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종주 후기 ★


<지리산의 영혼 -고 하성목님의 작품- >

 

 

 

♣ 일시 : 2005. 2. 5. 04:00 ~ 2. 6. 09:00

 

♣ 산행유형 : 번개산행

 

♣ 참가인원 : 8명

  (부산갈매기님, 사랑뫼님, 캡틴님, 차칸아님, 미리미님, 산빛님, 햇살님, 초록)

 

♣ 차편 : 밀양에서 차칸아님의 소렌토를 이용하여 7명 탑승

             북창원에서 초록의 소렌토를 추가하여 각 4명씩 널널 이동  

 

♣ 준비물 : 겨울등산을 위한 기본 장비, 즉, 

   - 75리트 이상의 배낭(초록은 100리트 용기를 가져 갔더니 널널해서 좋았다)

   - 스패츠(필수), 가급적 고어텍스로 된 등산화(발목이 길면 더욱 좋다)

   - 아이젱(4발이가 편하다. 6발이는 보행에 장애를 주기도)

 

   - 식수통은 충분히(겨울 지리산은 물이 귀하다)

   - 보온용 외투, 오버트루저는 필수 

   - 장갑, 꼭 필요한 물건이다. 얇으면 손이 시리므로 두툼하면서 손가락 쓰기에 용이해야..

 

   - 보안경 내지 고걸(꼭 필요한 것은 아니나 맵시로...)  

   - 행동식이 가능한 음식(먹는 것은 지극한 즐거움이자 생존의 유일한 수단이다.

      걷다가 배가 고프면 하늘이 노랗게 변한다...! 미리 충분히 준비해야...  

   - 휴지( 참고로, 지리산에는 아무데나 들어가면 벌금이 50만원이므로

              산장이나 공중 화장실을 만나면 반드시 ??통을 가벼이 비워 두어야 한다)

 

   - 종주를 할 때는 야건에 걷는 경우를 대비하여 "머리전등"이 필요하다. 여분의 약(밧대리)  도 필히 챙길것   

  - 스틱(가급적 쌍지팡이로. 사용방법에 따라 오르내리막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

 

- 기타 양발이나 여분의 내의 등 

 

   * 사진기를 가져갈 경우, 겨울에는 밧대리 소모가 심하므로 예비 밧대리를 준비하고, 카메라 보관시 

     따뜻한 곳에 넣어두면 밧대리 소진이 더디다. 약이 없다 싶어도 따듯하게 품어 주면 되살아 나더라....)  

 

♣ 회비 : 각 5만원(아침식사비, 벽소령 산장 숙박비,

            입장료, 4끼 식사 및 부식비용, 기타 급유를 위한 주유기 설치비 등) 

 

♣ 일정

 < 2/5 토요일 >

- 04:00경 밀양 출발 : 차칸아님 차량(소렌토) 1대에 7명 탑승

- 04:37경 북창원【초록과 합류, 쏘렌토 2대에 분승

- 05:40경 진주 시외터미널도착 (돼지통빼탕으로 아침식사)

 

- 07:30경 짐싣는 택시로 성삼재 도착

- 07:45경 성삼재 출발

- 08:20경 노고단 산장

 

- 08:06경 노고단(1507) 능선

- 09:14 돼지령

- 09:35 피아골 삼거리 노루목

 

- 09:40경 임걸령 샘터

- 10:25 반야봉 아래턱 삼거리(무인 배낭보관소)

- 11:25 반야봉(1732)

 

- 12:18경 삼도봉 - 화개재

- 14:25 토끼봉(1533.7) - 명선봉(1586.3)

- 14:52 연하천(烟霞泉) 산장 도착 - 중식 후 15:30경 출발~

 

- 16:00 형제봉(1442)

- 17:15경 벽소령 산장 도착. 저녁식사

- 20:00경 취침 소등

 

< 2/6 일요일 >

- 04:20경 기상. 조반 지어 아침 먹고

- 06:00경 출발 ~ 덕평봉(1521.9)

- 07:09 선비샘 - 07:45경 늦은 일출

 

- 08:00경 칠선봉 ~ 영신봉(1651.9)

- 09:00경 세석산장(주유기 가동, 막창 정리)

- 09:40경 촛대봉 ~ 삼신봉

 

- 10:54경 연화봉(蓮花峰)인지 연하봉(烟霞峰)인지 헷갈리는 곳!!!

  * 지도에는 1667. 이정표에는 烟霞峰이고 1730m ... ?

 

  # 연하천(烟霞泉)산장은 이곳 연하봉에 있어야 될 듯한데

    왜 명선봉에 있는 산장을 연하천(烟霞泉)산장이라고 하는지 심각한 고민에 빠지다

 

- 11:22경 장터목 산장도착. 중식 지어 식사

- 12:30경 고사목 지대 통과

- 12:35경 제석봉(1806)

 

- 13:00 통천문 통과

- 13:23 천왕봉(1915.4) ~ 12:40경 출발

- 12:49 천왕샘

 

- 14:08 개선문

- 04:45 법계사

- 15:23 망바위

 

- 16:01 빨치산아지트 통과

- 16:05 칼바위

- 16:30~40 시천 맑은 계곡물에 서양미투리와 쇠지팡이를 씻고...

 

- 17:00 두류동 매표소.~18:00까지 하산주

    (18:00발 진주행버스승차)

- 19:00경 진주 터미널

- 동창원(밀양)

 

  ♨ ~ 후기 (간략)

 

♣ 나는 지리산을 안다 말할 수 없다.

 

나는 결코

처음 참가 해 본 단 한차례의 이번 종주로

그 넓고 큰 산을 안다 말 할 수 없다...!

 

넓고.. 웅장하면서...

신령스럽기까지 한 지리산...!!

 

여기서는 이번 지리산 종주 구간에 들어 있는

수많은 산봉우리의 높이나

정확한 산행 일정(운행시간) 등은

빈틈없고 꼼꼼하게 언 손 호호 불어가면 메모를 하신

부산갈매기님의 잡책(수첩)에...

 

곳곳에 숨어 있는 지리산의 비경은

함께 한 님들(부산갈매기님, 차칸아님, 사랑뫼님)이 보물처럼 애끼는

성능 좋은 디카에 담긴 많고 많은 영상들을 원용하기로 하고...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마루금를 타는 동안

미처 알지 못하여

걷는 동안 사색의 범주에 넣지 못했던 내용들을 간추려

뒷날 다시 지리산을 종주하게 될 때

좀 더 깊이 사고하고 사색할 수 있는 자료로 삼고자 한다.

(사실..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지금까지 잘 모르고 있은 부분이나

엉터리로 알고 있은 부분이 여럿 이었다.

예: 반야봉, 장터목 등)

 

아직도 눈에 선한 융단 같은 눈길 등로...

 

야외 결혼식을 올리는 신부의 하얀 드레스같은

눈덮힌 지리산자락은

바람에 이는 물결처럼

잔잔한 감동으로 되살아 난다...!

 

산행 내내 시종 연이어 터져 나온

“야~~!

쥑이네...!

 

진짜- 와 이리 존노..!

환장 하것네...!

이-(날씨가) 미쳤다...!

끝내 주네...!

 

옴마야...!!!

오우~!

이야~~!

아~~~!

하아~하아~(숨가쁜 소리) 등등“...

 

희열로 인해 터져 나오는 연발되는 감탄사와

환희에 찬 모습들은

일일이 묘사할 수 없어 여기서는 생략한다(상상에 맡길 뿐)...!

 

♣ 지리산을 묘사한 시

 

옛 선조들은

영산 지리산을 어떻게 보았을까...

 

우선 우리시대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대에 살다 가신

남명 조식선생이 61세 때 지은 시를 본다.

 

* 頭流山 兩端水를

  예듣고 이제 보니

 

  桃花 뜬 맑은 물에

  山影 조차 잠겨서라

 

  아희야 武陵이 어듸뇨

  나는 옌가 하노라

 

남명선생이 천왕봉이 바라 뵈는

덕산의 사륜(絲綸: 임금의 명령이라는 의미)동을 찾아

덕산서원을 지어놓고 후학을 가르치며

출사를 사양하고 말년을 보냈다는 이야기는

여기서는 접어 두기로 하자.

 

또 서산대사는 4산평이란 글을 통하여

 

* 金剛 秀而不壯

   금강 수이부장 

 

   智異壯而不秀

  지이장이불수

 

  九月不秀不壯

  구월불수부장

 

  妙香亦秀亦壯

  묘향역수역장 ...... 이라고 하여

 

지리산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장엄한 산으로 손꼽았다.

 

 

 지리산 천왕봉은

 

백두대간이 태평양을 향하여

한반도의 남으로 내리 달리다

서남으로 머리를 틀어

우뚝 멈추며 넓게 똬리를 튼 곳...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산 208번지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 100번지에 주소를 둔

 

3개 道와 5개 市郡에 걸쳐 있고

광활한 면적에

수많은 비경과 문화재를 간직한

국립공원 제1호...!

 

본시 두류산(頭流山)이라 부른 것은

그 맥이 백두산에서 흘러왔다는 뜻...

 

또한 삼신산(三神山)이라고도 하는 것은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州)의 삼신산 중에

방장산에 해당되기 때문...

 

일년 중 대부분의 경우

구름과 안개가 서리어

천왕봉의 웅장한 모습은 감추어 질 때가 많다는데...

 

하봉에는 소낙비가 내릴 때에도

상봉에는 햇살이 맑게 비치어

옛사람들은 신선의 경지를 느껴 감탄해 마지않았다는

천왕봉!

 

이러한 조화는

지리산 산신이 불량하고 불결한 사람에게는

그 영험을 보이는 것이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가는 날은

거짓말처럼 구름 한 점 없고

먼 산까지 안개 한 점 없어

快晴 無比(쾌청무비)!

視界 最上(시계최상)!

 

“三代에 德을 쌓아야 일출을 본다”는 속설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니라고

함께 한 님들은

이구동성...!

야단법석...!

 

♣ 지리산이란 이름자는...?

 

頭流山 또는 三神山,

方丈山 이라 불리어져 온 외에

지리산(智理山)으로도 불린 이 산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개국의 꿈을 품고

백두산을 찾아 가 산신에게 빌었으나

들어 주지 않자

다음을 찾은 것이 지리산...!

 

석달 열흘동안 산신에게 빌었으나 들어 주지 않아

남해 보광산(지금의 금산)에 들어가서

삼칠일만에 허락받고 창업을 이룬 뒤

지리산을 불복의 산으로 밉게 여겨

반역산(反逆山) 또는 적구산(赤狗山)으로까지 부르게 하고

 

지혜가 다르다고 하여 또는

앞으로 이심(異心)을 갖는 자가 날 것이라 하여

지이산(智異山)이라 고치고

전라도로 귀양을 보냈다는 설이 있지만...

 

그 육신이 하도 커서

그 산을 말하는 자가 다르다고 하여

<알 智 다를 異>자를 쓴 <智異山>이라는 속설에

나는 가장 무게를 두고 싶다.

 

한마디로 지리산이 이렇다 하고 말할 자 있을까...?

 

참고로 덧붙인다면,

간혹, 백두산맥이 남해바다에 이르기 전

잠시 멈추었다고 해서

머무를 留자를 써서 두류산(頭留山)이라고도 했다는게

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

 

또는 지리산을 <지혜롭고 기이한 산>이라고도 하고

<지혜와 다른 산> 또는

 

'大智文殊師利보살'의 지(智)와 리(利)자를 따오고,

여기서 문수보살은 중생제도를 위한 변신을 하기 때문에

<지혜로운 이인이 많이 계시는 산>이란 뜻으로

智異山이라 적기도 한다는 아주 드문 이야기도 있다.

 

♣ 지리산의 산신은 여신 ...!

 

<연하봉을 넘다가 바라 본 반야봉 뒷태>

 


 

 

태고적부터 신성시 해 온 이 산에 대한 민족적 숭앙심은

마야부인 이야기부터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모친인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으로 모셨다는 설화...

 

신라말기 송도의 한부인이

지리산 산신에게 빌어 낳은 아들이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인데

 

고려 태조가 된 왕건은

모친 위숙왕후의 석상을 만들어

지리산 천왕봉에 모시고 성모사(聖母祠)라고 하였고...

 

고려왕조는 성모사에 신관을 두어

그 신관이 진주, 산청, 함양, 남원, 곡성, 구례, 하동을 순찰하면

수령들이 모두 나와 영접했다는 기록 등

 

그러한 이야기로 인해...

지리산 천왕봉의 산신은 천상 여자이다..!

 

♣ 반야봉(般若峰)의 산신은 남신 ...?!

 

<노고단 고개에서 본 반야봉  -위 고 하성목님의 작품-) 

 

 

 

그런데, 지리산 천왕봉을 다 내려오는 순간까지도

나는 반야봉이 여자의 상징인 줄 알았으니...!

 

그 이유는... 이미 이십수년 전..

직장내 사람들끼리 지리산에 처음 올랐을 때

함께 간 산행대장(부북 가산 설씨)이 왈

“반야봉은 여자의 엉덩이”라는 말을 하도 여러번 하였고

그 후에도 몇차례 같은 말을 들었는데다(어느 유명 여성 산님도 같은 말을 하였다)  

 

이번에 처음으로 반야봉을 밟아 보았을 때도

함께 한 님들은 이구동성같은 말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반야봉이 왜 유독 ‘여자의 엉덩이’ 여야만 하는지

의문을 가졌는데...

이유는, 남자도 엉덩이야 비슷하기 때문...!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작년 늦가을... 가을바람을 타면서

반야봉이 여성의 엉덩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이유는 여기에 적을 수 없다...(야하므로)

 

이런 저런 연유로

나는 영락없이...철저하게...

반야봉은 여자로...

또한 반야봉에 산신이 있다면

여신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야봉(般若峰)의 산신은 남자라고 한다....!!!

 

앞서 말한 석상(성모상)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천왕봉의 산신은 여자인데

반야봉의 산신은 남자이므로

 

여신은 항상 높은 곳에서 반야봉을 바라보면

남신이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가을 바람이 부는 밤에

천왕봉 산신이 반야봉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백무동 뒷산에 흰옷자락이 펄럭이는 지라

여신은 남신이 오는 것으로 착각하고

애타게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아

그곳에 가 보니 왕새꽃(억새)가 허옇게 피어서

바람에 나부끼는 것이었다.

 

그래서 화가 난 여신은

그곳에 왕새꽃이 피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지금도 그곳에는 왕새꽃이 없다고 한다...

 

한편,

천왕봉 일대에는 모시갈래(松落)가

나무와 절벽에 실처럼 늘어져 자생하고 있는데

그것은 천왕할매 모시갈래라고 한단다.

 

이는 여신이 남신을 기다리면서

짬짬이 모시 베를 짜기 위해 모시를 갈라 놓았는데

일구월심 기다려도 남신이 오지 않아

오지 않을 님의 옷은 지어서 무엇하랴 하고 화가 나서

흩어버린 것이 바람에 날려서 걸려 있다는 전설...!

 

어떻든...

이번 종주에서 가장 관심이 있었던 부분이

바로 반야봉...!

 

칠선봉을 넘어 가면서 수시로 뒤돌아 본

반야봉은 모습은

서는 곳 마다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모양이 약간씩 달랐는데...

 

반야봉 한 가운데 옴팍 들어간

패어진 곳의 녹지 않은 잔설은

영판.. 일 치르고 난 뒤의 그 무엇과 같은지라...

 

차칸아님 왈 “.... 칠갑해 놓았네...!”라고 한

말 한마디에 그만

회장님이 쓰러졌으니...!

 

그것도 초록 바로 앞에서 걸어가던 부산갈매기님이

바위돌을 넘어 걷는 순간

그 소리를 듣고 갈갈대소 하면서

거의 360도 빙그르르 돌아... 쓰러지면서리...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

그 의미에...

그 모습에... 모두들 깔깔대고...

 

또 그 웃음소리와 그 분위기에...

모조리 포복절도....

배꼽잡고 웃었다...!

 

 “칠갑했다”는 소리는..

가히 핵폭탄급의 위력...!

 

그 뒤에도

천왕봉으로 오르다가...

또 천왕봉을 내려와 천왕샘을 지났을 때도

회장님은 두 번이나 더 넘어 지셨으니...

 

산가밀 회장님을 세 번씩이나 쓰러뜨린

반야봉 후폭풍의 위력...!

현장에 서 있어 보지 않고는 잘 모를 터이다...!

 

반야봉 오름길

눈 속에 찍힌

제법 큼직한 매화모양의 짐승 발자국...

반야봉 정상에 나타난 팔색조... 등에 대해서는

사진에 다 있으므로 굳이 소회는 생략하고자 한다.

 

♣ 반야봉에 관한 시 한 수

 

조선시대 송도삼절(박연폭포, 서화담, 황명월) 중 하나로 불린

도학의 봉두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은

명월 황진이(明月 黃眞伊)와는 남다른 교분을 맺어

그 야사가 두고두고 회자되는 분인바...

 

그 서화담이 반야봉에서 하룻밤을 보냈는지

그가 지은 시를 보면 이런 그림이 나온다 .

 

*<宿 智異山 般若峰 : 지리산 반야봉에서 자다>

- 7언 절구 8행의 56자 한자-

 

智異巍巍鎭海東 (巍巍: 산이높고큰외)

지리외외진해동

登臨心眼浩無窮

등림심안호무궁

 

巉巖只玩峰巒秀

창암지완봉만수

磅礴誰知造化功 (磅礴: 돌떨어지는소리방, 가득할박)

방박수지조화공

 

舊地玄精與雨露

구지현정여우로

含天粹氣産英雄

함천수기산영웅

 

嶽袛爲我淸煙霧 (嶽袛: 큰산악, 속적삼저)

악저위아청연무

千里來尋誠所通

천리내심성소통

 

* (나름대로 해석을 한다)

 

지리산 우뚝 솟아 동녘 땅 누른다기에

비로소 올라 보니 눈앞은 호쾌무궁

높은 바위 아름답고  봉우리 빼어나니

조물주의 아득한 공 그 누가 알랴  

현묘한 땅의 정기 비와 이슬 일으키고

하늘이 머금은 기운 영웅을 낳게 하네

산은 나를 위해 구름 안개 걷어 내니

천리길 찾아온 정성 하늘에 통했도다.

 

 

 

♣ [반야낙조]는 지리 10경 중 제3경...!

 

반야봉이 언급되는 여기서

지리 10경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노고운해(老姑雲海)가 제1경이니...

지리산 서쪽 최고봉인 노고단에서 바라뵈는 구름바다를 말하고...

 

제2경은 직전단풍(稷田丹楓)이니

10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피아골 계곡의 단풍을 말함이며...

 

제3경이 반야낙조(般若落照)로서

심원계곡 건너 서북병풍이 짙은 암영을 드리우면서

하루의 고된 장정을 마친 태양이

휘황한 황금빛을 발하며

고요히 사라져 가는 모습을 말함이다....!

 

제4경은 벽소명월(碧宵明月)인데

이는 나중에 따로 본다.

- 벽소명월(벽소령에 대한 소회는 나중에 따로 추가할 예정이다)

벽소령에서의 하룻밤은

짧았지만 많은 소회를 품게 하였다...!

 

제5경이 세석철쭉...!

수십만평의 세석고원을

연분홍으로 물들이는 철쭉에 대해서는 

구차한 수식어가 필요 없으리라...

 

제6경이 불일현폭...!

쌍계사 뒷편

험준한 협곡 속의

백척단애(百尺斷厓)에서...

포말로 부서지며 쏟아지는

천하절승 불일폭포를 말함이니...

한폭의 동양화를 더 이상 무슨 말로 묘사하랴...!

 

제7경이 연하선경(烟霞仙境)으로

연기烟, 노을霞 하여...

한신계곡을 넘어 온 운무가

이 봉우리에 잠시 머물면

신선이 홀연히 나타날 것만 같은

꿈 같은 선경이 펼쳐진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우리가 지나쳐 온 연하봉은

지도책에는 연꽃蓮, 꽃花 자로 되어 있고

간판에는 앞서 본 烟霞로 되어 있어...

 

어느 것이 옳은 표기인지

초록은 아직도 안개 노을 속에 서 있는 기분이다...!

* 아마도 지리산 관리 공원 담당자의 업무착오일성 싶은데...

제보 한 번 잘하면... 포상금을 받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제8경은 천왕일출(天王日出)...!

일출이야 어디서 본들 장관 아닌 곳이 있으랴만...

특히 천왕봉에서의 일출은

산꾼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보려는 장관임은 공지의 사실...!

 

사방이 막힘 없이 탁트인

천왕봉에서의 동틀 무렵!

 

망망무애의 구름 저편으로부터

서서히 서기(瑞氣)가 모이다가

오색광채가 천지개벽을 알리듯 떠오르는 광경...!

 

이것으로 천왕일출을 표현하는 것은 부족이리라...

 

제9경은 칠선계곡(七仙溪谷)...!

일반적으로

지리산 계곡 중

태고의 신비를 가장 고스란히 간직한

가장 험한 계곡으로 알고 있는 곳...

 

제10경은 섬진청류(蟾津淸流)로서

하동포구를 통해 남해바다로 흘러 드는 300리 유장한 물줄기는

지리산과 조화를 이루는 또 하나의 절승이지만..

여기서는 산이 아니므로 더 이상의 묘사는 사양코자 한다.

 

이런.. 반야낙조를 이야기하려다 잔말이 너무 길었다.

 

한마디만 더!

 

우리나라에는 자고로 명승이 많아

고장마다 ??팔경, ??십경... 하여

 ~~경이 유난히도 많다.

 

그런데...각 지역의 명승지에 대한 이름은

주로 고려, 조선 때부터

시인묵객들에 의해 지어진 경우가 많으나

지리10경의 경우 그 역사가 짧다.

 

다시 말하면, 지리10경은

1972년경 지리산악회에서 비로소 명문화하여

발표함으로써 공식화 된 것으로

 

이는 산꾼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

풍류객들에 의해 엣날부터... 오래 전부터 만들어 진 것이 아님을

참고하여야 할 것이다.

 

<장터목>은 장터가 아니었다 !

 

종주 중 누군가가

“장터목”은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장사꾼들이 짐을 지고 산을 올라 와서

물물교환 등 장사를 하던 곳으로...

그 장이 섰던 장소가 장터목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저 험한 산비탈을

물건을 짊어지고 올라 올 수 있었을까...

그러자면 산적이나 짐승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산행 후 공부를 해 보니

막연하게 이름만 보고 해석하는 일은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시대...

경상 전라 일대에 왜적의 침범 약탈이 자행되어

조정에서는 현상금을 걸고 왜적을 잡도록 했는데...

 

성장군이란 분이

천험의 요새인 이곳 장터목을 이용하여

죽창, 농기구 등으로 왜적의 북상로인 이곳을 지키자

왜적은 북상로가 막혀 운봉, 인월로 도주하다가

이성계에 패했고...

 

패잔병은 대로를 버리고 소로인 이곳을 넘다가

성장군에게 모조리 중임을 당했기에

이곳을 <진장(陳場)터>라고 부르다가

후에 <장터목>으로 불리어졌다는 것이다.

<벽소령>은 왜 “푸른밤고개”인가...?

 

<벽소령에서 섣달 28일 새벽녘... 기상하여 맞이한 눈썹같은 그믐달>

 

 

이에 대해서는

그날 찍은 <벽소그믐달>을 추가하여

앞서 본 “벽소명월”과 함께

산장에 숙박하는 날 밤에 얻은 

졸시를 함께 추가로 적기로 한다.

 

* * * <남몰래 새벽산을 젖히고.. 벽소령에 나타난 눈썹 같은 그믐달 >

갑신년 끝날
섣달 스물 여드레

아슴프레 새벽녘
그믐 달빛 희미한데

주체 못 할 욕구 같은
눈썹 같은 그믐달

밤하늘 가득한
별 같이 많은 사념

참을 수 없는 재체기 닮은
그리움 하나


벽소령 그 달빛에
새벽이 운다.


- 05. 2. 6. 지리종주 중 -

 

♣ 아쉬움은 남다 !

 

언제나 그랬지만...

설 연휴라서 고향에도 가야하는 등

바쁘기는 매양 마찬가지... 그래서 내용이 허약하다...

 

기실 후기라는 이름으로 지리산을 거명한다는 게

부끄러운 일이다.

 

그만큼 지리산은

생각할 거리도 많고...

유적도 많고...

수천년 세월 속에 쌓인 역사적 무게가...

필부로서는 가늠 못할 정도로 방대하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지리산 한자락 한자락을

타박타박 걸으면서

그 곳에 서린 전설 같은 이바구...

 

고운선생으로부터

고려 무신시대의 이인로...

밀양에서의 태어난 점필제 김종직선생...

현대의 김지하 선생의 시...

그 외 이름 모를 수많은 분들이

느끼고 본 지리산에 대한 감동을

공유해 보고 싶다...!

 

십수년 전 읽은 <이태의 남부군>...

<정순덕의 최후의 빨치산>의 내용은

아직도 악산험로를 걸을 때마다

채찍되어 떠오르는 장면이다.

 

언젠가

아직도 상채기로 남아 있는

지리산 빨치산 체험루터도 걷고 싶다.

 

살아 있는 체험학습장 지리산...!

그 종주의 여운을 다 나열하기엔

내 미천한 재주와 용력이 부족하다.

 

 

 - 2005. 2. 8. 까치의 설날(작은 설)에 비음산 우거에서                       

                                                         초록 .

 

* * * 추 가 * * *

 

 

1. ♣ 다시 처음으로 - 성삼제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눈길

 

산행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아니한

한 말씀이 있었다...!

바로 청허(淸虛) 스님이 하신 말씀...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 눈덮힌 들판을 걸어가는 자여

무릇 발걸음을 어지러이 마라

오늘 걷는 나의 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자의 이정표 되리니

 

청허(淸虛)...!

 

이를 서산대사의 호(號) 인 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뒤에 오는 자가 내 발자국을 보고

헛걸음을 하지 않도록

어지럽혀 걷지 말라는

타자를 먼저 배려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말씀이

 

오늘에 들어도 참으로 참신하다...!

 

그 분은

임란을 맞아 혁혁한 공을 세운

밀양 출신의 고승 사명대사의 스승으로서 더 알려진 분...!

 

공교롭게도

지리산 성삼제에서

종주의 첫발을 내 딛는 순간부터

중산리 법계사에 이르기까지... 내내..

 

그 분의 하신 말씀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건

유독 내가 눈길을 걸었기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어제를 올바르게 살다 가신

수많은 바른님들의 자취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사표가 되어 주듯...

서산대사... 그 청허스님의 그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지리산 구름 위를 걷는 우리 님들의 마음속에

늘 살아 있었던 것이 아닐까...

 

또한

눈길을 걷는 우리들의 자죽자죽도

자연 조심스러웠기에 아무 사고도 없었던가 보다...!

(하지만 눈을 보고 동심은 숨길 수 없었는가 보다)

 

# 본 후기는

   최초 작성 이후 2차례에 걸쳐

   사진과 졸시 두수 등

   적지 아니한 내용을 추가로 보강하였으나

   다른 곳에 있는 졸시 한 수를 더 옮기다가

   졸지에 내용 절반이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다시 한번 더

   기억을 추스려 내용을 보강하기로 작심한다.

 

   추가할 내용 :

 

1.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오르는 동안의 소회

 

2. 왜 벽소령인가

 

3. 제석봉(고사목지대) 통과시의 소회와 그 원통한 역사...

 

4. 기타 지리산에 얽힌 야사와 전설 같은 이바구 등   

                                                                            

(2/14 오후에 중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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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산행기는 인터넷 산악회 "산에 가는 밀양사람들의 작은 모임" 의 황종웅 (필명: 초록)님의 글을

   소개해 올린것임을 밝혀둠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