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악산 산행기/ 포토 에세이
(2004.1.9/등선교-등선봉-흥국사-삼악산(용화봉)-깔닥고개-산장/윤도균,이용섭,노승현 님들과)

*.왜 삼악산이라 할까요

우리나라 역 중에 가장 낭만적인 역 하나를 말하라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강촌역(江村驛)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청량리 역에서 1시간 30분을 달려오면, 짙푸른 북한강 가 절벽 위에 길게 매달려 있는 듯한 동화 속의 이야기에 나옴직한 역, 그 옆에 뻥 뚫린 굴을 통하여 장난감 같은 기차가 1시간 간격으로 오고 가는데 그 바로 앞에 북한강을 가로지르는 등선교가 있습니다.
아름다움도 몰려 사는가. 강촌역은 검단산 구곡폭포의 입구요, 등선폭포 삼악산의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오늘을 함께 할 세 분들은 산을 인연으로 하여 인터넷 온라인상에서 만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의 오늘 계획은 삼악산 종주입니다.
그림 같은 등선교를 넘어 육교 바로 옆에 있는 리본 따라 70도의 경사가 계속되는 408m의 가파른 오름길로 오르고 있습니다.
삼악산에는 세 개의 큰 봉이 있습니다. 632m 등선봉, 654m 용화봉, 546m 청화봉 세 봉우리가 위치상 삼각형 모습으로 놓여있어서 '삼'(三), 그 봉우리들이 다 크고 험한 악산이어서 '악'(岳), 그래서 삼악산이란 이름을 얻은 것이지요. 그러나 보통은 최고봉인 용화봉을 삼악산이라고 하는데 이를 다른 이름으로는 성봉(星峰)이라고도 한답니다.


춘천시홈피서 퍼옴

춘천 8대비경을 차례대로 말하면,1경 삼악산, 2경 구곡폭포, 3경 의암호, 4경 봉의산, 5경 청평사 오봉산, 6경용화산, 7경 남이섬, 8경 소양댐입니다.
그 1경과 3경을 보러 온 것이지요.
그런데 왜 이렇게 힘이 들지요? 408m 봉은 까마득하게 남아 있는데 엊저녁 술을 마셔서 그런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삼악산 자료 수집을 하느라 잠을 설쳐서일까, 이 산의 계속되는 70도 가까운 가파른 경사 탓일까, 아니면 나이 탓일까, 갈 길은 멀고 걱정은 태산입니다. 앞에 가는 일행이 고맙게도 속도를 나에 맞추어 주지만 자꾸 앉아 쉬고만 싶습니다.

*. 재생의 기념 촬영
큰 바위 길이 나타납니다. 청파님은 그 길로 올라갔고 나는 '위험'이란 표지에 기가 죽어 돌아가는데 앞에 간 분들이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소리가 들립니다. 로프 좀 보내달라는 소리입니다.
이렇게 산에 오를 때에는 6m 정도의 로프만 준비해 가지고 다니면 위기를 넘길 수가 있지요.
오름 길에서는 바위를 잘 타는 사람이 먼저 올라가서 로프로 도와주고, 내림 길에서는 산의 어디에나 있는 나무에 밧줄을 두 겹으로 걸어 놓고 두 줄을 한 데 잡고 내려와서 한 쪽을 당기는 것이지요.
호루라기 또한 위급을 구하는 절대 불가결의 준비물입니다.
지팡이 또한 그렇습니다. 내리막길이나 빙판길에서도 그렇지만 뱀이나 산짐승을 만났을 때에는 호신용의 역할이 되어 주거든요.
일만은 산행할 때에는 판초와 바람막이 웃옷은 언제나 하나 더 준비해 가지고 다닙니다. 산에서 길을 잃었거나 비를 만났을 때 가장 위험한 저 체온 현상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드디어 408m봉입니다. 어느 고마운 분이 친절하게도 그 높이를 A4용지에 써서 코팅하여 소나무에 테이프로 붙여 놓았습니다. 사진은 추위에 손이 얼어서 카메라가 흔들린 것 같습니다. 다음에 올 때는 오른손 검지의 윗마디를 잘라서 올이 풀리지 않게 끝을 불에 그슬려 와야지 하는 생각입니다.

청파님이 재생 축하 사진을 찍어 주고 있습니다.
노국장님이 조금 전 80도 이상의 바위 길에서 삭정이인 줄 모르고 잡은 가지가 힘없이 꺾어지는 바람에 20m 아래로 굴러 떨어졌는데도 무사했거든요. 오른쪽 분이 말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등산하면서 나무를 그냥 믿고 함부로 잡지 않을 것입니다.

*. 등선봉에 올라서

노송이 바위틈을 비집고 함께 어울린 모습을 보면 살아있음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저 570m봉 여기에도 고운 사람이 나무에 봉의 이름과 높이를 써서 예쁘게 묶어 놓았습니다.

등산이란 한 발 한 발이 쌓여 하나의 봉을 정복하고, 다시 나타나는 봉을 향해 오르는 일입니다. 땀 흘려 여러의 봉우리를 지나서야 정상이 우리의 발밑에 있기에 정상에 서는 것이 기쁨이 되는 것이지요.

기진맥진보다 더 높은 단계가 무엇입니까? 탈진이지요. 탈진이란 원기가 다 빠져버린 상태입니다. 물을 너무 마셔서 그런가. 허기가 져서 그런가, 쉬고 또 쉬지만 오름길은 계속입니다. 천천히 가는 자가 멀리 간다는 중국 속담은 이런 경우 퍽 위안이 되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즐거운 점심 식사는 등선봉이랍니다.
고맙게도 청파님이 다시 내려와서 나의 배낭을 뺏어 지는군요.
드디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삼악산 세봉의 하나인 637.3m 등선봉 정상입니다.

한국의 산하를 굽어볼 수 있는 등선봉 정상에서 점심을 합니다.
아내들이 정성껏 마련해준 김밥, 모락모락 김이 나는 보온밥통, 푸짐한 족발 그리고 술이 내게는 어렵게 어렵게 목숨을 걸고 올라온 피로를 말끔히 씻어 줍니다.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는 것을 등선(登仙)이라 합니다.오늘은 금년 중 가장 추운 날씨라서 모두가 꽁꽁 웅크리고 있는 날 우리는 등선봉에 올랐으니 우리 같은 이들도 신선 측에 드는 것이 아닐까요.
도를 깨우치고 인간 세상을 떠나 자연과 벗하여 늙지 않고 오래 산다는 이가 신선이라면 도까지는 가지 못한 우리도 신선처럼 늙지 않고 오래 살고 싶어서 하는 말씀입니다.

*삼악산성의 전설

이 험한 산꼭대기에 웬 산성인가 했더니 이것이 맥국산성이(麥國山城)라고도 하는 삼악산 서남쪽 지대를 둘러 쌓은 삼악산성입니다.
2km의 내성은 고구려 이전에 삭주(朔州:지금의 강원도 춘천)에 맥국(麥國)이라는 소 부족국가가 등선봉의 동남쪽 공간에 축조하였다 하고, 4km의 외성은 고려 말 왜구를 막기 위해서 흥국사를 중심으로 등선 폭포로 이어지는 계곡에 쌓았다고 하는데 이 산성은 궁예가 철원에서 왕건에게 패하고 피신하여 사용한 근거지라는 전설도 아울러 전해 오고 있지요.


흥국사입니다. 궁예가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재건하려고 하여 세운 절이 속칭 큰절이라 부르는 흥국사(興國寺)이어서 이 근처를 ‘대궐 터’라고 하였답니다.
‘작은초원’, ‘큰초원’은 당시 군마를 매어 두었던 곳이라 하여 ‘말골’이라 하고, 등선폭포근처의 아랫마을은 군사들이 옷을 말리던 곳이라 하여 ‘옷 바위’(衣岩)라 한답니다. 의암호(衣岩湖)의 ‘의암’은 여기서 따온 이름이지요.

흥국사입니다. 대웅전은 작고, 탑은 최근 것이지만 절의 역사는 그 간판이, 낡은 부도가 이곳에 있었던 맥국과 궁예의 서글픈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흥국사에서 정상까지는 1.3km, 등선폭포까지는 1.8km입니다.
종주코스가 아닌 경우에는 일명 경주폭포라고 하는 등선폭포로 해서 흥국사로 올 수 있는 쉬운 코스지요. 칼이나 도끼로 찍어 두 동강이 난 듯한 좁은 골짜기에 10m 높이로 걸려 있는 등선폭포에서부터 그리 크진 않지만 비선폭포, 승학폭포, 백련폭포가 흥국사로 이어지는 코스지요.

*삼악산의 정상 용화봉

용화봉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검은 오석의 정상 표지 석 근처에서 먼저 올라간 사람들이 정상의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삼악산은 능선으로 능선이 이어진 산이 아닙니다. 등선봉에서 안부인 흥국사까지 멀리 내려와서 또다시 정상까지 1.3km를 올라가야만 하여서 이런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흥국사 바로 아래에 있는 막걸리집에서 막걸리나 마시다가 그냥 내려가도 좋은데-.
그러나 이렇게 힘들면서도 오늘 내내 한번도 후회해 본 일이 없습니다. 몸은 힘들고 생각은 미안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언제나 나의 산행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 삼악산의 멋

삼악산 등산의 멋은 의암호가 감싸고 있는 호반도시 춘천을 암릉의 능선에서 바라보는 감격입니다.
보세요, 춘천시의 모습을. 시내 복판의 '봉의산', 의암호 한가운데에 둥둥 떠 있는 붕어 같은 '붕어섬', 가운데 있는 섬 '중도'(中島), 그 위의 '상중도'(中島島)의 모습을.
예로부터 산수의 경치를 좋아하는 것을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한 것은 산과 물이 있고, 그 산에는 기암괴석이 노송과 어울려 있고, 강물은 폭포와 어울려 있음을 경치의 요소라고 생각한 때문이겠지요. 이런 요소를 다 갖추어 가진 산이 삼악산이랍니다.

"여기는 삼악산 주봉 635m 용화봉. 서울서 온 네 산꾼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잊혀지지 않을 추억을 박고 있습니다, 오버. DS2 EFB" 젊어서 아마추어 무선사(Ham)이었던 일만과 산으로 인연하여 온라인상에서 만난 사람들입니다. 이어 정상에서 정상주 파티가 있었습니다.

이젠 마지막 하산길입니다. 언제나 눈을 주면 보여주는 의암호, 춘천시의 환상적인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며 서둘러 하산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내가 오늘처럼 엉기지만 않았던글 등선봉으로 해서 616.5m봉을 지나 540m 청운봉으로 하는 완전한 삼악산 종주를 했을 것이지만 그랬다가는 이 산의 핵심인 흥국사를 못 보았지- 하는 것으로 위안을 하지만, 함께 간 분들께는 미안하기가 그지없습니다.
하산은 삼악산 정상에서 정확히 2.96km의 돌길입니다. 경고 '주의' 표지가 아니어도 여기서부터는 이 산에서 가장 경치가 좋지만 가장 위험한 돌길이 계속되는 구간입니다.

산 속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후회 없는, 행복한 하루, 말할 수 없이 고생하던 산행의 하루입니다. 저 아래 춘천교와 의암댐이 불을 켜기 시작합니다.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신현강 협곡을 높이30 m, 길이 273m로 막아 45,00kw의 전기를 생산한다는 1967년에 완공한 의암댐입니다.

삼악산장을 지나갑니다. 능선 길로 오느라고 400m 앞에 있다는 그 물맛이 좋다는 신라사찰 상원사(上院寺)도 그냥 지나친 지금 그 상원사 매표소는 200m 지척에 있습니다.
'닭갈비와 춘천막국수를 먹지 않고 춘천을 왔다'고 하지 말라는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습니다. 차편이 없는 이곳에서 음식점 사장이 강촌역까지 공짜로 우릴 모셔준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차를 타고 청평역에서 내려 송어회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청파님의 친지 서예가 휘암 이희철님이 운영하시는 서실에 들렸습니다. 좋은 인상이 초면이면서도 옛 친구 같은 분의 술빚을 지고 서둘러 막차를 타고 청량리역으로 향합니다. 휘암은 강가에 사시어선가 강(江)같은 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