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락산-백운산-광교산 산행기

 

                                            *산행일자:2005.1.1일
                                            *소재지  :경기 수원/의왕
                                            *산높이  :광교산581미터/백운산567미터/모락산386미터
                                            *산행코스:계원예술대학-모락산-백운산-광교산-형제봉-경기대
                                            *산행시간:9시31분-16시3분(6시간32분)

 

"사랑"은 시인 박재삼 님이 새해벽두 광교산을 오르는 수많은 이들에 던져준 화두입니다.
광교산의 형제봉을 오르는 산객들이 조금만 눈여겨보아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안내판에 실린 박재삼 님의 시 "산에서"는 "그 곡절 많은

사랑은 기쁘던가, 아프던가"로 시작해서 "사랑은 기쁘다고만 할 것이냐, 아니면 아프다고만 할 것이냐"로 끝을 맺습니다. 저는 어제

새 해맞이 첫 산행으로 모락산과 백운산, 그리고 광교산을 연이어 오르내렸습니다. 의왕의 계원예술대에서 시작하여 수원의 경기대

에서 끝나는 이 긴 코스를 약 6시간 반에 마치고 나서, 시인 박재삼 님이 던진 사랑이라는 화두로 올 한해를 기뻐하고 또 아파하며

저와 곁을 같이할 많은 분들과 더불어 살아야겠다는 뜻을 다졌습니다.

 

아침 9시 31분 계원대학 오른 쪽으로 난 모락산의 들머리에 들어섰습니다.
20분 여 치받이 길을 계속해 올라 다다른 320봉에서 우회전하여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밟았습니다. 모락산의 햇살이 몽땅 모인

듯한 곤양 배씨 묘에서 잠시 몸을 따뜻하게 한 후 조금 더 걸어 승전비에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이곳에서 의왕시와 미술협회가

공동으로 모락산성 예술축제를 열어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길옆에 "대화"등의 여러 편의 그림들이 나무에 걸려

있었고  많은 분들의 소원을 적어 놓은 형형색색의 리본도 또 다른 나무들에 꽤 많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모락산성은 삼국시대에

경기남서부지방의 평야를 보호하기 위해 축성된 테뫼식 석축성으로 그 길이가 820미터라 하나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고 대신 그 자리에 1951년 중공군 1개 연대를 격파한 전공을 기리는 작은 승전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10시28분 해발 386미터의 모락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서쪽으로 분명하게 보이는 수리산의 연봉들을 모두 밟아 볼까 합니다. 영하 8도의 냉랭한 날씨에도 산을 찾는

산객들이 많아 정상은 여전히 붐볐습니다. 10시40분정상에서 되돌아온 전승비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백운산으로 향했습니다.

320미터대까지 내려와 길을 잘못 들어 10분 가량 알바를 했지만 대체로 백운산 정상까지 등산로가 분명하게 나 있었습니다. 산객들이

많이 다닌 길이 아니어서 오랜 가뭄에도 먼지가 나지 않아 좋았습니다. 전승비에서 30분을 걸어 능안마을과 오메기마을의 분기점인

해발 150미터대의 안부로 내려서 선 채로 숨을 고른 후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11시26분 백운저수지-의왕시 고천을 잇는 지방도로를 건너 백운산으로 향했습니다.
전승비에서 도로까지의 산길은 고즈넉했고 오르내림도 그리 심하지 않아 편안하게 걸었습니다. 도로를 건너서 소나무 숲길을 걸어

공원묘지를 지났는데 구정 때와는 달리 겨우 부부 한 쌍만 성묘를 하러 와 신정의 공원묘지가 무척 쓸쓸해 보였습니다. 전망이 탁 트인

공원묘지에서 아침에 오른 모락산을 뒤돌아보고 그 전경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본격적인 산 오름에 다시 나섰습니다.

 

12시 6분 350미터대의 능선에서 산행시작 2시간 반만에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었습니다.
날씨가 매섭게 차가와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바로 이번 산행에서 가장 가파른 치받이 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름 길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내려다 본 북서쪽의 백운저수지가 서슬 푸른 냉랭한 날씨로 더욱 차디차게 느껴졌습니다. 모락산에서 백운산을 이어주는

산길이 공원묘지까지는 오르내림이 적당해서 별로 힘이 들지 않았는데 묘지에서 백운산 정상까지는 산 오름이 고되어 모처럼 진땀을

흘렸습니다.

 

12시 36분 능선의 쉼 자리에서 30분을 가파르게 올라 해발 567미터의 백운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경기도 산림연구소에서 세운

산불감시시스템이 자리잡은 정상은 비교적 시야가 가리지 않아 북쪽으로 발화산과 청계산이, 북서쪽으로 관악산이 그 자태를 

분명하게 내보여 선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구름 속에 노닐었을 백운산과 오랜 시간 교유해온 모락산과 수리산이 서쪽에,

광교산의 연봉들은 남쪽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정상의 벤취에 앉아 15분 가까이 김밥으로 점심을 들며 모처럼 편안하게 쉬었습니다.

 

12시50분 군 기지를 왼쪽으로 돌아 광교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걸었습니다.
울타리 안에 세워진 안내판에 이 지역은 1950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에 의거 1954년에 국방부장관이 출입을 금하는 제한 구역으로

묶었다는 안내문을 보고 요즈음 개폐문제로 도마 위에 올려있는 국가보안법의 생명이 끈질기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적인 것이 합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현실적이라는 헤겔의 명제가 시대를 뛰어넘는 참이라면 50년 넘게 사문화 되지 않고 그 효력이

지속되어 온  국가보안법도 나름대로 그 존재이유가  있을 것이기에 보다 많은 국민들이 폐지보다는 개정 쪽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13시10분 수지의 고기리로 갈라지는 해발 510미터대의 억새 밭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백운산에서 경기대까지 이어지는 광교산은 그 주능선의 거리가 약 8 키로로 결코 작은 산이 아닌데 100만을 넘는 수원시민을 몽땅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인 듯 싶었습니다. 성인남녀의 약 9%가 산을 즐겨 찾는다는데, 4-5만명은 족히 되는 수원시의 산객들이 일시에

광교산을 찾는다면 이 산이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실제 여기 저기 등산로가 황폐화되어 사람이 지나가는 대로 먼지가 풀풀

날렸습니다.

 

13시38분 광교산 정상인 시루봉에 도착했습니다.
표지석에 명기되어 있지 않은 광교산의 고도가 그 옆에 세워진 국립지리원의 삼각점안내판에 581미터로 적혀 있었습니다. 집에서 갖고

온 캔 맥주로 목을 추긴 다음 시루봉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오랜 가뭄에 이길 저 길을 휴식년제로 묶어 놓아 출입이 허가된 제대로

된 등산로에는 사람들이 붐볐고, 당연 발걸음을 옮기는 대로 먼지가 풀풀 날려 짜증스러웠습니다.

 

14시46분 토끼재와 비로봉을 지나 해발 443미터의 형제봉에 도착했습니다.
3년 전에 고교 동창인 이규성교수와 함께 발화산-백운산-광교산코스를 5시간 반만에 마쳤는데 그때는 한 여름이어서 형제봉에 못 미쳐

페트병의 식수가 동이 나 고생을 했습니다만, 이번 산행에는 아직도 반병이상 남아 물 걱정을 아니해도 좋을 듯 싶었습니다. 형제봉에

다다르니 시인 박재삼님의 "산에서"시가 실린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올 한해 박재삼 님이 건네준 "사랑"이라는 화두를 곱씹으며

산을 오르내려 볼 까 하는 것은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고된 산길도 힘을 덜 들이고 오르내릴 수 있지 않을 까해서입니다.

 

형제봉 출발 25분 후에 다다른  이의동 입구에서 똑바로 걸어 경기대방향으로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형제봉에서 경기대에 이르는

산길은 그 양옆의 푸른 소나무와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길로 걷기에 편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피로를 회복했습니다. 오른 쪽

광교저수지에 담긴 물을 비추어 반사된 햇빛이 저녁시간임을  알려주어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로고스는 새해 첫날에도 한치도 어긋남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시3분 광교산을 완전히 빠져 나와 경기대 정문에 이르렀습니다.
의왕의 계원대를 출발한지 6시간 32분만에 다다른 경기대에서 새 해맞이 산행을 전부 마쳤습니다. 어제 하루 온종일 날씨가 매서워

귀를 가리고 산행을 했습니다. 기왕에 추울 바에는눈이라도 내려 쌓였다면 등산로가 먼지를 뒤집어쓰지는 않았을 터인데, 너무 가물어

봄 작물이 제대로 자라날 까 걱정이 되었고, 용수난이 가중되어 그렇지 않아도 힘겹게 돌아가는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 아닌가

염려스러웠습니다.

 

과천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경동OB산악회의 함기영, 이규성 동문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지난 해 이규성 교수는 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의 등정을 마쳤고 저는 말 산들을 포함해 통산 200산을 오르내렸는데 이를 자축할 겸해서 저녁자리를 마련해

산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저희들의 산 이야기꽃이 눈꽃으로 하루 빨리 이어지기를 갈망하면서 박재삼 님의 시"산에서"를 올립니다.

 

                            "산에서"

 

             그 곡절 많은 사랑은
             기쁘던가 아프던가
             젊어 한창때
             그냥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기쁨이어든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들고
             중년들어 간장이 저려 오는 아픔이어든
             가을날 울음빛 안풍에 젖어들거라.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 평생
             그가 다스리는 시냇물도
             여름엔 시원하고
             가을엔 시려오느니
             사랑을 기쁘다고만 할 것이냐,
             아니면 아프다고만 할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