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사연들  ( 오후 12시 10분)

 

지친 선배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20여년 전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선배는 드러머였다. 1년 후배인 나는 기타가 전공이었지만 선배의 드럼에 매료되어 서클에 지원했다. 선배가 군악대로 차출되어 군에 갈 때까지 우리는 함께 음악을 했다. 지금까지 서클의 역사가 30여년에 이르도록 선배의 드럼 실력은 여전히 최고로  남아있다. 당시 송골매의 뚱보 드러머 보다 뛰어났던 선배가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란 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선배는 졸업과 동시에 조그만 무역회사에 입사했고 모두들 의아해 했다.

섬유 무역상이었던 선배는 7~8년전 독립과 함께 돈을 벌기 시작했고, 지금은 커다란 식당 프렌차이즈까지 경영하는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

언제나 당당하던 선배가 초 죽음이 되어 눈밭에서 배째라고 나부러져 있다.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론 억지로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산은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성공한 인생을 살았든 실패한 인생을 살았든 , 잘 생겼든 인물이 못났던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감동과 고통을 안겨주는 공평한 공간이다.

이전투구가 난무하는 속세의 반대편에 거대한 산이 있다. 산을 지배하는 유일한 이데올로기는 자연의 섭리이며 그 속에 거짓이 자리할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등반대장이 선배를 일으켰다.쉬더라도 저기 보이는 바위돌 뒤에서 바람을 피하자고 했다.

봄이면 꽃들이 만발하는 평탄한 오름길인 덕유평전의 눈 보라가 이렇게 매서운지 대장도 혀를 내둘렀다.

자자 이제 30분만 올라가면 돼요..그럼 고생 끝입니다

지금 눈 보라 때문에 하나도 안 보이지만 바로 저기 쯤이 중봉입니다

이 길이 초행인 나나 선배는 대장이 아무리 가리켜도 거리를 느낄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선배는 체력적으로 문제가 생겼다기 보다는 삿갓재 이후 계속되는 눈보라와 구름에 거리감을 상실하여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다고 봄이 정확했다.

그 눈보라는 덕유평전 오르막 계단에 발목까지 차오르는 눈을 쌓아놓았다.

중봉을 얼마나 남겼을까 마주 오는 등반객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무주구천동에서 올라온 등반객들이 우리가 온 반대길로 가기 위해 우리 옆을 지나갔다.그들의 모습은 매우 쌩쌩해 보였다.

 

바람을 피할 바위밑에서 우리는 중봉에 서기위한 마지막 휴식을 취했다.

쉴때 마다 장갑낀 오른손을 주물러 대던 베태랑 박사장이 모처럼 입을 열었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내 오른손에 마비가 와

그의 손짓은 잘라진 검지손가락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손이 이렇게 되던 날도 오늘처럼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쳤어

차안에서 처음 본 이후 궁금하던 그의 손에 대한 얘기였다.

그땐 정말 겁이 없었어

 

형님 옛날 구곡폭포 얘기 또 하는거여

최형사가 얘기를 맞 받았다.

 

산행내내 예사롭지 않게 보였지만 그 사연이 더 대단했다.

박사장은 10년전 빙폭 등반을 하다 자일에 걸린채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손가락을 절단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상이 함께 찾아와 어떻게 손을 써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박사장은 그 이후 손가락에 힘을 줄 수 없어 빙폭 등반이나 암벽 등반은 포기했다.

 

산행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3명의 동반자.

모두들 특이한 이력과 직업들.

그들은 먹을 것 없이 혼자와 중간에 탈출했을지도 모를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선배의 동료들과 나는 전날 처음 만났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훌륭한 산 친구가 되어있었다. 

 

마지막 고비 (12시 30분)

 

숨이 목젖까지 차오르는 것도 아니고, 다리 근육이 풀린 것도 아니다.

그냥 온몸에 기운이 떨어져 서있기조차 힘들다 .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어 더 이상 한발짝도 옮길 수 없는 상태가 찾아왔다.

온몸에 오한이 온다.

눈보라 때문에 조금씩 젖어든 윈드스토퍼 자켓이 천근처럼 무거웠다. 배낭안의 거위털 파카는 이럴 때를 위해 준비했다. 하지만 만사가 귀찮아진 나는 배낭을 내리고 옷을 꺼내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 아마 한 두시간 더 그런 상황이 지속됐다면 우리 중 몇 명은 조난을 당했을 것이다. 

이 추위와 고통에서 한시 빨리 벗어나고픈 본능으로 한발씩 나아가고 있을 때 경사진 오르막이 수평으로 바뀌고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들이 마주 하며 북적댔다.

넓직한 평지에 이정표 하나 있다.

덕유산 제일봉인 향적봉(1,614m)과 1km 거리에 나란히 선 중봉(1,594m) 이었다.

이정표 앞에 서서 막힌 호흡을 토하고 나니 비로서 상고대 눈꽃의 아름다움이 눈 안에 들어왔다.

사진을 찍고 물을 한모금 들이킨 후 평탄한 눈 길을 따라 향적봉으로 향했다.

이제 향적봉을 지나면 지리한 내리막길이 이어질것이다.

뇌까지 조여오는 극한의 고통은 없다.

< 지난 길을 되뇌이며 조심조심 시간과 함께 하면, 우리가 떠나온 속세에 이르겠지 >

 

- 마지막편으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