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그 끝없는 유혹

 

산행지 : 덕유산(황점-무룡산-백암봉-송계사)

산행일 : 2005. 02. 13(일)

산행자 : 꼭지(아내)와 둘이서

교   통 : 자가운전

차량회수 : 송계⇒황점(매점에 부탁해서 자가용으로 이동 2만원)

 

산행경로


 

07:00 황점매표소

09:00 - 09:50 삿갓골재대피소

11:00 무룡산

12:30 동엽령

14:00 백암봉(송계3거리)

15:40 횡경재

17:00 송계사

17:10 송계매표소

 

총 산행시간 : 10시간 (18km)


 

이 추운 겨울날도

떠날 수 있는 산이 있기에 좋다.

세상의 잡다한 상념들을 외면하고

마음속의 찌든 먼지들을 툴툴 털어낼 수 있는 산이 있기에 좋다.

 

산행을 위해 저녁에 준비하는 시간이 좋고

새벽에 눈비비고 일어나는 귀찮음도 좋고

옆에 앉자마자 곯아떨어지는 꼭지(아내)가 있어서 더욱 좋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꼭지..

어쩌다 단속카메라 앞에서 급브레이크라도 잡으면 잠꼬대처럼 한마디

“운전 쪽 바로 해라 이~”

 

오랜만에 육십령에서 한번 끊어보나 했더니 이번에도 꼭지 왈

“나도 같이 가자.”또 혼자 가기를 내버려두질 않으니

산불경방전에 이루고자 했던 종주의 소망이 또 사라지는 순간이다.

 

궁리 끝에 반쪽 종주라도 하고 싶어

황점에서 출발 아직 꼭지에게 미답지인 삿갓재-무룡산-동엽령을 거쳐

백암봉에서 대간길따라 능선을 타다 횡경재에서 송계사로 하산하기로 한다.


 

황점

인적 없는 조그마한 마을

낙엽 뒹구는 한산한 거리에 스산한 찬바람만이 아스팔트길을 누비고

새벽녘의 서리결같은 으스스한 냉기가 뺨을 홅으며 지나간다.

그리움에 목메 달듯이 산을 찾았건만 이때만큼은

“우리가 미쳤지 미쳤어~~@”를 연발하게 된다.

 

추위가 엄습하는 계곡 따라 산문에 이르니

해병대의 악담(?)과는 반대로 날씨는 좋아 눈이 시리도록 맑은 하늘

“눈비가 내려 빙판이라 위험하니 덕유산엔 가지 마래이”

못 가게 말리던 해병대의 말이 생각나서 전화라도 때려 약이라도 올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졸졸졸~

수정 같은 냇물이 얼음장 속에서 고개를 내민다.

철계단 아래로 봄의 소리가 들린다.

이미 봄은 얼음장속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으리라.

 

늘 오름길에선 힘들어하는 꼭지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손을 잡아끌며 그렇게 두 시간여..

삿갓대피소가 훤히 보이는 마지막 나무계단에 올라선다.


 

삿갓재대피소

좌측으로 금원산과 우측으로 멀리 황석산이 그 너머에는 천왕이 모습을 보인다.

아른거리는 확 트인 조망..

가슴이 터질 듯 한 벅찬 희열이 온몸에 전류처럼 흐른다.

 


 

삿갓골재 대피소


 

취사장에 도착하니 여러 산꾼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분주하다.

배낭을 챙기는 사람들.. 컵라면에 물을 붓고.. 빵을 들고.. 혹은 수다를 떠는 사람들..

우리도 그 틈새에 비집고 앉아 코펠을 꺼내 불을 붙이고 라면을 끓인다.

 

국물에 또 햇반을 넣어 라면죽을 만들어 든든하게 아침요기를 끝내니

세상사 다툼과 번뇌가 무슨 소용이며 욕심과 집착이 무엇이랴..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그 유혹이 고마울 뿐이다.

 

 

지금부터 꿈의 대간 길

백설로 덮인 황홀한 덕유능선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추우면 추울수록 모진 바람이 거세면 거셀수록

나목에 더욱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상고대..

 

등로 주위의 엷은 상고대를 바라보며

키 작은 산죽길 설원의 좁은 오솔길을 걷는

꼭지의 무룡산을 향한 발걸음은 왠지 가볍기만 하다.

 

무룡산을 향하여

 

 

 

 

 무룡산


 

가끔은 삭풍에 온몸이 움츠러들어도

뼈속깊이 스며드는 한기가 고통스러워도

산이 좋다.

 

하얀 겨울이 좋고

그 속의 고요가 더욱 좋다.

그래서 우리는 알지 못할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가 보다.

 

무룡산에서 뒤돌아본 삿갓봉과 남덕유산, 그리고 우측에 서봉(장수덕유산)

 

가야할 동엽령과 백암봉(송계3거리)방향

 

하늘금속에 우뚝 솟은 가야산(우측) 수도산(좌측) 단지봉(중간)


 

 

무룡산을 내려서니 동엽령을 향한 끝없는 산죽의 능선이 펼쳐진다.

하얀 무채색의 설원위로 신갈나무터널의 앙상한 나뭇가지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파고들고 짙푸른 하늘은 더욱 맑기만 하다.

 

꼭지왈 “이런 길이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걷겠다.”

중얼거리는 꼭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제 겨우 산행 4시간째인데

“흐흐흐~~ 조금만 더 기다려봐라 백암봉오를 때는 곡소리가 날 끼다.”

 

동엽령가는 길

   

 

 

멀리 백암봉이 보이고 중간 오목한 곳이 동엽령

 

 

 

동엽령이 지척이다.

 


 

아~! 백암봉을 향한 황홀한 저 능선길

걸어가는 산꾼들의 움직임과 늘 푸른 산죽의 조화가 아름답기만 하다.

불과 3주전에 눈 덮인 이 길을 올랐는데도 오늘은 전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니

그래서 산은 볼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처럼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가 보다.

 

백암봉 가는 길 

 


 

작년 봄 종주때 무척이나 힘들게 느껴지던 백암봉 오름길

동엽령에서부터 꾸준히 오름으로 진을 빼는 구간이라 종주 때는 엄청 힘든 구간이다.

백암봉에 올라 한숨 돌릴라치면 중봉은 더욱 힘들다.

 

대부분의 종주꾼들이 백암봉과 중봉에서 체력적으로 제일 힘들어하는 구간이다.

꼭지는 <산죽길이 좋고 덕유산도 걸음만 하데이.. 어쩌데이..> 하다가

백암봉을 오르면서 드디어 무너지고 있다.

 

스틱에 의지한 채 서있는 꼭지를 바라보니 약간의 염려도 되지만

하산 길에서는 언제나 잘 내려가는 꼭지.

횡경재를 향해 하산을 서두른다.

 

백암봉(송계3거리)에서 바라본 지나온 무룡산 방향 

 

지나온 무룡산과 멀리 남덕유산과 우측의 서봉

 

송계사방향의 대간능선(횡경재까지는 1시간 30여분 내려 가야한다.)

 

백암봉에서 횡경재가는 길 

 

 

뒤 돌아본 백암봉 방향

 

횡경재이정표

 

작고 아담하고.. 거기다가 화려하지 않아서 더욱 친밀감이 가는 송계사

 

송계매표소

 

송계매표소를 지나니 일상의 세속이다.

당장 차량회수를 해야 할 일이 걱정이고 대구로 갈 일도 걱정거리다.

아니, 걱정거리 그 자체가 행복한 고민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고단한 삶이 기다리고 있으나

그 삶 자체가 인생이고 또한 행복이다.

세상의 추한 것들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면 아름답다고 한다.

 

오늘 하루

10시간여 덕유에서 머문 천상의 시간들..

일상의 먼지들을 털어내기 위한 마음으로 산을 찾았건만

산은 모든 것을 도로 갖고 가라한다.

 

갖고 가서 새로운 눈으로 다시 바라보라고..

엉덩이 밀어내며 쫓아내는 덕유의 눈초리가 오늘은 부드럽게 느껴진다.

나는 진정 그 유혹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