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서울에서 고향에 내려가기 위해 자동차로 가끔 소백산 죽령을 넘었는데 그 때마다 소백산을 오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지금은 중앙고속도로의 죽령터널(국내 최장 터널, 4.52km)에 의해 백두 대간을 통과할 수 있게 되어 죽령 꼭대기 휴게소의 녹록한 한식 뷔페 맛은 잊혀진지 오래다.

 

소백산하면 봉우리들의 특이한 정렬이 인상적이다.

 

아래 지도에서처럼 조물주가 아홉 개의 봉우리들을 알까기하듯 일렬로 정렬해 두었다.

 

이를 가리켜 일명 구봉팔문이라 한다.

 

사실 가장 남쪽 새밭문봉 아래의 660.9봉과 배골-곰절 사이의 무명봉까지 포함한다면 십일봉십문이 된다.


  
 

나는 매년 한두 번씩 오지탐험을 떠나는데 주로 여름의 인적이 드문 수려한 계곡을 많이 찾는다.

 

작년에도 소백산의 구봉팔문 동쪽의 남천과 절골을 연계하는 코스를 계획했으나 자연휴식연제라는 소리도 들리고 그 밖의 여러 사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어 내연산 경방 계곡, 팔각산의 옥계, 주왕산의 절골을 잇는 3박 4일의 트레일 코스로 대신했다.

 

각설하고 1월 8일 새벽 5시 30분, 부산의 모 산악회 소백산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차를 몰고 성남으로 가 배덕전옹을 모시고 경부/영동/중앙 고속도로를 달려 단양에 이르른다.

 

배옹께서는 74세의 연세이시고, 몇 년전 산행 중에 갈비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으로 오랜 기간동안 병원신세를 지셨지만 여전히 적극적으로 산행을 이어가신다고 들었다.

 

배옹의 이번 동행은 휴대용 GPS 단말기의 활용법을 개인교습받기 위한 것이다.

 

현재는 젊은이들을 따라 산에 다니시지만 단독 산행과 단독 해외 트레킹을 하고 싶으신 마음에 휴대용 GPS의 활용법을 배우신단다.

 

나에게 배옹께서는 연로하시고 학업성취도가 다소 떨어지는 제자이지만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기까지 한 분이다.

 

비슷한 연배의 마나님은 장대하고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하시는데 배옹께서 젊은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고 배우셔야 건강하실 수 있다고 바깥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신다고 한다.

 

심지어 배옹께 직접 인터넷과 e-mail을 가르쳐 주시려고 한다니 그 마인드가 여느 할머니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산악회의 이번 소백산 모임은 풍기읍 삼가리에서 시작하여 비로봉에 올라 단양읍 천동리까지 가는 일정이란다.

 

우리는 차를 가지고 가기 때문에 천동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산행 중에 산악회님들을 만나 함께 천동리로 원점회귀할 요량이다.

 

천동리로 가는 도중에 단양읍내에서 김밥과 행동식을 준비하고 천동리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그 때 시각이 오전 10시 18분, 산악회장님께 전화를 드리니 아직 버스로 이동중이라고 하시며, 오전 11시가 넘어야 도착할 것 같다고 하신다.

 

우리는 바로 천동계곡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이 코스는 작년 재경부 산악회를 따라 올랐던 길이라 낯설지 않다.

 

4WD 차량이 7부 능선의 야영장까지 오를 수 있도록 길을 닦아놓았는데 이런 길은 산행의 재미가 덜하다.

 

야영장 이후로는 눈이 제법 덮여있다.

 

옹달샘을 지나 계단을 따라 완곡한 비알을 오르니 백두 대간이다.

 

백두 대간! 기억나는 얼굴들이 지나간 길이자 지나갈 길, 언젠가는 내가 가야할 길, 종주를 위해 이 길을 다시 찾을 때에는 제발 오늘같이 춥지 않기를...

 

겨울의 매서운 바람 너머로 보이는 웅장한 비로봉의 모습이 산행의 피곤함을 잊게 한다.

 

방한 장비로 재무장하고 비로봉을 향한다.

 

말로만 들었던 소백산의 거센 계곡풍에 내 몸을 맡기니 저절로 비로봉에 오르는 것 같다.

 

오후 1시 34분에 비로봉(1439.5m)을 밟았지만 산악회님들은 뵐 수 없다.

 

거센 바람으로 비로봉에서 산악회님들을 기다린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다시 야영장까지 하산하여 기다리기로 한다.

 

비로봉을 내려갈 때에는 올라올 때와는 달리 마파람에 얼굴이 시리고 눈을 뜰 수가 없다.

 

나는 어릴적 눈이 작다고 단추구멍이라 놀림을 받았는데 그 단추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온다.

 

나의 수정같은(!) 눈이 얼음구슬로 변하는 것 같다.

 

고글을 준비해 온 산님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바람을 잠시 피하기 위해 주목관리사무소로 몸을 피하려 했으나 그 안은 이미 다른 산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쉼없이 바로 능선 아래로 내려가니 바람이 잦아든다.

 

오후 2시 36분, 다시 야영장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따뜻한 어묵과 국물을 사들고 매점 평상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

 

김밥을 그냥 먹으니 얼음이다.

 

그래서 따뜻한 국물에 찍어먹으니 슬러시다.

 

점심을 마치고 자리를 정리할 쯤, 산악회 회원으로 보이는 님들이 속속 도착한다.

 

산악회님들과 인사와 담소를 나누고 함께 하산을 한다.

 

주차장에 도착하신 산악회님들은 바쁜 일정 관계로 바로 버스에 오르신다.

 

흔히 볼 수 없는 검은색 버스가 인상적이다!

 

경황없이 산악회님들과 헤어지고 나니 오후 5시 2분이다.

 

열로하신 배옹과 큰 산을 오른다는 것에 걱정이 많았는데 그저 나의 기우에 불과했다.

 

우리도 승용차에 몸을 싣고, 내일 치악산 산행을 위해 원주로 핸들을 돌린다.


  

 

* 총 산행시간 : 7시간 02분(오전 10시 18분 ~ 오후 5시 02분)

 

* 총 산행거리(3D) : 14.43km

 

* 평균이동속도 : 2.1km/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