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해맞이 산행 - 능경봉


불혹의 나이에 들어선 2004년이 빠르게 지나간다.
불혹은 사사로운 일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 나아감을 의미하건만...

2005년 해맞이는 어디서 할까? 고민하던 차에 대관령의 능경봉으로 정했다.
산행코스 및 시간은 대관령(06:40) -> 능경봉(07:30) -> 대관령(08:30)


며칠동안 아내와 사이가 안 좋았다.
2004년 마지막날이 될때까지도.. 오후 7시가 넘도록 해맞이를 어디서 할까 정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옆에서 가만히 있던 아내가 답답했는지.. 영화 한편보고 저녁이나 먹고 들어오자고 아이디어를 낸다.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으니...
아예 나가길 포기하고 저녁준비를 한다. 그리고는 마음이 상했는지 초저녁임에도 먼저 잠자리로 파고 들어간다.

오후 10시.. 고민 고민 하다가.. 내가 계속 저기압으로 있으면 2005년 내내 저기압이겠지..
떠나긴 떠나야 하는데.. 어디로 가나.. 고민 고민하다가.. 친구가 한 말도 있고.. 드디어 결정을 했다.
그래.. 능경봉으로 가자.. 거기로 가면 사람들도 붐비지 않고.. 동해안에서 떠오르는 해를 감상하기에도 좋을 것이다.

자는 아내를 깨우며.. "일출보러가자.."
"어디로?" "능경봉" 역시 떠나고 싶었나 보다.. 자다말고 일어나 한참을 정신차린다고 앉아있고.. 산꾼은 신이나서 짐을 꾸리고..
그렇게 해서 오후 11시에 대관령을 향해서 출발을 한다.

고속도로가 막힐 것은 뻔한 사실이고.. 국도를 타고 이천, 여주, 원주를 지나 새말까지..
새말에서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횡계를 지나 대관령으로.. 거의 막힘이 없이 쉬지않고 달려왔다.
구 대관령휴게소에 들어서니 새벽 3시.. 관광버스 2대와 자가용 몇대가 전부이다.
고속도로에 그 많던 차량이 모두 동해안으로 가는 모양이다.

날씨를 좀 보겠다고 차량밖으로 나왔는데.. 그야말로 살을 에는 바람이다.
금방이라도 볼이 떨어져 나갈것 같은 바람이 얼마나 차거운 지 도망치듯 차안으로 들어온다.
다행이 이불도 하나 가져오고 해서.. 시동도 켜놓은 채 차 안에서 잠을 청한다.
불편해서 잠도 안오지만 억지로 잠을 청한다.

아내가 깨워서 눈을 뜨니 6시다. 그래도 두 시간여를 달콤하게 잤다.
밖은 훤하게 밝아 오는데.. 아직도 바람은 쌩쌩이다. 성질급한 산꾼들이 하나둘씩 능경봉을 향해 출발하기 시작한다.
컵라면을 온수물에 데워 먹고.. 해맞이 산행을 준비한다.
6시 40분.. 해맞이 산행을 시작한다.


구름이 불 타는 듯 하더니.. (2005.01.01)


새해가 밝아온다 (2005.01.01)


2005년 새해 (2005.01.01)


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비를 지나 우측으로 들어선다.
선자령도 그랬지만 길은 아주 평탄하다.
아직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으나 랜턴을 켜지 않고도 갈만하다.
20여분을 걸었을까.. 평탄한 길이 끝나고 서서히 가파른 참나무 숲길이 나타난다.
아내와 딸의 보조를 맞추느라 천천히 산행을 한다.
조금 더 오르니 앞에 우뚝 솟은 능경봉이 보인다.
동쪽 해안을 보니 벌겋게 먼동이 트고 있다. 마음은 급해지고.. 이러다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해가 뜨는 것은 아닐까..

시계를 보니 30여분 여유가 있다. 가파른 경사길에 이르러.. 아내가 먼저 올라 가라고 등을 떠 민다.
정상에 오르니 구름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초조하게 아내와 딸을 기다린다. 다시 아랫쪽으로 마중을 나서니.. 숨을 몰아쉬며 아내와 딸이 올라온다.
다행이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미리 보아 둔 해맞이하기 좋은 장소로 와서 해를 기다린다.

불타는 구름속을 뚫고 드디어 해가 뜬다.
마음속으로 이것 저것 기원을 한다.
옆에서 야호를 외치는 사람.. 만세를 외치는 사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외치는 사람.. 새해를 맞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정상에서 (아내의 머리가 백발이?) (2005.01.01)


정상에서 딸과 (2005.01.01)


멀리 본 동해 운무 (2005.01.01)


해는 매일 같이 뜨고 지건만.. 오늘 보는 해는 웬지 더 힘차고.. 더 붉고.. 더 웅장해 보인다.
올해는 닭띠 해라서 새벽을 깨우는 의미가 또 다르다.
올해도 힘차게 뛸 수있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한참을 해뜨는 모습에 빠져 추운 줄을 몰랐다.

이제 해맞이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내려가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리고 아내를 보니 입김이 머리에서 설화로 피어 한시간 사이에 백발이 되었다.
새벽 햇살에 물든 동해안의 구름이 아름답다.
정상에서 사진을 몇장 찍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하산한 후 천천히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길에 (2005.01.01)


내려와서 본 능경봉 (2005.01.01)


멀리 능경봉 반대편의 선자령 (2005.01.01)


올라갈 때는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내려오면서 보니 산에 제법 눈이 쌓여있다.
그래도 많이 오지 않았길 다행이다.

새해 산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려오면서 올해도 안전산행 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시산제도 못하고 바로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