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에

빗님이 오신다더니

아침은 맑기만 합니다.

배낭을 준비하고 집을 나섭니다.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편안합니다.

지하철에 버스를 갈아타고 우이동 골짜기에 닿습니다.

맑고 신선한 공기들로 가득할 “북한산”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산!!!

아,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도 가슴이 뜁니다.

가을입니까! 

덧없음입니까!!

요즘 부쩍 산을 찾고자하는 마음이 자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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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푹신한

포장되지 않은 대로를 따라 “육모정” 가는 길을 찾습니다.

“오크밸리”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찻집을 우측에 두고 산길이 열립니다.

“육모정 공원 지킴터”를 지나 서서히 오르던 산길이 어느 순간 고개를 치켜듭니다.

숨이 차오릅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방울방룰 맺힌 땀이 가슴을 타고 내립니다.

시원한 바람 한 줌이 그립습니다.

오던 길을 되돌아봅니다.

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불이 붙었습니다.

산에 불이 붙었습니다.

거칠게 토해내던 숨을 멈추게 하고

가슴을 타고 내리던 땀방울조차 마르게 하는

바람보다 더 시원한 붉고 아름다운 불이 산에 붙었습니다.

아, 가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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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모정 고개”를 지나 “영봉” 오르는 길에 시야가 트입니다.

좌로는  “도봉산”이

“주봉” “신선대” “자운봉” “만경봉” “선인봉”으로 병풍을 치고

우로는 “인수봉” 뒤로 어렴풋이 숨은 “백운대”가 태극기를 펄럭입니다.

발아래 펼쳐지는 속세를 지나 저기 멀리로는 강줄기도 띠를 드리웁니다.

우리의 강산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압도하는 우리의 산야가 있기에 나는 가슴이 뿌듯합니다.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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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봉”에 올라서니 “인수봉”이 가까이 입니다.

“인수봉” 사면에는 많은 바위꾼들이 달라붙었습니다.

외줄 하나에 삶을 싣고

그들은 그들의 정열을 오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방식대로 행복해 할 것입니다.

내가 홀로 산길을 걸으며 행복에 겨워하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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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봉”에서 “하루재” 내리는 길은 그 경사가 심히 뚝 떨어집니다.

불과 200m의 거리가 나를 조심하게 합니다.

언제나 안전이 최고입니다.

“하루재”

또 하나의 다른 들머리에서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는 통로입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산님들로 북적입니다.

시계는 벌써 한시 이십분을 가리킵니다.

애초 “북한산 종주”를 염두에 두고 나선 걸음이지만

시월에, 가을에 취해 쉬엄쉬엄 걷다보니 시간이 꽤 많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대남문”까지 라로 걸어볼 요량으로 다시 산 쪽으로 길을 잡습니다.

“인수대피소”에 닿으니 주위에

우리나라 바위꾼들의 메카답게 여기저기 많은 텐트들이 쳐져있습니다.

젊음입니까.

왠지 보기가 좋습니다.

“인수대피소”에서 “인수산장”가는 길은

삼십 여분을 족히 치고 올라야 하는 비탈길인데다

많은 산님들로 병목현상이 나타나서 더딘 발걸음을 합니다.

그리고 곧 이어 나타나는 “위문”.

“위문”에서 바라본 “백운대”오르는 길은

수많은 산님들로 인해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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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대”를 뒤로하고 “만경대” 사면을 지나“노적봉”쪽으로 길을 갑니다. 

역시 “북한산”의 주능선답게 이길 또한 산님들로 인해 많이 북적입니다. 

“노적 삼거리”에서 “대남문” 가는 길은 편안한 길입니다.

“용암문”을 지나 “동장대” 부근에서

갑자기 밀려든 허기를 찐 고구마와 포도 한 송이로 달래봅니다.

꿀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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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취하고 일어서는데 가는 빗방울 이 떨어집니다.

“용암문”쯤 에서부터 한두 방울 내리던 비가 오긴 올려나 봅니다.

비옷을 꺼내어 입습니다.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집니다.

내리는 비를 피해볼 요량으로 산성 길을 벗어나 숲속 길로 접어듭니다.

아, 환상입니다.

만약 천상에 길이 있다면 아마 이런 길일 것이라고 감히 생각을 해 봅니다.

빗물에 반짝이는 단풍잎은 보석이나 진배없습니다. 

하늘엔 보석이 열려있고 발밑엔 보석들이 밟힙니다.

꽃보다 더 예쁜 낙엽을 내가 밟으며 갑니다.

내리는 빗줄기도 거추장스러운 비옷도 이 걸음을 방해 할 수는 없습니다.

다 젖어버린 바지와 양말까지 흠뻑 젖은 등산화도 성가시지만은 않습니다.

아, 천상의 이 길을 오래오래 걷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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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과 “보국문”에서 하산 길을 마다하고 “대성문”까지를 걸었습니다.

시계가 네 시 반을 가리키니

어림잡아 시간 반을 그렇게 빗속 산길을 걸었나봅니다.

너무나 좋은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젠 하산을 하여야겠습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빗방울은 더욱 더 거세어집니다.

“대남문”을 불과 300m 거리에 두고 아쉽지만 그만 하산을 마음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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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문”에서 “평창매표소”로 하산 하던 길.

예쁘디 예쁜 그 길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산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입에서 절로 나오는 감탄사가 그 끝이 없었습니다.

다섯 시 반쯤 “평창매표소”로 하산을 하니 곧이어 날도 저물었습니다.

천 원짜리 일회용 비옷으로 몸을 가리기에는 빗줄기는 너무나 거세어져 있습니다.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디선가 몸을 말릴 곳을 찾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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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실컷 맞아본 비.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납니다.

                                       200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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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우이동 버스 정류장.

10:30     육모정공원지킴터.

11:25     육모정 고개.

12:30     영봉.

13:20     하루재.

13:25     인수대피소.

13:55     인수산장.

14:10     위문.

14:50     노적삼거리.

16:30     대성문.

17:30     평창매표소. 하산완료.