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산행기

ㅇ 일시 : 2005. 1. 8(토)
ㅇ 위치 : 전북 무주군, 경남 거창, 함양군 (높이 1,614m)
ㅇ 코스 : 무주리조트-설천봉-향적봉-중봉-향적봉-설천봉-무주리조트
ㅇ 찾아간 길 : 대진고속도로 - 무주 I.C - 좌회전(무주리조트)


   아내와 아이들에게 눈꽃 핀 산하를 보여주고 싶지만, 겨울산을 찾아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휘몰아치는 칼바람과 추운 날씨, 위험한 등산로. 그 화려함만큼이나 고생스러운 것이 겨울산 아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4-5시간의 산행은 무리일 것 같고, 겨울산은 보여주고 싶고---하는 수 없이, 산을 오르는 재미는 없더라도 겨울산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덕유산을 찾아가기로 결정한다.

  

   대전을 출발한지 1시간 남짓. 무주리조트에 도착하니 스키를 타려는 차들로 많이 밀린다. 주차장 밑부분에 차를 주차시킨 후, 한참을 걸어 올라가 곤도라 표를 끊고 나니, 또 대기하고 있는 줄이 길다. 30여분 기다리다 드디어 곤도라(성인2, 아이2 왕복권 34,000원)를 타고 설천봉으로 향한다.

  

   15분여 곤도라를 타고 오르자 설천봉이다. 매서운 바람과 화려한 눈꽃의 세상이 한꺼번에 눈앞에 펼쳐진다. 올 겨울 들어 처음 밟아 보는 눈인지라 아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아내도 입을 다물지 못한다. 미끄럼 타고, 눈싸움하고---첫 풍경부터 아이들의 마음이 한껏 부풀어오른다. 설천봉에서 마냥 지체하려는 아이들의 들뜬 마음을 추슬러 간신히 오름길로 들어선다. 오름길로 들어서자 나무와 바위 위에 눈꽃이 한창이다. 정말 겨울 산의 눈꽃은 '환상'이라는 단어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것 같다. 미끄러지며, 눈꽃에 취하며 20여분 이어지는 설천봉 길. 매섭게 몰아치는 칼바람 덕에 덕유산 어느 능선보다도 눈꽃이 아름다운 것 같다.

  

   환상적인 설천봉을 지나 이제 향적봉에 오른다. 향적봉에 오르자 한눈에 들어오는 덕유의 줄기. 남덕유에서부터 휘몰아쳐 오는 능선이 장쾌하다. 눈꽃은 희미하지만 맑은 날씨 덕분에 한눈에 들어오는 덕유의 줄기가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다. 얼른 풍경 몇 장을 사진기에 담으며, 남덕유, 삿갓봉, 무룡산, 중봉---가만히 능선 길을 바라보고 있자니, 사람의 발길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한 발 한 발 떼어놓다 보면 어느 새 저 먼 길을 돌아 이 곳까지 다다르다니---쉬지 않고 노력한다는 것의 무서움. 그 노력이 이루어내는 위대함을 능선 길을 볼 때마다 느낀다.

  

   향적봉대피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운 후, 이제 중봉으로 향하는 능선 길로 들어선다. 능선 길로 접어들자, 곳곳에 잔설이 쌓여 있고, 바람이 거센 곳에는 눈꽃이 가득하다. 죽어 있던 주목의 가지 위에도 눈꽃이 만발하다. 죽어 있는 나무에도 꽃을 피게 하는 계절. 겨울 속에는 얼마나 많은 마술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 단색 하나로 만들어 내는 그 화려함에 그저 놀랄 뿐이다. 중봉까지 가는데 한 30여분 걸렸을까? 시간 개념 없이, 시선 쏠리는 데로, 발길 끌리는 데로 순백의 세상에 빠져든다. 순백의 세계. 차갑고 고요한 세계. 마음마저 저절로 깨끗해지는 세계. 겨울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하고 순결한 물결에 빠져, 우리 가족 모두는 한없이 허우적거린다.

  

   그렇게 허우적거리기를 얼마나 하였을까---발길은 어느새 중봉에 다다른다. 중봉에 오르자 첫 눈에 들어오는 것은 덕유의 줄기. 중봉의 부드러운 곡선을 배경으로 장쾌하고 아름답게 펼쳐지는 덕유의 줄기가 그저 황홀할 뿐이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덕유산 줄기에 대한 조망만을 따지자면 이곳에서의 조망이 최고가 아닌가 싶다. 바람이 너무 거세어 사진 몇 장만을 찍고 얼른 다시 향적봉으로 향하였지만 풍경에 대한 여운만큼은 길게 남는다. 

  

    이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다시 향적봉에 올라 적상산과 민주지산을 살펴 본 후, 부드러운 중봉의 줄기를 돌아본다. 짧은 산행이었지만 나름대로 알찬 산행. 이렇게라도 눈꽃 핀 겨울 산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나니, 몇 년 동안 미루었던 숙제를 한꺼번에 해결한 듯 마음이 가벼워진다. 설천봉을 지나고, 곤도라를 타고 하산하여 산행을 마무리한다. 

  

   하산을 하자, 겨울산의 눈꽃만큼이나 활짝 핀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 나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르고, 산에 올라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그 아름다움이 아이들의 가슴에 오래오래 남을 수 있다면---그 어느 교육보다도 훌륭한 교육이 되지 않을까? 아이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산, 아이들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산을 골라, 가능한 한 많은 곳을 찾아다니리라고, 귀가 길 다시 한번 새겨본다.  

  

(설천봉 주목)

(중봉가는 길에 본 주목)


   (중봉가는 길에 본 덕유능선)

(중봉가는 길에 본 눈꽃)

(중봉에서 본 덕유능선)

(중봉에서 본 향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