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자락에서

눈이 안와서 겨울답지 않다던 그 겨울이 막 지나려하고

일요일 약속이 펑크가 나서 오랫만에 '여산회'친구들을 따라 설악을 만나고 왔습니다

 

늘 산아래에서 능선을 올려다 본지 꽤 오래인데

오늘은 나도 당당한 일원으로 설악으로 떠납니다

눈에 익은 오색매표소.. 설악은 달빛도 없이 깜깜한 얼굴입니다

모처럼의 산행을 반겨주는가..따뜻한 날씨는 포근함까지 느끼게합니다

 

정말 모처럼의 산행은 즐거움입니다

젊은이들과 함께 걷지만 그들과 같은 보조로 걸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즐거운 마음입니다

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어두움속의 설악으로 들어섭니다

 

상큼한 바람이 나를 즐겁게 하였고

발밑에 사각거리는 눈 밟히는 소리가 또한 나를 즐겁게 합니다

힘드는 오름길도 오늘은 괜찮을듯 합니다 청년들의 도란거리는 말소리도 듣기에 좋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설악을 오릅니다

 

첫번째 쉼터에서 잠시의 숨고르기를 하고

얼어붙어 있을 설악폭포를 향하여 꾸준히 걸음을 옮깁니다

한 여름에는 쏟아지는 굉음을 울릴때도 있었건만 오늘은 조용한 폭포옆을 지나며

푸르럿던 잎들과 이른 새벽의 새소리를 생각해 봅니다

 

선두와 같이 오르던 길은 어느새

중간으로 걸어가고 있는 나를 봅니다

언제라서 주력이 좋아서 남달리 산을 잘 오르지도 못하였지만 많지도 않은 세월의 무게를

나 혼자만 느끼나 봅니다ㅠㅠ

 

두번째 쉼터에서는 바람이 반겨주기 시작하네요

그 유명한 대청의 바람이 어디 가겠습니까?^^ 쓍~~~

럿셀이 잘 되어있는 눈길은 좋았는데.. 철쭉밭 근처에는 정상과도 같은 바람이 불어옵니다

흩날리는 눈을 손으로 가려가며 이윽고 대청에 오릅니다

추위도 대단하구요..

 

일출은 아직인데

화채벙 너머의 동해에는 붉은 기운이 감도네요

황금색으로 바뀐 정상석이 반가워서 사진을 한장 얻으려 하나 추위와 바람때문에 쫒겨 내려옵니다

그나마 중청쪽에서 바람이 오기때문에 서너걸음 옮기면 뒤돌아서서 또 숨을 골라야합니다

대피소에 있는 온도계는 영하 15도 밖에 아닌데...

 

중청에서의 사발면 한그릇은

정상에서의 추위를 잊게 해 줍니다

마치 시장골목을 방불케하는 좁은 공간에서도 쭈그리고 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먼저온 젊은이들은 취사장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는데ㅠㅠ

그래도 조금전의 쫒겨남을 잊고 대피소 마당에서 설악을 내려다 봅니다

웅장한 설악이 흰눈을 덮고 떠오르는 햇살을 받아 더러는 황금빛으로 반짝입니다

사계의 설악중에서 겨울이 가장 좋아보인다는 말이 '그렇다'라고 느껴집니다

 

이제는 내려가는 길입니다

젊은 그들과의 보조가 잘 맞지않으니 슬그머니 혼자서 소청으로 희운각으로 내려옵니다

오르기가 참으로 힘드는 길..이 길이 오늘은 스키장입니다

몇해전 소백에서 혼이 난 터라서 조심하며 앉아봅니다

잘 내려갑니다^^ 씽~~~

 

그런데 그게 잠깐이었습니다

별로 경사가 심하지 않다고 주저 앉았는데 그만 가속도가 붙는겁니다 씽~~ㅠㅠ

겨우 띄워진 줄을 붙들고 멈추긴 하였스나 베낭끈도 튀어나가고 얼굴도 줄에 얻어맞고ㅠㅠ

대형사고가 날 뻔 했다고 생각하며 얼마남지 않은 희운각으로 조심조심 내려갑니다

누군가 뒤에서 보았다면 아마도 다친사람으로 알았을 겁니다^^

되게 겁 먹었거든요ㅎㅎ

 

뜨거운 커피한잔으로 조금전의 놀램이 진정이 안되더군요

잠시후 공룡으로 넘어갈 젊은이들이 왔는데 그들은 함께 넘어가자고 합니다 

그러고는 싶은데 자꾸만 미끄럼이 겁나고.. 그들과 무너미고개에서 헤어집니다

흰눈으로 덮여있는 산길을 혼자서 내려갑니다 

지지난주 '윤도균'선배께서 발목을 다쳐 통한의 눈물을 흘리셔야 했다는 그 분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걸음은 여전히 겁먹은 채로입니다ㅠㅠ

 

천개의 불상이 있어 천불동이라는데

마음이 어두운 때문인가 단 하나의 불상도 보지 못한채

스키장은 애써 외면하며 쩔쩔매며 걷지만 그래도 참으로 오랫만에 눈덮힌 산길을 내려오는 기분은 상쾌합니다

비록 공룡은 못 넘었지만 그래도 즐거움 마음으로 양폭으로 들어섭니다

한적한 산장 의자에 앉아 기분좋은 휴식을 가져봅니다

 

폭포들은 얼어붙어 있지만

계곡에는 흰눈으로 덮여있지만 그 밑으로는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를 따라서 산길을 내려갑니다

그 소리가 얼어붙어 있는 우리의 세상에도 들려오기를 고대하며

아치형의 철다리가 멋들어진 비선대..

그 다리를 건너 우리사는 세상으로 돌아옵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더욱 가깝게 들리기를...

 

사진중에는 제가 찍지 않은것도 있습니다 보시는 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