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 2005년 3월 1일 쾌청

어디로 : 삼각산 비봉능선(구기동 - 비봉 - 승가봉 - 문수봉 - 대남문 -구기동)

누구랑 : 검은독수리 6남매

 

 

1. 산을 그리며....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무덤덤한 산인데

   나 혼자 애태우며 꿈꾸다 지인들과 더불어 산을 찿는다.

 

   평소에 게으름장이인 내가 산행날은 무척 부지런하여

   자명종이 울리자 마자 반사적으로 일어나 날쌘동작으로

   채비를 갖추고 있으면 아내는 속내를 감추고 뭘 준비 해 줄지를

   묻는다.

  - 보온병에 커피나 넣어줘...

  - 도시락은?

  - 가는길에 김밥이나 사가지 뭐.

  - 산이 그렇게 좋아?

  - (약간은 미안한 표정으로) 응

 

   산은 가만히 있는데 제 혼자 급해서 허둥대며 떠나는 꼴 이라니...

 

  삼각산은 아침햇살을 받아 신기루처럼 나에게 다가온다.

  저 아름다운 암릉을 다시 걸을 수 있다니...

  설레임을 진정 시키느라 곡차를 한사발 들이키고 산길로 접어든다.

 

2. 상상

 

  법흥왕에 이어 일곱살에 왕위를 계승한 진흥왕은 어머니의 섭정 속에서

 왕의 자질을 키웠으며 할아버지 지증왕, 아버지 갈문왕의 혈통에다

  법흥왕의 외손자인 진흥왕은 누가 뭐라해도 왕으로써 손색이

 없는 혈통이었다.

 

  용맹하고 똑똑한 이사부는 가야를 평정했으며, 백제의 전략적 요충지인

  한강유역을 확보하여 영토를 넓히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급하게 세력을 팽창한 탓에 민심은 수습되지 않았으며 온전한 진흥왕의

 땅이 되기에는 미흡하였다.

 

-  가야에서 데려 온 우륵과 니문을 불러 금을 연주케 하라

-  아니다.    어찌해야 새로 도모한 땅의 민심을 얻고 온전한 내땅으로 할 수 있겠느냐?

- 순수(巡狩:왕이 직접 순행하는 것)를 하시옵고, 전략적 요충지에 순수비를 세워 위엄을 보이소서

- 참으로 좋은 생각이구나.   그리 할 것이니 준비하라.

 

 한강유역을 순수하던 왕은 삼각산 부근에 이르러 하늘과 맞닿아 있는 능선을 바라보며

감탄하였다.

- 술사를 불러라

- 저 능선 어느곳에 순수비를 세우고 싶구나.   어느 봉우리가 좋은지 말하여라.

- 저기 보이는 봉우리가 비봉이온데 그 아래 비마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 비봉에

  순수비를 세우면 능히 위엄과 세력을 더욱 팽창 하실것이옵니다.

- 과연 그러하겠구나.    하나 어찌 저 높은 바위 봉우리에 순수비를 세운단 말이냐?

- 릿지(Ridge)꾼들을 불러 시키면 될것이 옵니다.

- 릿지가 무엇이냐?    생소한 말이구나.

- 서역에서는 능선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주로 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오르는 일을 말하옵니다.

- 그러하느냐    세상엔 참 별스러운 사람들도 다 있구나.     그리하라

  릿지라..... 암봉만 오른다.....  

- 병부령을 불러라

- 어인 일이시옵니까?

- 비봉에 순수비를 세우고 나면 릿지부대를 양성하도록 하라.

   

이 때 부터 우리나라에 릿지산행이 생겨나지 않았을까?ㅎㅎㅎㅎㅎㅎ

 

3. 비봉을 오르며

 

 비봉구간에서 나는 당연히 비봉을 넘기로 하고 일행들을 설득하니

한명만 나와 동행키로하고 나머지일행은 우회한다.

울타리를 넘어 비봉으로 오르다 약간 위험한 구간에 다다르니

앞서 오르던 사람이 발을 떼지 못하고 떨고 있었다.

발을 손으로 잡아 주고 오르라고 했는데도 나를 믿지 못하는지

한참을 망설이더니 올라섰다.

 

이제는 쉬운코스라 오를것을 예상하고 나도 팔에 힘을 주고 올라 서려는

순간 앞사람은 계속 떨고만 있다.

앞사람 히프에 내 머리가 거의 닿아 있는 형국으로 한참을 보냈다.

--- 이 좋은 산에서 낯선남자의 향기를 .......

바위를 잡은 손이 얼어 터질것 같아 안전하니 오르라고 독려하니

그때서야 오른다.

위험구간을 통과하고 나니 고맙다는 소리 한마디 없이 사라진다.

가짜 진흥왕 순수비는 추위에 떨고 있었고 진짜는 박물관에서 따뜻하게

잘 지내는 모양이다.

 

비봉꼭대기에 올라 백운대를 바라보니 가슴은 텅비어 버리고 머리는 김을 내뿜는다.

 

4.  사모바위

 

능선의 북사면은 잔설로 겨울이 여전하고 남사면은 따뜻하다.

태양의 위력을 새삼느끼고 양지를 지향하는 자연이 애처롭다.

저 사모바위는 순수비를 세우던 릿지꾼들이 어머니를 그리며

붙인 이름이 아닐까 ?   북쪽으로 기운걸보니 북쪽에서 온 사람이 아니었을까?

사모바위는 오늘도 어머니를 그리며 외로이 서있다.

 

5. 문수봉

 

비봉에 비해 길이가 긴 이 구간은 전신운동에 딱 좋다.

우회하는 후배에게 아내와 딸을 부탁한다고 얘기하고 릿지구간으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많다.    왜 이리 위험한 구간을 애써 오르려 하는지.....

 어느 부부산꾼의 부인때문에 정체가 되었는데 내가 뒤에서 보니

남편은 릿지화를 신었지만 부인은 일반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남편이 얼마나 채근을 하던지.....

----- 부인도 릿지화 하나 사주지....ㅉㅉㅉㅉㅉ

문수봉에 올라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보현봉을 조망하니 겨울의 한낮이 평화롭다.

 

6. 대남문

 

성벽이 죽 늘어서 있는 풍경을 보며 내려 서면 대남문 지붕이 보이고

대남문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남문 안으로 햇빛은 쏟아지고 문은 햇빛을 들여 보내는 임무를 띠고

있는 듯 하다.

 

성벽 양지쪽에 앉아 점심을 먹는 산객들이 삼삼오오모여 있고

점심을 준비하지 않은 우리일행은 더욱 시장기를 느끼며

구기동으로 달음질 친다.

 

문수사가 멀어지고 승가사가 저만치 보일무렵 산행은 막바지에 다다른다.

 

7. 귀로

 

구기동매표소가 가까워지니 승가사로 다시 오르고 싶은 생각이 날 정도로 아쉬운 산행이다.

개울의 얼음이 녹아 있는 웅덩이엔 송사리가 노닐고 봄은 조금씩 조금씩 황소걸음으로

삼각산을 향해 오고 시장기를 느낀 우리 일행의 뱃속에서는 초음속으로 신호를 전달한다.

 

산을 오르고도 그리움을 떨어내지 못하는 미천한 산꾼은 또다시 그리움 속으로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