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나에게는 지리산이 아홉번째 등반이면서도 겨울산행으로는 처음이다..

11월말부터 지리산 가기 바로 전까지 연일 야근과 철야를 반복하면서도 나는 늘 가슴한켠이 기대로 묵지근했다. '몇일만 고생하면 가뿐한 맘으로 지리산으로 갈수있다...'

 

그 전날에 회식까지 겹쳐서 산행 바로 전날에야 방에 가득 옷가지들을 늘어놓고 장비를 챙겨대기 시작했다. 겨울산행으로는 눈오는 치악산 일박이 겨우였던 나에게 긴여정을 커버할 옷들이 있을리 만무했고 결국 이것저것 잡동사니만 가득넣어서 가방을 꾸리고 마침 휴가나온 동생이랑 놀다보니 어느듯 새벽 세시..

 

 

첫째날......

 

다음날 들뜬 맘에 일찍 일어나 모든준비를 완료하고 등산화를 신으려는데 동생이 손짓을 한다.

지가 태워다 주겠노라고.. 이놈 밥먹고 화장실가고 떠드는거 기둘리다가 용산역에 가까스로 도착!

내가 범준이 후배였음 디지게 맞을 분위기였으나.. 다행히 나는 누나였다 ㅋㅋㅋ

나 역시 짐싸느라 동생이랑 수다떠느라 밀린잠을 기차에서 쭉 잘수 있었다.. 진영이가 부시럭대고 일어나서 김밥먹자고 옆구리를 찔러서 일어나긴 했지만 ^^;;;

기차에 내려서 여기저기 전화하고, 연결연결해서 4만원에 콜밴을 타고 성삼재까지 올랐다.

겨울엔 버스가 운행하지 않기때문에 성삼재에 있는 가게들도 모두 문을 닫고 있더만

 -> 성삼재.. 문닫은 기념품 가게 앞..

늘 가던 노고단길을 허위허위 올라갔다.. 이제는 눈감고도 갈수있을 그 길이 어찌나 반갑던지..ㅋ

 

기차타고 가던중에 향섭이에게, 노고단에서 성진이에게 오밤중에 술취한 성진, 준하까지..

짜식들 가고싶은데 못따라 나선게 영 아쉬웠던거지..그맘 다 알아서... 열라 놀려줬다.. 데따 좋다고^^V

맘 한켠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내가 산에간다고 반겨주는 후배들이 있고, 못따라 나섯다고 안부전화하는 후배도 있고... 동기들은 되려 나한테 짤렸냐느니 만고땡이냐느니 씹어대긴 했지만 -.ㅡ;;

첫날은 늘 그랬듯이 평범했다.. 그렇게 술한잔 기울이며 기수한테 잘하라고 이러저러한 잔소리를 늘어놓고 따땃하게 잠이 들었다 *^^*

 

둘째날..

 

날씨가 희끄무리 한게 영 거시기 했다.

그래도 어쩌랴 하늘이 정한 날씨에 투덜대 봤자 내 입만 아픈거고.. 우린 느긋하게 산행을 시작했다.

사실 전날부터 둘째날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몇번 얘기를 했었다.

예전엔 화개재에서 짐을 놓고, 뱀사골에서 물을떠와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곤했는데, 이번 여름에 본 화개재는 잠쉬 쉴수 있는 쉼터로만 되어있고 그 주위는 잡목이 우거져서 식사를 할만한 곳은 아니였으므로 뱀사골까지 내려가서 점심을 먹거나 한두시간 더 걸어 연하천까지 가야한다는걸 내 알고있었기 때문에..

 -> 삼도봉

막상 도착한 화개재는 여름과는 또 다르더군.

잡목들을 베어내고 헬기장을 하나 만들고 덕분에 여름엔 잘 보이지 않았던 전망대도 잘 보이게 됐다.

헬기장때문에 평지는 늘었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간식만 대충먹고 연하천으로 향했다.

 

지리한 계단을 한참이나 지나서 도착한 연하천은.. 정말 너무너무 추웠다.

 -> 너무 추워서 얼어죽어버린 진영이

 

연하천 산장은 개인운영 산장이다. 그래서 술도 판다. 여름엔 연하천에서 사먹는 맥주가 일품인데 이날은 넘 추워서 맥주도 싫고.. 다른 산장에 비해 열악한 시설, 더러운 취사장, 푸세식 화장실이 더 심란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너무 추워서 있는옷 없는옷 다 껴입고 다시 벽소령을 향해 출발

기수도 범준이도 무서워라 하는 그 가파른 고개가 이미 계단으로 바뀐지 몇년됐다는 얘기를 두 녀석에게 해줬다. 두 녀셕은 다행이라 하면서도 못내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내 그맘 알지 ^^;;

 -> 지혜를 몰고다니는 범팔

 

지혜를 몰고다니느라 힘들어보이던(?!) 범팔이랑 놀아주려고 나도 오전내내 뒤에서 걷다가 지치길레 이번엔 앞에서 기수랑 노닥거리며 계단 갯수를 세어봤다. 오르기 전에 ' 한.. 이백개??쯤 되는거 가터' 그랬는데..' 하나하나 세고 올라가는 기수뒤에서 나도 따라서 속으로 세어봤다 백구십칠개였다.. 앗싸~ 때려맟췄는데.. 얼추 맟으시고~

날씨는 추었다. 바람소리가 무겁게 발 아래에 흘러다녔고 날씨는 우중충했다.

지혜랑 윤진이는 지리산 첫 산행이라는데... 이렇게 좋은 절경을 구름에 가려 보지 못하는게 너무 아쉬웠다. 이 어린 영혼들이 지리산을 제대로 느끼지못하고 그냥 춥고 힘들었다는 기억만할까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벽소령 이 눈에 들어왔다.

벽소령 산장은 도착하기 한시간 반 쯤 전부터 눈에 들어온다. 곧 닿을듯 하지만 그러고도 한참을 더 가야 도착할수 있는곳. 그래서 더 힘들고 감질맛 나는곳..

 

-> 멀리 보이는 벽소령 산장                                      -> 형재봉을 무서워하면서도 V하는 지혜

 

늘 그냥 지나던 형재봉에서 범팔이가 가자는 바위틈에 올라서 좀 쉬기도 하고, 내가 가져간 보온병 물을 홀짝거리며 마시고 가다보니 벽소령에 도착했다.

식사를 준비하고 자리배정을 받고 그런 모든일은 이제 이미 내 손에서 떠났다.

내가 몰 하려고 하면 여기저기서 말리는 목소리와 손길들이 많아서 아예 신경도 안쓰고 해주는밥 먹고 자라는 곳에 잤다. 길도 익숙했고, 짐도 없었고...편안하고 느긋한 산행임을 감사하며 잠을 청하는데..

밖에서 비가 왔다... 이런~~~~

하루죙일 우중충하더니.. 저녁먹을때 빗방울이 날리더니.. 몇시간동안 새차게 비, 우박이 쏟아졌다..

내일 하산을 해야되나, 비맞고 다니면 얼어죽겠지,  감기걸려서 회사 못나가면 안되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자다깨다를 반복하면서 아침을 맞이했다

세째날...

역시나 난 일찍일어났다..아니 거의 자는둥 마는둥 했다.

신새벽 걱정된 맘으로 밖을 나와봤다.. 5시쯤이었나?? 앞도 보이지 않을만큼 안개가 가득했다..

오호라 통재요.. 이를 우짜지? 눅지근하고 무거운 공기가 기분을 눌렀다

7시에 일어나자는 전날의 약속이 있었지만 어슴프레 해가 떠서 7시 10분쯤 다들 부스럭 거리며 일어나더군.. 그때역시 날씨가 희끄무리 했지만.. 아침을 먹고난 벽소령은 달랐다.

깨끗하고 맑은 얼굴을 쏘옥 내밀고 전날에 대한 보답이나 하듯 여러 절경을 잘도 보여줬다.

 -> 벽소령에서 출발~!!!

 

발아래 구름이 하~얗게 깔리고 그저 걷는것에 총력을 쏟는 윤진이랑 지혜에게 제발 옆에 경치좀 보라고 주구장창 노래를 부르며 산행을 했지 *^^* 다들 아시다시피 벽소령에서 선비샘까지는 거의 평지라서 자칫 단조로울수 있지만 경치가 빼어나서 한 시름 놓을수 있는 구간이다.

잘 걷던 윤진이도 그날은 좀 시들했지만 그래도 경치에 감탄을 자아냈고, 지혜고 휘청거리면서도 이것저것 챙겨보면서 산행을 이어갔다..

 

한시간쯤 지나 선비샘에 도착했다. 예전엔 물이 정말 콸콸 나왔던 곳인데 이제 그정도는 아니였지만 기수도, 범팔이도 모처럼보는 물에 세수를 하더군..

 -> 선비샘에서 본 산과 구름..

 

여름에 헬기가와서 선비샘에 인부를 내려좋고 가길레 무슨 공사하나 했었는데, 지금은 샘 주위와 길만 남기고 다 막아버렸더군 내년 여름즈음엔 아마 잡풀이 뺴곡하게 자라서 그곳이 평지였다는것도 못알아볼꺼 같았다..

 

전날밤 비가 와서 인지, 우리가 가는 능선길이 응달이어서인지 살얼음이 간간히 얼어있었지만 그래도 날씨가 너무 좋아서 신나고 즐겁게 룰루랄라 휘파람불고 노래불러가며 세석산장에 도착했따.

 

여름에 세석산장이랑은 또 다른 겨울의 세석은 참 멋졌다.

겨울산에서 느껴지는 평온함이 따뜻한 햇볓과 같이 우리를 반겼다. 산행길이 많이 좋아져서 인지 일정을 거의 지켜가던 우린 세석에서 간만에 보는 햋볕이 반가와 사진도 찍고 광합성도 하며 한참 여유를 부려봤더랬다.

 -> 범팔 진영 커플                                               -> 지혜 기수 커플 ^^;;

 

2시.. 세석을 떠났다.. 늘 힘겨웠던 촛대봉이 이제껏 멀어서가 아니라 그늘한점 없이 더워서 힘들었단걸 깨달았다.. 찬바람에 따땃한 햋볕을 받고 걸으니 금새올라서지더군.. 기수는 촛대봉에 왜 뾰족한 촛대같은 바위가 없냐고 계속 물어대고.. 난  '아~ 그거 절루 쫌만가면 있어'하고 둘러댔다. -.ㅡ;;

고백하지만 사실 나도 늘 그게 궁금했다. 맘먹고 찾아본적도있는데 촛대같은 바위는 없었으므로 *^^*

 

세석에서 장터목가는길은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좋은길이라고 생각하는 길이여서 즐거운 마음으로 갈수 있었지. 몇번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긴하지만 장터목으로 가까워질수록 펼쳐지는 아름다움에 모든 피로가 가시곤 했는데..

여름에 파아란 나무들속에 간간히 보이는 고사목들이 겨울산에서는 눈에 띄지도 않았고 그저 춥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바람은 계속 귓가를 때렸고 한참을 한점 햋볕들지않는 길을 터벅거리며 걸울뿐이었다

 -> 페이스마스크에 얼음 얼다!!                                  -> 완전무장산행 윤진이

 -> 켁켁거리는 지혜                                                -> 무지 산악인 스러운 기수

 

약간은 지리하게 걷던중 장터목산장에 도착했다 오후 4시..

우리가 할일은 쉬기, 밥먹기, 술마시기 이 세가지 뿐이었다

여름이라면 밖에서 수다라도 떨었을텐데 취사장에서 옹기종기 모여 천천히 먹고, 천천히 마시다가 내일을 기약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범팔이와 기수는 다음날의 탕슉을 위해서 비박을 시키고 밤새 이것들이 얼어죽으면 어카지 하는 걱정을 떠않고 말이다 *^^*

다음날 숯하게 본 천왕봉 일출은 후배들에게 일임하고 난 장터목에서 여유롭게 일출을 맡았다.

사실 천왕봉에 가기 귀찮아서라기보다 장터목산장에서 일출을 맡아보고 싶은 맘이 있었는데 이때다 싶었지. 전날 산장아저씨가 알려준 일출시간은 7시40분..

산장에서 혼자 뺀질거리며 짐다 챙기고 스트레칭하고, 맨소레담까지 착실히 바르고 나왔더니 해가 막뜨고 있었다

일출은.... 언제나 그렇듯 너무 멋졌다.

처음 지리산은 찾은 윤진이랑 지혜한테 단번에 일출을 구경시키다니 왠지 좀 거져먹는 기분이 들긴했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 하나씩 챙겼겠지하며 나까지 가슴이 뿌듯하더군

 

-> 장터목대피고 라고 써있는 우체통을 배경으로...

 

실컷 일출을 누리고 혼자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진찍고 감탄하다보니 범팔이가 물을 떠왔다.

라면을 대충먹고 그담 주구장창 백무동 하산길..

하산길은 언제나 무료하다. 무릎아프다고 징징거리는 범팔군와 진영이를 꼴갖잖아 하며 난 맨 뒤에서 지혜랑둘이 오붓하게 하산을 즐겼지..

 

        

-> 낭떠러지에 앉혀놓고 웃으라고 협박했다^^V        -> 구름다리중간에서 모델인척하는 지혜

 

조잘조잘... 산악부에는 왜 들었니.. 현석오빠가 가족적인 분위기라고 오라고 하셔서.. 현석이한테 속았구나? 바보 그걸 믿었냐..  집이 어디니.. 무슨과니 어쩌고 저쩌고..

그러가다 쌩뚱맞게 물었따

 

너 무슨띠냐?

아~ 저요~ 저 호랑이띤데여

⊙.⊙ 헉!!!........................

언닌여???

아.. 나... 나야... 나도... 나도 호랑이띠야~

 

띠동갑이 써클후배로 들어오다니.. 당황스러우면서도 웃겼다..

한참을 혼자 푸캬캬거리며 끼죽끼죽웃으며 참샘을 거쳐 백무동으로 하산을 완료했다 ^^V

난 남원으로 가서 느긋하게 짱깨도 먹고 우등고속타고 편히 올라오길 바랬는데 윤진이도 함양으로 가는 버스에 따로 오르고 우린 동서울행 버스를 타고 서울로 왔다.

 

이번 겨울지리산행은 나 나름대는 참 편하고 재밌었다.

겨울산행이 주는 재미도 만킥한거 같고, 산행아니면 만나기도 힘든 띠동갑 후배들도 만나고..

나한테는 어려만 보이는 범팔이가 애들 모아놓고 '옛날에는 말야~', '야~ 7년전만해도~', '크~ 이거 정말 좋아진거야~' 하면서 잔뜩 노친내인척하는거 구경도 하고..

윤진이를 착실히 챙기는 기수보고 잠깐 내 선배 오빠들이 그립기도 하고..

간간히 기수에게 이것저것 설명하고, 챙겨서 사진찍는 범팔이녀석 다 컷네 뿌듯도하고..

 

지리하게 긴 산행후기를 쓰고나니 다시 지리산에 있는 기분이다.

내년엔 4월쯤 세석에 철쭉을 보러가고 싶은데...

*^^* 벌써 다음 산행을 준비하려고 달력까지 뒤적여본다..

일해야지 이러다가 진짜 짤릴라 ㅋㅋ

 

나의 산행후기는 여기서 끝이다.

결과적으로 좋고, 재밌었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내 미리 이것저것 현석이한테 스케쥴이며 지도, 자료참고에 대해 언지를 놓았었는데 기수한테까지 연결이 안됐다는 점이다.

물론 현석이가 중국가느라 바빠서 그랬겠지만 ^^

내년에는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해 본다.. 미리 전화도 해보고 자료도 찾아보고 계획도 확실하게 세워보는 갗춰진 산악부이길..

 

날씨가 꾸물꾸물하다..

산행때는 멀쩡하더니 일하려니 목감기가 도진다.. 젠장..

가까운데로 산행한번 더 가야 나을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