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종주 산행기

일  시 : 2005년 1월 28-29일

등반자 : 이성오를 포함한 4명

코  스 : 영각사-남덕유산-무룡산-동업령-북덕유-무주구천동-백련사

산악회 : 구의산악회

 

언제부터인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전부터 산에 오르기전 나름대로의 준비와 일정을 챙겨오던 나는 몇 번의 산행을 하면서 後에 산행기를 적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출발시간, 각 주요지점 통과시간을 지도에 적어놓곤 했었다.

허나, 산행을 끝마치고 하산주와 함께 글로 적어야 겠다는 생각은 건배와 함께 손에 든 잔속의 酒와 함께 사라지곤 했다.

아직까지 지리산종주(2박 3일), 설악산(무박 2일), 불암산-수락산 종주, 청계산, 검단산등의 기록도 아직 서랍에 사진과 함께 숫자들로 나열만 되어있다.

이번에 이렇게 글로 옮기기까지는 산행에 함께 참가한 지인들과 함께 그 기억을 오랜시간 나누고 싶어서 일까, 늦은 귀가 시간 집으로 돌아오면서의 생각이 아침에 눈을 떠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에 손을 가져가게 했다.


지금부터 다소 정리되지 않고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널리 이해를 바라며, 머리와 가슴에는 그때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면서 몇자 적고자 한다.


2005년 1월 28-29일 무박산행준비


2004년 말부터 덕유산을 준비해 왔던것 같다.

지난 6월초 지리산종주를 마치고 난 후 산행에 대한 조금의 맛(?)을 알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눈덮인 산에 서있는 내 자신을 느끼고 싶어 조심스럽게 겨울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2005년 1월초, 2월초, 아니면 2월말.... 새해가 밝아온 후 조금더 구체적인 날짜와 일정이 세워지고 있었다.

흥분이 된다. 발끝 저 밑에서부터 눈덮인 산위를 서있는 모습이 조금씩 그려지고 있었던 것 같다.


검단산을 1월초에 다녀오면서, 다음번에는 덕유산을 갑시다라는 구체적인 의견이 제시되었다.

산행은 2월달에 가겠거니 했다. 교통편, 등반리더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산악회와 동행을 하는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서 여러 산악회의 등반일정을 찾던 중 불행인지 다행인지 2월달에는 덕유산 산행이 거의 전무했다. 간혹 있더라도 2월말경에나 잡혀있고,,,


산행기를 들러봐도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덕유산은 2월말이면 정상부근에만 잔설을 조금 볼 뿐 겨울산을 느끼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았다.


1월 28-29일 산행이 잡혀 있는 산악회를 발견. 고심에 빠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산행날짜가 社내 선자령(대관령) 계획과 겹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나 개인적으로는 겨울내 준비하고 있는 훈련(?)이 있어서 토요일을 반납하고 있던 실정이었다. 이를 어쩐다 덕유산 종주를 계획했던 두사람은 고민에 빠졌다.

선자령에 참석하는 일행들도 덕유산을 함께 가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은 덕유산 종주를 감행하는 쪽으로 잡혔고, 선자령에 가기로 했던 일행은 아쉬움과 서운함으로 선자령 계획을 실행하게 되었으며, 우리도 4명으로 구성된 종주팀이 구성되었다. 지금도 선자령을 다녀온 팀들에게는 미안함이 앞선다. 다음번에 산행계획을 세울 때에는 좀더 신중하게 해서 누구도 서운함이 없는 준비를 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결정이 내려진 것은 불과 출발 3일을 남겨두고 구체적인 산행준비를 해야했다.


겨울산행을 위한 사전준비는 그때부터 이루어졌으며, 크게(?) 준비해야 할 것에 대한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교통편(산악회)예약과 식사준비정도로 공통에 준비는 마치고 개인적으로 방한복, 아이젠, 스패치, 비상식등 겨울산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준비하게 되었다.


13시간이라는 예상 종주시간과 개인준비물, 여정(산행지도)등을 일행에게 나누어 주며 몇가지 걱정에 쌓이게 되었다.


첫 번째는 산은 인간이 상상할 수없는 예측불가에 일이 발생할 수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 일이 닥쳤을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할 수있까 라는 두려움이다.

또 하나는 나도 아직은 부족하고 산을 모르는게 너무 많은데, 우리 일행중에 산행이 많이 서투른 선배가 동행하는 것이다.

내 준비와 함께 짧은 지식으로 몇마디 선배에게 전해주었다. 물론 그걸로 내 임무의 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덕유산 일행은 출발 1일전 몇가지 장비의 부족으로 예전부터 산행전에 장비를 구입하는 판매점(on-off line을 겸하는 outdoor 관련장비를 판매하는 상점으로서 2000년부터 현재까지 급성장을 하는 벤처기업으로 성장. 년간 10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음. 그때 우리들은 그랬지, 이사업은 될거야 라고)에 들러서 상의 내피, 아이젠, 야외용 컵등을 사고 그 상점 옆에 있는 추어탕집(두번째 방문인데, 맛이 겉보기와는 아주 다르게 좋음. 아마도 이집은 우리가 산행을 하기전에 꼭 들러 영양을 보충하는 집이 되지 않을까)에 들러서 점심을 해결하고 산행준비를 마쳤다.


2005년 1월 28일 금요일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려서 지난밤 밤새 준비한 배낭과 옷을 챙겨입고, 아내와 아들의 어려운(?) 배웅을 뒤로하고 양재동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얹었다.


금요일 저녁에 전철안에는 배낭을 짊어진 나와 같은 사람이 몇 보인다.

저분들은 어디로 산행을 잡았을까, 혹시 우리와 같은 산행을 하는 건 아닐까, 왠지 낯설지가 않은 것은 왜일까.


10시 15분 서초구청옆 외교센터로 가는길에 배낭을 둘러맨 사람들이 보이고 바로앞에 우리일행 3명이 약속장소로 걸어가고 있다.

10시 27분 산악회 버스가 도착하고 우리 일행 4명과 2명을 삼킨 후 차는 스르르 목적지로 향했다.


차에 오른 후 밖과 차안의 온도차로 인해 우리는 정신없이 자리에 배낭과 함께 걸터앉고 잠시후 이번 산행에 함께하는 산악회 일행들을 한번 훑어 보았다.


어... 이상하네... 女등반객도 없고, 말소리도 그리 크지 않고, 다들 따로따로 왔나 싶을 정도로 차안의 공기는 엄숙(?)했다.

뭐,그렇지 않은가. 산행에 앞서 옆사람과 그동안 나누지 못한 얘기도 있을 거고, 심심풀이로 몇마디 주고 받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조용하다. 우리도 점차 그분위기에 빠져들며, 등반대장의 인사와 산행안내가 뒤를 이었다.


첫마디가 차안의 분위기를 사로잡는다.

“쉽지 않다. 약 13시간정도의 산행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중 몇 번의 고비가 있으며, 그 고비중 탈출구는 딱 2군데 있다. 산행 후 4시간 후 삿갓재 대피소에서 1번, 무룡산에서 1번 그 곳을 지나치면 무조건 종주를 마쳐야 한다. 남덕유에 오르는 공포의 철계단을 오른후 정상에 도착해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무리가 된다면 과감히 탈출구를 선택해라.라는 것이다.”


나의 짧은 산행경험으로 함께 하는 산악회의 등반대장이 저렇게 얘기를 하는 것은 정말 놀라웠다.

왠지 겁이 난다. 그 탈출구를 선택하는 사람이 내가 되면 어쩌지...

머리를 흔들어, 좀 더 등반대장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어지는 말인즉, 산행이 빨리 끝난 선두팀은 후미팀을 고려하지 않고 불만을 털어놓게 되면 회비 돌려주면서 차에서 쫓아내 따로 서울로 올라가라고 할것이다라고 한다.


선두팀을 리드할 대장을 인사시킨다. 오 선수(프로)인것 같다.

그리고 등반대장인 자기는 후미에서 모든 일행을 뒤따르겠다고 한다.

저 등반대장이 앞으로 우리팀의 산행에 무시무시(?)함을 전할 줄 누가 알았겠나.


질문도 없다. 우리들에겐 삭막한 차내 분위기와 산행에 줄거움을 주려는 의도의 농담도 없다.


다들 잔다. 2-3분에 걸친 산행안내를 끝으로 차내 조명은 꺼지고 마치 모든 사람들이 준비라도 한듯이 잠을 잔다.

차량의 불빛이 새들어 오는 서리가 낀 차창을 커텐으로 막고 우리도 말없이 혹시 올지 모를 잠을 청해본다.


잠은 오지 않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긴장감과 흥분은 좀처럼 가시지를 않는다.

함께 한 우리 일행 모두 똑 같은 심정인 것 같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휴게소에서 목을 간단히 축이고 차량은 목적지로 향했다.

02시 10분 육십령 휴게소(간판은 휴게소이나 등산객을 위하여 상호를 그렇게 지은것 같다. 어느 시골에 있는 조그마한 구멍가게라고 할까)에서 등산객을 위한 넓직한 식당에 차는 정차했고 등반대장의 안내방송은 이곳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30분후에 영각사 매표소에서 산행을 시작하겠다고 한다.


운동(?)을 시작한 후로 잘먹자(특히, 밥종류는 운동이나 산행전 1-2시간전에 꼭 챙겨먹고  시작하는 습관이 있다.)라는 조그마한 규칙을 하나 정했다.

우리 일행은 모두 밥생각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뭔가 아쉬운 듯 식당에는 차량에 탑승한 모든 사람들이 웅성이고 있다.

약 15명가량이 김치찌개를 주문했고, 시골 인심 좋아보이는 아주머니는 음식준비에 여념이 없다.

한쪽 테이블위에는 삶은 계란이 놓여있었고, 주문한 밥이 나오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을 예상한 사람들과 밥을 먹기에는 왠지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하나둘씩 계란을 식탁에 탁 붙이치며 까먹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한 개씩을 깨먹으며, 조금 있을 산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밑반찬이 나오고 김치찌개가 나왔다. 와~~우, 김치찌개는 정말 시골김치찌개였다. 돼지의 비개가 살보다 많이 붙어있게 두툼하게 썰어져 있고, 두부는 넢지막하게 담겨져 있다. 수저로 한수저 떠보니, 오래 묵은 신김치와 돼지고기 육수가 어울려 있는 맛이 정말 예술이었다. 아마 산행이 아니였다면 소주 1병은 가볍게 비우지 않았을 까 싶다.


다들 정신없이 김치찌개를 밥에 얹어 먹기 시작했고, 나또한 산에서 제대로 밥을 먹는 것은 산행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열심히 먹었다.


그런데, 시골밥그릇은 서울의 그것과는 너무 달랐다. 아마 1.5배는 더 큰것 같다

같이 먹던 사람들도 힘에 겨워 보인다. 그러나 어쩌리 일단 김치찌개에 맛들린 입맛은 한공기를 다비우게 하고 말았다.


2시 40분을 조금 넘어 차량은 덕유산 종주의 시작점인 영각사 매표소에 도착했다,

차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적진을 향해 출발하는 병사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장비를 챙겨 내리고 있었다.

배낭을 둘러매고 장갑끼고, 스틱을 꺼내들고 모자 눌러쓰고, 헤드렌턴 꺼내 머리에 고정하고 신발끈 매만지고......


차량 뒤편에서 등반대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 이쪽으로 모이세요” 그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모든 사람들이 그쪽으로 모이고 바닥에는 헤드렌턴의 불빛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