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산행을 지원만 하면서 같이 산행할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임상택님이 경영하는 무역회사의 직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정기산행을 갑니다. 남편이 이 산행에 같이 가게 되었고 남편은 내게 같이 가기를 권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던 터에 반가움이 앞섰습니다.


전날 갓바위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관절에 심한 통증을 느꼈음에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동참하겠다고 흔쾌히 답을 해버렸습니다.


겨울산행에 필요한 장비가 없는 나에게 남편은 방한용 장갑을 줍니다. 모자 달린 체육복에 목도리를 하나 두르고 집을 나섰습니다.


경부고속도로 황간 나들목에서 차를 내려 민주지산으로 향합니다. 세대의 차가 줄지어 좁은 국도를 따라갑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이나 바람은 붑니다. 지금 차창 밖에서 서성이는 바람은 몹시 차가울 것입니다. 산에 나무들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냇물은 꽝꽝 얼어있습니다.


두 번이나 요금을 징수하는(한 번은 입장요금, 한 번은 주차요금) 물한리계곡 입구를 지나 한천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산행준비를 합니다. 단단히 동여맨 마음 때문인지 생각만큼 춥지는 않습니다.


임상택님과 우리부부만 각호산에서 삼도봉까지 산행을 하기로 했고, 임상택님의 회사직원들은 산행경험이 많지 않은 관계로 곧바로 민주지산으로 올랐다가 삼도봉으로 향하는 비교적 짧은 거리의 산행으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관절 통증이 심하지 않으면 나도 삼도봉까지 가 볼 요량입니다.


민주지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남편은 미리 준비한 5만 분의 1 지도를 보더니 각호산을 향해 길도 없는 곳으로 방향을 잡으려고 합니다. 임상택님과 한참 실랑이를 벌인 끝에 임상택님의 의견이 맞다는 결론이 나고 오른쪽 임도를 따라 방향을 잡습니다. 잘 한 것 같습니다. 길 따라 표시기가 곳곳에 보입니다.


얼어붙은 각호골로 들어서서 데거리봉을 향해 올라갑니다.


맑은 공기와 차가운 바람과 비교적 굵은 돌과 잎을 떨군 나무와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과 떨어진 낙엽이 이 계절의 주인인 겨울 앞에서 주인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는 듯 각자는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며 정중동(靜中動)하고 있습니다.


나는 빙판이 나타나면 유난히 긴장합니다. 그때마다 뒤에 따라오던 남편이 손을 잡아줍니다. 남편과 함께 하는 산행은 이래서 좋습니다.


산행을 시작하면서부터 같이 걸었던 세 명의 산객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가는데 내가 없다면 남편은 벌써 어디까지 달아났을 것입니다. 임상택님은 멀리 달아나 버려 보이지 않습니다.


데거리봉에 올라 왼쪽으로 능선을 따르는데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어옵니다. 산에서 겨울바람을 맞으니 진짜 겨울의 중심에 서있는 것 같습니다.


각호산은 민주지산을 향해 가는 길과는 반대쪽에 조금 떨어져 솟아있습니다. 나는 올라갈 엄두를 내지 않습니다. 남편은 먼저간 임상택님을 따라 각호산으로 가면서 잠깐 기다리라고 합니다. 이 추운 곳에서 기다리라고만 하고 각호산을 향해 달려가는 남편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지만 막상 시간을 보니 금방 다녀왔습니다. 춥기도 하고 관절에 통증이 느껴집니다.

 

임상택님은 또다시 사라져버렸습니다.


뒤에서 불어오는 삭풍에 몸을 싣고 태양의 온기를 가슴에 안으며 민주지산 정상을 향해 걸어갑니다. 다행이 눈은 많이 쌓여있지 않습니다. 다만 나무에 붙어있던 상고대가 햇살과 바람의 힘에 의해 떨어져 땅에 깔려있습니다. 수많은 얼음조각을 밟으며 가는 것입니다.

 

오른쪽으로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과 향적봉에서 시작되는 스키장의 슬로프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덕유산만이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사방이 트여있어 온갖 산들이 다 보입니다. 나는 어느 방향에 무슨 산이 있는지 모르지만 남편은 황학산 금오산 가야산 속리산 주흘산 대둔산 등등 마구 주절댑니다. 나는 춥기만 할 뿐 남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고 싶지도 않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눈가루가 햇살을 받으며 반짝입니다. 잠시 황홀경에 빠집니다.


나무지팡이를 하나 주워들고 힘겹게 민주지산 정상(1241.7m)에 올랐습니다. 참으로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사진을 찍기 싫어합니다. 하지만 임상택님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사진을 한 판 찍고 물한리계곡으로 내려가겠다고 남편에게 말합니다.


민주지산 정상 바로 아래 갈림길(물한리계곡과 석기봉으로 갈라지는)에는 나무의자 두 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우리 셋은 그곳에 앉아 차가운 김밥을 입에 넣고 녹차와 커피를 입에 물고 조금씩 밥을 녹여먹습니다. 바람이 굉장합니다. 커피를 태우려고 잠깐 장갑을 벗었더니 순간에 불어오는 칼바람에 손이 끊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무척 많이 오르내립니다. 토요일인데도 오늘이 마치 일요일 같이 느껴집니다.


남편과 임상택님이 삼도봉을 향해 가는 것을 보고 산을 내려갑니다.


올라가는 것 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살짝 덮인 눈 때문에 몹시 용을 쓰면서 내려가니 관절은 더욱 아파 옵니다.


삼도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마주치는 삼거리에 내려서면서 산행은 금방 끝이 날 것 같았는데 아닙니다. 계곡을 보호하려고 쳐 놓은 철망을 따라 지루하게 걸어갑니다. 중간에 낙엽송이 빼곡한 지역을 지나면서 잠시 멋진 나무를 감상하려고 멈추었지만 아픈 관절은 감상의 호사를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이름이 거창해서 둘러본 황룡사는 1972년에 지어졌는데 대웅전만 한식의 모양으로 지어졌고 나머지 건물은 모두 일반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주택의 형태를 한 콘크리트 건물로 되어 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염불소리를 뒤로하고 돌아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데 길가에서 추위를 온몸으로 견디면서 곶감을 팔고있는 아줌마가 곶감을 사가라고 합니다. 다가가서 보니 값도 저렴하고 품질도 좋습니다.

 

다가오는 친정아버지 제일(祭日)에 제상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꾸러미를 사고 돌아서는데 설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과 설날이 지나면 바로 시아버님 제일이라는 것을 자각합니다. 주머니를 톡톡 틀어 세 꾸러미를 샀습니다.


이곳에서 자랑하는 농작물 중에는 곶감과 함께 호도와 밤, 표고버섯도 품질이 좋다고 합니다.


40분이 지났을까 남편이 먼저 다가옵니다. 뒤이어 직원들과 임상택님이 내려오면서 산행은 무사히 끝이 났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하산 뒤풀이 없이 곧바로 대구로 돌아왔습니다. 하산 뒤풀이를 하지 않아 남편은 섭섭할지 몰라도 나는 좋았습니다.


이렇게 새해 첫 산행을 무사히 끝낼 수 있게 되었으니 올 한해 모든 산행길이 무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바램을 가집니다. 같이 산행을 많이 했으면 하고......


산행 일자 : 2005년 1월 8일 토요일
산행 거리 : 약12km
산행 시간 : 5시간 ( 출발 09:30 도착 1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