐져 있다.
올 한해 내가 갈길이 앞으로도 뒤로도 희미하게 펼쳐지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마져 들었다.
허지진 배를 달래려 길 까폐쪽으로 달려가니 날씨 탓인지 그곳도 텅빈 공터로 남아 있었다.
삼막사에 들러 삼배를 올리고 올 한해 부처님의 자비가 온누리 퍼지기를 기도하고 능선을 따라 발길을 재촉했다.
2005년 신년산행은 눈과 비와 바람이 함께 했다.


그 또한 행운이라면 행운이고, 복이라면 복이다.
첫산행에서 눈도 함께하고, 비도 함께하며 바람마져 함께 했으니.
올 한해도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고, 건강하게 줄산하기를 기원하며 신년 산행을 마쳤다.


산을 사랑하는 산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